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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ly Regressing Knight Chapter 502

502
아우딘은 대련 중에 엔크리드의 현재 상태를 알았다.

‘기사도 아니고 준기사도 아니고.’

확실한 건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고 그게 끝도 아니었다. 동작이 더 세밀해지고 판단은 더 빨라졌으며 반사 속도가 달라진 것 외에도 뭔가가 더 있으니.

손과 발을 나누며 그의 눈을 보았다.

평소에도 그의 눈은 어떤 열기를 뿜어냈다. 기사, 꿈, 그런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가 돋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외에 다른 것도 보였다.

확신 비슷한 거였다. 길을 헤매다가 제대로 된 이정표를 발견한 사람 같은 확신.

그 외에도 놀랄 건 더 있었다.

탁, 툭, 쩍!

생각하는 사이 다가온 엔크리드의 주먹을 팔꿈치로 막자, 손을 펴며 손등을 휘두른다. 팔을 흔들어 그걸 흘려낸 뒤 오른손 주먹을 뻗자, 엔크리드가 아우딘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아 냈다.

받아 낸 것으로 끝내지 않고 공방 중 연신 발을 움직여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고도 했다.

단순히 힘이 세다고 잘 싸울까?

그럼 거인이 대륙 제일의 실력자가 될 것이다.

싸움이란 그런 게 아니었다. 전투란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한 것이다.

가령 정확성과 힘의 전달점을 파악하는 게 그냥 힘만 쓰는 것보다 훨씬 유용한 것처럼.

발라프식 무투술은 애초에 힘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제압하기 위해 만든 기술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에 아우딘 자신의 깨달음을 가미한 것이고.

그러니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힘의 작용점 같은 것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엔크리드가 이런 면에서 아주 뛰어난 편이었나?

아니었다. 평범함보다 한참 부족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의 본질을 파악해 변형해서도 쓴다.

주먹으로 시선을 끌곤 발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자마자 은근히 팔뚝을 비틀려고 하지 않나.

아우딘은 힘으로 뿌리치는 대신 땅을 차고 몸을 띄우며 제자리에서 한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덩치는 곰이나 거인과 비견되는데 하는 행동은 다람쥐와 다를 바 없었다.

곧바로 엔크리드가 떨어지는 아우딘의 정강이를 향해 채찍 같은 발차기를 날렸다.

빡.

이건 흘릴 수 없기에 힘으로 버텨 냈다.

아우딘의 단단한 근육은 엔크리드의 발차기 한 번으로 뚫을 수 없는 갑옷이었으니 버티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아우딘이 놀란 건 여기까지 이른 과정이었다.

수싸움, 힘의 작용에 관한 이해, 기술의 본질을 파고든 성찰 등.

그래서 놀랐다고 뭐라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우딘은 그저 보이는 걸 보고 물을 뿐이었다.

“즐거우십니까?”

엔크리드가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으며 덤비고 있으니, 절로 이런 질문이 나올 법도 했다.

“어.”

엔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 끝으로 뚝 떨어졌다. 아우딘은 허허 웃으며 물러났다. 작정하고 붙어서 관절기로 들어가면 아직 상대할 만하지만, 단순한 타격으로 들어가면 단시간에 압도하긴 어렵다.

엔크리드가 검을 쥔다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밀리겠군요.’

아우딘은 순순히 인정했다. 물론 목숨을 뺏는 싸움의 결과가 항상 같을 수는 없다. 여기에 그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뭐가 어찌 됐든 단순하게 현재 상태만 두고 보자면 자신이 뒤처지는 게 맞긴 했다. 아우딘은 그게 황당하면서도 기꺼워 웃었다.

“들고양이야, 머리카락을 바짝 깎아 줄까?”

한쪽에서 연신 작센에게 시비를 거는 렘이 있었고.

채찍과 검을 들고 훈련에 임하는 프록도 있었다.

그 옆에선 테레사가 방패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련을 지켜봤다.

다음이 제 차례였다.

“아우딘 형제님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방패를 든 테레사가 말했다. 엔크리드는 후 하고 숨을 고르곤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좀 늘었다.”

좀이 아니긴 했다.

하여간 그렇게 싸우고 또 싸우고.

로포드가 한쪽에서 감탄을 터트리는 사이다. 연병장 구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펠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뭐냐? 이건?’

펠은 이제껏 상대의 실력을 보고 좌절한 적이 없었다.

재능으로만 치자면 자신이 제일이라 믿었으니까.

그는 현재보다 미래를 가늠할 줄 아는 남자였다. 펠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들을 전부 따라잡으리라 보았다.

‘시작은 대장부터.’

다음은 회색 머리칼로 할까? 나름대로 계획도 세웠다.

라그나가 기사가 되는 걸 보고 중간에 좌절할 뻔도 했으나 끝내 이겨 냈다. 그렇게 한 단계 나아갔다. 펠은 자신이 절망의 늪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었다.

‘나도 할 수 있다.’

엔크리드가 돌아오면 그와 대련한 후에 이제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그리 말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렘이란 야만인은 이제 능히 기사만큼 싸우는 괴물이 돼서 돌아왔다.

저 작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칠 수 있으나, 정말 놀란 건 엔크리드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이 금세 따라잡으리라 보았던 상대다.

그 훈련 시간이, 노력이 수반되어서 실력이 늘었다면 자신도 그렇게 하면 되니까. 재능은 자신이 더 뛰어날 테니까.

그래서 그렇게 했다.

밤낮을 잊고 수련에 매진했다. 지는 걸 각오하며 로포드가 라그나에게 덤빌 때 은근히 같이 덤볐고, 아우딘이란 종교쟁이 곰탱이의 훈련 시간에는 같이 구르기도 했다.

괴로웠다. 검을 쥔 이후로 이렇게 열심히 한 적도 없었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실력이 느는 게 느껴졌기에 버텼다.

인내가 무척 썼으니, 분명 입에 넣을 열매가 달 것이다. 그게 펠을 버티게 했다.

그리고 그래야 했다. 그게 세상의 이치니까. 펠이 바라보는 세상의 이치란 그런 거였으니까.

그런데 이건 뭐냐, 엔크리드를 보는데 이길 자신이 싹 사라졌다.

승패를 가늠함에 시작부터 지는 걸 예상한다는 건 무엇인가?

펠은 눈이 좋았고 그는 현재 엔크리드의 실력이 무척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

칼질 한 번에 담긴 힘, 수싸움, 순발력과 판단력까지.

자괴감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사실 내 재능은 형편없는 건가?’

펠의 마음에 균열이 일었다. 정확히는 라그나를 보고 시작된 균열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펠의 표정이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리 재밌는 농담을 들어도 웃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약혼자, 나랑도 놀아야지?”

시나르와 엔크리드와 마주 선다. 그 장면이 펠에게도 보였으나 펠의 눈은 현재를 보지 않았다.

요정 따위가 뭐가 중요한데?

‘재능이 없다면 뭘 해야 하지?’

전부 관두고 돌아가 양이나 쳐야 할까?

그런데 황야의 양치기가 이런 허약해 빠진 마음가짐으로 할 만한 일이었던가?

아니다. 그럼 뭘 해야 하지?

병사로 종군을? 여기서? 왜? 뭘 위해? 종군은 아니지.

그럼 잡화점에 들어가서 점원이라도 해야 하나? 여관에 손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나? 상단 호위 무사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엔크리드는 시나르의 말을 반기면서도 혼자 축축 처져서 한없이 우울한 기운을 풍기는 펠을 곁눈질로 봤다.

저건 또 왜 저래?

마침 시나르가 왔을 때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돌려 펠의 눈깔이 게게 풀린 걸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시나르를 보니, 에메랄드보다 아름다운 녹색의 눈과 하늘거리듯 떨어진 금발이 보였다. 그녀가 막 머리를 뒤로 묶는 중이었다.

촤르륵 하고 손안에 감긴 금발이 비단처럼 흐른다. 금색으로 만든 아름다움 폭포처럼 보였다.

싸울 때 긴 머리를 활용하기도 했으나 대련에는 불필요하다 생각하고 머리칼을 묶는 거지만,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그냥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했다.

인간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인외의 미모라 이거다.

보통이라면 그냥 숭배하듯 보게 될 미모도 자꾸 보다 보면 이성으로 느껴질지 몰랐다.

황야의 양치기라면 본래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건가.’

직감이 발동하진 않았지만, 일의 전후를 살피면 흐름이 보이는 법이었다.

엔크리드의 눈이 빛났다.

“앞으로 절 약혼자라 부르는 건 좀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장군이 되기도 했고 급하면 말을 편히 하기도 하지만, 아직 시나르에게는 말을 높이는 게 편했다.

시나르가 양손을 들고 머리를 묶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싫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만.”

싫다는데 어쩌겠나.

힘으로 때려눕힌다고 해서 시나르가 자신의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고집으로 치자면 자기가 아는 사람 중 최고 아닐까?

작센에게 끊임없이 구애의 결투장을 보내던 렘이다.

“거, 신전 좀 가라니까.”

그가 엔크리드를 보더니 말했다. 엔크리드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아채서 하는 말이었다.

저 인간 또 헛다리 짚네.

작센의 시선도 엔크리드와 펠을 오갔다.

“흠.”

가벼운 헛기침뿐이지만, 뜻은 분명했다. 헛소리를 들었다는 거다.

“누군가는 그 단어 하나에 눈물을 흘립니다.”

엔크리드는 다시 시나르에게 말했다. 나름 신경을 써 주는 거였다. 훈련하면서도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펠은 여전히 멍한 시선이었다. 사실 저기서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잡화점, 여관, 용병, 상단이란 말을 번갈아 중얼거릴 뿐이었다.

“형제님, 그냥 대련이나 하시지요.”

아우딘이 웃으며 말했다.

엔크리드는 그러기로 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대신 속으로 펠을 응원했다.

그는 언제나 꿈을 가진 자를 존중했으니.

‘힘내라. 펠.’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렘, 아우딘, 작센은 펠이 어떤 상태인지 대강 짐작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고 느껴지는 박탈감에 먹힌 거다. 이 자리에서 이들보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저렇게 망가지는 걸 잘 봤으니까.

서부에 있을 때 렘 곁에도 몇 명 있었는데 달래려다가 나중에는 포기해 버렸다.

뭐, 말을 들어 먹어야지.

몇 놈은 결국 이겨 냈지만 일부는 사라졌고, 다시 일부는 주술사나 전사의 삶을 포기했다.

작센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실력을 증명하려던 놈들을 역으로 다 죽였기에 근처에 그런 놈들이 남아나지 않았고.

아우딘은 하나같이 이끌어 주려 했으나 결국 끝은 렘과 비슷했다.

누구나 넘어질 수는 있지만, 도로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쓰러져 멈추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셋은 펠이 무너지리라 보지도 않았다.

엔크리드를 보고 자괴감에 빠진다고?

처음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주일을 지켜보면? 한 달을 지켜보면? 그냥 미친놈이다. 검에 미치고 훈련에 미친 놈.

엔크리드를 지켜보다 보면 다시 일어나게 될 거다. 그게 자연스럽다. 펠은 유난히 뱀의 마음이 강한 놈이라 질투에 미쳐 버려서 다시 못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건 셋이 알 바가 아니었다.

렘은 펠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긴 했다.

‘의외긴 하네.’

황야의 양치기라고 해서 아득바득 이겨 낼 줄 알았는데 넘어진 채로 아등바등하지 않나.

겨우 한 뼘 깊이도 안 되는 물웅덩이에서 빠져 죽는다고 버둥거리는 것 같았다.

반면에 곱게 자란 듯한 로포드는 달랐다.

“저도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도 저리 외치고 있지 않나.

라그나가 있을 때도 미친 듯이 달려들더니, 용케 살아남았다.

살아남기만 했나, 실력도 늘었다.

여전히 향상심을 지니고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둘의 차이가 뭔지는 알 바도 아니고 관심도 없기에 렘은 금세 시선을 돌렸다.

다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다.

대신 시나르와 엔크리드의 대련을 지켜봤다.

시나르는 일전에 숲에 들어가 정기를 한껏 머금은 채로 돌아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반쯤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약혼자가 싫다면 정혼자는 어떤가?”

“실력은 좀 늘었습니까?”

엔크리드는 버릇처럼 말했고, 그 한마디 말은 마법처럼 시나르의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게 했다.

“웃는 것도 조심하시고.”

왜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하는지는 모른다. 시나르는 상관하지 않고 검을 들었다. 이제는 검으로 말할 시기였기에.

잎새를 닮은 나이들이 그녀의 얼굴 반을 가렸다.

작센을 비롯해 모두 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시나르는 이미 기사의 반열에 오른 요정이었다. 즉, 요정 기사였다.

* * *

대련은 엔크리드의 패배였으나, 엔크리드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다. 무언가 배우고 익힌 게 있어서였다.

이전에는 막지 못한 정기의 검을 막았고, 그 뒤엔 틈을 노리고 레슬링 기술을 걸기도 했다.

근접전 상황에서 시나르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요정의 가장 큰 강점은 가벼운 몸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그걸 증명했다.

가볍고 빠른 스텝으로 엔크리드를 가운데에 두고 돌기 시작하자 잔상으로 시나르의 모습이 열두 개로 늘어났으니.

지켜보던 루아가르네가 꾸륵 볼을 부풀렸고, 공교롭게도 시나르의 검이 그 소리에 맞춰 엔크리드를 벴다.

열두 개의 잎새검 중 가짜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기사의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나 보일 선후의 차이가 있을 뿐.

엔크리드는 한 치 앞을 보는 눈을 떴으나 막진 못했다. 정확히는 봤으나 몸이 따르지 못했다.

“미래시가 열렸구나.”

그걸 본 시나르가 말했고.

작센과 아우딘은 내심 놀라서 렘을 바라봤다.

이 새끼는 서부에서 이미 본 거겠지? 그런 의미였는데.

“씨, 이제 실력이 막 느네.”

렘도 놀란 게 보였다.

그러니까 렘도 모르는 모습이란 거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정확히는 펠을 제외한 모두는 엔크리드를 보며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임을 알았다.

엔크리드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중이었다.

“대장!”

그리고 금세 돌아올 줄 알았던 크라이스가 왔다.

“늦었다.”

앉은 채로 엔크리드가 말하고.

망토와 후드를 뒤집어쓴 크라이스가 활짝 웃는 게 보였다.

그 뒤로 누라트와 호위대처럼 꾸린 여덟의 칼잡이도 함께였다.

하나같이 마르타이에 있을 토레스 정도는 치는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최상급 병사.

그중 하나는 아예 준기사급이란 용병 정도도 되어 보였고.

가장 놀랄 점은 누라트의 변화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풍기는 기세가 전과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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