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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08

308
간발의 차다.

현재, 나와 키누안과의 거리였다.

예전의 키누안은 아득한 장막을 두른 채로 저 멀리 앞서 있었다.

그러던 키누안이 어느새 내 코앞에 있었다. 손만 어떻게든 잘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과감하게 나아가면, 놈을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교구장이 죽었다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퀼리아에게 반문했다.

퀼리아는 교구장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것도 라르스의 손에 말이다.

“저도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루카 님의 사주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진작 당신을 공격했겠죠.”

내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날 제압해 심문할 자신이 있었어도 공격했겠지.”

퀼리아는 날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틈을 노린 셈이다.

‘아마 우리가 암살단원을 죽이고 찻집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퀼리아는 개인통신으로 교구장의 죽음을 들은 거다.’

퀼리아의 감정 신호는 몹시 옅다. 그녀가 작정하고 숨겼다면 나도 눈치채기 힘들다.

나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퀼리아의 두 눈을 보고 입을 열었다.

“교구장의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럴 거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기만일 수도 있죠. 당신은 키누안과 비슷한 종자니까요.”

퀼리아의 옷소매가 흔들렸다. 미약한 떨림과 함께 뾰족한 암기의 끄트머리가 반짝였다.

“현명한 판단이야. 날 믿지 않는 게 좋지. 내겐 불행하고도 답답한 일이지만 말이야.”

난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함은 약점이면서 무기가 된다.

퀼리아는 감정적으로 나를 믿고 싶어한다. 그 부분을 자극하는 게 좋겠지. 키누안과 같은 기만은 아니다. 실제로도…… 난 범인이 아니니까.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흐름의 사건이 벌어졌다. 내 머리도 터질 것만 같았다.

‘라르스가 왜? 키누안을? 라르스가 진범이 맞긴 한 건가?’

라르스의 마지막 연락을 떠올렸다. 그는 병원 경비 임무를 끝내고, 일레이와 접촉한 뒤에 나와 합류하기로 했다.

“가야 선생도 중상을 입었다고 했지?”

“라르스가 가야 님을 공격했습니다. 자세한 정황은 신전으로 돌아가야 알 수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요.”

“네 힘으로 날 데려갈 순 없을 거다, 퀼리아.”

“그래서 당신의 동의를 구하고 싶습니다. 정말 관련이 없고 무고하다면 절 따라오셔서 해명해주시죠.”

“마음 같아선 기꺼이 따라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주춤거릴수록 키누안이 웃을 거야.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놈에게 시간을 주면 안 돼.”

여기서 발목을 잡힐 순 없다. 내가 움직인다면 항상 키누안에게 다가가는 형식이어야 한다.

‘누가 교구장의 죽음을 사주했는가?’

내 머릿속엔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첫 번째, 본국의 교단에서 교구장을 죽였고 라르스는 누명을 쓴 거다.’

보더시티 교구장은 교단 내에서 소수파였다. 교구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보더시티에는 본국에서 온 암살단원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이반 크라치아의 짓이라는 것. 황제가 암살을 지시했다면 일레이와 라르스는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지.’

타국의 중요 인물을 암살할 이유가 제국에게는 차고 넘친다.

‘세 번째, 키누안의 계략. 교구장과의 협력 관계는 끝났다. 교구장은 걸림돌이지. 그러니 틈을 타서 제거한 거다. 라르스를 이용했든 아니면 라르스에게 누명을 씌웠던 간에 말이야.’

내 생각은 키누안의 계략이라는 세 번째 가정에 중점을 두고 돌아갔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배제할 순 없다.

“퀼리아, 약속하지. 이번 추적이 끝나면 교구장 암살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내막이 그리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건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

“저와 당신의 사이는 말뿐인 약속을 믿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죠. 그러나 제가 당신을 제압할 힘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퀼리아가 전투태세를 물리듯이 뒷걸음질 쳤다. 소매 안쪽에서 꺼내든 무기가 사라지는 기척도 들렸다.

‘일단은 급하게 봉합한 건가.’

사건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갑작스레 교구장이 죽었다.

‘이런 얽히고설킨 구도 뒤에는…… 언제나 키누안이 서 있다.’

나는 재차 벽을 응시했다. 벽은 키누안의 사고를 드러내는 정보로 빼곡했다.

‘이건 어떤 계획을 세우기 위한 사고 지도.’

계획 수립과 추론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키누안 정도 되는 사람에겐 물리적 사고 지도가 필요 없다는 거다.

나와 키누안의 머릿속에서 만든 가상의 공간만으로도 이런 걸 수백 개는 만들어내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다.

‘당신에게 이런 게 왜 필요한 거지?’

그게 내 가장 큰 의문이었다. 유인책이나 함정이라기엔 허술했다.

‘……어쩌면 이게 키누안의 허점이다.’

키누안에겐 사고 지도 같은 걸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다. 그것도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볼 수 있는 위치였다.

‘보안의 취약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이유.’

무언가 엮일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더 키누안에 대해 알게 된다면…… 놈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가 되면, 키누안은 더는 수수께끼의 괴물이 아닌 한낱 사람으로 추락할 터다. 난 키누안의 가면을 벗길 것이다.

내 시선은 지젤의 사진에서 멈췄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경영자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말끔한 정복을 입은 지젤은 이지적이었다. 미성숙한 소녀의 느낌은 없었다.

‘지젤, 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키누안만 궁금한 게 아니다. 나도 그녀의 행방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지젤이 죽었고, 그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모른다면…….’

난 지젤이란 저주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터다. 평생 그녀를 찾아 헤매다가 쓰러지고 말겠지.

내 삶을 옭아매는 두 가지 저주. 키누안과 지젤을 걷어내야 한다.

치직, 칙.

내 통신기가 잡음과 함께 열렸다. 망막에 떠오른 글자는 암호문이었다. 전혀 두서없이 연관이 없어 보이는 활자들이 수두룩하게 떠올랐다.

난 암호문 해독 법칙에 따라 글자를 걸러내 머릿속에서 재조합했다.

일레이의 연락이었다.

‘위치를 말하면 찾아가겠다.’

일레이가 이리로 온다는 것이다. 라르스가 교구장을 암살했다는 걸 일레이도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일레이는 그간 무얼 한 거지? 정말로 키누안만 추적한 건가? 나 몰래 다른 활동을 한 게 아닐까?

일레이는 내 친구다. 그러나 난 녀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친구라고 서로를 속이지 않는 관계라는 건 아니다.

‘일레이를 부르는 게 맞는 건가?’

난 현 위치의 좌표를 암호화해 입력하며 고민했다.

……뭐, 일단 마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피해선 그 무엇도 진행되지 않는다.

* * *

나는 일레이를 호출하고선 기다렸다.

그 사이에 마리아도 들어와서 퀼리아와 함께 키누안의 사고 지도를 보았다. 그들에겐 키누안의 사고 지도를 볼 자격이 있었다.

“크륵.”

찻집 바깥은 사리엘이 지키고 있었다. 크롤러가 서 있으니 어중이떠중이는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이봐, 총각. 이 아줌마가 궁금한 게 있어.”

턱을 괸 마리아가 사고 지도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그녀도 이번 사태가 굉장히 복잡하고 거대하다는 걸 실감했을 터다.

“말해줄 수 있는 거라면 답해주지.”

“여기 보면…… 네가 날 무시하지 못하고 도울 거라는 메모가 있군. 마치 내가 네 발목을 잡을 거라는 듯이 말이야.”

“내가 원체 착해서 말이야. 별명이 굿보이거든.”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히 가브리엘의 사진과 정보는 벽에 없었고, 그게 마리아 일당의 등장이 키누안에게도 변수라는 증거였다.

‘오래전부터 마리아를 이용할 계획이었다면 가브리엘의 사진도 있었을 거다. 아니면 가브리엘을 납치해서 확보해 뒀겠지.’

나도 사고 지도를 통해 키누안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너…… 나에 대해 뭔가 더 알고 있군.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강제로 캐낼 순 없지, 젠장. 이번에 유물을 팔아치우고 몇 년은 놀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꼬였어.”

마리아도 한정된 정보로 날카롭게 짚었다. 그녀도 작은 집단이지만 한 무리를 이끄는 대장이다. 통찰력이 일반인 이상인 게 당연하다.

“크르르르륵!”

밖에 있는 사리엘이 목구멍을 긁어대며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철컥.

마리아도 반사적으로 총을 견착했고, 퀼리아도 자세를 갖췄다.

나만이 고요히 문을 응시했다.

“내가 부른 손님이야. 사리엘에게 진정하라고 해.”

마리아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선 휘파람을 냈다. 말 잘 듣는 사냥개처럼 사리엘이 경계를 풀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 찻집으로 걸어들어오고 있다.

싸아아아.

나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서늘함을 느꼈다. 묵직한 빙하가 내 앞에 떨어진 것 같았다.

엄숙한 제국의 병기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기이잉.

헬멧을 쓴 일레이가 보였다. 광학 렌즈의 안광이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고, 새카만 전투복은 첨단장비로 도배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일레이는 손꼽히는 강자였다.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 모두를 도륙 낼 수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내가 손님이라고 했지만, 마리아와 퀼리아는 경계를 풀지 못했다. 그들은 일레이의 존재가 죽음을 상징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했다.

‘내가 보는 일레이와…… 타인이 보는 일레이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내게 일레이는 오랜 친구다. 일레이의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레이는 황제의 직속 특임대를 맡고 있다. 무수히 많은 암살과 비공식 임무를 수행한 사신이었다.

제국 바깥에서 일레이를 보고 살아남은 자는 몇 없을 것이다.

남들에게 일레이는 그런 괴물이었다.

“루카, 이들은 믿을 수 있는 자들인가?”

일레이가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가 내뿜는 중압감은 대단했다.

“적어도 지금은 적이 아니야. 일손은 많을수록 좋잖아.”

내가 의자에 앉은 채로 대답했다. 난 일레이의 이름이나 신상정보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았다.

마리아와 퀼리아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걸 알아챘다. 여기서 내가 부정적인 말을 한다면, 일레이는 마리아와 퀼리아를 순식간에 죽여버릴 것이다.

“애매한 수준의 협력자는 군더더기야. 중요한 순간에 네 발을 잡아끌거다, 루카.”

일레이의 발언은 사납고도 오만했다. 명백히 마리아와 퀼리아를 무시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죽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리라.

일레이는 사정을 봐주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방해다 싶으면 자신의 부하도 서슴없이 죽이는 자다.

‘마리아도 괜히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게 아니야. 사려할 때를 잘 알고 있군.’

이렇게 대놓고 일레이가 옆에 있으니 나도 새삼스레 느낀다.

……나는 물렁한 놈이 맞다. 일레이가 나타나자마자 마리아와 퀼리아는 숨을 집어삼키면서 긴장했다.

“키누안의…… 거처로군. 이렇게 발견하기 쉬운 곳에 지금까지 살고 있었다고?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야.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네.”

일레이는 벽에 시선을 두었다. 그도 복잡하게 얽힌 사고 지도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나는 그런 일레이의 등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일레이는 라르스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라르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군. 녀석은 너와 접촉하고 나와 합류하기로 되어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놈이 교구장을 암살했다고 하네. 어떻게 된 거지?”

일레이가 느릿하게 날 돌아봤다. 무기질적인 동작은 안드로이드 같았다.

“……나도 모른다. 라르스는 나와 접촉하지 않았어.”

일레이의 말은 함축적이었다. 라르스가 황제의 칙명을 따로 받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레이가 라르스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라르스는 생포당했군.”

내가 중얼거렸다.

“라르스는 포기해. 우린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 그리고 네 옆의 사제는 이만 보내주자고. 코라 소속의 인물을 데리고 다닐 상황이 아니야.”

나는 빠르게 일어서며 일레이의 손목을 잡아챘다. 조금만 늦었어도 일레이가 총을 뽑아서 퀼리아를 공격했을 터다.

내가 일레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키누안을 찾고 싶으면 내 판단에 따라라. 난 이들을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했어.”

“허술한 마음가짐으로 움직이다간, 넌 파국을 맞이할 거야.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잖아.”

일레이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한쪽 입술을 씰룩였다.

“넌 키누안을 번번이 놓쳤지. 놈을 여기까지 추적한 건 나다. 네가 아니야. 네가 보기엔 의미가 없어 보이는 내 행동과 결단이 키누안을 몰아세운 거다. 불필요한 변수를 제거하는 합리적 판단만으론 키누안을 찾지 못해. 이견이 있다면 어디 지껄여봐. 네가 얼마나 무능한지 반박해줄 테니까.”

난 일레이의 손을 놓으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스륵.

일레이는 슬그머니 손을 위로 들어서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일레이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위를 보다가 날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지난 십여 년간, 내가 내린 유일한 비이성적 결단이 널 구하는 것이었고…… 그게 키누안을 찾아내는 열쇠였지. 그러니 널 믿도록 하지, 루카. 하지만 저 사제가 우리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면 바로 제거하겠다. 여기에 대한 이견은 없겠지?”

나는 대답 대신에 퀼리아를 응시했다.

순식간에 인질이 된 퀼리아는 자신의 귓가에서 귀걸이 같은 통신기를 제거하더니 바닥에 떨어뜨렸다.

파직.

내가 통신기를 밟아서 부숴뜨렸다.

“퀼리아, 그쪽에도 비밀리 범죄자를 가두고 심문하는 곳이 있겠지?”

내 말의 의도는 명백했다. 붙잡힌 라르스를 구출한다.

“라르스가 교구장님의 암살범이라면, 전 놈을 죽일 겁니다.”

“라르스가 암살범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만약 맞다면 어쩌실 거죠?”

나는 눈을 깜빡였다. 거짓말은 소용이 없다.

“널 죽이고, 라르스를 구하겠지. 내 부하니까.”

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시군요.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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