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272

272
아크레시아 제국의 모성은 아크 행성이지만, 우리는 제국민이기 전에 인류이기도 했다.

인류의 고향은 지구다.

하지만, 나는 지구를 모른다. 그저 단어와 개념으로만 모성과 고향을 인지한다.

……아주 가끔은 궁금하기도 했다. 지구란 어떤 곳이었을까.

모든 인류의 고향, 지구.

아크라시아 제국은 아크 행성을 고향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 아크 행성의 조상들조차 결국 지구에서 온 자들이다.

이젠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 어째서 돌아가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배운 적도 없다.

‘어렴풋이 예상할 뿐.’

나는 아키에스 빅티마의 창시자, 노엘 뮬리즈카의 기억과 인생을 엿본 적이 있었다.

노엘 뮬리즈카의 기억에는 인류가 노바스 행성으로 온 까닭에 대해 간접적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정확하진 않아.’

노엘조차 간접적으로 ‘낯선 외함대’를 본 것이다. 주관과 주관을 거친 기억인지라 내가 본 풍경에는 왜곡과 오류가 많을 터다.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위험에 밀려서 인류 전체가 노바스 행성까지 온 건 확실해.’

내가 새삼스레 우주와 행성을 사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우웅.

메마른 진동이 우주선 내부에 퍼지고 있었다. 작은 창 너머로는 군데군데 별이 박힌 암흑이 보였다.

‘노바스 행성의 대기권 바깥.’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주 공간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우주를 누비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긴 하다. 노바스 행성 대부분 종족에게 성간비행은 기본적인 기술이었다. 애초에 노바스 행성의 토착 종족은 극히 드물었고, 인류를 포함한 대다수가 노바스 행성 입장에선 성간비행으로 이주해온 외계종이었다.

‘인류는 노바스 행성의 다른 종족을 배척할 자격이 없지.’

그저 인류가 노바스 행성의 패권을 잡았기에 영향력을 떨치며 노바스의 주인이고 토착종인 듯이 구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인류만큼 호전적인 종족이 또 어디 있으랴. 그 어디에서도 중심이자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종족이다.

잡념이 길구나, 루카. 처음 목격한 별의 세상이 참으로 경이로웠다고 말하면 될 것을.

……무쉬르 알 카슈라에게 붙잡힌 나는 놈의 개인 우주선에 갇혀있었다. 바깥은 망망한 암흑공간이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었고.

‘내 꼬락서니가 참 웃기군.’

내 의수와 의족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난 몸뚱이만 남은 채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지금 나는 무력한 존재였다. 어린아이 하나조차 상대하지 못한다. 이게 헐벗은 나였다.

‘그간 그토록 잘난 척하더니. 결국은 이런 꼴이 됐네.’

난 쓴웃음을 흘리며 앞을 보았다.

무쉬르 알 카슈라가 우주선 중앙에 앉아있었다.

카슈라의 전갑의체에 딱 맞는 의자는 온갖 복잡한 전자기계 장치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키이잉, 치익, 철컹, 철컥.

천장에서 내려온 기계 팔이 카슈라의 전갑의체를 손보며 수리하고 있었다.

위잉, 키이잇.

사람 머리만 한 수리 드론도 카슈라 주변을 맴돌며 부품과 외갑을 교체하며 용접했다.

기잉.

카슈라가 머리만 돌려서 날 보았다. 네 개였던 안광은 하나만 빛나고 있었다.

“좋지 않은 모습으로 만든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보급형 의체조차 달아주기가 두렵거든요. 저도 항상 완벽한 건 아니니까요.”

“항상이 아니라 언제나 완벽하지 않은 거겠지. 완벽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어.”

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준으로는 완벽할 순 있죠. 혹은 완벽에 가까워지든가요.”

카슈라는 신사적으로 말했다. 내 뇌를 통째로 들어내려는 괴물이라기엔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러니 더 끔찍한 것이다.

조곤조곤한 태도로 미친 짓거리를 태연하게 한다. 놈은 광기조차 갈무리할 정도로 오래된 미치광이였다.

퓻, 퓨퓻, 푸슈우우우.

카슈라의 후두부와 금속 상자를 연결하는 케이블과 관이 툭툭 끊어졌다.

주르르륵.

분리된 관에서는 끈적한 액체가 떨어졌다. 분홍빛이라서 뇌척수액처럼 보이기도 했다.

쩌억.

바닥에 떨어진 분홍빛 액체는 냉매인지 빙점에 도달해 결정을 이뤘다.

‘아무리 뇌를 여럿 가지고 있어도…… 너무나 전투력이 우수했지. 냉각까지 하고 있었군.’

카슈라는 금속 상자의 뇌를 냉각하면서 다루고 있었다.

‘전갑의체나 전투의체도 뇌 상자 주변에 냉매를 둘러서 사고와 연산 증폭을 돕긴 하지.’

그러나 카슈라는 그보다 더 본격적일 터다. 뇌 자체를 냉매액에 담근 거겠지. 폭풍기의 나처럼 말이다.

‘카슈라도 이번 전투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전부 동원한 거야.’

폭풍기 이후의 내가…… 어떻게 됐는지 난 잘 알고 있다.

꿀렁, 꿀렁.

카슈라의 금속 상자에서 변기 물이 내려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덜컹.

금속 상자의 하단이 열리더니 유리통에 갇힌 뇌가 배출됐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즈벨리.”

카슈라는 유리통의 뇌를 들더니 가만히 바라봤다. 안광은 애틋하게 가늘어졌다. 저 감정은 가식이 아닐 터다.

카슈라는 절대적인 강자다. 가식을 부릴 필요가 없다. 그의 모든 언행과 감정은 진실이다.

‘이번 전투에서 한계까지 혹사당해 망가졌군.’

유리통의 뇌는 냉매액에 녹은 듯이 결이 흐물흐물했다. 숙성하다가 썩어버린 고깃덩이 같았다. 떨어져 나간 뇌의 조각이 둥둥 떠다녔다.

“그게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 뇌의 말로로군.”

그리고 ‘즈벨리’의 자리가 내 좌석일 것이다.

“즈벨리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반세기나 저와 함께했죠.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도 했죠.”

“그건 네 착각이야. 즈벨리는 널 증오했을 거다. 합의로 하나가 된 건 아닐 테니까.”

“하나가 되기 이전의 감정과 사유는 중요치 않습니다, 루카. 우리의 좌뇌와 우뇌가 서로 미워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린 하나의 뇌로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죠. 더 세분화하자면 그보다도 많고요. 뭐, 말로 설명하는 건 무의미할 터. 당신도 알게 될 겁니다. 합일이 무엇인지 말이죠.”

“내 뇌가 멀쩡히 작동한다면 말이지.”

나는 거울을 보았다. 내 왼쪽 측두부에는 쇠 파편이 꽂혀 있었다. 꽤 깊게 박힌 듯했다.

“전 이쪽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다소 어려운 수술이 되겠지만…… 당신의 회복을 돕겠습니다. 합일을 위해서라도요.”

“날 멋대로 삼키다간 체할 수도 있어. 보다시피 성격이 완만하진 않거든.”

카슈라가 낮게 웃었다.

“저와 하나가 됐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모두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즈벨리는 상당한 고난이자 고행이었죠. 아, 그리고 즈벨리는…… 당신의 사조겠군요. 스승의 스승이란 말이죠.”

“……뭐?”

이번만큼은 바보 같은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측두부에 관통상을 입었으니 멍청해질 수도 있지, 염병.

“즈벨리는 키누안의 스승입니다. 키누안에게 아키에스 빅티마를 가르친 장본인이죠.”

“키누안은, 스승의 뇌를 네게 바친 건가?”

카슈라의 안광이 초승달 형태로 휘었다.

“정당한 거래였죠. 전 오랫동안 키누안을 봐왔으며 종종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키누안은 무척 흥미로운 인물이죠.”

어쩌면, 노바스 행성에서 키누안과 가장 가까우며 그 진의를 아는 사람은 카슈라일지도 모르겠다.

“협력? 이해되지 않는군. 넌 바바라의 부탁으로 키누안을 막아선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말하는 바바라는 지젤 쿠스토리아의 협력자…….”

“바바라가 누군지는 당신보다 제가 더 알고 있습니다. 당시, 즈벨리의 내구성이 한계에 달하고 있어서 저는 예비로 키누안을 수집하려 했죠. 겸사겸사 바바라, 제 딸의 부탁도 들어주고요.”

난 눈을 크게 떴다.

미치겠군. 방금 카슈라가 뭐라 지껄인 거지? 오늘은 내가 바보가 되는 날인 건가?

“딸?”

머저리 같은 반문이 오늘은 두 번째다. 참으로 드문 날이로군.

“정확히 말하면, 생물학적 아버지인 셈이죠. 그 아이는 제가 아버지인지 모릅니다. 저는 의체 보강을 위해 제 유전자 씨앗, 그러니까 냉동해둔 정액을 제국에 제공하고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국의 전갑의체 기술은 저보다 앞서는 부분이 많거든요. 집단지성의 힘이란 놀라운 법이니까요.”

갑자기 이해가 된다.

바바라와 카슈라는 닮은 부분이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기이한 광기. 그리고 물리적 신체에 구애받지 않는 ‘독특한 정신력’.

카슈라는 인류 중에서도 몹시도 특이한 성질의 개체였고, 그 성질의 일부를 바바라가 물려받았다.

‘제국은 무쉬르 알 카슈라 같은 존재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몇 번이고 시도한 거다. 그 부산물이 바바라겠지.’

무쉬르 알 카슈라 같은 다중 뇌 사용자를 양성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군대가 될 것이다.

“하, 하하. 그 여자가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었군.”

의수가 있었다면 이마를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 아이의 소식은 잘 잡히진 않지만, 부디 잘 활동하고 있길 바랄 뿐입니다. 혈육의 정은 없으나 그래도 생물학적 딸이니까요. 같은 조건이면 팔은 안으로 굽지 않겠습니까?”

카슈라가 웃음을 덧붙였다. 그의 기계 신체가 달그락거리며 떨렸다.

치이익.

카슈라는 즈벨리의 뇌가 담긴 유리병을 사출구에 집어넣었다.

“즈벨리, 영원한 암흑을 누비며 안식을 취하시길…….”

카슈라는 오랜 친우를 보내듯 중얼거렸다. 그는 저 멀리 날아가며 사라지는 유리병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카슈라는 즈벨리를 소모했다.’

난 즈벨리를 본 적이 없다. 키누안도 자신의 스승을 언급한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즈벨리는 키누안의 스승이었고, 그의 뇌를 소모한 전투의 양상을 볼 때…… 즈벨리는 대단히 우수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였을 것이다.

‘즈벨리 같은 뇌가 여럿 있을 리가 없다. 카슈라도 즈벨리의 뇌를 아끼고 아끼다가 이번에 전부 소모한 거야.’

지금 무쉬르 알 카슈라는 약해졌다. 저번 전투와 같은 위용은 내지 못할 터다. 그 정도 전력을 발휘하는 건 기껏해야 한 세기에 두세 번이 전부겠지.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보시죠, 루카. 어차피 합일을 위해서 정보 공유가 필수니까요.”

캐낼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놈의 입에서 전부 끌어내야 한다. 희미한 가능성이라도 붙잡을 단서.

“키누안의 목적은?”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고도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가 모략가 기질까지 갖춘다면 그 속을 읽는 건 무척이나 힘들어집니다. 비슷한 수준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라도 성향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니까요. 당신은 전투 성향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죠. 그러니 제게 더 유용한 사람이고요.”

난 이맛살을 찌푸렸다.

“짐작 가는 바는 있을 것 아닌가? 키누안의 스승인 즈벨리와 합일까지 했잖아.”

“이제 와서, 키누안의 목적이 당신에게 큰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좀 더 긴밀한 유대를 위한 바탕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즈벨리는 키누안이 타고난 혁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본질과 가장 잘 어울리죠.”

“즈벨리의 생각 말고, 통합체의 생각이 궁금한 거다.”

카슈라는 즈벨리의 뇌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앉았다.

“키누안은 반숙명적 인물입니다. 인과의 순리를 뒤집기 위해 산다는 듯이, 합리적 예측과 직관에서 엇나가길 좋아하며, 타인의 숙명과 운명을 비웃는, 그런 관념을 형상화한 존재죠.”

아리송하다. 난 눈을 깜빡이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결국, 모른다는 거로군.”

“그래서 아까 모른다고 말했잖습니까.”

카슈라가 투덜거렸다.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