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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69

269
노바스 행성에는 인류 출신의 한 용병이 있다. 비밀의 자락을 몸에 두르고 전장을 헤쳐나온 자다.

‘일인군단, 무쉬르 알 카슈라.’

무쉬르 알 카슈라는 불가사의의 장막 너머에 사는 인물이다. 놈의 발자취는 내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거창할 터고, 노바스 행성에 무수한 비밀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놈이 내 방해꾼이자 장애물이라는 것.

무쉬르 알 카슈라는 갑자기 튀어나온 돌부리지만, 치명적이고도 뾰족했다. 얼빠지게 굴다간 내 머리통이 깨지겠지.

끼릭, 끼리리릭.

무쉬르 알 카슈라는 일어섰고 온갖 구동계가 비명을 지르듯 소음을 냈다.

철커덩!

카슈라의 등이 열리면서 두 쌍의 보조 팔이 튀어나왔다.

‘강렬하군.’

나는 카슈라의 안광과 보조 팔을 응시하며 크루시스를 굳게 쥐었다.

‘무쉬르 알 카슈라, 뇌 수집가.’

놈은 수집한 뇌를 연결해 생체 컴퓨터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의 뇌는 유용한 생체 컴퓨터지.’

카슈라가 지금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복잡한 배경과 거래가 있을 터다.

어쨌든,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카슈라의 전갑의체는 내가 격파한 물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새것은 아니었다, 만들어 둔 지 꽤 됐는지 외갑에는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전갑의체를 여럿 두고 있는 거야.’

상황에 따라 전갑의체를 바꿔서 사용하는 것이다. 레기온도 용도별로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당신을 위해 제가 가진 최고의 두뇌를 꺼내서 연동했습니다. 발렉과는 급이 다른 뇌죠.”

카슈라가 소개하듯 말했다.

놈의 헬멧에 달린 두 쌍, 즉 네 개의 광학 렌즈가 각기 다른 방향을 훑고 있었다. 등에서 나온 보조 팔의 엇갈린 움직임까지 더해지니 상당히 기괴한 모습이었다.

“……친절한 설명이로군.”

나는 대꾸하며 눈을 깜빡였다.

“당신은 제 동반자가 될 테니까요. 앞으로 반세기, 잘 관리한다면 한 세기 정도요. 당신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닐 겁니다. 저와 함께 불사의 삶을 누리시죠.”

카슈라가 한쪽 손을 내게 내밀었다.

“네가 말하는 불사의 의미가 통상적인 개념과는 다를 것 같은데 말이지…….”

카슈라의 안광이 가늘고 옅게 휘었다.

“제 말을 받아주면서 시간을 벌고 계시는군요. 아키에스 빅티마를 활용하려면 역동적인 상황을 창출해야 할 터인데 말이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숨길 것도 없다. 놈도 내 지원군이 예상했을 터다. 되도록 내 선에서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이젠 글렀다.

“좋습니다.”

카슈라는 의체 여기저기에 수납된 무기를 꼬나쥐었다. 고화력 무기나 치명적인 살상 병기는 없었다. 놈은 창과 칼 같은 날붙이와 권총, 그리고 전자기 그물 따위를 꺼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날 생포하려 한다.’

카슈라는 내 팔다리를 베고 무력화하는 게 목적이다.

카앙!

카슈라가 창과 칼을 높게 들며 날 덮치려 했다.

……그리고 상황은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돌아갔다.

키이이이잇-!!

지평선 너머에서 시뻘건 불꽃과 연기를 내뿜으며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미사일 수십여 발이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도 의외였다. 역시 국가 소속들은 다르긴 하다.

“흐음, 상당한 도박을 하셨군요, 루카.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카슈라가 지평선 너머를 꿰뚫어 보듯 말했다.

“당장 눈앞에 불을 끄는 게 중요하거든.”

카슈라가 안광의 꼬리를 끌며 상공을 응시했다. 나는 놈의 뒤를 덮치지 않고 쓰러진 키누안을 응시했다.

‘카슈라를 넘어서 키누안을 잡을 수 있을까?’

키누안은 상반신만 남았지만, 순간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반신만으로도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할 것이다.

쉬이이이이!

상공의 미사일들은 목표를 감지했는지 꼬리의 추진체가 복잡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방향을 정한 미사일들은 마각을 드러내며 폭주했다.

미사일의 탄두가 고스란히 카슈라에게 몰려들었다.

카슈라도 미사일 공격은 예측하지 못했는지 고화력 무기를 급하게 꺼내 들고 있었다.

위이잉!

이 모든 혼돈을 틈타, 키누안의 몸에 푸른 입자가 쏠리고 있었다. 아직 순간이동 사용이 가능한 듯했다.

‘키누안이 도주하고 있어. 나도 물러날 때다.’

나도 카슈라와 거리를 벌리려 했다. 카슈라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연산으로 바빠 보였다.

‘……물러날 때가 맞는가?’

카슈라가 미사일 요격에 실패하면 나도 휩쓸린다. 전갑의체인 카슈라는 미사일 폭발에 휘말려도 죽지 않는다.

‘그러나 난 가벼운 폭발만으로도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 카슈라는 날 위해서라도 미사일을 전부 요격하겠지.’

판단은 길고, 시간은 짧다.

키누안이 순간이동으로 후퇴는 택했다. 나는…… 여기서 카슈라를 공격한다.

“어리석은 짓을 하지……!”

카슈라의 안광 중 하나가 날 보더니 커졌다.

난 곧장 카슈라에게 달려들었다. 묵직한 크루시스의 칼끝이 바닥을 낮게 긁으며 끌렸다.

‘카슈라를 죽이려면 지금이다.’

놈은 지금 날아오는 미사일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리고 원래라면 무시할 미사일조차 전부 격추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내가 피폭될 테니까.

약자인 내가 놈을 이기려면 이 정도 도박은 감수해야 한다.

키잉!

카슈라는 내 쪽으로 몸을 반쯤 돌렸다.

기이잉!

난 재장전한 루이나를 들어서 사격했다.

콰- 앙!

카슈라는 보조 팔의 완갑을 넓게 펼쳐서 방패를 만들어내 충격탄의 폭발을 막아냈다.

충격탄의 폭발하는 사이에 난 카슈라의 왼편으로 접근했다. 크루시스를 휘두르면 닿는 거리였다.

카슈라가 왼팔의 총기를 놓으며 칼을 뽑았다.

카- 앙!

크루시스와 카슈라의 칼이 부딪쳤다. 놈은 팔 하나로 날 막아내며 다른 반편으론 미사일 격추에 집중했다.

기이이잉!

카슈라의 네 개의 안광 중에 상단 왼쪽이 유별나게 빛나고 있었다. 뇌의 활성화를 의미하듯 말이다.

키잉!

다른 안광들도 공명하듯 연쇄적으로 밝아졌다.

……그리고 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난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루시스로 놈의 머리나 금속 상자, 케이블 다발 따위를 베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설사 여기서 카슈라가 일찍 쓰러지고 내가 미사일 폭발에 휘말리더라도 괜찮다는 각오로 사력을 다했다.

‘하나도 먹히지 않아. 모든 공격이 읽히고 있다.’

생도 시절에나 종종 느꼈던 무력감이 내 등을 엄습했다.

카슈라는 초월적인 속도로 칼을 휘두르며 내 변칙적인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단 하나의 눈과 팔만으로 말이다.

저번과는 카슈라의 기량이 아예 달라졌다. 어떻게 놈을 공략해야 하는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내 실수다.’

난 무얼 놓쳤는지 알았다.

‘키누안조차 순간이동 능력을 도주에 사용했다.’

키누안은 그 순간이동으로 카슈라나 나를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임 없이 도망갔다.

‘카슈라의 현재 기량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키누안이 도망가는 순간, 나도 도주를 택해야 했다.

여기서 내 발목을 잡아끈 건…… 내 호전성과 공격성이었다.

카슈라는 날 상대하면서도 에너지 투사체와 대공탄을 하늘로 쏴 보냈다.

콰-앙! 쾅! 쿠르르르르!

하늘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천둥이 내려치는 듯하다.

수십여 발의 미사일이 허공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대지에 내리꽂히는 폭발은 단 하나도 없었다.

키이이익!

카슈라는 내 크루시스를 묶듯이 칼날끼리 마찰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유도했다.

후우우웅!

후폭발의 영향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당신의 약점은 그 과감한 호전성이죠. 하지만 하나가 된다면 제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인간, 아니, 사람은 협동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야 하는 법이죠. 혼자서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니까요.”

카슈라는 웃듯이 말했다. 그의 세찬 안광은 다시 고요하게 일정한 빛만 내뿜었다.

‘방금 미사일은 연방의 것이다.’

이스마엘 차관과 전략무기연구부가 움직이고 있었다. 곧 직접적 지원도 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끼릭.

카슈라는 한발 물러나며 왼팔의 칼을 슬며시 내렸다. 그는 미사일이 날아온 방향을 응시했다.

“루카, 당신의 지원군이 오는 걸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함께하면 무얼 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죠. 짧은 휴식이지만 눈을 감고 머리를 식히는 게 좋을 겁니다.”

……오만인가, 아니면 강자의 여유인가.

“뇌 수집이 목적이라면 키누안도 확보하는 게 좋을 텐데?”

“휴식 대신에 질문을 택했군요, 루카. 제게 필요한 뇌는 키누안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방금의 전투로 확신했죠. 당신에게 부족한 경험과 과도한 공격성은 제가 보완할 수 있죠. 상성을 보면 당신이 낫습니다. 키누안은 후보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카슈라는 친절하게 답변했다.

“그게 키누안의 노림수다. 일부러 나에게 당할 만한 상황을 만들어낸 거야.”

“노림수라도 당신의 뇌가 키누안보다 낫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비교한 결과죠. 제가 키누안에게 이용당했더라도 당신을 취하는 게 이익인 건 변치 않는 진실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을 접어둔다면 선택지가 훨씬 많아지죠.”

피아의 무용은 나도 폭풍기에서 경험했다. 아군과 적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바뀔 뿐이다.

‘카슈라의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건 의미가 없어.’

나는 단말기를 꺼내서 확인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내가 입을 열었다.

“내 부탁을 들어주면 여기서 도망가지 않겠다. 내가 준비한 전력으로 너와 정면승부하도록 하지.”

“전 당신이 참 좋습니다, 루카. 당신의 판단은 제 예상과 다른 경우가 많았죠. 그만큼 우린 ‘다르기’에 서로 ‘보완’을 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곧 쟈파 상사의 수송기가 이쪽으로 올 거다. 격추하지 말고 그냥 보내. 그쪽은 우리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도망친 키누안을 추적할 거다. 거래가 끝났으니 네가 키누안을 지킬 이유는 없겠지?”

카슈라는 천천히 고개를 까닥였다.

나는 이륜차로 뛰쳐나올 때부터 단말기의 네트워크를 전면 개방했다. 날 주시하는 이들이 내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쟈파 상사, 이스마엘 차관…….’

난 단말기로 엔에게 신호를 보냈다. 쟈파 상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키누안이다. 에퀘시안 용병들은 쟈파 상사의 자산을 이용해 이 부근 수십 킬로미터를 샅샅이 조사하며 키누안을 추적할 것이다.

키이이이잉!

엔과 에퀘시안 용병들이 탑승한 수송 헬기가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릴 무시하며 지나갔다.

-돌아온 무쉬르 알 카슈라군요. 이건 계획에 없던 인물이지 않습니까.

내 귓가 통신기에 이스마엘 차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평선 너머로 전투용 MAU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대가 아닌 네 대였다. 전부 다른 회사에서 만든 시험기인지라 모습과 무장이 제각각이었다. 이족보행 로봇이라는 것만 공통점이었다.

“손수공업의 MAU는?”

-문제가 생겨서 출전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뻔한 핑계죠.

난 눈을 찌푸렸다. 전투력이 가장 우수한 시험기가 빠졌다.

-뭐, 오히려 좋은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카슈라의 잔해를 우리가 얻는다면, 손수공업을 배제하고 일을 진행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긴다면 말이지. 다른 지원은?”

-방금 미사일 공격으로도 이쪽의 분기 예산이 동났습니다만, 한 발도 지상에 닿지 못했군요. 우리에게 승산은 있습니까?

내가 없다고 말한다면 이스마엘은 과감하게 철수할 것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영리한 사람이니 알아채겠지.

난 쟈파 상사의 에퀘시안 용병들은 키누안 추적에 내보냈다. 그리고 이스마엘과 MAU의 지원을 받았다.

‘나는 파멸을 각오했지.’

쟈파 상사와 이스마엘의 지원을 받는다고 난 파멸하지 않는다.

내가 파멸할 정도의 지원은 딱 한 세력밖에 없다.

……나는 보더시티 밖으로 나왔고, 내 위치를 기꺼이 이반 크라치아에게 알렸다.

“곧 제국의 레기온이 온다.”

여유 있게 기다리던 카슈라조차 안광을 가늘게 뜨며 날 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참으로, 혼란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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