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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인, 노바스 행성에 사는 이라면 종종 들을 단어다.
초고대문명 아케인은 현존하는 모든 지성체 종족이 머리를 맞대도 도달하지 못하는 기술력을 가진 문명이었다.
우주의 절대적인 물리 법칙을 초월한 능력, ‘포스’도 아케인 문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런 아케인 문명의 유물과 유산은 말 그대로 돌도끼 사이에 떨어진 총과도 같은 존재였다. 각 국가와 종족들이 아케인 문명을 집요하게 연구하는 것도 앞으로의 패권과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반의 입에서 언급된 ‘정신전이기’도 아케인 문명의 유물이었다.
그 형태는 헬멧이었고, 외부의 푸른 회로는 대뇌피질의 주름을 닮아있었다.
헬멧은 둘이서 한 쌍을 이뤘고, 크기는 격자식 확장 구조를 통해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했다.
이반은 정신전이기를 홀로그램 화면으로 내보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정신전이기 연구, 이건 아버지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어. 너도 알다시피 왕정이란 몹시 불안정한 체제이기도 하거든.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운이 쉽게 흔들리곤 하지. 우수한 혈통과 제왕교육만으론 한계가 있어. 아버진 후손 중에서 언젠가 머저리가 등장해 제국을 말아먹을 거라 생각했지. 제국은 바보가 다스리기엔 너무나 복잡하며 황제에게 권력이 쏠린 구조니까.”
“그래서 선대께선 자식의 정신을 좀먹는 선택을 내린 겁니까?”
내가 빈정거렸다. 이반도 킥킥 웃기만 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네 탓이야. 아버진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 그때부터 그림자는 입력된 절차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며 움직이기 시작했어.”
난 눈을 깜빡이면서 폭풍기 이후의 사건을 추론했다.
‘그림자들이 이반을 데려가서 강제로 선대의 정신을 주입했을 터다.’
그 흐름이 이해가 된다.
내가 모르는 정신전이의 조건이 덕지덕지 있을 것이다. 프란세크는 안 되고, 이반만 되는 조건은 어렴풋이 예상이 가능했다. 시커먼 악의를 받아들이는 정신력의 차이일 터다.
“정신전이기는 불안정해. 인간에게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 어쩌면 유물 자체가 미완성이거나 오랜 세월로 기능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아버지에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죽은 뇌에서 정신을 뽑아내 내게 집어넣었지.”
이반이 한쪽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의 앞에는 홀로그램의 실이 둥둥 떠다녔다.
“평소에는 선대의 인격인 상태입니까?”
“주 인격은 여전히 나야. 주도권을 빼앗긴 수준까진 아니거든. 하지만 점점 침식되는 게 느껴져. 제국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아버지가 내 귓가에 뭐라 속삭이지. 더 속상한 게 뭔지 알아? 아버지의 판단이 대개 맞다는 거야. 아버지의 결정을 거부하기가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어.”
이반은 악기를 연주하듯 손가락을 흐느적거리며 홀로그램 화면을 새로이 조합했다.
홀로그램 화면에선 장대한 전자기계 장치와 설비가 탑처럼 높게 솟구치고 있었다.
“탑?”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홀로그램을 보았다. 어떤 거대한 계획 같았다.
“이건 아버지의 계획이야. 이런 걸 보면 아버지도 제법 성군이긴 해. 정신전이기를 역설계하고 분석해서 아크레시아 제국 전역에 불로불사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지. 제국민 전부가 불로불사의 삶을 누리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짓이군요.”
내 부정에도 이반은 웃기만 했다.
“흔히 사람의 영혼이라 말하는…… 기억과 의식, 그리고 개개인의 인지 기능을 데이터화하는 거야. 그걸 주기적으로 백업해 보관한다면 죽은 사람조차 살릴 수 있어. 정작 아버진 이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에 죽고 말았지만.”
나는 입가에 손을 올렸다. 불쾌한 감정이 내 내면을 채우고 있었다. 본능적 거부감과 혐오감 때문이었다.
‘저렇게 살려낸 존재를…… 동일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현실에서 죽음을 체감한 개체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게임처럼 저장과 불러오기를 하는 셈이다.
기이이잉.
이반의 동공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선 다양한 빛깔의 이채가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선대 황제 유리 크라치아의 의지만 진해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봐, 루카. 헤일라스 같은 우수한 군인이 전장에서 죽어도 아크바란에서 재생하는 거야. 몇 번을 죽어도 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지. 우린 소모와 희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져. 불사의 군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짜릿하고 흥분되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 이건 문제가 있다. 하지만 난 철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다. 당장 논리적으로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효율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헤일라스 같은 지휘관이 전장에서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해보자. 적들에겐 악몽과도 같을 것이다. 수십, 수백 년의 전투 경험을 가진 자들이 전성기의 상태로 매번 전장에 다시 나타난다.
벨라토나 코라가 그런 불사의 정예군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저 백업 시스템이 완성되는 순간부터 펼쳐질 제국의 영광과 승리가 불 보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저런 유물론적 불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이반 크리치아인가, 아니면 선대 황제 유리 크라치아인 건가?’
나는 이반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는 환희의 감정이 가득한 얼굴로 장대한 계획을 보고 있었다. 홀로그램에선 ‘브레인 백업’이라는 명칭이 글자로 스쳐지나갔다.
“이 계획은 실패할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폐하’.”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설사 당장은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이 뜻을 이어받을 거야. 제국의 진정한 초인 황제라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걸 깨달을 테니까. 반드시 결실을 맺겠지.”
이반인지 유리인지 모를 사내가 말했다.
“그래서 키누안을 그렇게 쫓고 있으시군요. 정신전이기를 훔쳐간 도둑이니까요.”
이반의 안광이 깜빡였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서 선대 황제의 정신을 떨쳐내려는 듯했다.
‘이반의 상태는 위험하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선대의 의식이 강하게 드러났어.’
이반은 방금 선대 황제의 정신이 또렷해졌는지 모르는 듯했다. 이반이 세상을 보는 감각은 꿈꾸듯 몽롱할지도 모르겠다.
‘자식인 프란세크도 이반도…… 통치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군.’
제국에선 황족조차 부품에 불과하고, 황제 본인도 제국이란 거대한 기계의 일부였다.
이 제국에 진정한 주인이 있긴 한가 싶다. 제국이란 끔찍한 괴물은 황제조차 집어삼키며 움직이고 있었다.
국가란 그 자체가 의지를 가진 생물이나 다름없었다.
“키누안은…….”
이반은 베일에 싸여있던 폭풍기에서 키누안의 행적에 대해 말했다.
키누안은 수많은 인물을 이용해 아크바란에서 폭동을 끌어냈다. 그리고 선대 황제 유리 크라치아은 아케인의 전투 유산을 사용하려는 찰나에 키누안에게 암살당했다.
“……놈이 아버지를 죽인 까닭은 정신전이기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어. 아버지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비해 그림자들에게 정신전이기 사용에 대한 프로토콜을 입력해둔 상태였지. 애초에 자신이 갑작스럽게 죽을 경우에 자식에게 정신을 집어넣자는 계획 자체가 키누안의 발상일 수도 있어.”
선대 황제 유리 크라치아는 키누안를 무척이나 신뢰했지만, 아케인 유물에 관해선 기밀을 유지한 모양이었다.
여러모로 제국의 황제들은 비범하긴 했다.
‘아마도 아케인 유물에 관해서는 다른 심복에게 전적으로 맡겼을 터다.’
다른 심복이라면 예컨대 진가우 소장 같은 인물이 있다.
진가우 소장 정도의 인물이라면 제국의 풍파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키누안이라도 진 소장을 마음대로 조종하지 못하겠지.
‘키누안은 정신전이기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했을 거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서 무수히 많은 설계를 해뒀겠지.’
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키누안의 목적은 정신전이기를 통한 수명의 연장이다.’
정신전이기는 현재 기술로 우리 인간이 수명이 다된 뇌를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이기도 했다. 무쉬르 알 카슈라 같은 특이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키누안의 언행이 더는 두리뭉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놈은 혼돈의 신 따위가 아니야. 오히려 무쉬르 알 카슈라가 더 기괴한 괴물이었지.’
키누안이 무쉬르 알 카슈라를 피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키누안은 내심 카슈라를 두려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정신전이기 따위에 기대지 않아도 자아와 인격을 유지하는 ‘살아있는 괴이’였으니까.
……내 안의 키누안은 절대적 존재에서 한낱 인간으로 내려왔다. 내가 카슈라를 이해하고 극복하면서 키누안의 격도 낮아진 셈이다.
‘신과 인간, 기적과 필연, 순리와 역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철저하게 후자였다.
신 앞에서 인간은 약자이고, 기적이 없는 현실에선 필연에 기대야 하며, 죽음이란 순리에서 벗어나 불멸이란 역천에 손을 뻗는다.
역천이란 생사의 순환과 순리를 거부하는 것.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키누안은 내게 아키에스 빅티마를 가르치며 주어진 것에 순응하라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키누안은 자신을 둘러싼 순리를 깨뜨리려 했다.
‘하지만, 모순일 것도 없지.’
순응을 도구로 삼는다고, 순리가 목적이 되진 않는다.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지 말자.
아키에스 빅티마의 속성은 인간, 필연, 역천이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합리성에 의거한 인간의 기술이었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신에게 기도하지도 않고, 기적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꿋꿋하게 하늘을 꿰뚫고 우주에 닿으려 하는 인간의 방식이다.
“하, 하하…….”
내가 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내가 널 따라잡았다, 키누안.
이반은 내 웃음을 바라보더니 손등을 고이 내밀었다.
“우리의 목적은 같아. 키누안에게서 정신전이기를 회수한다면, 난 내게 들러붙은 아버지의 정신을 떼어낼 수 있겠지. 그리고 네 진정한 삶도 키누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될 것이고.”
나는 무릎을 꿇고선 이반의 손을 잡았다. 이반이 말을 이어갔다.
“들어라, 루카. 이건 황제의 칙명이다. 키누안을 찾아 놈이 가져간 유물을 회수해라. 그게 내가 네게 내리는 마지막 임무다.”
지금 이 상황은 키누안이 가장 꺼려하는 일이다.
‘내가 황제와 접촉해 신뢰를 형성하고 키누안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는 것.’
난 폭풍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은 것인가?
이반과 나는 서로를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를 공유했다. 난 정체불명의 목갑을 착용하는 것으로 신뢰를 대신했다.
난 이반의 반지에 입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키누안을 추적하려면 유능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대신해 제국에서 키누안을 쫓던 인물이죠.”
“그 이름은?”
이반은 뻔히 알면서 되물었다.
“일레이 카르티카.”
“제국의 불온한 여우로군…….”
이반은 환한 안광을 머금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주인으로서 종사에게 경고하건대, 일레이 카르티카를 이용하되 믿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