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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22

322
어둠과 함께 난 움직였다.

내 일상용 의체는 나약하다. 주먹을 뻗어 타격해도 쇠망치로 때리는 정도다. 뭐, 이것만으로도 자연체 인간에겐 치명타이긴 하다.

상대의 근육과 뼈의 밀도는 비정상적으로 높다. 단단하게 얽힌 근육의 섬유질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효 공격만 가능하다면 상관없다. 약점을 노리는 건 아키에스 빅티마 전투술의 기본이다.

난 검지와 중지를 펼쳐서 놈의 안면을 찔렀다.

픽!

내 손가락이 안구를 파고들었다. 안구가 찌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콰직!

난 발끝을 부드럽게 끌어올려 놈의 낭심을 강타했다. 여긴 근육으로 감쌀 수 없는 부위다.

“크억!”

비명이 이어진다. 상체가 기울며 놈의 머리가 앞으로 빠지고 턱이 삐죽 튀어나왔다.

휙!

난 팔꿈치로 놈의 턱을 강타했다. 중심이 흐트러진 놈의 머리가 세차게 흔들리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퍼- 억!

쓰러진 놈의 안면을 힘차게 걷어찼다. 자연스러운 연계가 끝났고, 놈의 안면이 엉망진창으로 으스러졌다.

남자 강도의 제압은 끝났다. 아마 2초 정도 걸렸겠지. 의체가 느려서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다.

깜빡.

꺼진 전등이 켜질 듯 깜빡였다. 찰나의 빛이 내부를 잠시 비췄다.

여자 강도는 자신의 동업자가 당한 걸 보고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가벼운 전투라도 싸움에 들어가니 내 머릿속은 서늘해졌다. 요동치던 감정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항…….”

여자 강도가 손을 위로 들며 투항하려 했다.

미안하지만, 내 목적은 상대를 제압하는 거지 체포하는 게 아니다.

“난 경찰이 아니야.”

난 여자 강도의 안면을 쥐고선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콰득!

바닥과 부딪힌 여자의 후두부에서 깨지는 소리가 났다. 운이 나쁘면 죽을 것이다. 운이 좋아도 뇌에 장애 한둘은 남겠지.

틱!

전등이 일제히 켜졌다.

‘이런 배려까진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전등을 끄지 않아도 금방 제압했을 터다. 바바라는 만일을 대비해 조금이라도 내게 유리한 환경을 만든 것이다.

……상황은 정리된 것처럼 보였다. 우주여객선을 납치하려는 2인조 강도는 내게 제압당했다.

“저, 저기 감, 감사합니다. 승객 여러분, 당장 회항을 실시하겠습니다. 불상사로 인한 피해는 보험으로…….”

승무원이 내게 감사를 표하더니 직업의식을 투철히 발휘하려 했다.

“살, 살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가 감돌았다. 안타깝게도, 저들을 실망시킬 차례로군.

퍽!

난 승무원의 머리를 잡고선 의자에 처박았다. 그의 눈이 풀리면서 쓰러졌다.

“흐, 흐아아악!”

“무, 무슨 짓입니까!”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선 기겁했다. 나는 뻐근한 목을 매만지면 사람들을 응시했다.

“지금부터 이 여객선은 내가 접수한다. 순순히 협조하면 피를 더 보진 않을 거야.”

내가 사납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선언했다.

“뭐, 뭐라고? 너도 강, 강도였냐!”

내 옆에 있던 리키 칸이 소리를 질렀다. 난 리키 칸을 빤히 바라보다가 놈의 멱살을 잡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맞아본 적이 있어?”

난 리키 칸의 멱살을 한 손으로 끌어올렸다. 놈의 다리가 붕 떴다.

“뭐?”

“대답해.”

“없, 없어.”

“좋아, 내가 네 첫경험이로군.”

난 리키 칸의 입에 손가락을 넣고선 앞니를 튕겨내듯 부러뜨려서 뽑아냈다.

“크아아아아악!”

리키 칸은 피와 함께 비명을 토해냈다. 나는 놈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으름장을 놓았다.

“혓바닥 뽑아내기 전에 입 다물어.”

리키 칸은 피를 입안에 머금으며 입술을 닫았다.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는 놈이로군.

“크릅, 끕, 내, 내 재, 재산이 목적인 거냐, 돈, 돈이 목적이라면 다 줄 테니까, 그, 그만 때, 때려.”

리키 칸이 손을 앞으로 뻗으며 뒷걸음질 쳤다.

나는 목을 긁적이며 웃었다. 내가 한 발자국 전진할 때마다 리키 칸이 도망갔다.

“……아니, 그냥 네가 재수 없어서 때린 거야.”

난 발을 뻗어서 녀석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놈의 뼈가 부러지면서 개방형 골절이 일었다. 그러니까 부러진 뼈가 피부를 찢고 나왔다는 거다.

“끄아아아아!”

리키 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내 심보가 뒤틀린 건 맞지만, 이유 없이 리키 칸을 두들겨 팬 건 아니다.

엄청난 집안의 도련님도 쥐어팰 정도로 뒤가 없는 놈이라는 걸 보여줘야 남들이 허튼짓을 안 할 터다.

“리키 칸이고 나발이고, 내 심기에 거스르면 그 자리에서 반병신이 될 줄 알아.”

내가 그리 말하며 조종실로 걸어갔다.

치익, 기이이잉!

바바라에게 해킹당한 문이 머뭇거리다가 열렸다. 파일럿들이 당황하며 날 쳐다봤다. 그들은 교신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투항하겠소.”

나이가 많은 파일럿이 손을 들며 말했다. 젊은 보조 파일럿도 같이 투항했다. 재빠른 판단이었다.

저들도 전자장비가 작동하지 않으니 모든 수단이 막혔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미안하게 됐어. 협조만 해주면 별일 없을 거다. 불가항력이라 생각해.”

나는 그리 말하면서 파일럿들을 의자에 묶었다.

“보더시티에서 일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지. 나와 승객분들에게 위해만 가하지 않는다면 협조하겠소.”

파일럿이 차분히 말했다.

이래서 경험이란 중요하다. 나는 흐릿하게 웃으며 바바라를 기다렸다.

-제어 권한을 얻었어.

조종실의 스피커에서 바바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주여객선의 방향이 꺾이고 있었다.

저벅, 저벅.

해킹을 마친 바바라가 권총을 든 채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힐끗 보더니 권총을 파일럿에게 겨누었다.

키릭.

바바라의 권총에서 내부 부품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틱!

내가 바바라의 팔을 잡아당기며 총기의 슬라이드를 잡았다. 발사 직전의 총기가 멈췄다.

“뭐 하는 거야?”

바바라가 날 쳐다보며 말했다. 무덤덤한 표정과 말투였다.

“너야말로 뭐 하는 거지? 총구를 어디다 겨누고 지랄이야.”

“이쪽은 죽여야 깔끔해. 괜히 후환을 남길 필요는 없잖아. 우주선 파일럿은 전부 엘리트들이야. 저 사람은 군인 출신이고.”

“나도 알아.”

“중요한 일을 앞두고 무르게 굴 거야?”

바바라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내가 현재 군인이고 임무를 맡았다면…… 파일럿 두 명을 사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제 군인도 아니며, 그저 지젤을 만나러 온 것뿐이다.

“우린 살인을 하러 온 게 아니잖아.”

“어차피 누군가는 죽을 거야. 충돌 없이 끝날 일은 아니잖아. 언제부터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 된 거야? 웃겨, 정말.”

“이들을 죽이지 않는 건…… 날 위한 결정이다. 위선을 부리고 싶은 게 아니야. 내게 쥐꼬리만큼 남은 인간성이라도 지키기 위해서지.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넌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어.”

나는 한계다. 내 인간성은 닳을 대로 닳아버렸다.

여기서 더 부서진다면…… 집착과 후회,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 동력으로 삼는 기계가 된다.

“이건 멍청한 짓이야.”

바바라가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멍청이를 좋아하지.”

내가 일레이 같은 성격이었다면…… 난 진작 죽었을 것이다. 지젤의 사랑도 받지 못했겠지.

일레이는 어느 날 갑자기 측근과 지인에게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다.

“자기는 가서 재무장이나 해. 나머진 내가 처리할 테니까.”

바바라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권총을 집어넣었다.

나는 바바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화물칸으로 향했다.

내가 승객실 끄트머리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탕! 탕!

총성 두 발이 조종실에서 울렸다. 나는 움찔하다가 눈을 감았다.

……기어코, 바바라가 파일럿 두 명을 죽였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서도 위험요소를 남기지 않았다. 일레이라면 나 때문이라도 파일럿들을 죽이진 않았을 터다.

그래, 바바라는 저런 여자다. 뿌리부터 다르며 뒤틀려 있었다. 그녀에게 보편적인 감정과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된다.

바바라는 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젤의 사랑도 받지 못하겠지.

웃기게도, 조금 서글펐다.

* * *

바바라와 내가 협력하는 이유는 지젤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그것 말곤 공유하는 이상과 감정은 없었다.

‘우리가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 만난다면, 바바라는 진작 내 손에 죽었겠지.’

바바라의 행적은 끔찍했다. 난…… 그녀가 싫다.

기잉, 칙.

난 화물칸에서 내 의체를 꺼내서 교체했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체결했다.

‘왼팔만 기성품. 나머진 라줄리 21호.’

상체의 엇나간 균형은 내가 의식적으로 보정하면 된다. 그 정도는 내게 쉬운 일이다. 이제 난 어디 가서도 강자라고 자청할 수준은 된다.

날 위협했던 강자들을 하나둘씩 떠오려 보면,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던 자는 드물었다. 내가 그들보다 부족했던 건 언제나 경험이었다.

이젠 내게도 풍부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 자부해도 되겠지.

치직, 칙.

난 통신기를 귀밑에 붙였다. 바바라의 음성이 바로 들렸다.

-총성은 들었지? 파일럿은 둘 다 죽였어. 아무리 생각해도 살려둘 수 없더라고. 그런데 자기가 날 탓하지 않으니 더 무섭네.

“자기라는 소리 좀 그만해. 소름 돋으니까. 어차피 네가 파일럿을 죽이는 경우도 각오해뒀어. 널 말릴 방법도 없지. 팔다리를 분지를 수도 없으니 말이야.”

-지젤이 코앞에 있어. 만일의 후환이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야.

“이참에 승객도 전부 죽이지 그래?”

-그쪽은 위험요소가 아니야. 우주선에 손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내가 사이코 살인마인 줄 알아?

“아니었다니 의외네.”

-살인으로 따지면 내가 아무리 용써도 너만 할까?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님이 남에게 살인 가지고 훈수할 처지는 아니잖아, 너야말로 뼛속부터 폭력에 찌든 주제에.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난 입을 닫은 채로 의체 체결에 집중했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신경계가 연결됐다. 따가운 빛줄기가 찌릿하게 내 몸을 휘어감는 느낌이다.

기잉.

생체 신호와 사이버네틱 신호가 교류했다. 인위적인 신호 체계이지만, 적응을 마친 내 두뇌는 생체보다 더 민감하게 기계 신호를 받아들였다.

내 뇌는 기계에 익숙하다. 난 그렇게 개조받았고 훈련까지 마친 사이보그다.

철컥.

무기를 마저 챙겼다. 묵직한 무게가 허리와 허벅지, 등에 걸리니 그제야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쪽은 준비가 끝났어.”

-궤도병원에 도착하면 여유시간은 20분 정도야. 그 이후엔 연방의 우주군이 들이닥칠 거야. 거기까진 내가 통제할 순 없어.

빠듯한 시간이다. 궤도병원은 지상 건물로 따져도 대형 병원 규모의 면적이다.

‘바바라의 안내 없이는 지젤을 찾을 수 없다.’

도착하자마자, 바바라는 궤도병원의 내부망을 해킹해서 냉동수면 환자의 위치를 알아낼 터다.

우주여객선은 방향을 튼 채로 유영하고 있었다. 간혹 방향 조절을 위한 추진체의 소음만 고요히 퍼졌다.

난 화물칸에서 숨을 골랐다. 생각할 시간이 생기니 지상의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지금 제국에선…….’

저절로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 당장은 불필요한 군더더기 생각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영양젤을 꺼내서 입에 물었다. 영양액이 미묘한 맛을 내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봐, 바바라. 넌 제국과 완전히 연을 끊은 건가?”

난 현재에 집중하려고 바바라에게 말을 걸었다. 바바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폭풍기에서 군부 장교와 관료들이 죽어나간 탓에 제국의 첩보 자원과 연락망은 엉망진창이 됐어. 재구축하면서 난 실종처리 됐지. 물론, 그쪽도 내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만…… 억지로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아. 벌집을 불필요하게 쑤시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당장 날 찾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맞는 말이다. 바바라 추적에 쓸 인력과 자원이 있다면, 차라리 제국 내부 감시에 투자하는 게 효율면에서 더 낫다.

제국은 내부 통제와 감시를 위해 국력을 과도하게 낭비하고 있다. 아니, 낭비라고 말할 건 없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제국이니까.

‘이반에게도 여유가 없다. 외부로 돌릴 인력이 한없이 부족해. 음모와 계략으로 가득한 제국과 황실에서 믿을 수 있는 자는 드물지. 인재가 있어도 신뢰가 부재하니 쓰질 못해.’

이반은 일레이 카르티카 같은 불온한 자를 측근으로 기용했다. 그만치 사방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바바라, 네 생각에 일레이가 성공할 것 같아?”

-바보야? 당연히 실패하겠지. 너도 황실과 제국의 어둠을 잘 알잖아. 우리가 본 게 전부는 아닐 거야.

“……그렇겠지.”

-정신차려. 곧 도착이다.

우주여객선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드륵.

화물칸의 창막이를 살짝 열어보니 백색의 우주정거장이 보였다. 맞물린 원형 통로로 길게 이어진 순환 구조였다.

저기가 뉴젠 산하의 궤도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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