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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세크의 주둔지는 아크바란 외곽 북쪽에 위치한 산업단지에 있었다.
여긴 각 기업의 대형 공장도 밀집해 있고 노동자도 많아 함부로 폭격하거나 공격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용케도 아크바란에 물자를 공급하는 산업단지를 점거했군.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아크바란의 황궁까지 진군할 수 있는 거리야.’
내 예상보다 내전은 과열되었고 굉장히 첨예한 상황이었다.
프란세크의 군대는 아크바란의 핵심지구 중 하나를 지배한 상황이었다.
‘이 대치 구도는 치열한 모략과 전략의 결과물이겠지.’
도시 바깥에서 군대가 대치한다면 프란세크가 불리했다. 그래서 프란세크는 도시 내부에 주둔지를 꾸리고 방어선을 형성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프란세크는 제국의 산업시설과 제국민을 방패와 인질로 삼은 거다.’
프란세크는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과 세력이 모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프란세크의 편이었다.
‘정보 통제에도 한계가 있어. 제국 내부의 상황을 신성국과 연방도 상세히 알게 될 거다. 그쪽에서는 프란세크를 비밀리 지원하겠지. 내전의 규모가 커지고 길어질수록 제국은 약해질 테니까.’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매연 구름을 보았다.
검붉은 산업지구에서 흘러나온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자욱하게 메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폐에 검은 가루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산업지구 상공에선 전투 드론이 순찰을 돌고 있었고,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된 대공포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매섭게 들고 있었다.
‘산업단지를 미끼로 삼은 수성전이로군.’
프란세크는 이반이 공격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전력상으로 불리한 쪽은 프란세크니 당연한 전략이긴 했다.
우우웅.
내가 합류한 카릴만다의 부대는 길게 뻗은 산업도로를 지나서 단지 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카릴만다의 부대는 산업단지 내로 들어서자마자 정비를 위해 소부대 단위로 헤쳤다.
차량에서 내린 나는 카릴만다의 안내를 따라 산업단지 안쪽으로 걸어갔다. 익숙한 노동의 풍경이 드문드문 보였다.
산업단지는 점거된 상태에서도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군수물자를 제외한 필수재는 아크바란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민중과 기업의 적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제국의 산업과 경제를 멈출 생각은 그 누구에게도 없죠.”
카릴만다가 가동하는 공장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산업단지를 점거하다니 절묘하군요. 이러면 승산이 있으니까요.”
내가 카릴만다 옆에서 말했다.
“기습으로 가장 먼저 여길 점거했습니다. 프란세크 폐하의 영특한 결단 덕분입니다.”
“산업 물자의 주요한 공급을 쥐고 있으니…… 이대로 버티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던 세력도 프란세크 폐하에게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겠군요. 아크바란 측에선 초조할 수밖에 없고요.”
나도 머릿속이 번뜩였다.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어쩌면 일레이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도와 대치를 유지하기만 하면, 참칭자 이반이 먼저 움직일 겁니다. 우린 받아칠 준비만 하면 되죠.”
프란세크는 산업단지를 최우선적으로 점거했다.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아크바란은 초거대도시이며 어지간한 사안에선 자급자족이 되는 도시였다. 효율적인 통제와 감시를 위해 도시 하나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한 탓이다.
아크바란 북쪽 산업단지를 점거한 것만으로도 프란세크는 제국의 일부를 차지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장 이반에겐 거대한 규모의 산업단지를 대체할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산업단지를 최소한의 피해로 되찾아야 했다.
‘순조롭게 산업단지를 점거한 것도 일레이의 오랜 준비 덕분이겠지.’
일레이는 십 년을 넘게 준비했다. 그 집념의 성과가 내 눈에도 가시적으로 보였다.
‘지젤이 날 위해 준비한 계획처럼, 일레이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십 년의 대계를 가슴에 품었다.’
카릴만다는 원래 노동자 숙소였을 건물로 향했다. 그가 가장 상층에 있는 방으로 날 안내했다.
“제 개인실입니다. 일단은 여기서 대기해주시죠. 프란세크 폐하께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당신의 알현 요청도요.”
난 일레이 카르티카에 대한 행방을 카릴만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일레이는 프란세크와 합류한 상태인가? 아니면 아크바란에서 별도로 활동 중인 건가?’
일레이의 성격상 대외적으로 지휘관을 맡기보다는 은밀한 임무를 수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보다 일레이에 대한 평판이 좋진 않아. 대외적 중책을 맡기긴 힘들지.’
일레이는 유능하지만 변덕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비열한 인물이란 평을 받고 있다.
일레이의 존재 자체가 프란세크의 평판을 깎아 먹을 것이다.
‘철저하게 그림자로서 움직이면서도 네가 얻고자 하는 게 그저 공화국인 거야?’
릴리안 라모네스를 죽었을 때, 일레이의 심장은 그 색깔과 빛이 바뀌었다. 그 이후로 일레이의 속내를 알기 힘들었다.
일레이는 자신의 입으로 공화국 건설이 목표라 말했다.
‘공화국.’
프란세크가 정당한 황권을 되찾고 제국을 안정시킨 뒤에…… 평화롭게 권력을 민중에게 이양한다. 듣기만 하면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능할까?’
무수히 많은 변수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황제가 된 프란세크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었다.
특히나, 공신을 내치고 죽이는 건 신생 정권의 속성이기도 했다. 일레이는 가시밭길 정도가 아니라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걷고 있었다.
‘외줄 타는 건 나도 다를 바가 없지.’
창문에 어깨를 기대며 시커먼 산업단지를 바라봤다. 바깥의 공장에선 시뻘건 열기와 불빛이 용암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카릴만다가 프란세크와 만나고 오길 기다렸다.
카릴만다의 개인실에는 그의 가족사진이 있었다. 귀족 가문답게 잘 차려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배경도 멋스러운 계단이 보이는 저택 내부였다.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죽어 나갈까.’
씁쓸했다. 고작 내전 따위로 충실한 군인들이 죽는다.
‘공화국 건설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나는 정치를 모른다.
제국, 황제, 공화국…… 내겐 사실 뜬구름 잡는 소리다. 대를 이어 크라치아 일가가 황제를 하든 말든 내겐 상관없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정치에 문외한이더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알고 있다.
‘공화국이든 제국이든…… 모두가 행복한 이상향은 없다. 그깟 정치 체제 하나로 세상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절망과 불행은 잠시 덮일 뿐, 금세 곰팡이처럼 피어날 것이다.
아크레시아가 공화국이 되더라도, 그 내부에선 또 다른 불평등과 불만이 쌓여갈 것이다. 제국의 강압과 통제는 힘과 질서로 미화되어, 복고를 꿈꾸는 제국주의자들이 생겨나겠지.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인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알 순 없다. 그저 더 ‘낫다고’ 믿을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소년 루카가 느끼지 못했던 거대한 흐름이 지금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경험이 쌓인 탓이리라.
시대의 물결이 아크바란을 덮고 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많은 게 바뀔 것이다.
치이익.
지루한 기다림 끝에 방문이 열렸다.
도착하고도 옷을 갈아입지 못한 카릴만다가 들어왔다.
“폐하를 만나셨습니까?”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카릴만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만나긴 했습니다만, 폐하께선 당신의 알현 신청을 거절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가슴이 울렁였다. 동요가 인다.
나는 습관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무표정을 유지했다.
‘어째서?’
머릿속이 뜨거워진다.
‘카릴만다가 거짓말하진 않을 거다.’
정말로 프란세크가 나와 만나는 걸 거부한 것이다. 그럴 까닭은 전혀 없었다. 아니, 찬찬히 생각을 정리해보자.
‘난 아직도 세력을 끌어모을 상징으로도 도움이 되는 존재야. 하다못해 개인 경호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
무엇보다 프란세크와 나 사이에는 유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달라졌어도 매몰차게 날 거부하진 않을 거라 믿었다.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추측이 틀렸다는 건, 간단한 이치로 설명된다.
내가 보지 못한 것, 인지하지 못한 영역…… 내가 모르는 조각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사태의 흐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방향에서 힘이 작용하고 있다.’
나는 카릴만다를 바라보았다. 그도 알현 거부에 당황한 듯했다.
“폐하께서 제 알현을 거절하신 까닭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까?”
“‘루카우스 쿠스토리아가 제국에 진 빚은 없다’였습니다.”
애매모호한 발언이다. 정말로 날 위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프란세크도 날 제국의 혼돈에서 빼내고 싶을 수도 있다. 프란세크의 성품은 본디 훌륭한 편이니까.’
그러나 머릿속이 덜그럭거렸다. 일련의 흐름이 부드럽지 않다. 톱니바퀴의 규격이 맞지 않는 것처럼 삐걱거린다.
……너무나 많은 게 이상하다. 뭐라 꼬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무엇 하나 매끄러운 게 없었다.
아키에스 빅티마로도 추론이 불가능할 만큼 조각이 많이 비어 있었다. 그림의 윤곽조차 명확하지 않다.
카릴만다를 향한 통찰력을 발휘해도 핵심적인 정보를 뽑아낼 순 없었다. 그도 아는 게 없다시피 했다.
“제 처우에 대해서도 언질하셨습니까?”
난 재차 물었다.
“연방의 노동자들과 함께 당신을 제국령 바깥까지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대금도 확실히 지불할 것이고요.”
사실상 제국 바깥으로 날 추방하는 것이다.
난 눈을 깜빡였다. 여기서 난동을 피우면서 무력시위를 한다고 프란세크를 만날 순 없다. 나는 프란세크가 산업단지 어디에 위치한지도 모른다.
스스스스.
바깥에서 서성이는 기척도 들렸다. 카릴만다의 부관들이겠지.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그리 답했다.
* * *
나는 하룻밤 동안 카릴만다의 개인실에서 머물렀다. 카릴만다는 잠도 자지 않고 날 감시하고 있었다.
물론, 명목상 호위였다.
‘카릴만다를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카릴만다는 연대장을 맡을 정도로 프란세크의 총애를 받는 군인이었다. 충직하며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도 고지식한 장교들을 잘 알고 있다. 임무와 명령이 우선인 자들이다.
난 의자에 앉은 채로 명상하듯 짧은 수면을 취하고선 일어났다.
“생체시니깐 더 주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카릴만다가 날 보며 말했다. 그는 탁자에 해체한 총기와 장비를 늘어놓고선 정비하고 있었다.
“수면은 두어 시간이면 됩니다.”
“역시 근위대 출신답군요.”
“정확히 말해선 생도 수료지만요.”
내가 정정했다.
카릴만다는 웃으며 총기를 재조립했다. 그의 손을 따라 부품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저도 어릴 땐 근위대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선별검사에서 근위대 적성이 낮게 나왔죠. 혹시 무엇 때문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렴풋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카릴만다는 우수한 군인이지만, 근위대원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없었다. 관료처럼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보였다.
‘근위대는 장교이면서도 가혹한 특수전을 수행하는 전투원이기도 해. 짐승과도 같은 야성과 폭력성이 있어야 하지.’
나는 생각을 갈무리하며 입을 열었다.
“공격성이 낮게 나오셨군요. 어디까지나 근위대 기준이지만요.”
“소문대로 대단히 우수하시군요. 단번에 맞히실 줄은 몰랐습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카릴만다는 말을 이어갔다.
“근위대원은 다들 전투의 천재들이죠. 그 특유의 폭력성으로 전장에선 기량 이상의 전투력을 끌어냅니다. 적성이 부족한 자가 근위대 커리큘럼을 수료해봐야 수재에서 끝나죠.”
“근위대라고 완벽한 군인인 건 아닙니다.”
“겸손하시군요. 당신은 근위대 생도 중에서도 특출나셨을 겁니다. 원래라면…… 제가 당신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죠. 하지만 우린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카릴만다가 옆머리를 스륵 드러냈다. 그는 관자놀이에 달린 모듈칩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카릴만다가 앞니가 드러나는 미소를 내보였다.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저는 전자약물을 뇌내에 삽입했습니다. 지휘력이나 판단력이 아니라 ‘폭력’이 필요할 때, 저는 광전사라고 불리는 전자약물 모듈을 사용합니다. 이게 발동되면, 저와 당신 둘 중 하나는 죽겠죠.”
……경고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