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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13

313
근위대 출신은 신경계 화학 처리를 받은 뇌를 가지고 있다.

뇌 신경계 강화가 제국 근위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른 집단이나 조직에서도 시술하며, 심지어 심각한 부작용만 감수하면 뒷골목의 불법 시술소에서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제국 근위대의 신경계 화학 처리 시술이 당대 최고의 수준이라는 걸 부정하는 자는 없을 터다.

그런 정점의 기술을 가진 근위대에서도 신경계 화학 처리의 부작용은 심각한 문제다. 여러 강점이 있는데도 제국의 귀족들이 받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군인 가문이 아니라면 신경계 화학 처리를 꺼리었다.

타고난 신경 다발이 굵고, 정신적 외상을 잘 견디며 스트레스 내성이 높은 자들을 선별해 시술하더라도…… 곧잘 정신적 문제가 발생했다.

그 위험과 부작용을 감수하고 시술을 받아 얻어낸 능력이 ‘사고의 가속’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한두 번 겪을 만한 극한의 상황에서 사고가 가속하는 초집중을 경험하곤 한다. 세상이 느려지고 사물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이다. 이때, 뇌의 과부하가 일어난다.

근위대원은 가벼운 압박감과 심리적 준비만으로 초집중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그 사고 가속 능력을 토대로 인지 확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게 아키에스 빅티마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각성제와 뇌 강화를 전제한 사고 기술이자 전투술.’

아키에스 빅티마는 반복된 인지 확장과 과부하 상태를 일상적으로 유지하면서 ‘뇌의 자기보호 본능’을 제거하고 풀어버린다. 그 결과, 뇌는 위험을 무시하며 무절제하게 정보를 흡수하고 추론을 반복한다.

흡사, 제동장치를 제거한 차량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필연적으로 파국을 맞이한다.

내가 신경질적이며 불안감에 상시 시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상 누군가 내 목덜미에 칼날을 들이민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뭐, 애초에 그런 성향이기에 아키에스 빅티마를 배울 수 있기도 했다.

……짧은 회상이 늘어지게 길군.

나는 내 눈앞까지 날아온 찻잔 조각을 보고 있다. 키누안이 손가락으로 찻잔을 튕겨 쏘아보낸 조각이다.

난 꾹꾹 눌러둔 전투 감각을 토해내듯 전신으로 펼치고 있다. 수로의 문을 열 듯, 활력이 샘솟고 머릿속은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맑았다.

세상이 선명하고 느리게 보인다. 아니, 거의 멈춘 것 같다.

티이이이잉!

찻잔의 조각이 날아오는 소리가 늘어진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서 얼굴을 스치듯 가렸다. 찻잔 조각이 내 손에 맞아서 튕겨나갔다.

손바닥으로 내 시야가 가려진 건 찰나였으나, 키누안은 언제 앉아 있었냐는 듯이 일어서 있었다. 그의 오른 다리는 이미 나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내 머리를 노린 발차기.’

키누안의 발이 바닥을 긁으며 치솟았다. 발끝은 정확히 내 턱을 노리고 있다.

투- 웅!

난 손바닥으로 키누안의 발을 감싸듯 막았다. 내 몸이 천장으로 솟구쳤다.

‘무기를 사용할 틈이 없다.’

키누안과 나의 인지와 판단은 실시간이 아니다. 1초를 무수히 쪼개서 매 순간마다 판단하고 사고한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장고의 결과물이다.

키누안은 근접거리에서 내가 무기를 뽑을 찰나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키누안이 손을 뻗어서 천장으로 치솟는 나의 발목을 붙잡아서 당기고 있었다.

‘내 의도를 알아챘군.’

난 키누안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다. 잠깐의 여유만 있으면 무기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루시스 사용은 포기해. 여기에 집착하면 당한다.’

우린 시간을 극한까지 쪼개서 싸우고 있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조차 낭비가 있으면 안 된다.

난 동작 하나하나에 최적화를 하고 또 했다.

키누안도 최적화하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낭비 없는 동작은 깔끔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말끔한 동선과 궤적으로 손발을 움직이며 내 행동을 사전에 차단했다.

쿠웅!

키누안이 내 발목을 잡고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난 발끝으로 균형을 잡으며 손등으로 키누안의 턱을 노렸다.

키누안도 슬며시 왼손을 들어 내 주먹을 밀어내듯 흘렸다. 순간순간마다 내 예측한 미래가 깨지면서 전혀 다른 예측의 가지가 뻗어나갔다.

‘답답하다.’

이런 기분은 키누안도 마찬가지일 터다. 서로가 수읽기를 통해 모든 걸 차단했다. 고차원의 수읽기는 기이한 공격과 방어로 이어졌다.

우린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상대를 보면서 움직인다.

춤을 추듯 절묘하게 합이 맞아떨어졌다. 의도적으로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것 같다.

‘이게 당신의 진짜 실력이로군.’

난 예전에 키누안을 전투에서 꺾은 적이 있었으나, 당시의 키누안은 뇌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키누안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생기가 넘쳐. 역시 아키에스 빅티마로 인한 뇌의 기능 이상을 회복한 거다.’

뇌를 회복한 키누안은 완벽한 전사였다. 모든 걸 쳐내고 막아냈다. 판단과 동작에는 기복이 없이 잔잔했고, 전신의체인만큼 지침도 없었다.

‘……나도 알고 있어. 키누안은 날 확보하고 이길 자신이 있기에 정면에서 나타난 거다.’

키누안은 날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다. 그는 나보다도 어쩌면 날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전투 사고 속도와 판단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해보자.

‘난 질 수밖에 없다.’

필연적 한계다. 생체를 가진 나는 ‘기복’이 생긴다. 생체는 일정하지 않고, 호흡 간의 빈틈이 생긴다. 그 빈틈을 메꾸기 위해 내 동작은 한 박자씩 늦어진다.

평소라면 메꿀 수 있는 단점이다. 그러나 대등한 사고 속도와 판단력을 지닌 상대에겐…… 무척이나 치명적인 단점이다.

전투력이라는 측면만 보자면, 전신의체는 생체보다 우월하다.

‘이건 예정된 패배다.’

나도 직감했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판단과 직관이 내 미래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패배하는 경우의 수만 늘어났다.

아직 키누안은 순간이동 유물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사고에 집어넣으면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미래가 막막했다.

‘내가 전신의체였다면…….’

처음으로 난 전신의체가 아닌 몸뚱이가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전신의체였다면 키누안은 이렇게 싸움을 걸지도 않았을 터다. 이길 거란 확신이 없었을 테니까.

‘아키에스 빅티마, 약자의 기술.’

지금 나는 약자이고, 키누안은 강자다. 물리적 전투로 극복할 도리가 없다.

도망칠 곳은 있는가? 여긴 막혀 있다. 내 도주를 대비한 매복도 있겠지.

여기서 내가 패배한다면, 이반 크라치아는 날 자유로이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붙잡혀 제국에 팔려가면 이반의 인형이 되겠지.’

내가 이기지 못하는 영역에서 키누안과 싸우지 말자.

‘……나는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불확실하며 위험한 도박, 작은 확률에 기대어 그려내는 미래, 이를 위한 준비.

‘그러니 여기선 처참하게 패배해라, 루카.’

여력은 남기지 마라. 여기서 지면 모든 게 끝이라는 듯이 마지막까지 물어뜯어라.

키누안이 총알을 쏘듯이 팔을 접었다가 뻗었다. 의체 관절에 잠금을 걸고 장력을 모았다가 해방하는 순간가속 타격법이다. 노련한 경험만큼이나 놈은 다양한 의체전용 기술을 쓰고 있었다.

음속을 넘어선 타격이 매섭게 퍼졌다.

타- 앙!

내 왼팔의 팔꿈치가 포탄에 맞은 듯이 부서졌다. 잔해가 흩날리고 있다. 팔꿈치 아래로는 팔이 흐느적거렸다.

키릭!

난 잔해를 오른쪽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키누안에게 산탄처럼 쏘아보냈다.

키누안은 온몸으로 쏟아지는 잔해를 받아들였다. 전신의체니 할 수 있는 짓이다.

난 방어를 도외시하며 오른손을 뾰족하게 모았다. 내 손가락 찌르기가 키누안의 미간을 향했다.

키누안이 고개를 틀어 찌르기를 피했다. 나는 부러진 왼팔을 어깨의 힘으로 채찍처럼 휘둘렀다.

콰직!

키누안의 관자놀이에 내 왼팔이 부딪혔다. 그러나 치명상을 입히긴 어렵다. 오히려 내 왼팔이 반파되면서 팔꿈치 아래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타격을 위한 왼팔 공격이 아니다. 그저 시야를 잠시 가리는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오른손으로 품에서 이그니움 비수 불나방을 뽑으며 떨어뜨렸다. 떨어지는 불나방을 차올리면서 오른 주먹을 뻗었다.

키누안은 내 주먹을 피하면서도 내 불나방 궤도를 확인했다. 나는 불나방을 곧장 키누안에게 쏘아내지 않았다.

차올린 불나방은 내 시선 앞까지 도달했다.

으득!

나는 불나방의 짧은 칼자루를 입으로 물었다. 고개를 비틀면서 키누안의 안면을 노렸다.

치이이익!

공기의 마찰로 불나방이 달아오른다. 입가가 화상으로 짓눌렸다.

이건 합리적 이치를 잠시 포기하고 사고의 빈틈을 노린 공격이었다. 효율로 따지면 발로 불나방을 차올려 쏘아내는 게 더 나았다.

그러나 키누안의 사고는 여기까지도 예측한다. 그의 경지는 나와 대등하니까 말이다.

“위험한 행동은 말게, 자네가 죽으면 곤란하니까.”

떠벌릴 정도의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키누안의 손가락이 내 입을 지나쳤다. 어느새 그는 내가 물고 있던 불나방을 손가락으로 낚아챘고, 그의 팔꿈치가 손가락을 따라오며 내 턱을 스치듯 지나갔다.

짧은 스침이지만, 내 뇌를 흔들기엔 충분하다.

……세상이 캄캄하게 흔들린다.

“7초……. 내 예상보다 2초나 더 걸렸어. 자넨 언제나 날 놀라게 하는군.”

키누안의 말이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 * *

‘나는 키누안에게 패배했다.’

이게 기절에서 깨어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키누안은 나를 완전히 파악하고 읽고 있다. 루카라는 개인은 키누안에게 이길 도리가 없었다.

‘뒤를 잡힌 순간, 패배는 당연한 거다. 절망하거나 좌절할 것도 없어.’

키누안은 나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 내 출신과 신상, 목적, 그리고 소년기의 성장 과정도 고스란히 곁에서 지켜봤었다. 내 전투 기술과 사고법도 키누안의 영향 아래에 있다.

반면, 나는 키누안을 모른다. 그의 배경과 한계, 인간성의 바닥, 목적…… 모든 게 흐릿했다.

정보의 비대칭이 역력했다.

……나는 키누안보다 약자다. 간파당한 내가 그를 이길 방도는 없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끼린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명확했다. 이 영역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이길 방법이 없다.

‘무쉬르 알 카슈라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놈에게 도움을 청했겠지.’

무쉬르 알 카슈라와 하나가 된다면, 키누안은 나보다 약자가 된다. ‘루카’라는 아키에스 빅티마 부품을 가진 ‘카슈라’는 키누안을 애새끼 손가락 부러뜨리듯 제압할 터다.

지금 내 상태를 점검해보자, 루카.

난 라르스가 갇혀 있던 격리실에 똑같은 꼴로 쓰러져 있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로 없었다. 오른팔과 두 다리는 멀쩡하지만 접합부의 신경계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고, 내 무기는 한쪽 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깨어났군요,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격리실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는 보더시티의 교구장 디컨이 앉아있었다. 그는 보고 있던 책을 덮더니 날 응시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교구장을 보았다. 분노는 의미가 없다. 아니, 그다지 화도 나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낄 만큼 친밀한 사이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 팔다리가 멀쩡히 움직였다면, 지금 그의 팔다리를 분질렀을 터다.

“절 신성국에 넘기실 생각입니까?”

“당신의 이력을 찾아보니 놀랍기 그지없더군요. 하층민 출신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그러니까…… 아키에스 도미니라고 했습니까? 제국의 중추에 도달할 정도니까요.”

키누안은 교구장에게 아주 모든 걸 불어버린 모양이다. 그 정돈 내뱉어야 교구장의 배신을 종용할 수 있었겠지.

“어리석은 짓입니다. 전…….”

난 제국의 상급 군인이며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다. 내 뇌를 뜯어내서 조사해도 그리 많은 걸 알아내지 못할 터다.

“본국에는 다양한 포스 능력자가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자도 있죠. 당신이 정말로 유용한 인물이라면 심문까지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 제국 황실의 치부와 키누안에 대해서도 캐낼 수 있죠. 키누안도 당장 풀어줄 뿐, 앞으로 코라 신성국에서 추적할 겁니다.”

“……어쨌든 보더시티 교구의 필요성이 본국에 증명되겠군요.”

교구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다시 내게 경칭을 생략했다.

“자네에겐 미안한 마음이 크네. 이건 진심이야. 그러니 염치없게도 날 설득할 기회를 주겠네. 키누안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해줬으면 하는군.”

난 한쪽 입술만 비틀며 웃었다.

“그런 협상패가 제게 있었다면, 키누안이 절 죽여서 입을 막았을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교구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마지막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르스는 살아있습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무사히 돌려보낼 겁니다. 당장 풀어줄 순 없지만, 키누안이 손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교구장의 말투로 보아 내적 갈등을 크게 겪는 듯했다. 교구장으로서의 자신과 디컨으로서의 자신을 분리하면서 죄책감을 묻는 것일 터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교구장이 나가는 걸 바라봤다.

쿵.

격리실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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