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297

297
터- 엉!

충격권총 루이나가 포효한다. 충격탄이 새파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실탄에 실린 에너지가 터지면서 벽을 부쉈고, 그 뒤에 엄폐한 에퀘시안 용병도 폭발에 휘말렸다.

쿠르르릉!

좁은 복도에선 소리가 사방팔방 울렸다.

나는 튕기는 소리를 반향정위로 감지하며 시각화했다. 내 머릿속에선 지형지물과 적의 위치가 일렁이는 테두리로 보였다.

감았던 눈을 뜨니, 청각으로 감지한 사물과 적들이 눈으로도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이건 뇌의 착각으로 인한 일종의 환시였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청각 시야와 일반 시야가 겹쳐 있었다.

내 뇌는 청각 시야와 일반 시야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이 멀쩡하면서 청각 신호를 시각 영역에서 인위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이상이 생긴 것이다.

내 시각 신호와 청각 신호가 같은 영역에서 우선순위를 다투고 있다. 신경계에서 교통 체증이 일어난 것 같았다.

‘……토할 것 같군.’

뇌의 이상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내 뇌는 종종 과부하로 손상된 부위가 있더라도, 다른 영역으로 뇌 신경계를 확장해 보상작용으로 기능을 메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한계에 달했다. 보상작용으로도 뇌 전체의 기능 유지가 힘들어지고 있다.

신경계 화학 처리로 강화한 뇌니까 그나마 여기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난 숨을 가다듬으며 에퀘시안들을 보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너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루이나의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충격탄은 에퀘시안 용병의 몸통에 직격했다.

쿠웅!

푸른 폭발이 끝나니 처참한 모습이 보였다. 에퀘시안 용병의 전면 피부와 근육이 증발하다시피 했다.

팅!

난 이글거리는 냉매 탄피를 배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보얀은 무장하지 않았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다.’

나는 감각에 의존해 보얀과 이스마엘을 찾아야 한다. 경매장 지도라도 있으면 그들의 도주로를 미리 읽겠지만, 지금은 에퀘시안 용병과 소리의 흔적이 내 나침반이다.

탕! 텅!

앞쪽에서 대치 중인 소리가 났다. 엇갈린 총성이 다른 방향으로 교차했다.

콰앙!

폭발음도 거칠게 퍼졌다.

‘저쪽 모퉁이 너머의 에퀘시안은 셋이다. 한 명만 후방을 보고 있고, 다른 둘은 앞쪽에서 대치하고 있어. 루이나로 일단…….’

나는 루이나를 재장전하려다가 멈췄다. 루이나의 과열 센서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위험 수치였다.

‘……이렇게 연속으로 쓴 적은 처음이긴 하지. 원래 설계부터 단기전용 무기이고.’

공중차량 때부터 이어진 연속 사용으로 루이나는 과열 상태였다. 냉매 탄피로도 열 배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체 손바닥이었으면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의 열기가 루이나에게서 흘러나왔다.

내 손에서 충격탄이 터지는 게 보기 싫으면 루이나는 집어넣어야 한다.

나는 루이나를 품에 꽂아넣고선 움직였다. 손난로라도 가슴에 품은 느낌이다.

‘어지간하면 뇌의 부담을 피하고 싶지만, 지금은 나아가야 할 때다.’

나는 의체의 출력을 높이면서 고속기동을 준비했다.

우득!

내 앞발이 땅을 파고들었고, 난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복도를 가로질렀다.

텅! 퉁!

나는 천장과 벽을 오가며 복잡하게 움직였다.

후방을 감시하던 에퀘시안이 날 발견하더니 사격했다. 그러나 난 총구의 궤적에서 벗어난 상태였고, 총알은 허무하게 벽에 처박혔다.

콰-지지지직!

접근한 내가 무릎으로 에퀘시안의 안면을 강타했다. 전투 헬멧이 깨지면서 놈의 머리가 부서졌다. 충격이 깊게 들어가 후두부까지 박살 내면서 뇌와 척수액이 번지듯 벽으로 튀었다.

끼릭!

다른 에퀘시안 두 명도 앞을 향했던 총구를 내게 돌리고 있었다.

쿠- 웅!

나는 착지하면서 크루시스를 길게 휘둘렀다.

크루시스에 부딪힌 에퀘시안은 뼈가 없는 인형처럼 뭉개지더니 옆으로 날아갔다.

퍼억!

날아간 에퀘시안은 동료에게 부딪혔고, 그 동료가 쏘던 총의 총구는 천장까지 치솟았다.

콰직!

난 휘두른 크루시스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천장을 총으로 갈기는 에퀘시안의 배를 찌르며 위로 휘둘렀다.

으드드득!

배로 들어간 칼날이 에퀘시안의 정수리로 나왔다. 피와 내장이 비릿하게 쏟아졌다. 칼날로 인한 죽음은 어지간한 비위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잔혹하다.

스륵.

난 고개를 돌려 에퀘시안 셋의 죽음을 확인했다.

‘이 에퀘시안들은 누구와 대치하고 있…….’

나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뒤로 젖혔다.

탕!

내 코앞으로 총알이 지나갔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건 알겠지만, 좀 보고 쏘지 그래?”

내가 눈을 옆으로 흘기며 말했다.

에퀘시안이 진입하지 못한 방에서 낯익은 소녀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루카?”

에퀘시안과 대치하던 사람은 야나카 본드레드였다. 그녀는 전략무기연구부 소속의 MAU 파일럿이다. 그리고 새삼스레 말하지만 보얀의 친구이기도 하다.

“보얀과 이스마엘은?”

“말해줄 수 없어. 그쪽이 차관님을 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컥, 쿨럭.”

야나카는 피가 섞인 기침을 했다. 그녀는 에퀘시안에게서 탈취한 총을 들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네가 여길 지키는 걸 보니 그쪽으로 쭉 나아가면 이스마엘이 도망치고 있겠군.”

“거기 멈, 멈춰!”

야나카가 불안정하게 총을 겨누었다. 에퀘시안의 총기라서 그녀가 들고 있으니 중화기처럼 커 보였다.

“네가 믿든 안 믿든, 난 이스마엘을 구하러 왔다. 여기서 나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나는 야나카의 총구를 무시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쪽에는 낡은 뒷문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었다.

‘아까 폭발은 이 방에서 일어난 거로군.’

방은 폭발로 엉망진창이었다. 유탄이라도 터진 듯했다. 가구는 조각조각 났고 벽과 천장은 잔뜩 그을렸다.

그리고…… 야나카도 간신히 폭발로부터 목숨을 건진 듯했으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왼손의 손가락이 셋이나 날아갔고, 왼쪽 다리도 발목 아래로는 없군. 화상으로 인한 피부 손상은 뭐, 기본이고…… 복부에는 철제 파편이 박혀 있어.’

나는 야나카의 상태를 살폈다. 이대론 죽을 것이다. 중상에다가 출혈도 심했다.

난 귓가의 통신기를 작동했다.

“라르스, 목표의 도주로는 파악했다. 넌 창문을 깨든 벽을 부수든 해서 경매장 건물 뒤편으로 바로 나가. 그쪽으로 이스마엘과 크롤러가 나오면 보호해라.”

-알겠습니다.

라르스도 빠르게 내 지시를 받아들였다.

내 행동을 본 야나카가 눈을 크게 떴다.

“약속해. 차관님을 지키러 왔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고…….”

“그보다 누워봐, 응급조치를 할 테니까.”

“난 군인이야. 죽을 각오는 됐어. 차관님부터 구해.”

나는 끈을 꺼내서 야나카의 왼쪽 손목과 발목을 묶으며 지혈했다. 복부의 파편은 당장 뽑을 수 없었다. 뽑자마자 야나카는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떨고 있군.’

야나카의 팔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출혈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것일 터다.

“넌 군인이 아니야. 그냥 애새끼지.”

“난 군인…… 윽!”

난 야나카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머리가 뒤로 휘청였다.

“용케도 보얀이 널 놔두고 이스마엘과 도망갔군. 그놈 성격에 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버틸 줄 알았는데…….”

“힘으로 잠금장치를 뜯을 수 있는 건 보얀밖에 없으니까. 우린 폐쇄된 문을 계속 열면서 도망쳤어.”

난 응급조치를 마치며 슬그머니 야나카의 얼굴을 응시했다.

“거기다가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보얀과 약속했지? 그렇게 말해야 보얀이 널 남겨두고 갔을 테니까.”

야나카는 부정하지 않았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팔 힘은 남아있을 테니 업혀라. 너 하나 짊어지고 움직이는 건 일도 아니야.”

난 말하면서 야나카를 등으로 짊어졌다. 야나카도 난동을 피우지 않고 얌전히 업혔다.

‘죽을 각오가 된 녀석이 아니야. 학습된 허세인 거지.’

나는 야나카를 업은 채로 뒷문으로 연결된 통로로 들어갔다. 아래로 향하는 철제 계단이 보였다.

철제 계단은 녹슬어 있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듯했다. 경매장 건물을 증축하고 개조하면서 이쪽 통로는 폐쇄한 것이리라.

내 어깨와 목을 감싼 야나카의 팔에서 떨림이 사라지고 있었다. 안심이 된 모양이다.

텅! 텅!

내 발에 닿는 철제 계단의 울림이 공허했다.

난 빠르게 내려가면서도 야나카의 상처가 덧날까 봐 충격을 하체로 흡수했다.

“이봐, 아저씨.”

야나카가 입을 열었다.

“오줌을 싸고 싶으면 그냥 내 등에 싸도 돼.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지.”

말하고 나니 괜히 등골이 서늘하다. 야나카가 단검이라도 내 목덜미에 들이밀 것 같았다.

“……미쳤어?”

“아직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죽진 않겠군.”

계단이 끝나면서 1층으로 나가는 복도가 보였다.

바닥에는 물리적으로 깨진 쇠사슬과 잠금장치가 떨어져 있었다. 보얀의 짓일 터다.

야나카는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누구의 짐도 되기 싫어. 다른 사람들, 정확히 말해서, 그러니까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육체가 나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진 모양이다. 응급조치를 했어도 여전히 중상이었고, 그녀의 삶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난 야나카를 계단에 내려두며 옷깃을 추슬렀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정도로 강한 사람은 없어.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지.”

“댁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야나카의 눈에는 내가 대단한 어른처럼 보일 것이다. 뭐든 다 알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나도 헤일라스를 처음 봤을 땐 그러했다. 그가 완벽한 존재처럼 보였다.

“……항상 도움이 필요하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나가려던 찰나에 통신기에서 잡음이 일었다. 난 귓가에 손을 대며 집중했다.

-뒷문을 지키던 놈들을 처리하고 이스마엘과 크롤러를 확보했습니다. 다만, 흥분한 크롤러가 계속 덤비길래 다리와 팔을 하나씩 분지르고 기절시켰습니다.

“잘했어. 크롤러를 멈추려면 그 정돈 해야지.”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라르스 덕분에 살았군.’

나는 야나카를 치료하고 라르스에게 뒷일을 맡겼다.

만약 라르스가 없었다면, 난 야나카를 죽게 내버려두고 이스마엘과 보얀을 쫓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

* * *

난 현재 제국 소속이며 황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스마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바뀌는 법.’

그동안 나와 이스마엘 사이의 연락도 끊어진 상태였다. 당연히 이스마엘은 내 진의와 목적을 의심할 터다. 심지어 이번엔 누가 봐도 제국의 군인인 라르스를 데리고 다니고 있다.

나는 라르스가 확보한 이스마엘과 보얀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로 루카 씨였군요.”

이스마엘이 길거리 벤치에 걸터앉은 채로 날 응시했다.

“의료지원부터 호출하시죠. 야나카는 중상입니다.”

난 숨을 쌕쌕 몰아쉬는 야나카를 다른 벤치에 눕히며 말했다. 야나카의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미 오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야기할 시간도 많이 없다는 뜻이죠.”

난 기절한 보얀을 힐끗 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차관님.”

나는 최대한 짧게 축약해 손석재에 대해 말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이스마엘도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수싸움에서 밀렸군요. 절 구해주신 것에 대해선 감사를 표하겠습니다만, 지금 당신의 목적과 소속에 대해선 의구심을 표할 수밖에 없군요.”

이스마엘이 날 빤히 응시했다. 내 손아귀에 생사가 달렸으면서도 대범한 발언을 내뱉었다.

털썩.

난 이스마엘 옆에 앉았다.

“차관님, 저는 연방으로 망명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이 중대하게 생각하는 MAU 개발도 관심이 없고요. 제국의 칼이니 뭐니 이런 것도 사실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제국과 연방의 경쟁도 이제 와선 남 일이죠. 첩보전은 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하라고 하면 됩니다.”

내 말에 놀란 건 이스마엘만이 아니었다. 라르스도 움찔하며 날 쳐다봤다.

“무슨 의미십니까?”

“전 당신을 구했습니다. 덤으로 연방의 재산인 야나카 본드레드도요. 저기 멍청하게 기절한 보얀도 당신을 위해 내면의 야성을 끌어냈죠.”

“저와 거래하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협상도 아니며 협박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부탁이죠. 당신은 연방의 고위 관료이며…… 영향력과 권력을 둘 다 가지고 있죠. 손석재마저 죽었으니 앞길이 탄탄할 겁니다.”

이스마엘의 눈동자가 떨렸다.

“부탁이라니, 의외군요.”

난 복잡한 이익관계를 꺼내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딱히 말하지 않아도 이스마엘의 머릿속에서 이미 손익계산이 되고 있을 것이다.

“제가 원하는 건 하나입니다. 당신의 권한 내에서 저와 관련된 자들을 지켜주시면 됩니다.”

이스마엘은 어깨까지 떨릴 정도로 웃으며 하늘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제 목숨을 구해주신 대가로 거래해도 될 텐데요? 전 이런 쪽으론 꽤 공정합니다.”

“거래로 치부한다면…… 차관님은 자신의 목숨값만큼만 할 테니까요. 부탁이라면 그 이상도 하시겠죠.”

“저를 고평가하시는군요, 루카 씨.”

“고평가가 아니라 차관님도 저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 말하며 일어섰다.

우린 감정의 동물이다. 마지막에 이르러선 계산보다 감정으로 움직이게 된다.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 날 구한 건 언제나 거래의 대가가 아니라 호의의 대가였다.

앙귀스 레지나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라그나타에게 베푼 작은 호의는 큰 대가로 돌아왔다.

물론, 호의가 비정한 칼날로 돌아올 때도 있는 법이다. 나도 그걸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배신이 두려워 사람을 믿지 못하면 안 된다.’

기억해라.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