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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49

349
키누안은 나의 스승이다.

내 인생에 키누안이 없었다면, 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물론,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은 키누안만이 아니다. 지젤, 일레이, 헤일라스…… 이들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내 삶의 궤적은 크게 달라졌을 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키누안이다.

‘그러나 무상의 가르침은 아니었어. 내게서 대가를 철저하게 징수했지.’

대가의 징수, 그게 키누안이 일레이가 아니라 루카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루카.

키누안은 여러 상황에서 날 던져두고 시험했다. 루카란 인간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공격성과 폭력성, 도덕성과 윤리 의식, 가치관과 신념.’

키누안과 일레이는 인내심이 강한 기회주의자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반면, 나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뛰어들었고, 자신을 소모하는 걸 꺼리지 않았다. 짧은 교류와 작은 유대를 지키기 위해 상처를 입고 때론 부서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나는 혼돈과 혼란을 이용하기보다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키누안에게 필요한 인재였지.

‘내가 폭풍기의 변수가 될 거라는 걸 키누안은 예측했어.’

폭풍기의 변수, 이게 키누안이 날 가르치고 키워낸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키누안의 목적이 아니었어.’

진의를 가리기 위해 얄팍한 거짓을 한 장을 씌우는 건 이류다. 거짓을 파헤치는 순간 진의가 곧장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류는 진의를 가리기 위해 또 다른 진의를 씌워 덮는다. 진실은 진실로 가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키누안이 폭풍기를 대비해 날 이용하려고 한 건 진실이지.’

그러니 놈이 날 가르친 까닭에 대해 다른 의심을 할 필요가 없었다.

키누안은 내 시야가 닿지 않는 맹점에 자신의 목적을 두었다. 그리고 여러 진실과 거짓을 같이 뿌렸지.

거짓말을 파훼하면 드러나는 진실이 진짜 목적이라고 믿게끔 말이다.

‘내 아키에스 빅티마가 미숙했던 시절…….’

난 과거를 되짚었다. 내 통찰력이 올라갈수록 키누안도 처신을 조심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느슨했다가 점차 내 앞에서도 경계했겠지.

키누안의 실수는 내 아키에스 빅티마 수준이 낮았을 무렵에 있었을 것이다.

‘키누안은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놈의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어.’

내 사고가 부드럽게 흐른다. 매끈하게 닦인 도로처럼 멈춤이 없었다. 사고가 점멸할 때마다, 새로운 길이 나타나 여러 방면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렇게 깨끗한 고속다각 추론은 오랜만이었다. 일시적인 전능감에 취할 것만 같았다.

우뚝.

생각하며 걷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내 앞의 고층 건물이 높게 솟아있었다. 고개를 한참 들어도 끝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고, 입구에는 정갈한 금색 현판이 있었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사옥은 높고 뾰족했다. 제국의 건축 양식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직선으로 이뤄진 건물이었다.

다만 창업자 둘이서 시작했다는 걸 상징하듯, 사옥은 양쪽의 건물이 중간부터 만나 솟구치는 모양새였다.

나는 사옥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보았다.

보더시티의 기업과 비교하면 차분한 분위기였다. 입구에서도 떠들썩한 느낌이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경비들도 기계적이라 안드로이드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욕구와 욕망이 거세된 듯이 절제된 분위기. 제국의 상류층은 대체로 이러했다.

그러나 억누른 욕망은 뒤틀리며 썩을 것이고, 표출하지 못한 욕망은 부패한 피처럼 시커멓게 고인다.

나는 입구로 들어가 사옥 1층의 안내처로 향했다. 안내원 세 명이 방문객을 응접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입니다. 당사의 방문을 예약하셨습니까?”

중앙의 안내원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저 미소 너머로는 날 불편하게 여기는 기색이 잠시나마 드러났다.

‘당연히 경계하겠지.’

난 고급스러운 상류층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다. 실제로도 순찰하던 경비들이 느슨하게 걸으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음.’

난 습관적으로 경비를 전부 처리하는 시뮬레이션 망상을 했다. 나의 초동대처는 언제나 폭력을 전제하고 있다.

‘싸우려고 온 것도 아니잖아, 루카. 진정해.’

머리가 쌩쌩하니 몸도 근질근질한 모양이다. 회복된 내 기량을 시험하고 싶기도 했다.

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를 명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나 자신이 한심해서 미치겠군.’

내 마음 한구석에서 짐승이 고개를 들며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냈다. 그 짐승은 누군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공격하길 바라고 있다.

‘무의미한 공격성은 억눌러라.’

이건 앞으로 평생 짓누르고 살아야 할 본능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나도 폭력과 자극에 찌든 삶을 끝내고 싶다. 이건 진심이다. 약물 중독자도 다들 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가?

난 호흡을 고르고선 차분하게 말을 내뱉었다.

“길다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아, 그러니까 최고 경영자분요. 제 이름을 루카라고 말하면 허가해줄 겁니다.”

안내원이 난색을 드러냈다. 다짜고짜 최고 경영자를 방문하겠다고 말하면 누구나 저럴 것이다.

“……아, 그러시군요.”

어색한 침묵 끝에 안내원이 대답했다.

저벅, 저벅.

난 경비들이 내게 몇 걸음씩 가까워진 걸 느꼈다.

눈동자만 굴려서 금속과 거울의 반사를 통해 경비들을 훑어보았다. 저들의 손가락에는 이미 방아쇠가 걸려 있었다.

안내원은 귓가에 손가락을 얹으며 상부와 통신을 시도했다. 길다의 비서일 것이다.

“방문객이 있습니다. 네, 네. 이름은 루카라고 합니다.”

다들 내 방문이 당연히 거부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날 쫓아낼지 고민 중일 것이다.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머지않아 안내원의 눈이 커졌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귀빈으로 응접하겠습니다.”

안내원은 놀란 기색을 금세 감추더니 방긋 웃으며 날 보았다. 경계심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날 주시하던 경비들도 뒤로 물러나더니 순찰 경로로 돌아갔다.

또각, 또각.

안내원은 자리까지 비우며 날 안내했다. 나와 안내원이 탄 승강기가 빠르게 치솟았다.

우우웅.

승강기는 인적이 없는 층에서 멈췄다. 거의 꼭대기인 듯했다.

발소리를 잡아먹는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자 층 하나를 절반 넘게 잡아먹는 방이 나왔다.

방 내부는 응접실이자 기업 박물관이었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이력과 주력 상품이 벽면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안내원이 다과를 권했으나 난 거절하고선 가까운 소파에 앉았다.

“……회의 중이라 잠시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호출해주세요.”

안내원이 탁자에 놓인 호출 단추를 가리키며 말했고, 곧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자리를 비웠다.

나는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사옥에 들어왔다.

‘자력으로 사옥에 침투하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길다를 비밀리 만날 수도 있지.’

그러나 난 의도적으로 1층 입구부터 정식 절차를 거쳐 길다를 방문했다.

난 기다리는 동안 주변 환경을 머리에 집어넣었다.

거창한 사옥과 잘 꾸린 응접실을 보니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규모가 실감이 갔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역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네.’

내 시선은 벽면에서 멈췄다. 지앤지 공업소 시절부터 대기업까지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었고, 시기마다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작은 공업소 시절의 사진에선 그리운 모습이 보였다.

회사를 확장할 때마다 길다와 지젤이 사옥과 공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브리엘도 단체 사진에서 보였다.

난 지젤의 변화를 사진으로 보았다. 나만큼이나 불안정했던 소녀는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현 사옥의 사진에 이르러선 차가운 여인이 정복을 입은 채로 서 있었다.

난 회사의 주력 상품들도 보았다. 이쪽에 관심은 없지만, 내 뇌는 감각이 닿는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이러니 사람이 미쳐버리는 것이지.

지앤지 사이버네틱스는 의체를 최적화하는 장비와 칩을 주력으로 팔고 있었다. 의체를 직접 제조하진 않았다.

‘현명한 판단이군.’

지젤과 길다는 기존의 대기업이 관여하는 사업과 시장엔 직접 손대지 않았다. 그들은 틈새시장을 만들어 노렸고, 덕분에 신생 기업치곤 견제를 적게 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지앤지는 다른 사이버네틱스 의체 기업과 협력하는 식으로 의체 사업에 손댔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는 의체를 생산하지 않고도, 타기업과 협업으로 개조와 조율만 맡은 의체를 시장에 내놓으며 명성을 이어갔다.

스륵.

나는 일어서서 길다의 사진을 되짚어갔다. 과거로 갈수록 차림새는 투박했으나 미소는 더욱 아름다웠다.

길다가 지젤과 대립한 것도, 순전히 지젤의 잘못이었다. 길다는 회사와 직원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길다는 좋은 사람이다. 인간미가 있고 다정했다. 애초에 그녀가 갱단에게 납치당해 위기에 빠진 것도 친구의 잘못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에 존재만으로 따스한 빛이 되는 사람은 귀하다. 길다는 그런 여자였다.

스르륵.

나는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 시야가 차단되니 사고는 더욱 깊어졌다.

진가우의 말이 뇌리에 먼저 떠올랐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소중한 것일수록 소중하지 않은 척해야 하지. 가족, 연인, 친구는 약점이 되니까 말이야. 내 약점을 찾아내려고 눈을 희번덕거리는 자들이 제국엔 수두룩하네.’

키누안도 진가우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캐내려 했을 것이다.

황제 유리 크라치아도 키누안에게 약점이 있다면 잡으려 들었을 것이다. 키누안을 스쳐간 무수한 협력자와 적들도 마찬가지이고, 헤일라스도 키누안의 약점을 찾으려고 했겠지.

키누안은 필요하다면 누구든 이용하고 도려냈다. 그가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냉혹하게 굴었다.

‘그러나 키누안과 엮이고도 유일하게 풍파를 피해간 사람.’

그게 ‘길다’다.

나는 아랫입술을 튕기듯 깨물었다. 감정이 뒤흔들리고 있다. 이게 맞는가 하는 의심도 쉼 없이 들었다.

‘길다는 나처럼 보육원 출신이다.’

난 재구축된 머릿속의 도서관을 헤매다가 키누안으로 분류된 장서들 앞에 섰다. 키누안만 모아둔 책장은 옆으로도 길고 위로도 높았다.

나는 그중 하나를 뽑아서 펼쳤다. 그의 말이 선명하게 귓가에 들렸다.

‘길다도 보육원 출신이야. 어릴 때부터 기계 공학 쪽에 재능이 있어서 내가 학업까지 후원한 적이 있어. 후원자가 나인 줄은 모를 테니까 비밀이네.’

키누안이 했던 말이다.

키누안은 거짓과 진실을 항상 섞어서 말한다. 그러니 중요한 진실이 중요치 않거나 거짓처럼 들리기도 한다.

‘키누안은 주기적으로 보육원을 후원했다. 길다처럼 개별적으로 후원을 받은 아이가 더 있겠지. 길다만 특별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

보육원 출신 중에 갱단과 얽히거나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길다도 갱단에게 납치되어 험한 꼴을 당했다.’

길다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걸 알고 참을 수 있을까? 훤히 알면서 그 사실을 인내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키누안이라면 가능하다.’

나도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막상 그런 상황과 마주하면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겠지. 내가 대업을 이룰 그릇이 못 되는 이유다.

‘키누안은 직접 나서지 않고, 훈련을 빌미 삼아 나로 하여금 길다를 구하게 했어.’

당시 키누안은 드물게 감정을 여러 번 드러냈다. 그땐 나도 그가 후원했던 아이를 아끼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엔 키누안이 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연기한 것이라 여겼지.

‘키누안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겉으론 유유자적한 퇴역 군인처럼 보여도, 사실은 몸이 둘이라도 부족했던 양반이지.’

키누안의 필사적인 뒷공작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런 키누안이 날 데리고 길다의 공방을 몇 번이나 방문했다.’

지금 생각하니 명백히 이질적인 행동이었다.

키누안은 길다와 가브리엘을 묶어서 ‘루카의 하층 구역 조력자’로 칭했다.

‘난 자연스레 길다와 가브리엘을 내 울타리와 보호 아래에 넣었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난 길다에게 정을 붙였다. 그녀의 안전에 신경을 썼고, 가브리엘에게 그녀의 경호를 맡겼다.

그 망할 키누안은 길다를 지키는 날 보며 기특하게 여겼으리라.

그야말로 ‘굿보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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