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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17

317
내게 가족이란 혈연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난 친부모의 얼굴과 이름조차 모른다. 그립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내가 두 발로 서고 걸을 때부터, 나의 삶은 생존투쟁의 장이었고 타인이란 짓밟고 제쳐야 할 장애였다.

한정된 자원, 불평등한 배급, 힘의 논리, 질시와 악의로 가득 찬 눈빛,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약한 울타리. 이게 내 유년기의 심상과 상징이다.

세상이 내게 내린 축복과 재능은 단 하나였다.

‘타고난 폭력성.’

나는 보육원의 아이들과 똑같이 자랐고 배웠으나 더 날카로웠다.

고립된 자아와 타고난 폭력성이 결합되었고, 나는 우수한 군인이라는 옷을 두를 수 있었다.

그대로, 계속, 자아의 고립을 유지했다면 난 군인의 길을 줄곧 걸었을 터다. 제국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군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사람은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비인간화와 타자화가 불가능한 대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보육원 시절의 나는 주변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의지조차 잃은 무기력한 먹잇감이었고, 보육원장과 어른들은 약자를 착취하기 바쁜 돼지들이었다.

‘근위대 생도, 루카.’

그 시절부터 나는 외부에 큰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양성소에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이 나와 대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근위대원들은 하나같이 우러러볼 수 있는 어른이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느껴지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 그제야 사람 간의 감정적 교류를 경험했다. 타인이 장애가 아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옆과 위로만 향하던 내 교류의 방향성은 어느덧 아래까지 내려갔다.

나는 약자를 동정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을 마냥 경멸하는 게 아니라 때론 처지를 공감하며 이해했고, 친구와 가족이란 개념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족…….’

근위대장 헤일라스 쿠스토리아는 내게 가족을 만들어줬다. 순전히 나에 대한 호의 때문은 아니었다. 날 영입해 쿠스토리아 가문을 보호하려고 한 것이다.

가족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지킨다. 설사 가족 구성원끼리 사이가 나쁘고, 때론 원수처럼 느낄지라도…… 외적이 나타나면 손을 잡고 협력한다. 내가 헤일라스에게 배운 가족은 그러했다.

가족은 가장 끊어내기 힘든 유대 중 하나였다.

쿠스토리아에서 멀어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쿠스토리아 가문에 위험이 닥친다면 힘이 닿는 한 돕고 싶었다. 현재 쿠스토리아 가문에 남은 가족이 ‘쥬페’이고 날 싫어하는 양어머니 ‘에바’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쥬페’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싫든 좋든 나는 쿠스토리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주 헤일라스와 원로들에게 인정을 받은 가문의 일원이다.

저벅, 저벅.

나는 쟈파 상사의 간이 사옥에 마련된 응접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이군, 루카. 눈매만 봐도 너인 줄 알아보겠어.”

소파에 앉아있던 사내가 날 보더니 일어섰다.

날 찾아온 가족은 ‘쥬페 쿠스토리아’였다. 쿠스토리아의 현 가주이자, 헤일라스의 차남, 그리고 내게 조롱을 받았던 사내다.

쥬페는 예전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의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딱딱한 제국의 복식 대신에 20세기의 복고풍 정장을 입고 있었다. 보더시티에선 제국식 복장이 눈에 띄기 때문일 터다.

“예상치 못한 방문이군요, 형님.”

“네가 복귀했다는 소문은 알음알음 들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

“연락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늘 그랬어. 아버지도 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움직였지. 그리고 너는 아직도 그렇구나.”

쥬페는 차분하게 말했다. 서글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쥬페의 불같던 성정은 많이 가라앉은 듯했다. 경험과 시간은 사람을 바꾸는 법이며, 특히 가주와 같은 자리는 사람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헤일라스 사후에 쥬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난 몰라. 그러나 순탄친 않았을 거란 건 알 수 있지.’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재회해서 반갑다는 말을 뒤늦게 해서 죄송합니다. 얼굴을 다시 보니 좋네요, 형님.”

내가 머리를 살짝 숙였다가 들며 말했다.

폭풍기의 막바지가 떠올랐다. 그때, 나와 쥬페는 서로를 인정했다. 쥬페는 날 가문의 일원으로, 그리고 나도 쥬페를 믿어야 하는 형제로 받아들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는 의례적인 말을 꺼냈다.

쥬페가 날 먼저 찾아왔다. 중요한 용건이 있다면 먼저 꺼낼 것이다.

상대가 가족이라지만 섣불리 내 정보를 먼저 노출할 생각은 없다. 난 쥬페의 십여 년을 모른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쥬페는 쿠스토리아 가문의 안녕을 위해 날 배신할 수도 있겠지.’

쥬페는 단말기를 탁자에 올리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사람이 찍힌 사진과 영상이 번갈아 나왔다.

군인 생도가 아니라 아카데미 졸업 사진이 보였다. 내 조카들, 즉 쥬페의 자식이나 니콜라오스의 자식 사진이었다.

“선별검사가 특출나지 않으면 전부 크라치아 아카데미로 보냈어. 군인 가문의 시대는 끝나고 있거든. 앞으로 명문가로 살아남으려면 행정과 기업을 쥐고 있어야 해. 원로들이 날 탐탁지 않게 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어.”

“현명한 판단입니다. 살아남아야 전통도 유지되는 법이죠.”

군벌화 가능성이 있는 군인 가문이 어떻게 짓밟히는지 우린 보았다. 살아남으려면 정통에 얽매이지 않고 바뀌어야 한다.

“루카, 나는 납작 엎드려서 버틸 거다. 현 가주로서의 내 역할은 빛나는 영광이 아니라 진흙탕을 뒹굴더라도 악착같이 버티는 생존이야. 그러니…… 너는 제국과 가문으로 돌아오지 마라. 나는 네가 몰고 올 혼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당장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든. 일이 터졌을 때, 널 지켜주고 도와줄 여유가 없다.”

쥬페가 본론을 꺼냈다.

“그럴 겁니다. 저도 집안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쿠스토리아 가문에겐 늘 감사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쥬페가 직접 찾아온 까닭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젠 내가 질문을 던질 차례다.

숨을 돌린 내가 말을 내뱉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형님에게 알려준 사람은 일레이 카르티카입니까?”

“일주일 전에 보더시티로 오라는 연락을 카르티카 가문의 사람에게 받았지. 널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더군. 계속 보더시티에 머물며 대기하고 있었다.”

내 추측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일레이는 아크바란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 빼돌릴 생각이었다. 모든 변수를 분석하며 만약의 상황까지 대비했을 터다.

‘일레이는 왜 쥬페를 내게 보낸 거지?’

뭐, 답은 금방 나왔다.

쥬페는 내가 제국으로 돌아오길 원하지 않는다. 쿠스토리아 가문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난 제국에 돌아가선 안 된다.

쥬페와 만나면서 내 발의 족쇄가 늘었다.

“……일레이가 형님도 이용했군요.”

쥬페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네 정보를 일레이에게 계속 요구한 건 나다. 네 복귀 소문을 듣자마자 수소문했지. 너와 절친했던 카르티카의 여우라면 너에 관해 뭐라도 알 것 같았거든.”

나도 쥬페의 말에 고개를 들며 눈을 크게 떴다. 쥬페가 나를 먼저 찾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왜 저를 찾으신 겁니까?”

“난 네가 겪는 위험과 음모에 대해 모른다. 과거엔 그 때문에 열등감도 있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몰라서 다행이라 생각해. 가주인 내게 중요한 건 가족과 가문의 안위다. 모르는 게 안전하다면 모르는 걸 택하고 싶어. 그러나…… 여전히 넌 가문의 일원이지.”

쥬페가 데이터칩을 하나 꺼냈다.

“지젤은 아무런 설명도 내게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애에게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어. 그 아이는 딱 한 가지 부탁만 내게 했지. 네가 다시 나타나면 이 데이터칩을 전해달라고 하더군. 난 형제이자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여기에 온 거다.”

나는 데이터칩을 가만히 바라봤다. 내 속은 요동치고 있었다.

‘지젤이 남긴 것.’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목구멍이 간지러웠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쥬페에게 맡길 줄이야.’

쥬페는 가족이지만, 나와 친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일레이, 가브리엘, 길다, 바바라, 라비앙로즈의 마르티나 디바와 그레이스…….

지젤은 그 사람들을 다 제쳐두고 쥬페에게 전언을 맡겼다.

쥬페가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내게 무사히 말을 전할 것인가? 배신의 가능성은? 쥬페에게 맡긴다는 판단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수한 자들은 쥬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쥬페는 자신의 말마따나 바짝 엎드려 버티는 사내였다. 그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무능함’조차 무기로 삼았다.

남들이 자신을 저평가할수록 쥬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웃기는 일이군. 정말로 웃기는 일이야.’

너무나 유능했기에 가문을 위험에 빠뜨린 아버지 헤일라스와는 대조적인 처세술이었다.

“아무런 질문도 마라, 루카우스. 난 그 무엇도 모른다. 비밀을 지킬 자신도 없으며, 내 역할은 이게 전부야.”

난 데이터칩을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형님. 진심으로요.”

쥬페는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에 왔다. 그의 생존전략이 먹히려면, 일련의 사건과 무관한 척해야 했다.

‘날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다.’

쥬페는 타인에게 데이터칩을 맡기지도 않았다. 지젤에게 받은 비밀을 홀로 삼켰다가 내 앞에 이르러서야 내뱉었다.

‘……날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했기에 자신의 도리를 다한 것이지.’

일레이에게 데이터칩을 맡기는 방법도 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전달할 수 있는 노릇이다.

그러나 쥬페는 지젤의 부탁대로 직접 전달했다.

나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쥬페와는 딱히 추억도 없다. 혈연도 아니다. 그러나 쥬페는 내 가족이었다. 참으로 기묘한 감정이다.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말씀해주시죠. 언제든 가겠습니다.”

쥬페가 호탕하게 웃었다.

“네 방식은 나와 달라. 네 도움이 없어도 난 살아남을 수 있다.”

쥬페는 벗어둔 중절모를 쓰며 일어섰다. 그는 가볍게 손만 흔들며 응접실을 떴다.

난 쥬페가 나가는 걸 바라보다가 손에 쥔 데이터칩의 감촉을 느꼈다.

‘이건 쿠스토리아 가문 내부의 전언이다.’

난 기억을 더듬었다.

쥬페와 지젤의 언질이 없지만, 이 데이터칩은 쿠스토리아 가문의 화학적 봉인(封印, Seal)이 되어있을 것이다.

예전에 헤일라스가 내게 시범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쿠스토리아 가문 사람끼리 비밀을 전달할 땐 봉인을 사용한다.

제국에서 명문가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아날로그 봉인 방식을 가지고 있다. 정보 유출과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화학적 중화를 거치지 않고 열람했다간 데이터가 증발해.’

나도 쿠스토리아 가문의 봉인을 중화하는 화학식을 배운 적이 있었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집중하면 어떻게든 떠올릴 수 있을 터다.

“……오래 걸릴 건 없지.”

난 데이터칩을 손가락 사이로 굴리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목에 자국이 남았군.’

방을 나서기 전, 나는 거울을 잠깐 보았다. 목갑이 있던 자리에는 검붉게 변색된 피부가 보였다. 누가 밧줄로 내 목을 조른 것 같은 자국이었다.

라피스는 흉터가 남은 것에 미안해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피부가 뜯겨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애초에 내가 흉터 따윌 신경 쓰며 사는 놈도 아니고.

저벅.

복도로 나간 나는 의료실로 향했다. 의료실엔 이런저런 화학물질이 항상 있다.

지젤의 전언을 확인할 때가 됐다.

싸아아아.

등골이 갑자기 오싹하다. 지젤의 망령이 내 등 뒤에 있는 기분이다. 그녀의 차가운 손과 팔이 내 목을 지나 가슴까지 껴안는 것 같다.

‘이건 내 망상이야.’

지젤은 죽지 않았다.

……그래야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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