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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21

321
우주를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주에게 의지가 있다면 잔혹하리만큼 차가울 것이다.

우주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 우주 자체가 생명을 가두듯, 행성에서 벗어난 우리는 맨몸으로 암흑공간에서 버티지 못한다.

뭐, 이토록 잔혹한 우주에서 신혼을 보내는 것도…… 나름의 낭만이겠지. 물론, 내 생각에는 돈을 땅에 버리는 일이지만 말이다.

“당사의 신혼 특가 밀월여정은 4박 5일 일정으로…….”

신혼부부들 앞에 선 여성 안내원은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선 조잘조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와 바바라도 신혼부부 틈에 끼어 허니스페이스 여행사의 안내를 듣고 있었다.

여행객 대다수는 벨라토 연방의 인간이었다. 가끔은 인간과 친밀한 종족인 타르파나 배가분더스도 섞여 있었다.

“흠, 궤도호텔 일정이 끝나면 나머지 일정은 보더시티에서 보낼까?”

“오빠, 제정신이야? 난 죽기 싫어.”

“그, 기업 간 분쟁도 끝났다잖아. 이왕 보더시티에 온 김에 앙귀스 레지나 콘서트…….”

“역시 앙귀스 레지나가 보고 싶었던 거잖아!”

앞에서 부부가 가벼운 말다툼을 벌였다.

허니스페이스는 보더시티에 위치한 업체지만, 정작 고객들은 보더시티 출신이 드물었다. 연방의 수도, 벨라토시티에서 온 사람만 절반이 넘었다.

‘부유층들이 맞긴 하군.’

난 주변을 둘러봤다. 대기실에선 살벌한 표정의 경호원들이 자신의 고용주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다만, 경호원들까지 우주로 따라가는 건 아닌 듯했다.

삐걱.

내 의수 손가락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의체의 출력을 올리는 습관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경호원들을 본 탓이었다.

‘답답하군. 감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나는 출력이 낮은 의체 감각에 적응 중이었다. 전투의체 사용자는 탑승 금지였기 때문이다.

“수하물에 걸리지 않는 건 확실하지?”

내가 중얼거리듯 바바라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 상식선에선 불안했다.

“날 뭘로 보는 거야?”

바바라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내 전투의체와 무기는 수하물에 넣었다. 투과 센서는 속인다고 해도, 무게가 상당해서 걸릴 거란 불안감이 들었다.

“허니스페이스의 수하물은 안드로이드와 기계가 다뤄.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니 속이는 건 문제가 없어”

바바라가 앞만 바라보며 말했다.

‘바바라는 이쪽 분야의 전문가다. 나보다 더 잘 알아. 바바라에게 맡겨.’

나도 수하물 걱정을 미루고선 현 상황에 집중했다.

허니스페이스의 우주여객선은 보더시티 해안 비행장에 있었다.

우주여객선의 도색은 달빛을 닮은 연푸른색이었다.

“클라이드 블레어 님, 보니 블레어 님, 허니스페이스가 두 분의 달콤한 시작을 돕겠습니다.”

안내원이 마중 나오더니 나와 바바라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네요. 자기도 인사해야지.”

바바라가 말하면서 내 옆구리를 툭 쳤다.

난 목구멍까지 올라온 한숨을 삼키며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저도 십 년 넘게 이날만은 기다렸죠. 좋은 여행이 될 것 같군요.”

“십 년이나요? 어머나, 애틋해라. 아 참, 부인께선 전신의체인데 허니스페이스와 제휴한 인공수정 업체에서…….”

안내원은 이때다 싶었는지 열심히 광고를 해댔다.

나와 바바라는 웃는 낯짝으로 그 광고를 전부 듣고선 여객선으로 들어갔다.

난 느슨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인지했다.

‘승무원은 일곱 명. 그중에 넷은 무장하고 있다. 만일을 대비한 전투원이겠지.’

내 시선은 맨 앞쪽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조종석에는 파일럿 두 명이 더 있을 것이다.

우주여객선 내부는 부유층이 주 고객인지라 널널했다. 좌석은 40석이었고, 간격은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잘 수도 있을 정도였다. 중앙 통로에선 먹거리와 음료 카트가 편하게 오갔다.

“저기, 저거 리키 칸 아니야?”

“리키 칸이 누군데?”

“바보야, 세베린 창업자의 손자잖아. 이번에 얼굴이라도 트자고.”

여객선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 탑승한 모양이었다.

나도 승객 명단은 진작 외우고 있었다. 리키 칸이라는 인물은 원래 없었다.

“리키 칸?”

내 옆에 있던 바바라의 동공 테두리가 빛났다. 정보 검색을 마친 그녀가 곧장 입을 열었다.

“벨라토 연방의 대기업 세베린 창업자의 손자야. 세베린은 식품공학 분야에선 독보적이며, 심지어 아크레시아와 코라에도 식량 수출을 하고 있는 기업이야.”

리키 칸은 아리따운 여성을 곁에 끼고 있었다. 그도 우리처럼 가명으로 신청한 듯했다.

다른 탑승객들은 리키 칸의 이름을 다 아는 모양이었다. 난 귀를 기울여 그들의 말을 낚아채듯 머리에 담았다.

“정체를 꼭꼭 감췄다가 마지막에 탑승했군. 재수 없어.”

“신혼부부만 탑승 가능하잖아. 리키 칸이 결혼했었어?”

“하하, 특권층이잖아. 세상이 자기 맘대로 돌아가는 줄 알겠지.”

리키 칸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리키 칸은 자신의 유명세를 안다는 듯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좌석에 앉았다.

리키 칸은 앉자마자 소란을 피웠다.

“이게 뭐야, 진짜 포도주는 없어?”

“아, 죄송합니다. 여객선에선 혼합과 합성 포도주만…….”

“여기도 결국 서민들이나 이용하는 여행사네, 나 원. 호텔에는 그나마 제대로 된 술이 있겠지. 입맛 버리기 싫으니 이건 치워.”

“아…….”

노련한 승무원도 할 말을 잠시 잃은 모양이다.

“난 살면서 가짜 음식은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어. 차라리 물이나 내와.”

리키 칸은 자신의 출신과 부를 아낌없이 자랑했다. 턱주가리를 깨버리고 싶을 정도로 멋진 도련님이었다.

한바탕의 소란이 있고 나서 우주여객선은 출발을 준비했다.

우우우웅!

우주여객선은 수평으로 이륙하더니 대기권 이탈을 위한 가속을 붙여갔다.

드드드드!

우주여객선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여기까진 순조롭다.’

나는 눈을 감으며 계획을 상기했다. 바바라는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도 내 역할을 해내야 한다.’

내 팔다리는 비전투용이다. 하지만 어찌어찌 여객선 납치가 가능할 것 같았다. 여기선 안전요원들도 총을 쓰지 못하고 제압용 무기만 써야 한다.

‘여객선을 납치하고, 화물칸에서 우리의 수화물을 꺼낸다. 그리고…….’

파일럿과 승무원의 제압이 끝나면, 바바라가 우주여객선 조종을 맡는다.

‘그사이에 난 재무장하고 의체를 전투용으로 바꾸면 돼.’

지금까지 흐름으로 보면 문제가 없었다. 눈대중으로도 어려운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곧 지젤을 만날 수 있다.’

고요했던 심장이 쿵 하고 뛰는 걸 느꼈다.

난 미약하나마 의체의 출력을 서서히 높였다. 인공피부 아래로 진동이 일었다.

비전투용 의체라지만, 당연히 일반적인 육체보단 튼튼하고 힘이 세다.

툭.

바바라가 내 허벅지를 두드렸다. 계획 시작이라는 뜻이다.

드드드.

아직 여객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 어지러워라. 저, 저기요!”

바바라가 승무원을 호출했다. 건장한 체격의 승무원이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블레어 부인.”

“멀미가 나서요. 당장 토할 것 같은데…….”

“으음, 전산상 전신의체라고 등록되어 있습니다만…….”

나는 눈을 찌푸리며 승무원을 쳐다봤다.

“이봐, 전신의체라고 멀미가 없는 줄 알아? 전신이 기계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거야, 뭐야?”

난 내가 겪었던 제국의 귀족 도련님들을 떠올리며 열심히 연기했다.

“그건 아닙니다만, 아직 비행안정권이 아닌지라 자리를 이탈하시면 안 됩니다. 구토봉투가 앞쪽에 수납…….”

“우리 이쁜이는 토사물이 입이 아니라 뒤로 나오게 개조했다고! 지금 여기서 치맛자락을 젖히고 싸라는 거야? 미쳤어? 고소할 거야! 각오해!”

여기저기서 웃음이 들렸다. 말하는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건 임무다, 임무다, 루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잠시…….”

“잠시고 뭐고 싼다니까! 망할 새끼야!”

“알, 알겠습니다.”

승무원이 바바라를 부축하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바바라는 저쪽을 통해 화물칸으로 먼저 진입할 것이다.

짝, 짝, 짝!

소란이 마무리되자, 사방에서 손뼉과 웃음이 터졌다.

“아주 애처가로군. 감동이야.”

리키 칸의 조롱이 특히나 내 귀를 쿡 찔렀다.

‘아직 기체가 불안정할 때가 기회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상황의 변수가 많을수록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낸다. 지금이라면 안전요원들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좌석의 벨트를 매만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중앙 통로를 질주해 승무원을 제압하고선 최단으로 조종실로 들어간다.’

조종실의 문은 화장실로 들어간 바바라가 해킹으로 열어줄 것이고, 덤으로 통신도 차단할 터다.

머릿속 시뮬레이션도 끝났다. 나는 벨트를 풀려했다.

“손님,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날 향한 말이 아니었다. 저 앞에서 다른 승무원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고하겠습니다. 당장 착석하지 않으시면…….”

안전요원들도 앞쪽으로 몰렸다.

‘염병할, 저 새끼는 또 뭐야?’

난 욕지거리를 속으로 내뱉으며 앞을 응시했다.

“앉지 않으면, 뭐? 어쩌려고?”

일어선 사내가 뻣뻣하게 머리와 몸뚱이를 세웠다.

퍼- 억!

사내가 내지른 주먹이 승무원의 안면에 깊숙이 박혔다. 승무원은 머리가 무게추인 것처럼 그대로 날아가더니 여객선 벽까지 처박혔다.

자연체 인간이 아무리 단련해도 가질 수 없는 완력이었다.

뿌득, 뿌득.

사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의 목덜미와 팔뚝에는 핏줄이 기형적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혈관이 터진 눈동자는 금세 붉어졌다.

‘육체의 비정상적인 활성화. 어떤 식으로든 생체 강화를 받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었다.

“꺄, 꺄아아아아아!”

뒤늦게 비명이 이어졌다.

“다들 입 닥쳐! 순순히 우리의 지시에 따르면 피를 더 보진 않을 거다!”

사내와 같이 탑승한 여자도 일어서며 외쳤다. 그녀도 육체 강화를 받았는지 혈관이 두드러졌다.

“이 강도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안전요원들이 전기충격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참사로 이어졌다.

2인조 남녀 강도는 제법 강했다.

안전요원들은 머리가 깨지고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나뒹굴었다.

“하하, 리키 칸이라니! 이게 웬 횡재야!”

남자 강도가 리키 칸의 머리채를 잡으며 씨익 웃었다.

리키 칸은 벌벌 떨고 있었다. 탑승할 때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저들이 안전요원을 제압한 건 고맙지만…… 변수는 여기까지다.

스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봐, 갑자기 정의감이라도 생기셨나? 민간인은 건드릴 생각이 없으니까, 앉아.”

남자 강도는 꿈틀거리는 근육을 자랑하듯 어깨를 펼쳤다.

“음, 내가 민간인은 아니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난 눈동자를 움직이며 강도를 비롯해 주변의 사물을 동시에 읽어갔다.

전투 사고가 작동했다. 이상적인 동선이 말끔하게 그려졌다.

툭.

갑자기 전등이 꺼졌다.

‘멋지군, 바바라.’

화장실에 처박힌 바바라도 상황을 알아챘을 터다. 소등도 그녀의 짓이겠지.

내가 좋아하는 어둠이 일렁였고, 곧 고함과 비명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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