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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로 결정했다.”
나는 보육원장에게 바바라를 입양하겠다고 말했다.
“후훗,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나 보군요.”
보육원장은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재빨리 서류를 준비했다. 그는 눈치껏 내 신상을 묻지도 않고, 거짓 서류를 내밀며 사인을 종용했다. 사실상 인신매매였다.
난 보육원장과 말을 섞는 것도 불쾌했기에 바바라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6인실 방에는 현재 바바라만 있었다.
바바라는 침대에 놓인 너저분한 곰 인형의 등을 열더니 그 안에서 단말기를 꺼냈다.
“이 보육원은 숨기 좋은 곳이야. 원장이 썩어빠졌거든. 인신매매를 부업을 하는 데다가 자질구레한 비리는 수없이 저질렀어. 그 때문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아이에 대한 서류 처리도 부실하거든.”
바바라가 은신처로 여길 선택한 이유였다.
“그것만 이유가 아니겠지. 여기라면 쟈파 상사의 내부 서버로 접속하기 쉽고, 날 감시하기도 편할 테니까.”
내가 한쪽 입술을 비틀면서 말했다.
바바라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느긋하게 단말기를 조작했다.
“너와 나의 흔적은 방금 지웠어. 카메라에도 기록은 남지 않을 거야. 우린 유령처럼 사라지는 거지. 보육원장의 비리는 두어 달 뒤에 쟈파 장학 재단의 상부에 익명으로 올라갈 거야.”
“너도 보육원장이 불쾌했나 보지?”
바바라가 어깨를 떨며 키득키득 웃었다.
“난 보육원장에게 유감이 없어. 다만, 내 경험상 너는 보육원장을 싫어할 테니까. 점수 좀 따보려고 한 거지.”
짐을 챙긴 바바라는 내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우리가 걷는 동안, 보육원의 아이들은 부럽다는 시선으로 바바라를 보고 있었다.
우린 보육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섰다.
바바라는 곧장 자신의 또 다른 은신처로 날 안내했다. 그녀는 보더시티에 널린 고물상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수십 년은 넘은 구형 안드로이드들이 고물 더미를 분리하고 있었다.
기잉, 기이잉.
안드로이드들이 바바라를 보더니 반응했다. 그들은 고물상의 문을 닫더니 경비체계를 가동했다. 난 울타리에 꽂힌 감시장치들이 작동하는 걸 알아챘다.
“보육원장의 명의로 운영하는 곳이야. 정작 놈은 자기 명의의 고물상이 있다는 걸 모르지만 말이야.”
바바라가 고물 더미를 비집더니 녹슨 문을 열었다. 내부에는 전자장비의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은신처 안으로 들어가니 어울리지 않는 첨단 장비와 시설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바바라의 전신의체가 거치되어 있었다. 아카데미 시절의 바바라를 본뜬 형태였다.
“루카, 네가 라자루스로 향하는 걸 보고…… 지젤의 행방을 찾았다고 확신했어. 이 판국에 갑자기 라자루스에 들른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테니까. 라자루스는 네가 깨어난 곳이기도 하고.”
바바라는 수술 준비를 하며 말했다. 그녀는 전신의체로 몸을 바로 교체할 생각인 듯했다.
“흠, 라자루스 치료의 후유증 때문에 찾아갈 수도 있지.”
“거짓말 마, 루카. 우리 서로 믿기로 했잖아. 일레이가 제국으로 향했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제국의 칼’도 움직이고 있어. 너는 이런 시국에 병원이나 들를 사람이 아니잖아.”
난 입술을 씰룩였다.
위이이잉.
바바라는 나신으로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대 좌우와 천장에선 정교한 로봇팔들이 작동했다.
기잉.
바바라의 전신의체도 스스로 움직이더니 옆의 수술대에 누웠다.
‘일레이 카르티카.’
역시 일레이는 제국으로 향했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건 저 멀리 치워두자. 지금은 지젤을 찾아야 한다.
“지젤은 자신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쥬페에게 남겼어.”
바바라가 쥬페의 이름을 듣고선 움찔했다.
“그 입 싼 머저리에게? 평소에 그렇게 답답하다고 욕하더니…….”
“그러니까 맡긴 거겠지.”
“어이가 없네. 쥬페는 치료 명목으로 황제에게 널 넘기려 했어. 그걸 지젤이 번번이 막아냈지.”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이 훤히 보였다.
‘쥬페는 날 황제에게 넘겨 가문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한 거다. 당시의 내가 깨어날 확률은 몹시 낮았어. 가망이 없는 날 지키는 것보다 가문이 우선인 건 당연해.’
어디까지나 가문을 위한 행동이다.
쥬페가 날 정말로 미워하거나 싫어했다면…… 지젤의 전언조차 황제에게 진작 넘겼을 것이다.
위이잉.
나는 바바라의 수술을 그 자리에서 지켜봤다. 레이저 절단기가 소녀의 머리를 이마부터 후두부까지 절삭했다.
쩌억.
끔찍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열리면서 뇌가 드러났다.
바바라의 뇌에는 전자칩이 군데군데 꽂혀 있었다. 뇌에 직접 칩을 이식해 직결한다는 건 여러모로 위험한 행동이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과 정신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이딴 곳에서 뇌 이식이라니…….’
로봇팔들이 움직이더니 바바라의 뇌를 의체용 뇌 상자에 담아 봉했다. 이어서 전신의체의 후두부가 열렸고, 뇌 상자가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며 체결됐다.
주욱.
로봇팔들이 바바라의 목덜미를 열고 약물을 주입했다. 항생제를 비롯해 각종 억제제일 것이다.
나는 정수리가 환하게 열려있는 소녀의 육체를 보았다. 바바라의 뇌가 사라진 자리는 검붉었다. 핏물이 수술대 아래로 똑똑 흘렀다.
‘……정말 사고로 죽은 아이의 육체일까?’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전신의체의 바바라를 보았다.
바바라는 손발부터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가 이마를 붙잡으며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바이러스가 백만 개 정도 깔린 싸구려 네트워크에 의식을 깊게 담갔다가 빼낸 기분이야.”
뭐, 기분이 좋다는 뜻은 아니겠지.
“지젤은 라자루스에 냉동수면 상태로 있었을 거야. 라자루스가 병원을 폐쇄하면서 환자도 이송했을 테니 위치를 알아봐.”
난 곧장 용건을 꺼냈다.
“조금만 기다려줘. 바바라가 무슨 만능 검색기인 줄 알아? 물어보면 다 나오게?”
바바라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식 직후인지라 상태가 안 좋긴 한 듯했다.
나는 바바라의 상태가 좋아지길 기다렸다. 그사이에 온갖 잡념이 치밀었다. 특히 제국의 상황 때문에 머릿속이 근질근질거릴 지경이었다.
‘일레이, 정말 저지를 셈이냐?’
난 손깍지를 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공황이 올 것만 같았다.
“그보다 라자루스에 지젤이 있는 게 확실해? 나도 라자루스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적이 있어. 지젤의 흔적은 없었다고.”
바바라가 의문을 표했다.
“네가 직접 본 건 아니잖아. 신원을 바꿔서 등록했겠지. 라자루스 내부는 의외로 허술한 면이 있어. 직원을 매수하고 냉동수면 중인 사람을 꺼내고 그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바바라도 내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선 납득했는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경쾌하지 않은 걸 보니 여전히 의문이 남은 모양이었다.
“라자루스는 뉴젠 산하 기업이라 서버 보안이 훌륭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하진 않아. 네가 외부 세력에 의해 깨어난 것만 봐도 그렇지. 지젤이 냉동수면까지 하면서 은거할 필요는 없잖아? 위험만 커지는 짓을 왜 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냉동수면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무슨 이유?”
난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시간을 피하고 싶었던 거야. 지젤은 자신의 감정이 변하는 걸 견디기 힘들었던 거지.”
바바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빌빌 꼬더니 입을 열었다.
“흐응, 바바라는 이해할 수 없네. 시간이 좀 흘렀다고 그토록 쉽게 변할 감정이면 그냥 놓아버리면 되지 않아? 나는 변치 않을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그야 네 감정은 소유욕과 집착이니까. 가지기 전까진 해소되지 않겠지.”
바바라는 아득하게 공허한 눈동자로 날 응시했다. 그녀가 꼬던 머리카락이 툭툭 끊어졌다.
“멋대로 내 감정을 재단하지 마, 루카. 바바라는 지젤을 좋아해.”
“무쉬르 알 카슈라도 날 좋아했어. 그래서 내 뇌를 꺼내서 자신과 연결하려 했지.”
바바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눈을 감은 바바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거 곤란한걸.”
바바라는 눈을 감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앞날이 험난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어지간한 보안 시설은 내 힘으로 돌파할 수 있다.”
“세상엔 개인의 폭력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 루카. 지금도 마찬가지고.”
바바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의안에는 여러 글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스륵.
바바라가 손을 곧게 들더니 검지를 위로 뻗었다.
“무슨 의미지?”
“라자루스의 냉동수면 환자는 뉴젠 산하의 궤도병원으로 이송됐어. 거기라면 안전하긴 하니까.”
“궤도병원이라면…….”
바바라의 손가락 방향과 단어만 들어도 불길했다.
“그러니까 네 추측이 사실이라면, 지젤은 성층권 밖에 있다는 소리야.”
나는 두통이 심해지는 걸 느꼈다. 세상에 내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지만, 우주는 특히나 더욱 그랬다.
* * *
불길한 소문이 보더시티 네트워크에 맴돌고 있다.
‘제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제국 특유의 정보통제로 인해 알기 어려웠다.
보더시티에 있는 제국 출신 집단들의 동태도 심상치 않았다. 제국에 어떤 소요가 생긴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일레이 카르티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나도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벌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제국의 칼 간부 명단은 일레이에게 넘긴 지 오래야. 지젤과 준비한 계획과 일정이 전부 뭉개졌으니 위험을 무릅쓰면서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어차피 나와 지젤이 제국의 칼을 조직하며 준비했던 혼란은 카르티카의 여우가 더 잘 다룰 거고.”
옷가게로 들어간 바바라가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나오며 말했다. 그녀도 제국의 소식을 방금 네트워크로 확인한 모양이었다.
‘염병.’
나는 꽃단장한 바바라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와 바바라는 궤도병원으로 잠입할 계획을 세웠다. 통상적인 방식으론 궤도병원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아무리 바바라라도 물리적 접점이 없는 궤도병원을 외부에서 해킹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기야, 어때? 어울려?”
바바라가 말했다. 그녀는 프로그래밍된 듯한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원피스의 치맛자락을 들어올렸다.
‘미치겠군.’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차라리 여장을 한 번 더 하면 했지…… 이건 못해 먹을 노릇이다.
‘신혼부부 연기.’
나와 바바라는 지금부터 신혼부부인 척해야 한다.
“바바라도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야. 임무라고 생각해. 군인 출신이잖아?”
……돌아버리겠다.
“알고 있어, 여…… 여…….”
바바라가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질질 끌다가 말을 끝냈다.
“……보.”
식은땀이 흐를 것 같다.
“히힛,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부턴 쉬워. 계획은 머리에 다 집어넣었지?”
난 대답하기 싫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우린 보더시티의 허니스페이스 여행사를 통해 우주로 나갈 예정이었다. 허니스페이스는 부유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궤도호텔 신혼여행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여행사다.
‘그러니 우린 신혼부부인 척한다.’
바바라는 우수한 해커답게 준비를 척척 끝냈다. 가짜 신원과 서류도 꾸며냈고, 허니스페이스 여행사를 해킹해서 반년 넘게 걸리는 예약도 이틀 뒤로 잡아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부터 네 이름은 클라이드야, 난 보니고.”
우린 허니스페이스의 우주여객선을 강탈해 궤도병원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부유층의 우주여객선에서 사고가 일어나 부상자가 생긴다면 뉴젠의 궤도병원에선 기꺼이 정박을 허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