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위기도 고난도 없는 나날들. 그리하여 고통마저 사라진 행복으로 그득한 삶 말이다.
우린 따스한 빛만이 쉴 새 없이 내리쬐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난 살면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밑바닥의 거지부터 행성을 통치하는 위정자조차 그러했다.
우린 행복을 갈구하지만, 결코 행복을 거머쥘 수 없는 처참한 존재였다.
행복이란 참으로 얄팍하다.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금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휘발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행복은 우릴 피해 도망간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건 고통이고, 삶의 숙명은 고난이다.
지끈, 지끈.
난 머리를 감쌌다. 선택의 시간이 왔다. 나는 도박 주사위를 던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 도박이 실패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안전책은 존재하지 않아.’
나아가려면 가진 것을 내던질 각오가 필요하다. 모두를 지킬 순 없다.
‘희생이 생기더라도 멈추지 마라. 내 나약한 마음을 지금만큼은 지워 없애.’
나는 다짐을 되새기며 눈을 떴다.
우우웅.
랑테와 전 근위대원 세 명이 근처에 앉아있었다.
우린 화물차량의 짐칸에 탄 채로 보더시티 바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개발지가 보이는 걸 보니 곧 보더시티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거네.”
랑테가 단말기 화면을 보며 말했다. 차량 카메라와 연동된 화면에서 바깥 풍경이 보였다.
보더시티 외곽은 개발이 한창이었다. 멈추지 않는 욕망을 상징하듯 도시는 무절제하게 커지고 있었다.
랑테와 전 근위대원들의 상태는 평소보다 정갈했다. 그들은 정비를 끝내고 무장한 상태였다. 겉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의체의 부품을 말끔하게 갈았을 것이다.
랑테와 전 근위대원은 든든한 전사들이다. 생도 시절의 나라면 안도와 안정감을 느꼈을 터다.
그러나…… 지금은 저들이 내 곁에 있어도 여전히 불안했다. 저들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압력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우린 헤일라스 대장을 좋아했네. 그래,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 근위대장이면서도 황실에 마냥 충성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던 존재였거든. 누군가는 불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에겐 최고의 대장이었지.”
랑테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내 합류가 몹시도 기쁜 모양이었다.
“제게도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배울 점이 많았죠.”
“부디 많은 걸 배웠길 바라네. 사람을 휘어잡는 인망도 말이지.”
랑테는 제국의 칼 세력을 늘리기 위해 내가 보더시티를 떠나는 줄 알고 있었다.
‘제국의 칼’ 하부 조직들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합류’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들은 내 합류가 많은 중립 세력을 끌어들일 거라 믿었다.
‘기대.’
랑테와 전 근위대원들은 내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부응할 생각도 없이 그들을 일방적으로 이용할 생각이다.
‘근위대 성향상, 이용하기 좋은 존재들이지.’
이들은 맹수이지만, 무리를 지어야 하는 불쌍한 짐승이기도 했다. 충성하고 따를 만한 존재가 있어야 하는 늑대다.
덜컹, 덜컹.
차량이 흔들렸다.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는지 진동과 잡음이 커졌고, 우리와 같이 실린 화물도 같이 들썩였다.
보더시티를 벗어나고도 한참이나 이변이 없었다. 슬슬 배가 고파질 시간이 흘렀다.
으적.
나는 맛이 없는 영양 바를 씹어 먹었다.
소화기관이 생체인 나와 달리 전신의체인 랑테와 대원들은 포도당 액체를 마시는 것으로 식사를 끝냈다.
덜컹, 쿵!
그때, 큰 충격이 일었다. 차량의 바퀴가 이탈한 듯한 소리가 났고, 차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끼이이이!
차량은 뒤집힐 듯이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끼릭.
랑테와 대원들도 무기를 쥐며 벽에 등과 손을 기댔다. 당장이라도 화물칸을 부수며 나아갈 기세였다.
투웅! 퉁!
바깥에서 짧은 총격이 일었다.
치직, 치직.
랑테가 잡음이 이는 단말기를 집어넣었다. 외부 카메라가 마비됐다.
“손님이 온 모양이군. 뭐, 정보가 새나갈 걸 감안하고 움직인 거니까.”
랑테가 다른 대원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콰드드득!
대원들이 맨손으로 화물칸을 찢으며 뛰어내렸다.
휙!
나도 나아가려 했으나 랑테의 손이 날 막아섰다.
랑테는 내게 바로 나오지 말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임무는 내 호위였다.
“전투가 일어나면 먼저 빠져나가게. 자네도 근위대 출신이니 임무의 우선순위는 잘 알 터. 우리의 생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진심으로 그러길 바라네.”
랑테가 그리 말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후우우웅.
부서진 화물칸 너머로 초원이 보였다.
낮은 수풀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렸다.
-감지기로도 식별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공격이 있었네, 탄흔도 있고. 경계하게.
-모든 센서로도…….
대원 간의 단거리 통신이 들렸다.
-초상 현상이로군. 에너지 방어를 준비해. 불필요한 기계식 센서는 모두 끄고, 기초적인 감각만 동원해서 직감과 육감을 발휘해라.
랑테가 빠르게 판단하며 지시했다. 헤일라스의 측근을 괜히 해먹은 게 아니었다.
‘초상 현상.’
우리가 가진 과학지식으로 설명과 증명이 불가능한 기술과 능력을 통칭하는 말이다. 물리 규칙에서 벗어난 포스 능력이나 아케인 문명의 유산이 그러한 초상 현상이었다.
현존하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은폐라면 저들의 센서나 장비에 하나둘 정도는 걸릴 것이다.
랑테는 적들이 아케인 문명의 기술이나 포스 능력을 기반으로 한 은폐를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키누안이 왔다.’
나는 확신했다. 마지막으로 키누안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데드로닌.’
키누안은 자신의 수하들을 데드로닌이라 칭했다. 발렉도 그중 하나였다.
데드로닌들은 내 감각조차 흐릿하게 속이며 도시의 인파에 숨어있었다. 여긴 개활지니 저번처럼 완벽하게 숨진 못해도 장거리라면 감지가 힘들 터다.
하지만 감지가 힘들 뿐, 물리적으로 사라진 건 아닐 터.
나는 뭐라 조언하려고 목덜미의 통신기를 눌렀다. 그러나 내 판단까지는 랑테도 금세 도달했다.
-감을 믿고 이물감을 따라 사격해. 대량 화력 투사를 허용한다. 전자기 방사도 사용해.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었다. 전투 경험은 랑테가 나보다도 몇 배는 풍부할 터다.
랑테는 지극히 침착하게 이질적인 상황에 대응했다. 통신 너머로도 노련함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투- 웅! 탕! 치지직!
나는 청각만으로 바깥 상황을 들었다. 묵직한 총격이 규칙적으로 퍼졌고, 전자기 유탄이 허공에서 터지는 소리가 났다.
-루카, 지금이네. 대치 상태를 유지할 테니 움직이게.
랑테의 통신이 내 귓가에 퍼졌다.
휘릭.
나는 화물칸 안쪽의 천을 걷었다.
고출력 이륜차량이 육중한 바퀴를 내보이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도 매섭게 긁고 지나갈 차량이었다.
“……뭐, 가볼까.”
나는 가슴팍의 단말기를 딸깍 누르며 이륜차에 올라탔다. 탑승자가 고스란히 바깥에 노출된 형태였다.
구아아아앙!
탑승자를 인식한 이륜차가 무지막지한 굉음을 내며 울부짖었다. 엔진은 말도 안 되게 출력이 높았다.
‘진동만으로 사람이 튕겨 나갈 정도다. 일반 사용자용이 아니군. 전신의체나 외골격 전투복 전용이야.’
간신히 이륜차의 진동을 억누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키이잉!
나는 굳게 닫힌 화물칸 입구를 바라보며 가속기를 당겼다.
투카아아앙-!
배기구에서 불꽃이 터졌다. 눈을 깜빡이니 어느새 앞바퀴가 화물칸 입구를 박살 내며 나아가고 있었다.
난 고개를 숙이며 공기의 짓누름을 뒤통수로 흘렸다.
‘어지간히도 괴물 같은 놈을 준비했군.’
자칫하면 ‘이륙’해버릴 정도로 이륜차가 들썩거렸다. 조금만 방심해도 이륜차가 지상에서 튕겨 나가 뒤집힐 것 같았다. 비행체에나 쓰는 엔진을 이륜차에 달아둔 게 분명했다.
가아아아아앙!
고출력 이륜차가 바닥을 긁어대며 나아갔다. 낮게 자란 수풀들은 바퀴에 짓눌려 으깨졌다.
콰- 앙!
내가 이탈하는 틈을 타서 랑테와 대원들이 사방으로 화력을 투사했다. 유탄이 동시에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륜차의 출력 때문이라도 내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엔진의 굉음이 느릿하게 들려서 괴로울 지경이다.
‘데드로닌들이 당황하고 있다.’
난 기묘한 흐름을 느꼈다.
잠시나마 세상이 멎는 듯했다. 저 멀리 보이는 수풀이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슬그머니 움직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집중력을 더 유지했다간 뇌압 때문에 내 머리통이 먼저 터질 것이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의식을 돌렸다.
쿠드드드드!
난 이륜차를 기울여 바닥을 긁으며 방향을 돌렸다. 수풀이 뿌리까지 뽑히면서 흙먼지가 파도처럼 치솟았다.
‘잔챙이에겐 볼일이 없다.’
날 쫓아오는 건 키누안이면 충분하다. 데드로닌인지 뭔지는 랑테와 그 일행에게 맡길 생각이다. 내 선배님들은 진짜 군인이자 전사들이다. 여기서 나 때문에 죽는다고 불평하진 않겠지!
고오오오오!
호르몬이 폭주하며 감정이 고조된다. 최악의 발버둥을 치면서도 웃음이 실실 나올 것만 같다. 내가 얼마나 몹쓸 새끼인지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투우웅! 퉁!
난 이륜차의 방향을 꺾으며 가속기를 최대치로 돌렸다. 엔진이 터질 듯이 요동쳤고, 배기음은 폭탄이 터지듯 울렸다.
어쩌면 키누안과 데드로닌이 더는 쫓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돼야 진짜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겠지.’
불안감이 치솟는다. 만약, 키누안이 여기서 내 추적을 포기한다면? 고작 그 정도 역량이라면? 내가 놈을 과대평가한 것에 불과하다면?
……파멸하는 건 나다.
지금은 나의 적, 키누안을 믿어야 한다.
그래, 언제나 나는 키누안을 믿고 있었다. 내 생각과 계획은 가벼이 통찰해 꿰뚫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날 꿰뚫어라. 그래야 해.’
당신은 괴물이야, 키누안. 당신에 대한 평가가 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난 랑테와 데드로닌의 견제와 대치를 더는 감지하지 못했다. 내 이륜차는 빠르게 화물차량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륜차의 가속 때문에 고개를 바짝 숙이며 눈만 치켜뜨고 있었다.
투아아앙!
초원의 언덕을 넘자, 이륜차가 날아오를 것처럼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그 충격으로 내 몸이 들썩였다.
언덕을 넘으니 갈색 황무지가 보였다. 그리고 황무지의 바위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난 무작위로 나아갔는데 그가 어떻게 자리를 선점해서 서 있는지 알 도리는 없다. 그러니까 내 숙적이지! 빌어먹을!
“하, 하하!”
난 입을 크게 벌려 웃었다. 사내는 여전히 같은 얼굴을 가진 키누안이었다.
키누안은 날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일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그의 표정이 훤히 보였다. 덕분에 확장된 내 동공이 터질 것 같았다.
키누안이 자신의 목덜미에 주사기를 대더니 약물을 투여했다. 그리곤 그는 고요히 눈을 감더니 날 향해 권총을 뻗었다.
타- 앙!
단, 한 발이었다.
나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이륜차의 기울이며 탄착점을 뒤틀려했다.
뭘 노린 건지는 몰라도 빗나가게 하려 했다. 저위력 권총 한 방에 나가떨어질 이륜차가 아니다.
키릭, 끽! 카아아앙!
그러나 이상 현상이 일었다.
이륜차의 작은 부품 하나가 총알에 맞아 뒤틀린 듯했다. 그걸 기점으로 이륜차는 조향 불가 상태에 빠지더니 그대로 치솟으며 뒤집혔다.
부우우우웅!
이대로 있으면 난 이륜차와 같이 저세상 구경을 할 것이다. 나는 공중에 뜬 채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두아아아아앙!
거꾸로 떨어진 이륜차는 기괴한 굉음만 내며 바퀴를 홀로 굴려댔다.
“염병할.”
나는 뿌연 먼지에서 일어서며 충격권총 루이나의 예열을 시작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와 키누안만이 안다.
‘괴물 같은 새끼.’
그래, 마주하니까 잘 알겠다.
난 키누안을 결코 과대평가한 게 아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놈의 능력이 아키에스 빅티마의 범주에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내 예측을 예측한 예측.’
말장난이나 다름없는 짓을 놈은 해냈다.
키누안은 내가 이륜차를 어떻게 뒤틀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서 예측 사격을 한 것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나도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놈은 불가능한 계산을 현실로 해내고 있었다. 저게 초능력에 속하는 포스 능력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현실의 인지를 넘어선 예지 능력이나 마찬가지인데!
키이잉!
마침, 충격권총 루이나의 예열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