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319

319
극한치료 전문병원 라자루스는 보더시티에 위치한 특수치료업체다.

극한치료라고 명명한 것처럼, 라자루스에는 일반적으론 소생과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치료한다.

보더시티는 노바스 행성의 종족 용광로이며, 각기 다른 계통으로 발전한 기술도 뒤섞여 있다. 더군다나 법적 규제와 제약조차 없다시피 한 자유도시였다.

‘보더시티에선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에 가까운 치료 행위조차 용납이 된다.’

라자루스 병원이 보더시티에 있는 이유였다.

내 기억은 폭풍기의 아크바란에서 끊어졌다가 보더시티의 라자루스 병원으로 이어졌다. 12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뛰어넘은 셈이다.

‘라자루스는 내 치료에 성공했다. 대단한 성과이자 도박이었지.’

실패하거나 온전한 상태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컸을 터다.

‘그러나 라자루스가 아니면 날 치료할 곳이 없었지.’

국가급 의료기관에 날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거리로 나온 나는 택시를 타고선 이동했다.

위이잉.

택시에서 나는 라자루스 병원에 대한 정보를 네트워크에서 깡그리 끌어모아서 흡수하듯 뇌리에 박아넣었다.

‘뉴젠 산하의 라자루스 병원.’

뉴젠은 생명공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이며, 벨라토 연방의 바이오산업 선두 업체였다.

‘뉴젠은 연방 정부조차 쉽게 손대지 못한다.’

제국과 연방은 정부의 힘이 다르다.

공화국인 벨라토 연방은 정부가 독단적으로 기업을 억압하지 못한다.

연방 정부 내에는 다양한 집단과 세력이 있고, 이익관계에 따라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스마엘 라 차관만 봐도 다른 관료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제국의 황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억지스러운 명분’을 붙여서라도 특정한 기업과 가문을 풍비박산 내버릴 수 있었다.

‘연방은 확고한 명분 없이는 정부와 지도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다양성과 권력 분산, 견제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 거지.’

그 때문에 벨라토 연방과 보더시티에는 다양한 종족과 인재가 모인다. 자신들이 이뤄낸 성과와 결과물을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제국이었다면 병원에 사람을 숨겨봐야 들킨다. 그러나 벨라토 연방은 달랐다. 정부조차 기업의 내부 정보를 함부로 볼 수 없다.

‘지젤은 라자루스 병원에 날 숨겼다. 그리고 자신도…….’

모든 건 불확실한 도박이다.

완벽한 계획은 세상에 존재치 않는다. 사소한 실수와 별거 아닌 변수로 모든 게 어그러질 수도 있다.

‘이미 지젤의 계획에 큰 변수가 발생했다.’

나는 예정보다 일찍 깨어났다. 냉동수면 상태를 유지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바바라의 개입’으로 내 치료를 마치는 게 지젤의 계획이었을 터다.

‘하지만 키누안이 개입했다. 우수한 타지룬 사업가 쟈파에게서 증오를 끌어내 날 찾아서 깨우게 했지.’

타지룬 정보상 가문은 타지룬만 접촉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부유한 타지룬이어야 한다. 아무리 키누안이라도 타지룬 정보상 가문과 접촉할 방도는 없었다.

내가 일찍 깨어날 때를 대비해 지젤이 준비한 보험은 쥬페였다. 바바라조차 쥬페가 지젤의 보험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머리가 맑다. 외부 정보가 깨끗하게 들어와서 원래 자리라는 듯이 뇌리에 꽂혀.’

근래 이렇게 상태가 좋았던 적이 없다. 뇌를 말랑하게 만드는 호르몬이 콸콸 쏟아지고 있겠지.

‘가시적인 단서가 드디어 나왔다.’

지젤의 전언은 라자루스 병원을 명백히 가리키고 있었다.

라자루스 병원은 환자의 재력과 공탁금에 따라 급을 나눠 치료한다. ‘가난한 환자’는 사실상 치료를 빙자한 인체실험을 당하고, ‘부유한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불치병에 걸렸거나 중상을 입은 빈민은 자신의 몸뚱이를 라자루스의 실험체로 던진다. 그래야 살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있으니까.’

윤리와 도덕과는 거리가 먼 병원은 확실하다. 보더시티에 딱 어울리지.

택시가 느려지더니 멈춰 섰다. 도로가 좁아지면서 사실상 사람이 다니는 인도로 변했다. 도로가 갑자기 인도로 변하는 일은 보더시티에서 흔하다.

“손님, 이 이상은 차량으로…….”

“여기까지면 충분해. 고생했어. 잔돈은 필요 없다.”

난 주머니에서 잡히는 크레딧칩을 아무거나 꺼내서 던졌다. 뭘 던져도 택시비로는 차고 넘칠 것이다. 기사 양반의 운이 좋으면 택시 한 대를 새로 살 만큼의 크레딧칩이 나오겠지.

“히, 허억!”

오늘 댁의 운수가 좋은 모양이로군.

나는 택시 기사의 경악을 뒤로하며 차량에서 내렸다.

삐빅, 삑.

난 걸어가면서 망막 디스플레이로 라자루스에 대한 최근 기사를 확인했다.

우뚝.

기사를 읽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인파 사이인지라 나를 치고 지나가는 이들이 많았다.

-라자루스 병원, 폭도의 습격받아…….

라자루스는 여러모로 지역민의 원한을 많이 산 병원이다. 그 업보로 보더시티가 혼란에 빠졌을 때 공격받았다.

-……폐쇄.

이건 곤란하다.

* * *

라자루스 병원 앞에 도착한 나는 눈을 찌푸렸다. 고함을 지르고 싶은 심정을 꾹꾹 억눌렀다.

툭, 툭.

마음 같아선 내 어깨에 부딪히는 행인들의 팔다리를 모조리 분질러버리고 싶었다. 잘 참는구나, 루카.

라자루스 병원은 화재로 폐건물이 되었다.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여기에 있던 환자들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불에 타거나 부서진 시설과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문패도 죄다 그을려서 글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신은 없어.’

폐허에선 정리된 흔적이 보였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상황을 추론했다.

안심해라, 루카. 흥분하지 마. 이성을 잃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보를 흡수해 분석하고 사고해.

라자루스는 부유층의 치료도 맡고 있다. 부유층 환자를 폭도에게 죽게 놔뒀을 리가 없다.

‘폭도에게 당해서 무너진 게 아니라 폐쇄한 거다. 거동이 힘든 환자가 많으니 만일을 대비해 폐쇄하고 이전한 거지.’

내 사고가 결론에 도달했다.

라자루스가 환자를 어디로 이송했는지 알아야 한다. 내 접속 권한의 네트워크에선 이 이상의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라자루스 병원은 폐쇄 이후로 보더시티에서의 행적이 끊어졌다.

정보를 더 알아내려면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쟈파? 이스마엘? 아니면 미카엘?’

고급 정보에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철컥, 철컥.

난 쇳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보더시티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운송용 안드로이드가 서 있었다. 보더시티는 차량 통행이 힘든 구역이 많아서 안드로이드가 물류를 담당하기도 했다.

운송용 안드로이드가 폐건물 내부까지 올 일이 있을까 싶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안드로이드를 쳐다봤다.

“바바라.”

내 말에 안드로이드의 안광이 붉게 변했다.

-지젤을 찾은 거지?

“본체를 드러내. 안드로이드와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난 세상을 피해 은거했어. 너 때문에 모든 게 망했지.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바바라는 상식이 먹히지 않는 여자이며, 무쉬르 알 카슈라의 딸이다. 그것도 유전적 기질을 닮은 딸.

“본체를 드러내지 않겠다면 대화는 끝이다.”

나는 안드로이드의 목덜미를 쥐며 벽까지 밀었다. 내 손아귀에 잡힌 안드로이드의 금속이 찌그러지고 있었다.

으득, 으득.

안드로이드의 목에서 전류가 튀었다. 나는 그 어떤 감정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았다.

-……알았어. 이쪽 좌표로 와.

안드로이드가 손가락으로 벽을 긁으며 글자를 적었다. 나는 좌표를 단말기에 입력했다.

파직!

좌표를 확인한 나는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벽에 처박아서 터트렸다.

‘바바라가 이 상황에서 날 찾아온 건 우연이 아니다.’

바바라와 만나는 건 무쉬르 알 카슈라를 죽인 이후로 처음이다.

‘바바라는 은거한다고 말했어. 지젤이 약속한 날이 올 때까지.’

바바라는 약속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지젤을 찾아낼까 봐 내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지젤, 단둘이서 접촉하고 사라지는 게 바바라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아주 염병하는군.”

좌표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눈을 찌푸렸다. 쟈파 장학 재단이 운영하는 보육원이었다.

* * *

쟈파 장학 재단은 여러모로 보더시티 복지에 많은 투자를 했다.

기업의 사회 환원은 윤리적 행위이나…… 순수하게 도덕적 이유만으로 사회 환원을 하는 기업은 드물 터다. 대개, 자신들의 악취를 감추기 위한 덮개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보더시티의 고아들에게 보육원은 마지막 보루다.

나 역시 보육원 출신이며, 보육원의 울타리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아이들에겐 유일한 사회적 안전망이 보육원이다.

나는 응접실에서 보육원장과 마주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죠?”

“입양할 만한 아이를 찾고 있습니다.”

보육원장이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 분위기가 그리 건전하진 않을 터다.

여기서 쟈파의 이름 팔곤 싶진 않았고, 내가 보육원을 방문했다는 정보를 여기저기 퍼트리고 싶지도 않았다.

촤륵.

나는 보석 주머니를 꺼내서 보육원장의 책상에 쏟아냈다.

난 여기 오기 전에 쟈파 상사의 크레딧칩을 사용해 현물로 쓸 수 있는 보석과 금 장신구를 구매했다. 상당히 바가지를 썼지만 내 돈이 아니니 상관은 없다.

“……여자아이를 원하십니까?”

보석을 챙긴 보육원장의 입에서 역겨운 말이 나왔다. 인신매매를 많이 해본 듯하다.

쟈파라도 재단 산하의 보육원 하나하나를 전부 관리하진 못할 터다. 아니면 기업가답게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던가 말이다.

난 구역질 나는 심정을 억눌렀다. 보육원장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다.

“살펴보고 나서요.”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보육원장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겉보기엔 말끔한 보육원이다. 시설 관리도 훌륭해.’

내가 있던 보육원보다 열 배는 좋아 보였다. 그러나 보육원장을 본 아이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깃들었다.

나는 끼리끼리 놀고 있는 아이들을 훑어봤다. 저들 중 바바라가 있을 것이다.

‘주황색 머리.’

바바라는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예닐곱 정도로 보이는 주황 머리카락의 여자아이가 보였다.

난 저 아이가 바바라라고 직감했다.

‘……생체.’

바바라는 자신과 닮은 아이의 생체에 뇌를 집어넣은 상태였다.

‘타인의 생체 육신에 뇌를 집어넣고 활동하는 마녀.’

생리적 혐오감에 눈 아래가 떨렸다.

‘바바라가 사용하는 생체의 원래 주인은…….’

……바바라는 자신의 은신을 위해 아이의 삶을 빼앗았다.

‘이렇게 생체에 숨어버리니 바바라를 찾기란 힘들지.’

나는 바바라로 추정되는 아이를 응시했다. 보육원장이 내 시선을 느끼고선 상품을 설명하듯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사고로 머리를 다쳤습니다. 그 때문인지 말도 어눌하고 행동거지가 엉뚱하죠. 백치나 마찬가지입니다.”

“저 아이와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내가 짧게 말했다. 보육원장이 히쭉 웃었다.

“단둘이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보육원장은 주황머리의 여자아이를 데리고 오더니 밀폐된 방으로 우릴 안내했다.

끼익, 쿵.

보육원장은 나와 여자아이를 방으로 밀어넣었다. 침대를 비롯해 샤워실도 딸려 있었다.

“……여긴 밀실이야. 소리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지.”

‘바바라’가 바로 본색을 드러내더니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다리를 꼬더니 ‘후후’하고 짧게 웃었다.

예닐곱의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사악함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다.

“이번엔 아이의 몸을 빼앗은 건가?”

“히히, 굿보이다운 질문이네. 사고로 뇌사를 당한 애야.”

나는 껄끄러웠다. 우연이라기엔 아이의 외형이 바바라와 닮아있었다.

‘자아를 유지하려면 최대한 자신과 닮은 꼴이어야 한다.’

바바라가 이질적인 정신을 가졌으나 무쉬르 알 카슈라와 같은 괴물은 아니다. 단시간이면 몰라도 오랜 은둔을 위해선 자신과 닮은 생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저 아이의 육체를 가지게 된 계기나 과정을 추궁하며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세태에 찌든 악인 중 하나다. 지젤을 찾는 게 우선이다. 참으로 염병할 일이지.

“난 지젤이 싫어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아.”

바바라는 내 심리를 읽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도 내 성격을 알고 있다.

“크라치아 아카데미 시절을 생각해보면 믿기 힘든 말이로군. 넌 지젤에게 악몽과도 같은 트라우마를 심은 장본인이야.”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실수한 거야. 나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어. 내 마음의 구조는 너희들과 다르니까.”

“지금은 이해한다는 건가?”

“경험과 이성을 통해서 보편적인 정서는 나름대로 습득하고 있는 중이야. 네가 믿든 말든 말이지. 그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않아? 너, 지젤을 찾아낸 거지? 우리 거래할까? 네 구미가 당길 만한 정보가 있어.”

난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마가 뜨거워질 정도의 사고가 증식하며 폭발했다.

“거래는 집어치워, 바바라. 네가 정말로 지젤을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라면, 내게 협력해라.”

바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거래하지 않고선 널 믿을 수 없어.”

“넌 지젤과도 거래를 했겠지. 하지만 거래로는 지젤에게 마음을 얻을 수 없어. 지젤에게 넌 친구가 아니라 그저 불쾌한 동업자일 뿐이야.”

“……그럴 리가 없어. 나와 우정을 약속했다고.”

바바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구겨진 얼굴이었다.

“지젤이 진정 널 친구라 생각했다면, 자신의 행방을 네게는 알렸겠지. 사람을 믿는 법부터 배워라, 바바라.”

바바라의 입술과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는 힘겹게 검지로 입꼬리를 밀면서 미소를 만들었다. 식은땀이 그녀의 턱을 타고 떨어졌다.

“……히, 히힛, 좋아. 널 믿어보자고, 루카.”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