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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40

339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진가우만큼 박학다식한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더 있다면…… 무쉬르 알 카슈라 정도겠지. 고난과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난 카슈라를 떠올린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뇌의 상한선을 풀어버리지. 기술이 발전하면서 근신경계의 상한선을 해제하는 건 문제가 없어졌네. 의체라는 새로운 기계 신체가 버텨주니까. 그러나 뇌는 여전히 타고난 피와 살로 이뤄져 있지. 생물학적 강화로도 한계가 있어.”

진가우가 말했다. 나는 그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기능 이상을 종종 느끼고 있습니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고, 주변 환경에서부터 과다하게 정보를 흡수하네. 무시해야 할 사소한 정보조차 처리하면서 말이야. 그 덕분에 예지에 가까운 통찰력과 위기 감지 능력을 갖출 수 있지. 하지만 그뿐이네. 개인으론 대단해도 집단으로 보면 사소한 능력이야.”

난 살짝 눈을 찌푸렸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이는 그 능력으로 대국적인 판도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진가우는 비웃듯이 입술을 씰룩였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하나의 무기네. 그것도 양날의 칼이지. 모든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가 자네처럼 우수하던가? 개체의 우수성과 기술의 우수성을 헷갈리지 말게나. 자네의 능력은 여러 우연이 겹쳐서 개체의 성질과 기술의 특성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지. 자넨 근위대 생도 중에서도 불세출의 기재라고 불렸던 천재야. 아키에스 빅티마가 없었어도 다른 방향으로 큰 성과를 내고 지금만 한 능력을 갖췄을 거네.”

진가우의 말을 듣고도, 내 얼굴은 붉어지지 않았다. 내용은 칭찬이지만 그의 어투가 몹시도 담담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부나 칭찬이 아니라 사실을 나열한 것이다.

“어쩌면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힌 게 실책일 수도 있겠군요.”

“선택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우리가 알 방법은 없지. 어쨌든 자네는 아키에스 빅티마의 파국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 자극이 극도로 통제된 환경에서 요양한다면 평범하게 남은 삶을 살 수도 있겠지.”

“뭐,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군요.”

“자네가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근위대 출신이 폭력을 떠나 살아가는 건 몹시도 지루한 일이네. 온몸이 근질근질할 거야. 폭력과 전투 같은 자극을 수용하는데 최적화된 뇌 신경계를 가졌으니까.”

“지금 제 뇌는 너덜너덜할 겁니다. 제대로 싸울 때마다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받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난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단순한 원리네. 근육이든 뇌든 마찬가지야. 회복을 뛰어넘은 충격이 누적되면 영구적 손상이 생겨.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가 망가지기 시작하는 지점이지.”

난 눈을 감으며 과거를 되짚었다. 내 의식은 시간을 거슬러서 폭풍기로 접어들었다.

그때도 진가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중상을 입어 다 죽어가는 나를 수술해 살려낸 게 진가우다.

‘지금 생각하니 더럽게 고마운 사람이네.’

진가우는 호의도 호의처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의 처세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진가우와 가까워졌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면 진가우도 위험에 빠졌겠지.

진가우는 상대에게 거리를 두며 간접적으로 도움을 베풀었고, 도움을 받은 당사자조차 진가우의 의중을 알기 어렵다.

난 눈을 떴다.

“소장님께서 제게 히드라라는 약물을 투여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아, 초재생 약물이지. 위험하긴 해도, 그땐 그것 말곤 자넬 살릴 방법이 없었네.”

“그때 소장님은 약물이 뇌로 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뇌를 재생하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 정확히 말해서 전투 시 일어나는 뇌의 손상을 약물로 막을 순 없습니까?”

내 말에 진가우는 웃었다.

“자네의 뇌는 이미 흉터투성이네. 이런 부류의 손상은 라자루스에서도 손댈 수 없어. 하물며 히드라로 뇌의 손상을 실시간으로 상쇄한다? 아무리 재생 부위를 통제하더라도 인격과 기억에 극심한 혼탁이 일며 자아를 유지하는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날 거네. 생각해 보게나, 평생을 걸쳐 천천히 일어나야 할 뇌의 변성이 몇 초 만에 일어나. 대부분 미쳐버릴 거고, 정신을 유지하더라도 동일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격과 자아의 변질이 일어나겠지.”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소장님은 다른 사람의 뇌에 히드라 약물을 투여해보신 적이 있군요.”

“제국의 인재들이 뇌 손상으로 인해 수없이 재기불능이 되네. 우리도 어떻게든 ‘재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다방면 다각도로 말이야.”

쿠스토리아 가문의 비호가 없거나 이반이 날 아끼는 게 아니었다면…… 나도 재기불능이 된 이후에 생체실험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뇌 손상이 심했을 키누안은 중요한 순간마다 아키에스 빅티마를 십분 활용했다.’

키누안의 뇌 손상은 실제로 심각했을 것이다. 그는 평시에 자극을 통제하며 뇌 사용을 최소화했다.

심지어 보더시티에서 발견한 키누안의 거처에는 상세한 메모가 적힌 사고 지도가 있었다. 그는 기본적인 암기 능력마저 저하된 상태였다.

‘키누안은 내 이륜차를 격추하기 위해 예지에 가까운 사격을 가했다. 당시 키누안은 어떤 약물을 목덜미를 통해 주입했어.’

아키에스 빅티마를 극한까지 수련한 우리에게 각성제는 효용이 없다. 이미 뇌를 한계까지 각성시킨 상태였다. 상시 각성제를 복용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키에스 빅티마 과용으로 뇌가 처참하게 망가진 사람이 일시적으로나마 기량을 회복할 방법.’

나는 조심스러운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 키누안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회복이 손상보다 앞선다면…….’

뇌에도 그게 가능한지 진가우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키누안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이번 임무에서 키누안은 분명히 갑작스레 내 앞길을 가로막을 터다. 지금까지 늘 그러했으니까.

‘키누안은 정신전이기를 이미 사용했다, 아마 회복용으로.’

키누안은 여전히 의문이란 장막 뒤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형체는 예전보다 뚜렷하다.

“자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아네. 미량의 히드라 약물을 뇌에 투여해 초재생을 일으켜 아키에스 빅티마로 인한 손상을 실시간으로 상쇄할 생각이겠지.”

“가능합니까?”

“기계와 달리 생체는 동일한 개체조차 상황에 따라 다른 화학반응을 일으키네. 개체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뇌처럼 복잡한 기관의 변수는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지. 결론을 말하자면, 변수가 무수히 많기에 가능할 순 있네. 그러나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깝지.”

“만약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겁니까?”

진가우가 흥미롭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자네는 마치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있다면 나도 직접 보고 싶을 따름이야…….”

나는 입을 다물고 진가우가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다.

“……약물 기운이 도는 동안은 매 순간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자아와 기억이 출렁일 거네. 약물이 끝나고 나서야 정체성이 고정될 거고. 하지만 약물 투여 전후로 사람이 크게 달라지겠지.”

나는 손을 입에 가져갔다. 벌어지는 입술을 다물기 힘들었다.

츠즈즈즈.

내 뇌리에 전기가 이는 것 같다. 신경계가 자라나듯 사고가 넓어진다.

‘키누안은…….’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추론이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타인을 믿지 않는 게 아니야.’

구역질이 났다.

‘놈은 타인을 믿는 게 불가능한 거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분이 힘드니까. 누굴 믿어야 할지 어찌 알 수 있을까?’

내 동공은 극심히 커졌을 터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다.

톡톡.

진가우가 내 반응을 보더니 탁자를 두드렸다.

난 몰입 상태에서 벗어나며 사고를 환기할 수 있었다.

“이 방식에 대해선 관심을 끊는 게 좋아. 자넨 쓸 수가 없어. 약물을 머리에 주입하더라도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질 거네. 뇌에만 국소적으로 작용하게 하는 게 불가능해. 전신의체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중상이 아닌 정상적인 상태에서 용량을 높이면 과잉증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어터진 만두 꼴이 된다고 하셨죠.”

“큰 도움이 못 되서 미안하군. 하지만 다른 조력은 바라지 말게. 난 이번에도 웅크려 지낼 테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뭐, 이번에도 살아남는다면 다시 찾아오게나. 그땐 술이나 한잔하지.”

난 옅게 웃으며 문 앞에 섰다.

“소장님은 절 좋아한다고 하셨죠. 저도 이제 소장님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가우가 등받이에 상체를 젖히듯 기댔다. 그가 엄지를 펼친 채로 검지를 내게 뻗었다.

“하하, 정들면 곤란하니 그런 말은 삼가게. 난 자네가 죽어도 다음날 웃으며 지내고 싶네. 그 정도로만 친한 게 딱 좋아.”

난 고개를 까딱여 작별인사를 했다.

끼이이익, 쿠웅!

문이 닫혔고, 복도에선 그레이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 * *

그레이스는 라비앙로즈 구역 바깥까지 날 안내했다.

우린 둘 다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잠시 서먹했으나 곧 그레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전 당신을 돕지 못합니다.”

그레이스는 부탁하기 전에 거절부터 했다. 나도 괜히 기분이 상했다. 애초에 부탁할 생각도 없었다.

“치마 끄덩이를 붙잡고 부탁해도?”

나름의 농이다. 그레이스도 킥하고 짧게 웃었다. 성공이구나, 루카.

“어림도 없죠. 저는 ‘디바’입니다. 조직의 안녕을 최우선시해야 하고, 더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움직일 순 없습니다.”

“애초에 부탁할 생각도 없어.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갑자기 지젤이 떠오른다.

지젤은 개인적 감정 때문에 지앤지 사이버네틱스라는 집단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나왔다.

‘음, 지젤이 악녀가 맞긴 하네.’

나는 멋쩍어져서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제가 디바가 아닌 그레이스라는 개인에 불과했다면 당신을 도왔을 겁니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요.”

난 감정 신호를 억누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내 감정의 동요가 그레이스에게 전달됐을 터다.

“고맙긴 한데, 부담스럽기도 하네.”

그레이스가 입꼬리를 살짝 들며 웃었다.

“당신을 보고 있자면 도와주고 싶어지니까요. 이건 저만의 감정이니 보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저는 위태위태한 사람에게 약한 모양입니다. 마르티나도 그렇고 당신도요.”

벌써 라비앙로즈의 구역이 끝나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있던 장미 문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걸음을 살짝 늦췄다. 나도 머뭇거리다가 발걸음 속도를 맞췄다.

딸깍.

그레이스가 굽이 높은 구두를 벗어서 양손에 들었다. 그녀는 맨발이 편하다는 표정으로 걸었다. 따박한 구둣발 소리가 사라지니 한결 그녀다웠다.

“저는 마르티나가 죽으면 조직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은혜를 끝까지 갚았으니 드디어 저만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죠.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업과 궤적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더군요. 제가 사라지고 난 뒤에 조직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히 보이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네 탓이 아니야. 마르티나가 후임자를 제대로 만들지 않아서 그런 거지.”

“노력했으나 적당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겁니다. 마르티나는 말년에 의식이 혼탁했으면서도 제정신이 들 때면 제게 라비앙로즈를 이끌어달라는 말을 빠짐없이 했습니다. 항상 자신만만했던 디바가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제게 매달렸죠.”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르티나 디바는 못된 여자다.

“네게 저주를 건 거다. 풀지 못할 저주를 죽으면서 네게 남긴 거지.”

우린 계속 걸었다.

우뚝.

그레이스는 걸음을 멈추고선 나를 바라봤다. 자신은 여기까지라는 듯이 말이다.

“전 여기까지입니다. 저주에 걸렸으니 말이죠.”

그레이스가 날 배웅했다. 나도 고개를 숙이고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르티나는 그레이스에게 저주를 걸었다.’

그러나 그 저주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레이스가 기꺼이 저주에 걸린 까닭은 마르티나를 사랑했기 때문이지.

내가 지젤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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