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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02

302
‘아케인 문명.’

솔직히, 나는 아케인 문명에 개인적인 관심이 없었다. 수수께끼의 초고대문명과 유물 따윈 타인의 관심사다.

수많은 위정자와 권력자들이 아케인 문명에 심취했다. 아케인 문명이 남긴 유산은 때론 국가 간의 균형을 바꾸고, 기술의 비약적인 진보를 끌어내기도 했다.

‘일레이 카르티카나 파올로 콴처럼, 아케인 문명 자체에 매혹된 자도 수두룩하지.’

역시 나는 학자 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지적 호기심으로 아케인 문명에 대해 집착하는 이들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내 관심사와 별개로 아케인 문명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노바스 행성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아케인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나는 가슴 한구석이 섬찟하는 걸 느낀다. 아케인 문명을 둘러싼 사건 사고는 탐욕의 피바람으로 대개 끝난 까닭이다.

“퀼리아, 그걸 가져와 주세요.”

교구장이 말했다.

탁.

퀼리아는 백색 천으로 감싼 물건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스륵.

교구장이 정갈하게 천을 펼쳐서 물건을 꺼냈다.

‘아케인 유물?’

손바닥 크기의 캡슐이었다. 표면에는 아름다운 장식과도 같은 전자회로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해하기 편하게 설명하자면, 이건 일종의 축전지입니다. 아케인 문명과 홀리스톤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조금은 압니다만, 이야기를 듣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겠습니다.”

교구장은 캡슐을 들어 올렸다. 캡슐의 회로가 반응하듯 빛났다.

“우리 인류 문명은 전기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합니다. 어떤 형태의 에너지든 간에 최종적으론 전기로 변환하죠. 하지만 아케인 문명은 홀리스톤에서 뽑아낸 홀리에너지 자체를 사용합니다.”

진가우 소장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군.

나는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걸 붙잡으며 교구장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아케인 유물의 주 에너지원도 전기가 아닌 홀리에너지죠. 하지만 현재 우리의 기술력으론 홀리스톤의 홀리에너지를 안정적인 형태로 추출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종종 유물로 발견되는 게 안정적인 홀리에너지원의 전부죠. 그마저도 방전된 상태이거나 잔량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대다수입니다.”

“경매장에서 키누안이 가져간 게 홀리에너지 캡슐입니까?”

“네, 그것도 상당히 온전한 형태의 캡슐입니다. 홀리에너지 잔량도 대단히 높다고 하더군요.”

난 이야기를 좀 더 들었다.

홀리에너지 캡슐은 유물 연구에 상당히 중요했다. 안정적인 형태의 홀리에너지를 공급받아야 작동하는 유물이 많은 듯했다.

과학자들은 전기나 홀리스톤으로 유물 작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거나 성공하더라도 불완전한 형태의 기동이 많았다. 같은 홀리에너지라도 홀리스톤과 홀리에너지 캡슐의 안정성이 다른 탓이었다.

단순히 생각해 봐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자기기도 전압이 다르거나 전류 공급이 불안정하면 오작동을 일으킨다.

스스스.

나는 뇌가 빳빳하게 긴장하는 걸 느꼈다. 얼음벌레가 대뇌피질 위로 걸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인내심 하나는 여전히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하군, 키누안.’

키누안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몇 겹의 음모와 계략을 쌓았다. 그는 음모와 계략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펼치며 기다렸고, 마침내 먹잇감이 걸려들었다.

‘키누안은 제국에서 정신전이기를 탈취했다.’

그리고 정신전이기 작동을 위해 적당한 규격의 홀리에너지 캡슐도 필요했다.

‘아케인 문명과 유물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접촉하면서 원하는 유물의 소식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 거야.’

키누안의 대계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버텼고, 보더시티로 이주했는지도 보인다.

“원칙적으론 아케인 유물은 발견 즉시 국가정부에 신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유물이 전략적 가치가 있거나 대단한 건 아니고, 전부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별다른 기능이 없는 장식품이나 그 시대의 생필품도 아케인 유물의 일종이니까요. 하지만 전략적 가치나 연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은 각국이 손에 넣으려고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 홀리에너지 캡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혼란한 틈을 타서 경매장에 캡슐이 나온 거로군요. 국가에 신고해 넘기는 것보다 민간 시장이 훨씬 높은 값을 쳐줄 거고요.”

“보더시티 경매장에는 다른 종족의 부호도 많죠. 아케인 유물을 노리는 건 인류만이 아니니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보더시티 교구의 예산으론 경매에서 이기긴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경매 물품목록을 입수하자마자…… 키누안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교구장이 키누안에게 경매장 정보를 제공했다. 경매 물품목록을 미리 알아내는 건 교구장이니 가능했을 터다. 보더시티 곳곳에 퍼진 신도의 정보력은 상당할 테니까.

‘교구장은 키누안의 목적이 아케인 유물이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키누안은 값어치 있는 유물도 자신에게 필요가 없다면 미련 없이 넘겨줬을 테니까.’

키누안은 자신에게 필요한 유물을 교구장이 발견하길 꿋꿋하게 기다리며 친밀한 관계를 쌓아올렸다.

‘정신전이기와 홀리에너지 캡슐.’

그 인내 끝에 키누안은 두 가지의 유물을 얻었다.

‘다음 목적은?’

정신전이기는 기억과 인격을 다른 존재에게 남길 수 있는 유물이다. 어떤 의미로는 불로불사이기도 했다.

‘만약 키누안이 정신전이기로 뇌조차 갈아탄다면…….’

더는 키누안을 찾을 방법은 없고, 놈은 뇌의 수명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는 간담이 서늘한 걸 느꼈다. 이미 경매장 습격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제법 지난 상태였다.

‘서둘러야 한다.’

내 불안감에 의체가 반응했다. 난 무릎이 떨리는 걸 붙잡아서 억눌렀다.

“바로 움직여야겠군요. 키누안을 찾는다면…… 홀리에너지 캡슐은 교구장님에게 넘겨드리겠습니다. 제겐 가치가 없는 물건이니까요.”

우리의 협상은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었다.

“퀼리아를 데려가시죠. 키누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키누안 부하들이 사용하는 인지왜곡장막은 원래 퀼리아의 능력입니다. 잠깐 시범을 보여주시죠, 퀼리아.”

퀼리아가 호흡을 깊게 마셨다. 그녀는 미소가 그려진 새하얀 가면을 품에서 꺼내더니 썼다.

가면의 눈과 입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저 가면이 퀼리아의 포스 능력 촉매인 듯했다.

우우웅.

퀼리아의 형태가 흔들리더니 이내 배경에 녹아들었다. 완벽에 가까운 투명이었다.

키누안의 부하들이 사용하던 은폐 능력과 똑같았다.

스륵.

난 퀼리아의 기척이 다시 드러나는 걸 느꼈다. 그녀는 어느새 내 등 뒤에 있었다.

‘포스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거다. 섬뜩한 능력이군.’

나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삼켰다. 지금은 당장 움직여야 했다.

끼익.

퀼리아는 가면을 품에 넣으면서 문을 열고선 나갔다. 그녀는 밖에서 기다릴 셈인 듯했다.

툭, 툭.

나는 목갑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교구장님, 이대로 신전 바깥으로 나가면 제 목갑의 장치가 작동할 겁니다. 작동 직전에 멈췄으니까요. 목갑이 작동하면 아마 저는…….”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

교구장도 해결책이 있으니 여태 나와 대화한 것이리라. 그가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을 이어갔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당신에게 신께서 우리에게 내린 축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교구장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동공조차 사라질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그의 팔찌가 짤랑짤랑 흔들렸고, 사슬은 부서질 듯이 진동했다.

후두두둑.

응접실의 가재도구가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교구장의 포스가 물리적 압력을 가질 정도로 거셌다.

“감속, 정지…… 그리고 역행입니다.”

교구장이 내뿜는 포스의 빛이 단숨에 사슬의 끄트머리로 모여들었다. 빛은 실체가 되었고, 사슬은 너울거리는 포스의 오라를 품었다.

키리리릭!

사슬이 내 목갑을 감으면서 회전했다.

난 목갑의 미세한 전자장치와 기계장치가 움직이는 걸 느꼈다.

‘말도 안 되는…….’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교구장은 물체의 시간을 짧게 되돌렸다. 목갑의 시간만 몇 초를 되돌려 ‘작동 이전’에서 정지시켰다.

국소적인 시간 역행이었다.

“하아, 하아…….”

교구장은 오랜 중노동에 시달린 듯이 바짝 말랐다. 뺨도 홀쭉해졌고 눈도 퀭했다. 체력 소비를 넘어서서 생명력을 짜낸 듯한 느낌이었다.

‘몇 초일지라도 시간 역행이 쉬울 리가 없지. 대가를 치른 거다.’

괜히 코라의 고위 사제가 아니었다. 포스 능력에 무지한 내가 봐도 기적에 가까운 힘이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면…… 굳이 힘들게 보더시티 교구를 맡지 않으셔도 본국에서 승승장구하시겠군요.”

내가 은은한 빛이 맴도는 목갑을 만지며 말했다. 은연중에 떠보는 것이다. 이 정도 능력자가 본국을 떠나 보더시티에서 고생하는 이유가 있을 터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교구장이 말하다가 목이 탔는지 물을 마셨다. 그가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저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보더시티의 교구를 지키겠습니까?”

나는 지친 교구장을 가만히 보다가 일어섰다.

“교구장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키누안과 다릅니다. 호의를 배신으로 갚진 않겠습니다.”

교구장이 땀에 젖은 얼굴로 웃더니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는 처음으로 소탈한 모습을 내보였다. 냉엄한 품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지친 까닭일 터다.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 * *

나는 퀼리아와 함께 개척신전을 빠져나왔다. 미묘한 대기의 압박감이 흐트러졌고, 목갑을 둘러싼 포스의 빛도 사라졌다.

‘……미리 알고 있어도 놀랍군.’

내 목갑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반에겐 어떤 식으로 보고가 들어갔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야도 이미 병원으로 돌아간 듯했다. 가야가 복귀하면 라르스도 조만간 날 찾아올 것이다.

“이쪽으로 오시죠, 루카 님.”

퀼리아가 공중차량을 향해 날 안내했다.

“키누안에 대한 정보와 단서를 전부 제공해. 정보 취합은 내가 그쪽보다 우수할 테니까.”

나는 공중차량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낭비할 시간은 없다. 모든 걸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퀼리아는 내 언행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감정 통제를 넘어서 절제한 듯한 여자였다.

“그리고…… 네 능력에 대해서도 설명해줘. 상당히 까다로워 보이니까. 키누안의 부하들이 아직도 투명한 상태로 돌아다닌다면 곤란하거든.”

퀼리아가 공중차량으로 먼저 들어가더니 조종석의 컴퓨터를 조작했다.

우우웅.

공중차량의 홀로그램에선 보더시티 교구에서 수집한 키누안에 대한 이력과 정보가 나왔다. 내가 모르는 정보가 상당히 많았다.

“극비 자료입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내가 중얼거리며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키누안은 보더시티 교구장의 부탁을 받아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심지어 암살 의뢰까지 있었다.

“제 포스 능력은 인지왜곡장을 펼쳐 외부로부터 몸을 숨기는 겁니다.”

“그 능력을 장비에 담아서 남도 쓸 수 있게 만들었고, 그걸 키누안의 부하들이 쓰고 있는 건가? 상용화하면 노바스 행성 전역의 암살자들이 거금을 들여서라도 사려고 달려들겠는걸?”

“사용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촉매 기능이 있는 물질로 옷을 만들어야 하고, 반나절만 지나도 담아둔 능력이 휘발됩니다.”

난 퀼리아를 응시했다. 감정 신호를 숨기는 게 아니라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덤덤한 여자였다. 안드로이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인지왜곡은 외부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닙니다. 사용자 본인도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죠.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썼다간 본인의 몸도 가누지 못할 겁니다. 자신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나는 움찔했다.

‘자신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말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네 감정이 옅어진 건 그 부작용인가?”

“통찰력이 뛰어나시군요, 당신이라면 이 도시에 숨어있는 키누안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놈이 보더시티에 있다면 말이지.”

나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키누안이 보더시티를 이미 떠났으며 정신전이기와 홀리에너지 캡슐로 목적을 달성했다는 상황 말이다.

“키누안은 아직 보더시티에 있습니다. 마지막 자료를 확인해 보시죠.”

퀼리아는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로 공중차량을 조작하며 단언했다.

위잉, 윙.

난 그녀의 말을 따라 홀로그램 화면을 넘기다가 마지막 장에서 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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