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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91

291
난 선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도덕관념의 궤가 일반인과 다른 족속들은 나를 착하다고 떠받든다. 그래 봐야 내가 악인이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왜냐면, 난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의 뼈를 서슴없이 분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으득!

나는 손수공업 직원의 검지를 잡아서 꺾고 비틀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 으으븝, 커억, 컵.”

손수공업의 직원은 내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벽까지 얼굴이 밀린 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콰직!

난 직원의 얼굴을 벽에 더 세게 들이박았다. 놈의 뺨이 찢어지면서 시뻘건 속살이 드러났다.

드드득!

난 놈의 머리를 벽을 따라 밀어냈고, 붓질이라도 한 듯이 핏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눈깔을 내 쪽으로 돌리면 뽑아버릴 테니까. 알아서 간수해.”

내 낮은 목소리에 직원이 벌벌 떨었다.

“돈, 돈이라면 주, 주머니에 크, 크레딧…… 칵!”

나는 직원의 오금을 가볍게 걷어찼다. 놈이 한쪽 무릎을 꺾으면서 주저앉았다.

끼릭.

나는 놈의 후두부에 보급권총을 겨누었다. 차가운 감촉이 제법 서늘할 것이다.

“손수공업이 왜 앙귀스 레지나의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지?”

“너, 너…… 누구야?”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지 마라. 좋아, 하나뿐인 목숨을 버릴 정도로 손석재 사장에게 충성하고 있나? 그러면 고개를 끄덕여. 바로 방아쇠를 당겨서 저승으로 보내줄 테니까. 어차피 너 말고도 직원들이 많더군. 그중 하나는 대답해주겠지. 셋을 세겠다. 하나…….”

협박은 틈을 줘선 안 된다. 난 놈을 깊게 사고를 할 수 없게 몰아쳤다.

“……둘.”

직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 나는 잘 몰라. 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고.”

“그럼 손석재 사장을 이쪽으로 불러. 근처에 있지?”

“사장님은 여기에 없어. 관료들과 회, 회의 중이라고. 진짜야! 진짜니까, 제발, 쏘지 마.”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직원을 관찰했다.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놈은 두려움이라는 감정 신호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나가. 관리자에게 날 안내해라.”

바깥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화장실로 들어오려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도망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내가 강도질하고 있다고 생각할 터다.

‘근처엔 경찰과 사설 경비대도 많으니 슬슬 자리를 옮겨야 해.’

직원은 부러진 손가락을 주머니에 넣고선 창백한 안색으로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널 겨누고 있다는 걸 명심해.”

“나, 나도 죽고 싶진 않아.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살, 살려줘.”

난 입구에서 직원과 네 발자국 정도 멀어졌다. 직원은 눈치를 살피면서 날 안내했다.

나와 직원은 부두에 있는 한 창고에 도착했다. 여긴 인적이 드물었다.

“열어.”

직원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창고의 문을 열었다.

창고의 내부는 임시로 구성한 간이 통제실이었다. 콘서트를 위한 각종 모니터링 장비와 음향 조절기 따위가 보였다.

그리고 통제실 중앙에는…… 내가 잘 아는 인물이 있었다.

‘라피스?’

라피스 라줄리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내뱉었다.

“여긴 나 혼자서 처리하겠다고 했잖아. 나가서 설비나 제대로…….”

나는 잽싸게 직원의 머리를 권총자루로 때렸다. 기절한 직원이 털썩 쓰러졌다.

라피스도 그제야 말을 멈추고 이쪽을 응시했다. 그녀는 두건을 눌러쓴 날 보더니 화들짝 놀라서 호신용 권총을 겨누었다.

라피스의 외형은 푸른 피부의 소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나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온 인생의 선배다. 생사의 경계도 많이 넘었을 터다.

티- 잉!

라피스는 연륜있는 누님답게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바늘과도 같은 얄팍한 총탄이 날 향해 날아왔다.

난 이미 고개를 돌려서 총탄을 피해냈다. 총알은 흐느적이는 두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야, 라피스.”

나는 라피스가 재차 사격하기 전에 두건을 벗었다.

난 일부러 눈을 옅게 뜨며 시선을 내렸다. 라피스를 관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본다면 나도 모르게 라피스의 감정과 내면을 분석하려 들 것이다.

‘라피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녀는 쟈파 상사를 배신하면서 손수공업과 손을 잡지 않았을 터다.

‘라피스가 여기에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라피스를 보지 않아도 그녀의 떨림이 느껴졌다.

“루카? 무사했어요? 무사했구나!”

라피스는 날 보며 크게 기뻐했다. 내 가슴 한구석에서 안도의 온기가 맴돌았다.

내가 라피스를 걱정한 만큼. 라피스도 날 걱정하고 있었다.

내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난 그제야 고개를 들어서 라피스를 보았다. 흰자위가 없는 검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간 사정이 많았어. 일일이 설명하긴 힘드니까 넘어가줘.”

“이쪽도 사정이 많은 건 마찬가지예요. 루카, 혹시 해서 묻는 건데…… 우릴 도와주러 온 거 맞죠? 뭐, 다른 용건으로 온 거라면 못 본 척해줄게요.”

난 목갑이 있는 목덜미 대신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지. 쟈파를 찾으러 온 게 맞아. 쟈파의 위기에 내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힘드니까.”

라피스가 맑게 웃었다.

나도 흐린 미소를 흘렸다.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착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내가 쟈파를 도울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하루 정도야.”

난 바로 용건을 내뱉었다.

“……촉박하네요.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면, 손석재는 이미 쟈파 님을 확보했어요.”

난 눈을 찡그렸다. 라피스의 말 한마디에 좁았던 내 시야가 단번에 넓어졌다.

“쟈파에게 내건 현상금은 가짜로군. 쟈파가 보더시티에 여기저기 숨어다니고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해야 혼란이 더 커질 테니까.”

이번 보더시티의 기업 전쟁 승패는 이미 갈렸다. 손석재와 차별주의자의 승리였다.

그런데도 손석재는 아직 승리 선언을 하지 않고 분쟁을 질질 끌고 있었다.

‘어째서?’

답은 내 안에서 금방 나왔다.

‘다른 목적이 더 있기 때문이지. 쟈파 확보와 기업 전쟁은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라피스는 통제실 중앙으로 가더니 콘서트 시설이 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앙귀스 레지나는…… 이번 콘서트에서 쟈파가 자신을 가혹하게 학대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리고 쟈파 상사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건 손수공업이라고 말하면서, 손석재의 양녀가 됐다고 발표하겠죠.”

내막을 안다면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었다.

“웃기는 짓이군.”

“하지만 효과적이겠죠. 쟈파 님은 비열하기로 소문난 타지룬 종족이에요. 조그마한 허물이 생겨도 사람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경멸하겠죠. 대중은 쟈파라는 개인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타지룬 종족에 대해선 잘 아니까요.”

“이딴 광대짓에 앙귀스 레지나가 잘도 동의했군.”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앙귀스 레지나가 제게 간절히 부탁했어요. 쟈파 님을 살리기 위해서 뭐든 다 할 것처럼 굴었거든요. 두 사람이 그렇게 각별한 사이인 줄은 몰랐어요.”

나는 짚이는 바가 있어서 짙은 한숨을 쉬었다.

‘앙귀스 레지나는 그간 치료를 받으면서 기억을 많이 되찾은 거야. 쟈파가 자신을 끔찍하게 아끼면서 헌신했다는 걸 알아냈겠지.’

내 표정에 라피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알고 계시는군요.”

“앙귀스 레지나는 쟈파의 수양딸이야. 쟈파가 철저하게 기록을 말살해서 아는 사람이 몇 없는 비밀이지.”

“네?”

“몹시 궁금하겠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어. 당장 앙귀스 레지나를 만나…….”

나는 말하다가 말고 고개를 휙 돌려서 문을 응시했다.

‘적.’

간담이 서늘하다.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강렬한 적의를 내뿜고 있었다. 적의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했지만, 풀어서 말하자면 ‘전투 준비’를 끝낸 자가 문 앞에 있었다.

“숨어있어, 라피스.”

내가 라피스를 가리듯 섰다.

드륵!

라피스는 눈치껏 움직이더니 철제 탁자 뒤에서 몸을 가리며 눈만 내밀었다.

끼이이익.

문이 섬찟하게 열렸다.

“엔?”

나보다 먼저 입을 연 건 뒤에 있던 라피스였다.

에퀘시안 용병, 엔이 문에 서 있었다. 그는 전투 헬멧을 쓴 채로 우리를 보았다.

엔의 통역기가 잡음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지.

기계음으로도 쓰디쓴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엔,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은 쟈파 상사의 용병이잖아요. 루카는 우릴 도와주러 왔어요. 적이 아니라고요.”

엔은 등에 수납된 창대를 꺼내더니 멋스럽게 펼쳐서 날을 뽑았다.

휘리리릭!

엔이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설마 배신한 건가요? 어째서?”

라피스의 슬픔이 들렸다. 엔을 대신해서 내가 대답했다.

“배신이 아니야. 계약 종료인 거지. 새로운 고용주는 손석재인가 보군.”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요! 엔이 쟈파, 아니, 우리와 함께한 세월이…….”

“라피스, 정에 호소하지 마. 엔은 훌륭한 용병이다. 용병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아. 돈에도 충성하지 않지. 계약에 충실할 뿐.”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에퀘시안 용병을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언제나 인상 깊은 존재였다.

이종족 혐오가 만연한 제국에서조차 에퀘시안 용병들은 제국의 귀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다시 말하지만, 제국의 귀족조차 에퀘시안 용병의 명성을 믿고 고용했다. 그만치 에퀘시안 용병들은 감정이 아니라 계약에 충실한 존재라는 뜻이다.

‘비극이로군.’

엔은 쟈파를 좋아할 터다. 그러나 감정보단 계약이 우선이었다.

-내가 네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군. 이해해줘서 고맙다, 인간 루카.

“뭐, 용병대 내부에도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해. 종족 전체가 용병업을 하고 있으니 윗선에서 이뤄지는 계약 체결은 네 손을 떠난 문제겠지.”

대충 상황이 예상된다. 나도 제국의 군부에 깊게 몸을 담갔던 사람이다.

-선조가 피로 쌓아올린 신뢰와 명예,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후손의 번영과 미래를 위해, 나는 계약을 지켜야 한다.

“들었지? 라피스? 이야기는 끝이다. 아마 엔도 쟈파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을 거다. 딱 봐도 알 만하니까, 마음의 부담을 가지지 말고 전력으로 싸워라. 피차 최선을 다하자고.”

-그럴 생각이야.

“그리고 친구도 불러라. 넌 나보다 아래니까.”

내가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웃었다. 반대편 손으로는 크루시스를 길게 끌어내며 뽑았다.

키이이이잉!

크루시스가 묵직한 자태를 드러냈다.

키리릭.

크루시스의 칼날이 바닥에 닿았다. 날의 무게 때문에 바닥이 옅게 파였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엔을 응시했다.

‘혼자서 온 건가? 엔은 바보가 아니야. 녀석이 말은 오만하게 해도, 내가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건 알고 있어.’

난 엔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른 에퀘시안을 부를 낌새가 없었다.

내 추론은 여기서 멎었다. 이젠 싸움에 뇌를 사용할 때다.

끼릭.

엔이 몸을 앞으로 넘어지듯 구부렸다.

난 눈도 깜빡하지 않고 놈을 바라봤다. 엔의 갑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선 줄무늬가 주황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쉬잇!

엔이 움직인다. 놈의 줄무늬 빛이 잔상과 함께 길게 끌렸다.

전투가 시작됐다.

난 안구를 굴리며 녀석의 동작을 쫓았다. 시간과 체력, 그리고 뇌를 여기서 낭비할 순 없다.

‘속전속결로…….’

엔의 창과 내 칼이 충돌한다. 당연히 중량도 그렇고 힘도 내 쪽이 더 세다.

카아아아앙! 끼이잇!

엔이 밀리는가 싶더니 창을 돌려서 내 힘을 풀어냈다.

엔은 잽싸게 뒤로 연거푸 빠지면서 창날을 묘하게 움직였다. 엔의 창날이 자석처럼 내 칼에 들러붙었다. 집요하기 짝이 없었다.

키릭.

엔은 내가 힘을 싣기 전에 창날로 칼날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놈의 대인 백병전 기술은 내 상상 이상으로 신묘했다.

난 직감했다.

‘이건 장기전이다.’

내 뜻대로 일이 편하게 굴러가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염병할 세상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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