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331

331
프란세크 휘하의 제5연대장 카릴만다 로무스.

카릴만다는 제국군 장교이며 귀족일 것이다.

내 기억상으로 나와 카릴만다는 직접 마주한 적이 없다. 그러나 카릴만다는 내 얼굴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나름 유명인이라면 유명인이다.

‘여기서 프란세크나 그쪽 군대와 접촉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인 나는 모자의 챙을 매만지며 온갖 생각을 했다.

사고가 길어지니 체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차량의 진동으로 들썩이는 바닥의 모래조차 생생하게 보였다.

‘카릴만다가 날 알아볼까?’

카릴만다의 눈썰미가 어느 정도일지 나는 모른다. 날 아는 자들도 대부분은 소년기의 루카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차분하게.’

카릴만다는 내게 얼굴을 들라 말했다. 뜸 들이며 망설여봐야 의심만 더 살 뿐이다.

“으으윽, 저, 저 말입니까?”

이 처량한 목소리는 내가 아니다.

내 뒤에 있던 사수가 고개를 들었다. 내게 얻어맞은 얼굴은 보랏빛으로 퉁퉁 부어있었다. 때린 나조차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쪽 얼굴이 엉망이로군. 우리 때문에 다친 건가? 의무병을 불러 치료해주겠네.”

나도 사수를 보느라 얼굴을 절반 정도 돌린 상태였다. 카릴만다의 시선이 뒤통수에서 느껴졌다가 사라졌다.

‘저놈도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카릴만다가 날 알아볼 가능성은 낮다. 그래도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연대장님, 일단 우리 화물의 매입자와 장소 정돈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회사 내규상…….”

팀장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는 내 조언대로 위치와 매입자를 알아내려 했다.

카릴만다도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장소는 알려줄 수 없네만, 프란세크 폐하의 명의로 그쪽 화물을 매입할 거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노동자를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자, 자, 차량으로 돌아가자고. 루크, 자네는 내 차량에 타게.”

팀장이 혼비백산한 부하들을 독려했다. 팀장의 목덜미에도 식은땀이 범벅이긴 했다.

아직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덜컹.

나와 팀장만 둘이서 차량에 탔다. 나머진 다른 차량에 흩어졌고, 내 사수는 의무병에게 치료를 받았다.

“하아, 하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네, 염병할. 왜 제국놈들 사정에 우리가…….”

팀장이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기나긴 호흡을 내뱉었다. 숨을 돌린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틱.

팀장이 라이터를 손아귀에서 놓쳤다. 나는 재빨리 라이터를 낚아채며 그의 담뱃불을 대신 붙였다.

“후우.”

팀장은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담배만 뻐끔뻐끔 태워댔다.

나는 그가 진정하길 기다렸다. 아직 출발까진 여유가 있었다.

“자넨 이런 상황에서 굉장히 침착하게 굴더군. 공장에서 팔다리가 잘린 게 아니지?”

“그렇습니다.”

“내가 듣기론, 제국의 귀족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도 팔다리를 의체로 교체해 전신의체에 대비한다고 하더군.”

……눈치가 너무 빠르면 곤란하다. 세부적인 부분은 틀렸지만, 팀장의 추측은 얼추 맞았다.

“전 제국 출신입니다. 범죄자 신분이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크바란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서 이런 방법을 쓰게 됐습니다.”

난 적당한 진실을 섞어서 말했다.

“아크바란에 도착하면 사라질 생각이었군.”

팀장이 반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겼다. 연기가 우리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이용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덤덤히 말했다.

팀장은 떨림이 다소 멎은 손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자네 상황은 이제 상관이 없어. 신입 직원 하나가 사라지는 게 별일도 아니고. 중요한 건 우리가 무사히 화물을 운반하고 연방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지. 현 상황에 대한 조언을 해주게. 난 제국 내부 사정을 모르네.”

팀장이 빠르게 현실을 직시했다.

“제국은 이반파와 프란세크파로 분열한 듯합니다. 과거 사태의 연장선이기도 하죠.”

“이반이면 현 황제이고, 프란세크는…… 누구지?”

“프란세크는 이반의 손위 형제입니다. 원래 황위를 이을 황태자였죠. 제국은 한 차례의 혼란을 겪었고, 이반이 황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듣기만 해도 미심쩍은 구석이 많군.”

“처음에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두 사람은 협력했으나, 프란세크는 내통 혐의로 유폐되었죠. 어떻게 풀려났는지는 모르나…… 자유의 몸이 되어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는 듯합니다.”

내 설명을 들은 팀장이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그 프란세크라는 사람이 화물의 대금을 제대로 지불할 것 같나?”

내가 아는 성품의 프란세크라면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프란세크가 어떤 사람인지 난 모른다. 유폐 생활까지 했으니 많이 변했을 것이다.

“대금 지불은 확신할 수 없지만, 우린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긴 목격자도 없는 제국령 한가운데죠. 여차하면 저들은 우릴 죽여서 입막음하고 화물을 탈취할 수도 있습니다.”

“젠장, 역시 그렇겠지. 프란세크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바닥 크기의 드론이 차량 전면까지 접근하더니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우웅.

팀장이 차량의 시동을 걸었다. 우린 대열 중간에 낀 형태로 저들을 따라갔다.

* * *

‘내 무장은 2호 차량 바닥에 있다.’

나는 화물차량의 바닥에 내 장비를 붙여놓았다. 난 수시로 2호 차량의 위치를 계속 확인했다.

‘최악을 가정하자.’

백 명도 넘는 병사들이 여기에 있다.

내가 날고 기어도 개활지에서 이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저들 중에서 상당한 수준의 강자도 있을 것이다.

‘무력 충돌한다면, 카릴만다 로무스를 인질로 잡아야 한다.’

카릴만다 로무스는 행렬 선두에 있었다.

‘내가 장비를 챙기고, 카릴만다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아무리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힘겨웠다. 우연과 행운이 수십 번이나 겹쳐야 도달할 수 있는 결과다.

‘아크바란 잠입조차 이렇게 꼬이다니.’

여기서부터 막힐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지젤을 찾은 행운의 대가라고 생각하자.

우우웅.

차량은 자동 운전으로 들어갔다.

팀장은 많이 지쳤는지 코까지 실컷 골면서 잠들었다.

나도 눈을 감으며 가수면을 취했다.

‘프란세크가 내가 알던 그때의 그 사람이라면…… 만나서 협력해도 된다. 내가 알던 프란세크는 인격자였지.’

……조그마한 기대를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나도 물러진 모양이다. 세상이 좀 더 내게 다정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래선 안 돼.’

느슨하게 생각하지 말자.

‘프란세크는 냉혹한 위정자가 됐을 수도 있다, 복수의 칼을 갈고닦은…….’

나는 내 생명을 가지고 도박할 생각은 없다. 확실한 길만 걸을 생각이다. 돌다리도 하나씩 두들겨 가면서 말이다.

‘내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니야.’

지젤의 삶도 나의 일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절반을 나를 위해서 사용했다.

연인이기 이전에, 내게 도리라는 게 있다면 나도 그녀를 위해 내 삶을 써야 한다.

‘그때까진 죽을 수 없어. 돌아가겠다고 약속도 했고.’

세상이 불타더라도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피유우우웅.

파공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다. 전투 장비와 병기의 소리를 구분하는 훈련을 받았으니까.

‘전투기.’

난 생각과 동시에 팔을 움직여 팀장을 깨웠다.

“으으음, 뭐…….”

팀장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난 하늘에서 빛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전투기가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무언가가…… 떨어진다.

‘폭격.’

밤이 무색할 정도로 환한 폭발이 대열 앞에서 일었다.

콰아아아앙!

불기둥이 치솟는다. 굉음에 비명조차 묻혔다. 사태를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콰직!

나는 차량의 문짝을 걷어차며 팀장의 멱살을 잡고 뛰었다.

팀장은 차량 여기저기에 부딪히면서 끌려나왔다.

“습격이다! 움직여!”

“대공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 직접 조준해서 쏴.”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병사들에겐 우릴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화, 화물을 놔두고 갈 순 없어!”

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화물보단 목숨이 먼저입니다!”

난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간 전투기가 선회하더니 다시 오고 있었다.

폭격이 더 떨어질 것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대열을 확인했다. 가장 병력이 많은 곳이나 전투 장비가 모인 곳에 폭격이 떨어질 것이다. 아마 대공 장비부터 노리겠지. 그 부근은 피해야 한다.

팀장은 좀처럼 차량에서 멀어질 생각을 안 했다. 난 일단 뒤로 이동했다.

“팀장님의 명령입니다! 얼른 내려서 따라오세요!”

난 후열의 차량으로 뛰어가서 문을 두들기며 외쳤다.

“뭐라고? 팀장님이 화물을 버리라고 했다고?”

젠장, 얼마나 악덕 회사길래 폭격이 떨어지는데도 화물 타령을 하고 자빠진 거지!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으득!

내 감정을 대변하듯 내 손바닥을 따라 차량의 문짝이 으스러졌다.

카앙!

내가 차량의 문을 잡아서 내던졌다.

“빨리 튀어나와! 뒈지고 싶어?”

으름장을 놓으니 그제야 노동자들도 움직였다.

“야, 신입, 너, 방, 방금 문짝을 부순 거야?”

사수도 엉거주춤하게 기어나오고 있었다. 성질머리 같아선 저 느려터진 볼기짝을 걷어차고 싶었다.

난 다시 집중해서 하늘을 응시했다. 전투기의 선회 방향을 보고 폭격의 방향을 지레짐작했다.

내 머릿속에선 레이더 지도와 같은 격자형 지형이 저절로 떠올랐다. 복잡한 수식은 없어도 직감적으로 안전지대가 보였다.

“저기 큰 바위로 달려가서 서쪽을 등지고 숨으세요. 어지간해선 폭격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겁니다.”

나는 코피가 흐르는 걸 느끼며 삿대질했다. 노동자들이 머뭇거렸다.

노동자들도 더는 주춤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명 동아줄은 내 지시밖에 없었다.

난 노동자들이 뛰어가는 걸 보며 팀장에게 돌아갔다. 그는 비틀거렸다. 폭격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번지더니 차량 앞까지 오고 있었다.

별다른 가연성 물질이 없어도 불이 살아있는 것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인화성을 강화한 폭탄인 탓이다.

“아, 안 돼.”

팀장은 차량에 다시 타려 했다. 불꽃이 오기 전에 차를 돌리려는 생각인 듯했다.

좋게 말해선 직업의식이 투철한 거지만, 지금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차량을 끌고 대열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공격을 받을 겁니다!”

보나 마나 기총 공격을 받는다. 제국군의 전투 교리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화물을 잃으면 우린 끝장이네!”

팀장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잡아끌고선 강제로 질질 끌고 갔다.

‘차량 밑에 붙여둔 장비도 챙겨야 해.’

나는 팀장을 기절시킬까 고민까지 했다. 이상할 정도로 화물에 집착하고 있었다.

“신입!”

내 사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른 노동자도 한 명 붙어있었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 했어. 팀장님이 화물을 버리라는 지시를 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노동자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되물었다.

“우리 회사에선 팀장급은 가상 시뮬레이션 교육으로, 으음, 사실상 세뇌를 받아. 어떤 상황에서도 화물을 포기하지 않도록 말이야. 그 교육을 수료해야 팀장으로 승진할 수 있지.”

설명은 들은 나는 눈을 찡그렸다.

“뭔 놈의 회사가…….”

생각해보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위대 교육도 비슷했다. 세뇌 교육에서 벗어나긴 무척 힘들지.

“화물이! 화물이!”

팀장은 이성을 완전히 잃었다. 화물차량 앞쪽부터 불길이 붙고 있었다.

“젠장! 삼촌! 정신 차려요! 쓰읍!”

사수가 팀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난 팀장을 사수와 노동자에게 맡기고선 2호 차량으로 가려 했다.

“뭐 하는 건가? 자네도 어서 이쪽으로 오게!”

노동자가 팀장을 끌고 가며 외쳤다.

“먼저 가…….”

난 말을 끝내지 못하고 눈을 찌푸렸다. 화마와 폭발, 그리고 포격음 사이로 찌릿한 쇄도음이 들렸다.

‘뭔가 오고 있다.’

어느새 수송용 헬기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얼추 세어도 이십여 대는 넘어보였다. 하나에 소대 하나씩 타고 있다고 하면, 병력의 숫자는 카릴만다 부대보다 많았다.

제국군은 폭격으로 대공 전력을 마비시키고 병력을 투입했다.

후우우웅! 쿵!

하늘에서 병사가 떨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안드로이드 병사인 듯했다.

‘언제부터 제국이 안드로이드 병사를 이렇게 많이 운용한 거지?’

내 기억에 안드로이드는 보조병 역할이었다.

떨어진 안드로이드 병사들은 강하 특화인 듯이 다리에 완충 장치를 덕지덕지 달고 있었다.

쿵! 쿵!

안드로이드 병사들이 묵직하게 떨어지며 총구를 사방팔방 겨누고 있었다. 저들의 총구 방향에는 물류 노동자들도 있었다.

“흐아아악! 살, 살인 로, 로봇이다!”

사수가 비명을 지르면서 팀장을 꾸역꾸역 끌고 가고 있었다.

‘망할.’

내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난 손바닥으로 안드로이드의 총구를 강타했다.

투두두두!

치솟은 총구가 허공을 쏴 재꼈다.

기이잉.

안드로이드가 날 쳐다봤다. 시답잖은 기계가 붉은 광학 렌즈를 빛내고 있었다.

콰직!

나는 주먹을 뻗어 놈의 렌즈와 함께 머리통까지 깨부쉈다. 총이 바닥에 떨어진다.

끼릭!

난 안드로이드의 소총을 손가락으로 걸어감으며 낚아챘다.

철컥!

바로 견착한 나는 전방으로 한 발 쏴서 감을 잡으며 조준점을 정렬했다.

안드로이드용이라 반동이 크다. 어깨와 팔꿈치 관절의 경도를 높이고, 출력은 루이나를 사용할 때의 절반 정도를 유지하자.

좋아,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난 자세를 갖춘 채로 사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앞만 보고 뛰어! 쓸데없이 쫄아서 이상한 곳에 숨거나 멈추지 마. 내가…… 엄호하겠다.”

순식간에 여긴 전장으로 변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비명, 익숙한 죽음.

하지만 익숙함에 몸을 맡기며 안도하지 말자.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난 낯선 평온을 선택할 수 있다.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