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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90

290
앙귀스 레지나는 쟈파 상사 소속의 간판이다.

처음에는 나도 아이돌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개짓거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쟈파가 다른 타지룬과 다르다고 한들, 여전히 타지룬 종족에 대한 불신은 보더시티에 만연했다.

매력적인 앙귀스 레지나의 존재가 쟈파 상사의 이미지를 쇄신한 셈이다.

무엇보다 앙귀스 레지나에겐 종을 초월하는 매력이 있었다. 다종족 도시인 보더시티의 사람들은 앙귀스 레지나에게 열광했다.

앙귀스 레지나는 남녀노소와 종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저벅, 저벅.

나는 라르스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도시 곳곳에서 아직 작동하고 있는 전광판과 광고 홀로그램에선 앙귀스 레지나의 콘서트를 알리고 있었다.

-뱀, 뱀, 뱀, 뱀 같은 남자가 나는 좋아요. 길고 굵고 꿈틀거리는 뱀이 있지요.

앙귀스 레지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헐벗다시피 한 그녀의 몸시위도 보였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여자로군요.”

라르스가 중얼거렸다. 녀석은 하층 구역 출신인데도 제국의 엄숙주의에 물들어있었다. 하기야, 개방적인 성향은 선별검사에서 군인으로 뽑히지 않을 터다.

아이돌로서의 앙귀스 레지나는 천박할 정도로 노골적이며 육감적이었다. 본능과 야성의 영역에서 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나 그렇기에 종족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고 있지.’

앙귀스 레지나는 대다수 종족이 공유하는 일차원적인 성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의 춤, 노래, 표현이 저급하다고 느낄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지금의 나는 앙귀스 레지나를 천박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앙귀스 레지나는 원시의 숲에서 태어난 본능의 여신 같았다.

처음부터 지성을 가진 종족은 없을 터다. 아니, 전부까진 몰라도 적어도 인간은 아니었다. 이성보다 먼저 발달한 건 본능이다. 다른 종족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앙귀스 레지나는 우리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했다. 그녀는 춤과 노래로 남성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손동작과 몸시위를 내보였다. 때론 주술사 같기도 했다.

암컷과 수컷으로 존재하고, 남성기와 여성기의 접촉으로 번식하는 종족이라면…… 앙귀스 레지나를 보고 기묘한 감정을 느낄 터다.

앙귀스 레지나는 단순한 아이돌이 아니라 성적 본능을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였다. 예술에 조예가 없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앙귀스 레지나는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의 본능과 감정에 닿을 정도의 강렬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박하다고 욕하는…… 라르스도 앙귀스 레지나를 힐끔힐끔 보고 있지.’

라르스는 감정 통제에 미숙해 보였다.

라르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새삼스레 근위대 생도가 얼마나 거르고 거른 인재들인지 깨달았다.

-절 바라봐 주세요. 제 안의 깊은 곳까지 사랑해줘요.

노골적일 정도로 성적인 가사, 단순하면서도 굵직한 박자, 풍만하고도 육감적인 육체를 활용한 성적 표현.

앙귀스 레지나는 우리의 본능과 오감을 꾹꾹 누르며 자극했다. 마치 사람의 모습을 한 마약 같았다.

저벅, 저벅.

나와 라르스는 보더시티의 거리를 계속 걸었다.

“콘서트를 오늘 하는 게 맞아? 누가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게 아니고?”

“공식 계정에 올라왔으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씁, 가보면 알겠지.”

앙귀스 레지나의 영상을 보고 떠드는 이들이 많았다. 무장한 채로 순찰하는 이들조차 단말기로 앙귀스 레지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 앙귀스 레지나를 붙잡으려는 놈들이 많지 않아?”

“콘서트 중에 대놓고 납치하진 못하겠지. 그랬다간 폭동이 일어날걸.”

“어쨌든 위험한 건 사실이잖아.”

걱정하는 대화도 들렸다.

앙귀스 레지나는 쟈파 상사의 전속 아이돌로 알려져 있다. 쟈파 상사가 무너지는 상황을 보고, 다른 기업에선 앙귀스 레지나를 영입하려고 안달이었다.

앙귀스 레지나는 보더시티 내에선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다.

‘다들 앙귀스 레지나와 쟈파의 관계를 모를 테니까. 쟈파가 무너지면 앙귀스 레지나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영상 말미에는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의 주소가 나왔다.

‘바닷가의 항구.’

보더시티 동쪽에는 물류 항구가 있다. 앙귀스 레지나는 항구 전체를 공연장으로 잡고 있었다.

“보더시티는 불편하네요. 공중차량도 구하기 힘들고요.”

라르스는 지상의 택시를 타면서 툴툴거렸다. 녀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짜증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내가 보더시티에 처음 왔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로군…….’

난 택시를 타면서 내부를 보았다. 택시는 철판과 유리가 상당히 두꺼웠다. 어지간한 총탄으로 끄덕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투두두두두!

바깥에선 머나먼 총성이 들렸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다가 운전석을 보았다. 택시 기사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후미경으로 우릴 힐끗 보더니 말을 내뱉었다.

“지금 보더시티 꼴이 말이 아니죠? 이십 년 넘게 여기서 택시 기사로 일했는데…… 요즘만큼 험악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보더시티가 망한다는 말도 많고요.”

중년 여성의 얼굴과 손에는 흉터가 있었고, 허벅지에는 구경이 꽤 큰 권총도 있었다.

“보더시티가 망하면 벨라토시티로 가면 되지 않나?”

나는 머리를 의자에 붙인 채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 눈동자는 창밖을 향했다.

“하핫, 손님은 연방 출신이 아니시군요. 보더시티 말곤 저 같은 무지렁이가 돈을 이렇게 벌 수 있는 곳이 없다시피 합니다. 여긴 위험하지만 수입은 확실하죠. 3년만 더 일하고 은퇴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딸이 벨라토시티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졸업이…….”

나는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감상적인 가족 이야기는 관두자고. 혹시라도 이 택시가 습격을 받으면 댁을 구해주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내 마음이 제법 여리거든.”

내 말에 택시 기사가 호탕하게 웃어댔다.

“택시 기사를 오래 하다 보면 손님의 행색과 말투만 봐도 무슨 일을 하시는지 대충 가늠이 되지요. 흠, 두 분은 군인이시군요.”

“난 몰라도, 옆에는 티가 엄청 나지?”

내가 피식 웃으면서 라르스를 엄지로 가리켰다. 라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 아시는군요. 사실 손님만 계셨다면 군인이라고 확정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용병이나 뒷골목 해결사 같은 분위기가 더 컸거든요.”

그녀는 사람을 많이 본 직종답게 통찰력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내 자신이 전형적인 군인에서 멀어진 걸 느꼈다.

나는 흐릿한 미소를 흘리면서 팔짱을 꼈다.

우우웅.

택시는 어두운 터널로 진입했다. 나는 큰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내뱉었다.

“이봐, 아줌마. 딸이 있다면서? 관두는 게 좋아. 운전석의 차단막을 믿나 본데, 1초면 내 손이 댁의 뒤통수를 깨부수고 부드러운 속살을 으깨버릴 수 있거든.”

내가 그리 말했다. 앞쪽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멎었다.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한 건 라르스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하하.”

택시 기사가 그리 웃으며 차량의 속도를 높였다. 택시는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가 바닷가가 보이는 항구에 도착했다.

“앙귀스 레지나의 콘서트를 재밌게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택시 기사가 고개를 까딱이며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런데 정말 딸이 있긴 해?”

내가 내리면서 물었다. 택시 기사는 주름진 미소만 내보이더니 한쪽 눈을 찡끗했다.

우우우웅!

택시가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저 여자는 강도입니까?”

라르스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은 채로 물었다. 내 명령만 있으면 언제든 쏠 태세였다. 녀석의 사격 실력이면 드러난 내부 부품을 정확히 노려서 차량을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택시 기사 겸 강도겠지.”

“왜 죽이시지 않은 겁니까?”

“바보냐? 이런 일로 일일이 사람을 죽였다간 보더시티에 머무는 동안 시체로 된 언덕을 쌓아야 할걸. 이런 일로 흥분하는 걸 보니, 아크바란의 하층 구역도 요즘은 치안이 제법 괜찮은 듯하네.”

“프란세크 전, 아니, 변절자 프란세크가 유폐되기 전에 하층 구역 정비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프란세크는 내통 혐의로 유폐되었다. 라르스는 프란세크에게 함부로 존칭을 쓸 순 없을 터다.

“그냥 내 앞에선 전하라고 불러도 돼. 너도 하층 구역 출신이고. 날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프란세크도 내심 좋아하고 있겠지.”

난 프란세크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아, 아닙니다. 프란세크는 코라와 내통한 변절자이고…….”

“그걸 믿어?”

내가 키득키득 웃었다.

라르스는 전신의체인데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헛기침했다.

“……그보다 저 여자가 강도라는 걸 미리 알아채셨군요. 저는 직접적인 위협이 느껴져야 알았을 겁니다.”

라르스가 허술하게 주제를 돌리려 했다. 나는 녀석을 더 놀리고 싶었지만 애써 참으며 주제 전환을 받아들였다.

난 목덜미의 목갑을 매만졌다. 대화 내용이 이반에게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았다.

이반은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에 관심이 없을 터고, 내가 불온하고 불순한 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택시 내부가 지나치게 청결했어. 화학 약품으로 청소한 흔적도 있었지. 독한 세제와 약품 냄새도 미미하게 풍겼고, 택시 내부의 얼룩들은 자세히 보면 피가 튄 흔적이 중첩된 거야. 그리고 그 여자는 우리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고 말을 걸며 딸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냈지.”

“우리가 강도짓을 할 만한 부자로 보인 걸까요?”

“그건 아닐 거고. 우리의 머리통을 날리고 나서 의체를 팔려고 했겠지.”

“관찰력이…… 우수하시군요. 저도 훈련을 받았지만 거기까지 사고가 닿지 않았습니다.”

“기죽을 필요는 없어. 이쪽은 내 특기니까. 네가 따라오지 못하는 게 당연해.”

난 보더시티의 동쪽 항구를 예전에도 와본 적이 있었다. 그땐 상당히 조용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항구는 암시장처럼 북적북적거렸다. 온갖 종족이 뒤섞인 채로 앙귀스 레지나의 콘서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점상 근처에선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온갖 음식 냄새가 뒤섞인 연기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여긴…… 예전의 보더시티 같군.’

내가 기억하는 보더시티의 분위기였다.

‘벨라토 연방의 경찰도 있다. 콘서트의 치안 관리를 위해서 온 거야.’

보더시티의 열악한 치안 자원이 여기에 일부 투입되었다. 앙귀스 레지나의 행보에는 보더시티 관료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 기업 전쟁의 이면에는 수많은 거래와 계략이 있다. 난 그 계략을 알지 못해. 그저 추측으로 움직여야 하지.’

난 항구를 누비며 앙귀스 레지나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쟈파 상사와 관련된 인물은 보이지 않았고, 놀랍게도 콘서트 준비를 하는 인물 중에선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 몇몇 있었다.

대형 음향 장치와 공연용 드론을 설치하는 사람들은…… 손수공업의 직원들이었다. 난 그들과 며칠 지냈기에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스륵.

난 두건을 깊게 눌러쓰며 손수공업의 직원을 보았다.

‘염병할,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손수공업과 쟈파 상사는 적대적 관계였다.

심지어 손수공업은 쟈파에게 현상금까지 걸었다. 그 때문에 현상금 사냥꾼과 용병들이 쟈파를 찾아서 보더시티를 헤매고 있다.

‘손석재도 근처에 있는 건가?’

나는 시야를 넓게 잡았다. 손석재는 당장 보이지 않았다.

“라르스, 고문에 자신이 있나?”

“물, 물론입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라르스는 거짓말에 능하지 못했다.

“됐어. 앙귀스 레지나는 잘 알 거고, 이 사람은 손석재라는 사내다. 이 둘을 발견하면 바로 연락해.”

난 단말기로 손석재와 앙귀스 레지나의 얼굴을 보여주며 말했다.

라르스는 내 말을 듣고선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해서 묻는 겁니다만, 루카 님이 보기에 전 무능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녀석인 겁니까?”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내가 지나치게 유능한 거지.”

……음음, 나름 재치 있게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난 자기혐오에 빠지기 직전의 부하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

오늘도 발전했구나, 루카.

자, 이제 사람의 손톱을 뽑고 살가죽을 벗기러 가보자.

난 화장실이 급해 보이는 손수공업의 직원을 미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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