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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78

278
난 바바라의 도움을 받아 의수와 의족을 육체에 붙이고 있었다.

뚝, 뚝.

시뻘건 피가 이음새 사이로 뚝뚝 새어 나왔다. 길이가 맞지 않는 나사가 내 생살을 파고든 탓이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아도 된다.

뭐, 보다시피 지금 내겐 시간이 없다.

무쉬르 알 카슈라가 언제 일레이의 머리통을 잘라내고선 음습한 웃음을 흘릴지 모른다.

-피 색깔이 예쁘네, 루카. 루비를 녹여낸 것 같아.

바바라가 해킹한 안드로이드가 섬뜩한 기계음을 내뱉었다.

더 소름이 돋는 점은 이 미치광이 여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세게 조여. 넌 날 싫어하잖아. 고문하는 것처럼 힘껏 돌려. 어차피 헐거우면 금방 유격이 생겨. 4번과 6번 구멍의 나사도 더 조이고.”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무시했다. 고통은 참으면 그만이다. 더럽게 아파도, 이 정도로 죽진 않는다.

-이제 신경계 연결할게. 원래 네 의체지만, 무작정 욱여넣고 붙인 거라서…….

“설명 안 해줘도 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 잘났어, 정말.

난 아랫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바바라의 안드로이드가 내 의수와 접합부를 반대 방향으로 살짝 비틀었다.

끼릭, 킷!

마지막 유격이 사라지면서 의수과 어깨가 자석처럼 들러붙었다. 부품이 맞물리며 체결되는 소리가 차례대로 들렸다.

핏! 파직!

원래도 신경계 연결은 따끔하지만, 지금은 어깨가 찢어지고 불타는 것 같았다.

신경의 세세한 위치도 맞지 않았고, 사이버네틱 신호를 조율할 틈도 없었다. 엉망진창으로 신호가 폭주하면서 내 뇌를 툭툭 두드렸다.

순차적으로 오가야 하는 생체 신호와 사이버네틱 신호가 뒤섞여서 엉킨 것 같았다.

‘제발, 움직여라. 움직이기만 해.’

처음 붙은 건 오른쪽 의수다.

나는 눈을 감으며 오른손에 집중했다. 지금은 바깥 상황을 잊어야 한다. 카슈라든 일레이든, 알아서 하겠지, 염병.

끼, 끼끼.

새끼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엿 같은 점은…… 난 새끼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검지를 움직이려니 새끼손가락이 움직였고, 약지 대신에 중지가 반응했다. 주먹을 쥐려니까 펴지고, 손바닥을 펼치려니 경련하듯 떨림만 커졌다.

완력 조절도 되지 않아서 의수의 출력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오락가락했다.

‘아주 멋대로군.’

내 뇌에서 보낸 생체 신호와 사이버네틱 신호의 변환이 엇갈려 있었다. 원래라면 조율을 거쳐서 바로 잡아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힘들 것 같은데? 일레이가 당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야. 당장 우주선을…….

“입 닥치고. 다른 부위도 빨리 연결해. 그사이에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따위로 연결해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빌어먹을.’

오른팔 꼬락서니를 봤을 때, 왼팔도 전혀 다른 신호로 움직일 거다.

파직, 파직.

이마의 혈관이 두드러지는 게 느껴진다. 혈액이 뇌로 몰리면서 눈과 코에 출혈이 심해졌다.

난 이 감각을 잘 안다. 흐물거리는 뇌를 두개골 밖으로 꺼내서 벽에 던지는 기분이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뇌가 철퍼덕거린다. 그때마다 뇌가 찢어지면서 조직의 결합도 약해지는 것 같다.

……왼팔이 붙는다.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

내게 사이버네틱 의체는 내 육체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친숙하다. 내 뇌는 의체 사용을 전제로 발달했다.

성장기의 나는 멀쩡한 팔다리를 자르고, 신경계 발달에 맞춰서 비싸디비싼 의체의 출력을 조율하며 매번 교환했다. 나는 제국이 키워낸 최강의 의체 사용자 집단의 일원이다.

할 수 있다, 루카.

네가 하지 못한다면 누가 할 수 있으랴.

철컥.

내가 일어섰다. 첫걸음은 어설펐으나 두 번째 걸음은 좀 더 나았다.

짜릿하다. 가슴 깊숙이에서 전율의 번개가 역류하며 정수리에 구멍을 뚫고 치솟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젠장! 그래,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이 상황에서 난 움직이고 있으니까.

-히, 히. 역시 너도 보통내기는 아니네.

“날 믿어줘서 고맙다, 바바라.”

난 진심으로 그리 말했다. 거래야 어쨌든 바바라의 도움으로 기회를 얻었다.

-감사할 건 없어. 너와 일레이가 밀리면 바로 퇴각할 테니까. 네가 죽으면 지젤은 내게 맡겨. 잘 보살펴 줄게.

“그건 내가 사절이다. 덕분에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걸.”

나는 크루시스와 루이나를 챙겼다. 창고에 처박혀 있던 크루시스와 루이나는 날 그리워했다는 듯이 내 손에 착 들러붙었다.

기이잉.

충격탄은 세 발 남았다. 이거면 충분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일레이를 도와 기회를 만드는 거다.

전투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일레이다.

퉁, 퉁.

난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었다. 내 팔다리의 접합부에는 스멀스멀 새어 나온 피가 굳어가고 있었다.

‘벌써 머리가 어지럽군.’

머릿속이 빌빌 꼬이는 것 같다. 난 꼬인 신호를 실시간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퍼즐이나 마찬가지였다.

치익.

우주선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열렸다.

카앙! 키리리릭!

쇠붙이가 충돌하는 굉음이 연거푸 터지고 있었다.

은신처의 정박장은 거대한 짐승이 할퀴고 간 듯했다. 천장과 벽은 찢어질 것처럼 날붙이의 흔적이 역력했다.

근접 무기로도 정박장의 손상이 컸다.

카슈라와 일레이가 고화력 병기를 사용했다면 우린 벌써 우주의 미아가 됐을 터고, 벽에 구멍이라도 났다간 난 숨도 쉬지 못하겠지.

내가 알몸으로 내던져지면 우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날 쥐어짜서 죽여버릴 것이다.

‘우주.’

우주란 그 자체로도 잔혹했다. 차갑고 어둡다. 생명체는 행성을 떠난 순간부터 칼날 위를 걷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다수 생명은 산소와 중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나도 얼마 전까진 그랬다.

일레이는 나를 위해 이 잔혹한 우주에 몸을 던졌다. 돌아오지 못할 것을 각오했다.

일레이의 심경과 변화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일레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가 어떤 악행을 거듭했는지, 난 하나도 모른다. 아마 누군가는 일레이를 철천지원수로 여길 터다.

그리고 내 시선으로 봐도 일레이는 미움받을 짓을 많이 했다. 녀석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암살당한다 해도 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레이는 내 친구다. 여전히 녀석은 날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사실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녀석이 내게 거짓말을 하더라도, 때론 날 속이며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일지라도, 설사 배신이라고 여길 만한 짓을 내게 저질러도, 뜻이 어긋나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칼을 휘둘러도…… 우린 여전히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와 일레이, 우리는 서로에게 불순물이었다. 서로의 존재가 상대에게 비효율적인 판단과 비합리적인 행동을 끌어낸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린 자기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고, 기뻐한다.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왜 우릴 기쁘게 만드는 걸까.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우습다.

헤일라스의 조언이 떠오른다.

불순물을 가져라, 그게 인간성이란 상자를 여는 열쇠이니.

뇌를 기계에 맞게 개조하고, 피와 살을 버려가며 하나둘씩 신체를 기계로 교체하고, 냉혹한 강철의 사고방식을 정의라 배우고, 비인간성을 명예로 포장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불순물을 담은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퉁.

정박장의 중력이 약하다.

가볍게 뛰었는데도 나는 우주선 바깥으로 길게 날아갔다.

지금은 모든 걸 잊자. 복잡한 세상과 인과, 괴물들의 음모와 계략, 저 아래로 접어둬라.

오늘 내게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일레이와 함께 여길 살아서 빠져나가는 것.’

나는 루이나를 카슈라에게 겨누었다. 약해진 중력만큼이나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다.

카슈라와 일레이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카슈라의 전투 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명확했다.

즈벨리의 뇌가 있는 카슈라라면, 일레이가 강해봐야 순식간에 찢어발겼을 터다.

기이잉.

카슈라와 일레이의 안광이 찰나지만 나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사고의 여유를 두지 못할 터다. 저 정도 수준의 강자끼리 싸움에선 찰나로 생사가 갈린다.

카슈라와 일레이의 목덜미에선 서로를 아슬아슬하게 노린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었다. 저들은 최소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반격하길 반복했을 것이다.

둘 다 전갑의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동작과 반응이 정교하고 빨랐다.

드드드드.

내 손이 떨렸다. 방아쇠를 쉽사리 당길 수 없었다. 소동작 제어가 잘되지 않아서 초점이 자꾸만 흐트러졌다.

‘생각해라, 루카.’

사고가 가속한다. 일레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어떻게 해야 일레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일레이는 근접전이 특기가 아니다. 그러나 녀석의 전용무기 중 하나가 장검이었다. 그 이름은 카타스트로피다. 젠장, 카타스트로피가 무슨 뜻인지?

카타스트로피에는 어떤 기믹이 있을 터다. 일레이의 성격상, 그저 길기만 한 단순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거다.

키잉! 캉!

카슈라는 네 개의 근접 무기로 일레이를 몰아세웠다. 즈벨리의 뇌가 없다고 하나, 여전히 카슈라는 강했다. 근위대 레기온 두서넛 정도는 우습게 상대할 것 같았다.

‘예전에 내가 카슈라를 제압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놈이 발렉의 뇌를 전투용으로 쓰고 있었던 탓이겠지.’

당시의 카슈라는 날 시험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키이이잉!

카슈라가 세차게 팔을 휘둘렀다. 일레이는 방어와 회피에 급급했다. 네다섯 번의 공격을 막고선 한 번 정도 반격하는 게 고작이었다.

‘내 경험을 뒤져. 일레이가 준비한 비수가 뭔지 알아채야 해.’

내 기억의 책장은 라그나타에서 멈췄다.

라그나타와의 두 번째 싸움이 떠오른다. 노쇠로 약해진 라그나타는 칼에 끈을 달고 채찍처럼 응용했었다. 변칙적인 공격에 나도 제법 당황했었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했기에 익숙해지니 별거 아니긴 했다.

‘라그나타와 일레이는 엇비슷하다.’

라그나타의 분류법이 떠올랐다. 군인과 전사를 큰 틀에서 구분하는 방식이다. 만능형, 명예형 어쩌고였지.

라그나타와 일레이는 따지고 보면 만능형에 들어간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전략과 사고를 바꾼다.

사고는 길었으나 현실은 우주선에서 빠져나온 지 2초 남짓했다.

툭.

내 발이 바닥에 닿았다. 나는 다리와 허리를 구부리며 고정했다. 어깨를 단단히 조이고, 팔을 뻗어 조준했다.

신호가 엇나가 몸이 멋대로 움직일 것 같다. 난 필사적으로 통제했다.

제발, 내 말을 들어라, 몸뚱이야. 세 발만 버티면 된다.

드드, 끼릭.

난 양손으로 루이나를 감싸며 조준했다. 세 발이다.

기잉!

루이나의 총신 투과창에서 에너지가 빛난다.

엇나가면 정박장의 벽에 구멍이 날 것이다. 그럼 모든 게 끝장이다. 난 뒈지고, 일레이의 필사적인 의지도 수포가 되겠지.

기잉.

카슈라의 안광 중 하나가 나를 응시했다. 내가 사격을 하려고 하자마자 시야와 뇌 하나를 내게 할당한 것이다. 여전히 섬뜩한 전투 방식이다.

터- 엉!

이윽고,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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