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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귀스 레지나의 콘서트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손석재가 죽은 줄 몰라요.”
앙귀스 레지나가 우리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는 단말기를 통해서 손수공업 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콘서트는 예정대로 진행할 건가?”
내 말에 앙귀스 레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을 거예요. 무대는 준비됐고, 라피스도 있으니까요.”
앙귀스 레지나가 그리 말하면서 라피스에게 동의를 구하듯 힐끗 보았다. 라피스는 머뭇거리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우습군. 내 개입이 의미가 없었다니……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건가?”
나는 의자에 앉으며 물을 마셨다. 뜨거웠던 머리가 식어가고 있었다.
“위로하자면, 꼭 의미가 없진 않아요. 라그나타가 암살에 실패했다면…… 그땐 저도 당신에게 의존해야 했겠죠.”
앙귀스 레지나의 말은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라그나타는 암살에 성공했다. 내 개입은 엔의 죽음을 가져왔고, 더 나아가서는…… 불필요한 살인을 저질렀다.
‘간만에 느끼는 자괴감이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난 보더시티 바깥의 존재다. 외부인이며 영향력이 없다.
그렇기에 난 보더시티의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난 기업의 수장도 아니고, 앙귀스 레지나처럼 보더시티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연방 정부의 관료처럼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에퀘시안 용병의 행방에 대해선 알 방법이 없나?”
“라그나타에게 손석재의 단말기 해킹을 맡겼지만, 당장은 정보를 알아내긴 힘들겠죠.”
앙귀스 레지나도 손석재의 목표가 이스마엘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자세한 계획과 상황은 몰랐다.
‘에퀘시안 용병들이 이스마엘 라 차관을 공격한다.’
오늘인 건 확실하다.
손석재는 밀접한 관계의 연방 관료들에게 로비하고 콘서트로 이목을 끌었다. 습격을 위한 안배였다.
그러나 이스마엘 습격이 어디서 벌어지는 알 수 없었다. 손석재가 용병들에게 맡긴 기밀 임무였다. 어쩌면 이미 상황이 끝났을 수도 있다.
‘손석재는 습격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려 했을 거야. 이스마엘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내밀며 유인했겠지.’
이대론 이스마엘 차관이 습격받는 걸 가만히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구할 정도의 사이도 아니지.’
이스마엘과 나는 전략적인 협력 관계였다. 내가 위기에 빠져도 이스마엘은 이득과 손해를 저울질할 터다.
‘이스마엘과 쟈파는 다르다…….’
쟈파와 나 사이에는 감정적 교류가 있었고, 친밀감이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만일 내가 위험에 빠진다면, 쟈파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손해 내에서는 날 도와줄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쟈파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말이다.
“콘서트에서 저는 손석재의 양녀가 되었다고 밝힐 거예요.”
“쟈파 상사가 널 학대했다고 말하면서?”
내가 피식 웃으며 앙귀스 레지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전신거울 앞에서 무대의상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히 빼야죠. 쟈파 상사와 손수공업 사이의 휴전을 선언할 겁니다. 제가 일종의 볼모이자 휴전의 상징인 거죠. 적당한 대본도 준비했어요.”
앙귀스 레지나가 대본을 휙 내밀었다.
난 눈만 굴려서 대본을 훑었다. 종족 간의 통합과 화합에 대한 내용이었다. 뻔한 말들이었지만, 앙귀스 레지나의 입에서 나온다면 설득력과 파급력이 생길 것이다.
“연방 정부에서도 만족하겠군. 그쪽 입맛에 맞는 내용이야.”
“보더시티의 분쟁과 갈등을 당장은 봉합할 수 있으니까요. 미봉책이지만요.”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사태의 흐름을 예상했다.
‘손석재의 죽음은 유야무야 묻힐 거야. 원한을 사방팔방 뿌린 사람이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
연방 정부에게 중요한 건 손석재라는 인물이 아니라 그의 유산이었다. 전투용 MAU 설계와 개발을 담당한 손수공업의 지배권을 누가 가져가냐였다.
‘이스마엘 라 차관의 생존여부가 앞으로 중요하다.’
이스마엘이 죽는다면 혼란은 더 커질 것이다. 설사 이스마엘의 죽음에 손석재의 관여가 드러나더라도…… 심판을 받고 책임질 손석재는 죽고 없었다.
‘이스마엘은 죽는 것보단 생존하는 게 여러모로 낫겠지. 날 대신해 보얀을 맡기도 했고.’
나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며 깊게 생각했다.
이스마엘은 전략무기연구부의 핵심인사였다. 그의 공백은 MAU 개발을 둘러싼 이권 다툼의 가속을 불러올 것이다.
우웅.
나는 망막 디스플레이를 활성화했다. 시야 구석에 떠오른 가상 시계가 보였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지.”
내가 건물 뒤편으로 나가서 비상계단에 몸을 기댔다. 바닷바람이 불고 있다.
콘서트를 앞두고 있어서 항구는 붐볐다.
‘진가우가 날 좋아한다고 말한 게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야.’
내 망막 디스플레이는 진가우 소장이 시술한 것이고, 추가적인 데이터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목갑의 데이터 전송 주기였다.
“이반, 이스마엘 라 차관의 위치를 전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 빚을 지운다고 생각하시죠.”
내가 데이터 전송 직전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할 수 있냐는 건 묻지도 않았다.
제국의 군사위성을 할당하면 이스마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고작 사람 하나를 찾는다고 고성능 군사위성을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어쨌든, 이스마엘 라는 연방의 주요 관료 중 한 명이야.’
제국은 이스마엘의 개인 정보를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제국의 황제가 작정한다면, 단말기를 추적하든 뭐든 해서 이스마엘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이스마엘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야.’
이스마엘은 합리적이며 말이 통하는 상대다. 무엇보다 정치적 입장으로 보면 종족차별주의자와 대척점에 있었다. 그가 없으면 더 큰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보더시티의 종말도 빨라질 터다.
쟈파, 앙귀스 레지나, 라피스 라줄리, 보얀……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스마엘의 건재가 정답이다.
‘늦지 않기를…….’
나는 어둠이 드리우는 하늘을 보며 기다렸다. 깊은 한숨과 함께 입김이 너울거리며 올라왔다.
치직, 칙.
암호화된 메시지가 내 단말기를 해킹하듯 떠올랐다. 메시지는 당장이라도 증발할 듯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노바스 행성을 떠도는 쓰레기 전파신호가 우연히 엮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일정한 배열로 보면 의미가 있었다.
이글거리는 메시지와 화면에선 숫자가 보였다. 난 숫자를 외우고선 단말기 지도에 좌표를 입력했다.
“……이 빚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난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앙귀스 레지나와 라피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난 이스마엘을 찾으러 가겠다. 라피스, 넌 앙귀스 레지나를 도와서 콘서트를 준비해.”
“이스마엘이 어딨는지 어떻게 아셨죠?”
앙귀스 레지나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설명하기 귀찮은 부분이다.
하지만 내겐 편한 핑계가 있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직감이지.”
내가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난 곧장 귓가 통신기에 대고 라르스를 호출했다.
-쿠앙! 쾅! 쿠릉!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라르스는 아직 도주 중인 듯했다.
“어이, 라르스. 경찰과 도둑놀이는 그만하고, 공중차량 한 대만 구해서 날 데리러 와.”
-으악!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뭔 안드로이드가 이렇게 질겨! 아, 죄송합니다, 루카 님. 뭐라고 말씀하셨죠?
욕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공중차량 한 대를 구해 오라고 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지금 당장요?
“그래,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고 싶지 않아? 혹시 못 할 것 같으면 못 한다고 해. 이해할 테니까.”
잠시 침묵이 일었다.
-하, 하하! 문제없습니다! 아무렴요! 공중차량을 바로 준비합죠!
나와 라르스는 바로 접선 계획을 세웠다.
통신을 끝낸 나는 앙귀스 레지나와 라피스를 보며 작별의 의미로 손을 들었다.
“그럼 난 가보도록 하지.”
라피스가 황급히 내 옷자락을 잡았다.
“나중에 정비를 받으러 와요. 당신의 의체는 제 작품이니까요.”
난 흐리게 웃었다. 대답하긴 싫었다. 확답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라피스도 내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옷깃을 놓으며 물러났다.
우뚝.
나는 밖으로 나서기 직전에 뒤돌아봤다.
앙귀스 레지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뱀의 여왕, 앙귀스 레지나. 본명은 엘리제 콴.’
내 삶이 조금만 더 단순했다면, 나란 놈이 세상과 타협할 정도로 유연했다면, 내 머릿속에 엉킨 실타래가 없었다면…….
수많은 가정이 내 뇌리를 지나가고 있다.
앙귀스 레지나를 품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녀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 적도 종종 있었다. 그녀와 미래를 함께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다.
쾌락, 즐거움, 행복…….
달콤한 선택을 바로 곁에 두고도, 난 보지 못한 척한다.
그 대신, 나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시커먼 어둠에서 뻗어나온 창백한 손을 잡는다. 그 손가락은 어쩐지 지젤의 손과 닮아있었다.
우웅.
또 다른 내가 그림자처럼 등 뒤에 솟아올랐다. 강박적인 집착을 가진 사냥개 루카가 내 등을 떠밀고 있다.
난 키누안을 추적하고, 지젤을 찾아 어둠을 헤맨다.
그래, 이것 또한 정신병이겠지. 스스로 불행을 찾아서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천천히 입을 뗐다.
“……무대 화장이 번졌어. 엘리제 콴.”
“당신 때문이에요.”
“미안하게 됐네, 여러모로.”
나는 등을 내보이며 작별인사를 했다.
쿵.
내가 나갔고, 문도 닫혔다. 난 잠시 문에 등을 기댔다.
드득, 득.
내 의수의 손가락이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문손잡이가 내 손가락 모양을 따라 구겨졌다.
……미련 때문에 신경계라도 망가진 모양이다. 음, 정말 추잡한 변명이군. 나도 안다.
드륵.
난 문에서 등을 떼고 움직였다. 곧 라르스가 올 것이다.
* * *
나는 항구의 통신탑에 맨몸으로 기어가서 매달려 있었다.
우우웅.
통신탑을 잡고 있는 팔이 따끔따끔했다. 내 의체의 전자기 차폐 기능이 부실했다면 오류가 일어날 정도로 전류가 강렬하게 일고 있었다.
라르스가 보낸 단거리 통신이 내 귀에 꽂혔다.
-곧 도착합니다! 으아악! 이 망할 드론들이! 하하핫! 연방의 드론도 이젠 제법이군요!
난 라르스가 괜찮은 게 맞을지 의심하면서 기다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허공을 응시했다. 금방 빛이 번쩍번쩍거렸다.
‘오고 있군.’
밤하늘을 뚫고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라르스는 하필이면 경찰의 공중차량을 탈취했다. 하기야 근처에서 구할 만한 공중차량이 없긴 했을 터다.
“속도 줄이지 말고 달려. 알아서 탈 테니까.”
-어차피 줄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 그래. 내 사정을 봐주지 말라고.”
나는 사납게 웃었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전투 사고가 찌릿하게 일어났다. 날 고통스럽게 하는 잡념도 사라지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키이이이잉!
라르스의 공중차량이 맹렬하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2인승 공중차량은 기동형이라서 굉장히 날렵한 생김새였다.
스륵.
나는 두건을 눌러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난 공중차량이 통신탑을 스치는 직전에 사고를 가속했다.
우우우우…….
공중차량의 굉음이 느긋하게 내 귀를 울렸다.
나는 그대로 뛰어서 공중차량의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탱탱하게 당겼던 시간을 놓았다.
세상의 흐름이 빨라진다. 나는 미끄러지듯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공중차량의 윗판에 박아넣었다.
끼이이익!
내 왼쪽 손가락은 금속판을 파고들었다. 얼추 두 마디 정도 들어가다가 멈췄다.
공중차량에 몸을 고정한 나는 오른손으로 충격권총 루이나를 꺼내 겨누었다.
우우우우웅!
루이나의 에너지 투과창이 예열과 함께 빛났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우릴 추적하는 경찰 드론들이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렸다.
-일단 타세요! 곡예 운전을 할 겁니다!
라르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중차량의 옆문이 들어오라는 듯이 위로 열리고 있었다.
쾅!
난 치솟던 문을 팔뚝으로 내려쳐서 다시 닫았다.
“바람 좀 쐬고 싶으니까 그냥 가!”
내가 방아쇠를 당기며 외쳤고, 라르스의 투덜거림은 충격탄의 굉음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