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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의 문화와 양식은 아크레시아 제국민 입장에서 이질적이었다. 벨라토 연방과는 궤가 달랐다.
벨라토 연방은 지구의 문화를 계승한 국가다. 인류라는 종족의 본가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벨라토와 아크레시아 사이에선 문화적 접점이 컸고, 두 사회는 공통적으로 유물론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코라는 다르다.’
코라 신성국은 종교 국가다. 디셈교라는 종교를 국가의 기반으로 삼는다.
기술 문명의 이기로 우주를 누비는 시대에, 종교를 국가의 기반으로 한다? 언뜻 들으면, 비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들의 아케인 문명 연구 진척도는 삼국 제일이라는 거지. 현재 과학 기술로 해명 불가능한 포스 능력조차 어떻게든 체계화해서 활용하는 자들이다.’
디셈교는 어떤 식으로든 아케인 문명에서 파생된 종교였다.
아케인 문명의 사람이 믿던 종교일 수도 있고, 아케인 문명 자체를 신화나 신적 존재로 여기는 종교일 수도 있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제국에선 그 이상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코라의 기술력은 연방과 제국과 비교하기 힘들었다. 우수하다 열등하다가 아니라 그 기반이 달랐다.
우우웅.
내가 탄 코라의 공중차량이 고요한 엔진음을 내뿜었다. 실내도 유선형 곡선이 말끔하게 이어져 미적 안정감이 있었다.
공중차량 실내에는 나와 가야, 그리고 신전에서 파견 나온 사제가 있었다.
“이봐, 가야 선생, 내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 댁처럼 시답잖은 예의 따지는 좀생이들이 많지 않아?”
내가 말하자마자, 사제가 눈을 찌푸렸다.
“언행을 조심하시오. 이분은…….”
사제가 말을 끝내기 전에 가야가 손을 들었다. 사제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역시 가야는 코라 사회 내에서 지위가 높은 자였어.’
나는 옅게 웃었다.
가야는 한숨을 쉬더니 격벽 너머의 조종실을 바라봤다.
“사제님,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 교구장님.”
사제는 기어코 가야의 지위를 내뱉더니 조종실로 들어갔다.
“내가 코라 사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교구장이라면 대단한 직위 아니야?”
“전 교구장이죠. 제 신분과 지위를 알아내려고, 일부러 무례한 말을 내뱉어서 사제님의 반응을 끌어냈군요. 여전히 영리하십니다, 루카 씨.”
가야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지. 정보를 수집하는 게 버릇이 돼서 말이야.”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 기술과 습관 덕분에 험난한 위기를 몇 번이고 넘길 수 있었겠죠. 예를 들어서 개척신전의 코라인과 대적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저를 인질로 삼아 탈출하려 하겠죠. 제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걸 방금 대화를 통해 알았으니 말이죠.”
나는 부정하진 않았다. 가야의 말대로, 그것도 하나의 방책이었다.
“나는 코라에 대해 잘 몰라. 디셈교의 신전에 대해서도 말이지. 매사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가야가 옅게 웃었다. 그가 검지를 들어 허공을 그었다. 그의 팔찌가 짤랑짤랑 울리며 희미하게 빛났다.
위이잉.
가야의 검지 끝에서 포스의 빛이 일렁였다.
포스의 빛은 실타래처럼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림은 곡선이 두드러지는 건축 양식의 신전이었다.
‘포스를 응용하는 재주가 좋군.’
가야는 자신의 능력을 적극 활용했다. 전 교구장이라는 걸 내가 알았으니 거리낄 게 없는 모양이었다.
“보더시티 교구에는 개척신전이 하나 있습니다. 보더시티 교구는 전쟁으로 따지면 최전선이나 마찬가지인 구역이죠. 저는 사십여 년 전에 보더시티 교구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나는 흠칫했다. 가야는 자연체 인간으론 많이 쳐줘 봐야 40대 정도로 보였다.
“……그럼 지금 몇 살인 거야?”
“제가 젊어보이는 편이지만, 교구장으로 임명될 때의 나이도 많지 않았다는 걸 알아주시면 됩니다. 젊다 못해 어린 나이였죠.”
가야는 창밖의 보더시티를 내려다봤다. 그는 보더시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내였다.
“뭐,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양반이로군.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건가?”
가야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심경의 극심한 변화가 있을 만한 거창한 사건 사고는 없었죠. 그저 제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을 뿐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해할 수도 있겠군요.”
“글쎄, 우린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을 텐데?”
가야는 숨을 내뱉으며 웃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응시했다.
“제 생각엔 당신이나 저나 위로 올라가기엔 비위가 약합니다. 악덕을 집어삼킬 비위가 없죠.”
난 반박하려다가 말았다. 내 안에서 짚이는 바가 있었다.
내 반응을 살핀 가야가 말을 이어갔다.
“전 보편적 선악의 개념으로 악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라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기 위해서든 간에 필연적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르고 감내해야 합니다. 그걸 전 악덕이라 부르고 싶군요. 자신이란 존재를 형성하는 일부를 도려내야 하죠.”
가야가 포스의 빛으로 삼각형을 그렸다. 그리곤 꼭대기만 가차 없이 그어서 분리했다.
“사회의 정점에 서기 위해선 우린 자기 자신을 초월해야 합니다. 관료라면 혁신과 이상을 포기하고, 군인이라면 평생을 쌓아온 명예를 버려야 하고, 성직자라면…… 삶의 지침이었던 신앙의 변질을 견뎌야 하죠. 그 과정과 결과를 초월, 악덕, 타협, 변모…… 무어라 부르든 간에 말입니다. 당신과 저는 이걸 견디지 못할 부류의 사람입니다.”
가야가 포스의 빛으로 만든 삼각형의 꼭대기를 손으로 쥐더니 흐트러뜨렸다.
나는 가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기 싫다는 게 단순히 ‘먹기 싫은 음식을 먹는다’, ‘힘든 일도 해야 한다’ 이런 수준이 아니다.
‘이중성과 위선.’
입으론 고귀한 명예를 떠들면서 불명예스러운 짓을 저질러야 하고, 이상을 설파하며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이중성과 위선은 필연이다.
‘맞는 말이다.’
가야의 말대로, 내겐 그런 비위가 없다.
나라고 악덕을 저지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편식이 심한 아이처럼 몇 번이고 고민하면서 구역질을 참아내며 삼킨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필요하다면 아무렇지 않게 그런 악덕을 씹어삼킬 터다. 손석재처럼 말이다.
“……제가 루카 씨를 돕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날 고평가하는군.”
“아뇨, 저평가하는 거죠. 당신과 저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위업을 이루기엔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고 비위가 약하죠.”
예전에 라그나타에게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기준으로 영웅을 정의했다.
‘영웅이란 필연적으로 괴물이지. 놈들은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 주변을 깡그리 집어삼켜. 영웅으로서 빛나기 위해선 그만한 장작이 있어야 하거든. 자신의 주변부터 불태우는 법이지.’
라그나타와 가야의 말은 맥락이 같았다.
‘넌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비대하게 부풀리지 못해. 정의나 악의, 신념이든 뭐든 좋아. 넌 한 가지 목적과 욕망을 위해 타인을 서슴없이 먹어 치우지 못해. 괴물이 되기엔 비위가 약하기 때문이지.’
라그나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난 내 목적만을 위해 주변을 불태우지도 못하고, 타인을 삼키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웃긴 건, 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다. 자신 말곤 그 무엇도 중요치 않은 비정하고 냉혹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지.
“지금부터 당신이 무얼 하든, 그건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일 겁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과는 거리가 멀죠. 저는 당신이 자신만의 안식과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 위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만드는 건…… 비위가 좋은 영웅들에게 맡기시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가야와의 대화는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는 나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정서적 안정 덕분인지 내 머릿속의 복잡하게 날뛰던 생각이 일제히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얼마만에 맛보는 평온인지 모르겠다.
“선생이 훌륭한 치료사가 맞긴 하네.”
“최고의 극찬이군요.”
* * *
우리의 공중차량은 개척신전의 뒤편에 마련된 비행장에서 멈췄다.
나는 내리기 전에 밖을 보았다. 새하얀 신전이 멋스럽게 곡선을 그리며 위로 뻗어 있었다.
‘코라의 개척신전.’
보더시티 포교를 위한 신전이었다. 인간만이 아니라 많은 종족이 신전을 오가고 있었다. 그중에선 드물지만 유물론 성향이 강한 타지룬 종족마저 있을 정도였다.
‘많은 종족이 디셈교를 믿는다.’
벨라토 연방이 다양성 원칙으로 인해 다종족 국가를 이뤘다면, 코라 신성국은 디셈교라는 거대한 기치 아래에서 다종족 사회를 형성했다.
‘그래도 인간 중심이라는 건 별반 다를 바가 없군.’
사제복을 입은 대다수는 인간이었다. 이종족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치이익.
공중차량의 문이 위로 열렸다.
나와 가야가 내리자마자 마중을 나온 사제들이 가야를 향해 묵례했다. 일부는 기도문을 외우기도 했다.
스륵.
사제들이 좌우로 흩어졌다. 그 사이로 금빛 자수가 놓인 백의를 입은 사내가 걸어왔다. 사제 중에서도 가장 고위직인 듯했다.
난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가야와 닮았다.’
검은 피부와 굵은 이목구비는 가야를 연상케 했다.
나는 가야와 저 사내가 혈연관계라는 걸 알았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불경한 자와 함께 방문하셨군요.”
사내는 날 힐끗 보며 가야에게 예를 갖췄다. 가야도 머리와 상체를 가벼이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교구장님께서 친히 마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가야의 동생이 현 교구장이었다.
‘내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군.’
나도 머리가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가야가 고위직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규모가 너무나 커졌어.’
저 교구장이 나에 대한 정보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코라 신성국은 배타적인 면모가 있다.
휙.
교구장이 손을 들었다.
사제들이 모두 물러났고, 지금부터의 대화는 나와 가야, 교구장만 들을 수 있었다.
“최소한의 예는 다해야죠. 아직 형님을 존경하는 사제와 신도가 많으니까요. 비록 당신은 교단을 버리고 떠났지만요.”
교구장의 말은 가시가 박힌 채찍 같았다. 가야는 그저 평온한 미소로 대응했다.
“아우님께서도 교구장 직위를 원하셨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습니다. 전 쟁취하고 싶었던 거지, 물려받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그 성격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시군요.”
“다른 곳도 아닌 보더시티의 교구장이니까요.”
교구장과 가야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듯했고, 가야는 교단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가야는 교구장 시절에 굉장히 존경을 받았다. 스스로 지위를 버리고 은거한 점을 높게 사는 사람도 많을 거고.’
보아하니 가야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내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들어오시죠, 키누안에 대한 이야기는 바깥에서 할만한 것이 아니니까요.”
교구장은 나와 통성명하지도 않았다. 그는 옷을 펄럭이며 등을 내보이더니 성큼성큼 신전으로 걸어갔다.
‘키누안.’
교구장은 서슴없이 그 이름을 꺼냈다.
키누안은…… 개척신전에도 얽혀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고, 질리다면 질리는 사실이다.
난 신전으로 걸어들어가다가 움찔했다. 신전 내부로 발을 내딛자마자 대기의 밀도가 바뀌는 느낌이었다.
치직.
그리고 내 목갑에서 전류가 튀었다.
간담이 서늘하다. 당장이라도 목갑과 함께 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