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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38

338
난 장비 점검을 끝내고 문을 나섰다.

복도가 끝나기 전에, 나는 목덜미를 눌러서 가변식 전투 헬멧을 썼다.

‘프란세크가 점거한 산업지구.’

나는 산업지구의 광장과 상점가를 지났다. 당연히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서늘했다. 공장주 같은 부유층과 군인들만이 간간이 상점가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민과 노동자는 보이지 않다시피 했다.

‘사실상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인지라 필수적인 생계 활동 외엔 뭐든 허가받아야 하는 상황이지.’

순찰 중인 군인들이 골목마다 보였다. 외진 곳조차 드론이나 안드로이드가 돌아다녔다.

삐빅, 삑.

사람 머리 크기의 순찰 드론이 다가오더니 내 눈높이에서 멈췄다.

-신원 조회 중입니다.

난 가만히 서서 신원 조회에 응했다.

위이잉.

드론은 내 신원을 확인하더니 붕 떠오르며 사라졌다.

일레이가 입력해둔 가짜 장교 신분이 있으니, 프란세크 진영에서는 군인이든 드론이든 날 방해하진 못한다.

기이잉, 철컹, 텅!

기계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산업지구 곳곳에선 대공포와 방어 설비가 설치되고 있었다.

난 깡깡 울리는 굉음 밑으로 걸어갔다. 머지않아 산업지구의 외곽이 나왔다.

외곽에는 검문과 경비가 훨씬 삼엄했다. 소형 드론 한 대조차 그냥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검문소 근처에서 걸음을 멈췄다.

탕-!

앞쪽에서 총성이 일었다. 전투는 아니었다.

검문 절차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군인이 노동자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저, 저는 여기서 십 년 넘게 일했습니다. 아, 젠장, 통행증이, 아니, 어디 갔지?”

노동자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자신의 낡은 가방을 뒤지다가 잡동사니만 잔뜩 쏟아냈다.

검문하는 군인들도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저벅, 저벅.

곧 안쪽에서 지휘 견장을 찬 부사관이 나오더니 재차 노동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말씀하신 공장의 출입 명단에는 당신의 이름과 얼굴이 없습니다. 십 년이나 일했으면 뭐라도 기록이 있었겠죠.”

부사관이 묵직한 군용 단말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모두가 정규 노동자가 아닙니다! 젠장, 지금 댁들 때문에 도시 내 물가가 어떻게 된 줄 아쇼? 며칠이나 일을 공쳤는데! 오늘도 일하지 못하면 당장 내일부터 가족들도 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이 시국에 거리로 나가라고요? 그냥 여기서 날 쏴서 죽이던가! 염병!”

노동자가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다. 옷도 해져서 초라한 차림새인 데다가 눈이 커서 더 애처로워 보였다. 동정심을 절로 일으키는 하층민 노동자였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일부는 단말기를 들어서 촬영까지 했다.

“촬영은 금지입니다! 당장 단말기를…….”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사방을 겨누었다. 의외로 노동자들은 겁먹지 않고 촬영을 계속했다.

‘교착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군인이 자신들을 쉽게 쏘지 못한다는 걸 아는 거로군.’

현 대치 국면에서 시민의 지지와 여론은 몹시 중요하다. 특히 프란세크 측에선 하층민의 지지가 중요한 터라 함부로 민간인을 공격할 수 없다.

“우우우우우!”

“먹을 걸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하게 해달라는 게 그토록 무리한 요구냐!”

“그럼 무상 배급이라도 해주던가! 망할 새끼들! 총만 들면 다야? 그걸 만든 건 우리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노동자들이 쓰레기를 군인들에게 던져대고 있었다. 평시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부사관은 곤란한 듯이 상부에 통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통신이 바로 되지 않는 듯했다.

‘전쟁이란 참 교활하지.’

나는 입술을 비틀며 관망했다.

상황은 몇 분 만에 급속도로 나빠졌다. 검문은 교통 체증처럼 밀리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현장 지휘를 맡은 부사관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급 지휘관에 불과한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소대장님, 일단 일이 커지기 전에 통과부터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남자의 얼굴은 저도 기억합니다. 여길 통과하는 걸 몇 번인가 봤습니다.”

군인 한 명이 부사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부사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 그래? 아니, 넌 그걸 진작 말했어야지! 이 사태가 될 때까지 아가리 싸 물고 있었어?”

“그, 그랬다간 괜, 괜히 제가 책임질 상황이 생기잖습니까.”

“하, 진짜.”

부사관이 도와준 군인의 뒤통수를 때렸다. 문제가 된 노동자를 산업지구 내로 보내니 사태는 곧 소강으로 접어들었다.

막혔던 검문 절차가 다시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가끔 있는 별일 아닌 소요로만 보였다.

‘나 원, 뻔하군.’

나는 검문에 걸렸던 노동자의 뒤를 밟았다. 그는 다른 노동자 행렬에 섞여 공장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골목길로 빠졌다.

‘훈련받은 자의 몸놀림, 역시…….’

상황이 보였다. 신원 조회가 되지 않는 노동자는 이반 측에서 보낸 첩자다.

저자가 검문을 통과하지 못했어도 프란세크 측의 여론이 안 좋아졌을 거고, 통과하면 산업지구 내에서 활동하면서 내부 조작을 할 터다.

‘양 진영에는 첩자가 한둘이 아니군.’

애초에 내전이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 비일비재했고,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출렁이기에 오늘의 동료가 내일엔 적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아까 노동자의 얼굴을 안다고 보고한 군인도 첩자겠지. 군중 사이에선 바람잡이도 많았고.’

바람잡이 역할을 하던 자들은 검문받기도 전에 뒤돌아서 도망쳤다.

‘모든 검문소에 상시 우수한 군인을 배치하기 힘들지. 군 내부에도 첩자가 많이 섞여 있고.’

교착이 길어질수록 피아식별이 모호해지고 혼란만 더 커진다. 사건이 하나라도 터졌다간 산업지구 가동도 머지않아 멈추고 완전 통제 상태가 될 터다.

넘치기 직전의 잔과 같았다. 혼란의 물결은 폭력의 임계점까지 도달했다.

‘안 봤으면 몰라도, 봤으니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노동자로 위장한 첩자가 골목에서 몸을 숙인 채로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묵직한 의체로도 소리 없이 살금살금 걸었다.

스륵.

내 그림자가 첩자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놈이 움찔했고, 그게 녀석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으드드득!

난 첩자의 머리를 무심하게 양팔로 감싸며 비틀었다. 생체를 부수는 건 쉽고도 쉽다.

퍼억!

나는 첩자의 머리를 밟아서 뇌까지 부쉈다. 전장에선 확인 사실이 기본이다.

‘전쟁.’

전쟁에서 사람의 목숨은 숫자이고, 개인의 죽음은 무척이나 사소한 일이다.

본격적으로 충돌하면 수만이 넘는 생명이 말 그대로 증발할 것이다. 사회가 흔들리고 변모할 만큼 말이다.

‘아크바란을 전장으로 삼은 내전.’

그 누구도 쉽게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똑똑하군, 일레이.’

대치의 교착으로 이득을 보는 건 일레이다.

나도 모르게 의식이 전투 상태로 들어가고 있었다. 군인의 본능이 치밀고 있었다.

마음이 한없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온몸은 폭력이란 옷을 걸친 듯이 근질근질했다.

세월이 지나도 내게 각인된 전쟁 병기로서의 본능은 여전했다. 무뎌지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상황을 위해 훈련받았다. 근위대는 특수전은 물론이고 야전 지휘까지 도맡을 수 있다.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는 어느 위치에 끼워 넣어도 매끄럽게 작동하는 만능열쇠였다.

지금도 나는 첩자를 발견하고선 제거했다.

‘적군’이라는 인지가 생기니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낮다 못해 오히려 즐겁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음, 언제까지 이딴 생각을 할 거냐, 루카.

“내가 십 대 소년도 아니고…….”

난 손을 툭툭 털며 자리를 벗어났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내 내면의 갈등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니 현재의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 나는 위대한 영웅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니까.

* * *

아크바란은 제국의 심장이고, 대부분의 기간산업이 여기에 쏠려 있다.

프란세크 진영이 점거한 산업지구는 아크바란의 일부지만 통제가 가능한 규모였다.

반면, 이반이 감당할 지역은 산업지구에 비할 바가 안 되게 넓었다. 특히 프란세크의 편이 많으며 넓은 하층 구역은 사실상 감시 태세를 포기한 상태였다.

이반은 상층 구역에 모든 인력과 자원을 집중한 듯했다.

터벅, 터벅.

나는 그리운 하층 구역을 거닐었다.

하층 구역은 갱단이 자경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치안 자체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경범죄는 여전히 많았고, 눈에 띄는 중범죄는 드물다.

‘어릴 땐 여기서 상층 구역을 우러러봤지. 저기가 천국이고, 귀족과 부자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사는 줄 알았어.’

하층 구역의 삶이 죽도록 싫었다. 어떻게든 상층 구역의 사람과 같은 위치에 서려고 아등바등했다.

그러나 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상층 구역의 특권층이 되기엔 비위가 부족했고, 하층 구역의 사람이라기엔 오만했다.

‘여기도 활기가 예전 같진 않군. 도시 전반에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

나는 걷고 또 걸었다. 하층 구역은 증축과 개조가 자주 일어나 길이 자주 바뀌곤 한다.

그래도 하층 구역의 큰 범주는 변함이 없었다. 익숙한 건물과 거리가 하나둘 나오니 윤곽이 훤히 보였다.

나는 환락의 거리로 접어들었다. 기상천외한 광고를 대비했지만 고요했다.

내 기억 속의 사창가는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온갖 이상성욕 광고가 홀로그램으로 범벅이었다.

아무리 욕망의 거리라도 지금만큼은 고요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정은 때를 가리지 않는 법이라서 눈치를 보며 가게를 방문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난 규모가 큰 영업장을 방문했다.

“손님, 여긴 무장을 하고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헬멧부터 벗으시죠.”

라비앙로즈의 갱단원이 날 막아섰다. 그의 어깨에는 장미 문신이 있었다.

‘사창가의 매춘부가 중심인 갱단.’

매춘부들의 자경단이기도 했다.

“그레이스가 아직 갱단에 있나? 있으면 가브리엘이 찾아왔다고 전해라.”

갱의 눈썹이 험악하게 치켜 올라갔다.

“어이, 감히 누구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젖히는 거야. 뒈지고 싶어? 헬멧부터 벗으라고 내가…….”

좋아, 이래야 내 고향이지. 벌써 웃음이 나오는군.

난 삿대질하는 갱의 손가락을 잡아서 꺾었다. 놈이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 쳤다.

“……끄어어억, 커억, 끄으읍.”

“그레이스는 그쪽의 해결사잖아. 부를 것도 없어. 가브리엘이 왔다는 말만 전달하면 돼.”

내가 갱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 놈의 혀를 잡았다. 놈의 혓바닥 근섬유가 잘근잘근 끊어지고 있었다.

“우부부부웁, 브으으으.”

갱이 눈물까지 내보이며 벽을 텅텅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갱을 놓아준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레이스를 기다렸다. 갱은 내 눈치를 보면서 상부와 통신했다.

짧은 시간이 지났다.

또각, 또각.

뒷굽이 높은 구두 소리가 났다. 내가 아는 그레이스의 기척과는 조금 달랐다.

라비앙로즈의 보스는 마르티나 디바이고, 그 측근이자 행동대장이 그레이스다.

그레이스는 근위대 생도 출신이다. 수료는 아니라도 우수한 전사였다. 그녀는 보통 활동이 편한 신발을 신으며 움직일 때 기척을 많이 내는 편이 아니다.

스륵.

난 고개를 돌려서 시커먼 골목길을 응시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여자가 있었다.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청룡 자수가 놓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구두도 뒷굽이 높아서 다리 매무새가 강조되었다.

“……디바로군.”

내가 말을 끝냈다.

그레이스는 라비앙로즈의 보스 ‘디바’를 물려받은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드레스를 입지도 않을 거고, 색조 화장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레이스는 자줏빛 색조 화장을 입힌 입술로 탁한 숨을 내뱉었다. 왼쪽 눈을 가리는 안대는 여전했다.

“가브리엘치곤 덩치가 작다 싶더니 당신이군요, 추억의 도련님.”

그레이스가 갱을 향해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갱은 눈치를 보다가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마르티나는?”

난 곧장 사정부터 물었다.

“죽었습니다.”

“누가 죽였지?”

그레이스가 짧게 웃었다.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죠. 석 달 정도 됐습니다. 주무시다가 침대에서 편히 숨을 거두셨죠. 작년부터 오락가락하시긴 했거든요.”

마르티나는 하층 구역의 일부를 주름잡고 이름을 떨치다가 끝끝내 천수까지 누렸다.

“호상이로군.”

……솔직히 부럽다. 이 바닥에서 침대에 누워 죽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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