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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61

261
나는 주기적으로 보얀을 훈련실로 데려갔다.

콰직!

보얀이 묵직한 주먹으로 내 팔등을 후려쳤다. 난 가볍게 흘리면서 녀석의 팔을 휘감아 아래로 꺾었다.

우득!

보얀의 뼈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났다. 난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팔을 꺾으면서 녀석의 다리를 걸어서 중심을 무너뜨렸다.

휘릭!

보얀의 몸이 허공에서 빙글 돌았다. 녀석은 따로 낙법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충격을 등으로 받으며 착지했다.

“카악, 컥!”

보얀은 숨을 들썩이며 천장을 바라봤다.

난 녀석을 내려다보며 목을 매만졌다. 내 몸풀이 상대로도 보얀은 한참이나 부족한 기량을 가졌다.

‘일반인 중에선 제법이지만…….’

기껏해야 갱단의 무투파 간부 수준이다.

‘이건 욕구와 야성을 해소하는 수준의 훈련이다. 사실상 놀이나 다름없지.’

보얀은 타고난 폭력을 가지고 있으나 전투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부족했다.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한다면 성장이 빠르겠지만, 전투기술의 향상은 미미했다.

“상체만 보지 말고, 시야와 감각을 넓게 써. 난 크롤러의 감각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인간보다 네 오감이 뛰어나겠지. 상대의 움직임을 개별로 분리해서 보는 게 아니라, 전체와 흐름으로 읽어라. 그러면 다음에 상대가 무얼 할지 알 수 있다.”

“설명만 들으면 무슨 초능력 같은데요.”

보얀은 드러누운 채로 말했다.

뒤로 걸어간 나는 탁자에 놓아둔 서류를 잡아서 보얀의 안면에 던졌다.

보얀의 건으로 이스마엘이 보낸 서류였다.

“연방 정부 산하의 전략무기연구부라는 곳이 있어. 그곳 차관이 널 인턴으로 써줄 거다. 두 번 오지 않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해라.”

보얀이 서류를 들어서 읽더니 눈만 둥그렇게 떴다.

휙!

보얀은 허리와 다리의 힘만으로 펄쩍 뛰며 일어섰다.

“이, 이게 진짜인가요? 제가요? 학교는요?”

“관료가 되고 싶어서 학교를 다닌 거잖아. 아마 학교생활보단 실무가 적성에 맞을 거다. 공부도 그 정도면 기본은 했을 거고.”

“전략무기연구부는 야나카가 파일럿으로 있는 곳이죠?”

“그래, 업무마다 다르겠지만 종종 마주칠 수도 있겠지.”

보얀은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글자를 씹어 삼키듯 정독했다.

“……루카 씨,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보얀의 어깨를 두들기곤 훈련실을 빠져나왔다. 한결 기분이 홀가분했다. 짐을 덜어낸 느낌이었다.

‘레고르의 심정도 이랬을까.’

레고르도 보얀을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지킨 거겠지.

나도 보얀이 간혹, 아니 상당히 자주 미웠으나 근본적으론 좋아했다. 그러나 보얀이란 존재가 내게 무거운 짐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난 레고르에게 넘겨받은 짐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다.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어려움이야.’

방에 도착한 나는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대며 앉았다.

‘지젤은…… 의식이 없던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지젤이 날 아무리 좋아할지라도, 가끔, 나란 존재가 짐처럼 느껴졌을 터다.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책임감의 형태는 긍정적인 감정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많은 걸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난 지젤을 만나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어떤 감정과 생각으로 나를 보살피고 제국에서 빼돌렸는지…….

* * *

이후, ‘제국의 칼’은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나와 접촉했다.

특강을 핑계로 망명한 근위대원에게 내 건재함을 드러낸 보람이 있었다.

나는 랑테와 접촉해서 보더시티의 지하로 들어갔다. 랑테가 노련하게 나를 안내했다.

지하는 음울하게 고요했다. 지상에서도 설 곳이 없어 쫓겨난 빈민들이 지하 통로에 기댄 채 탁한 눈빛으로 병든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터벅, 터벅.

랑테는 막힘없이 미로와 같은 통로로 나아갔다. 주변의 인기척이 없어지자, 랑테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합류가 앞으로의 흐름을 바꿀 거네. 제도 아크바란에서도 루카우스 쿠스토리아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대중의 입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지. 제국의 정보 조작 역량과 첩보력이 예전 같지 않거든. 무엇 때문인지 알겠나?”

난 한 박자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황제가 급작스럽게 바뀐 탓이군요.”

“자네도 기억하듯, 폭풍기의 혼란 탓에 인재들이 죽어 나가고 감시와 통제 체계도 망가졌어. 첩보 자원이 반 토막 난 거나 마찬가지지. 제국의 감시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 이반이 불온한 일레이를 곁에 두고 쓰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레이 같은 존재는 멀리 둘 수도 없고, 죽이자니 대체하기 힘든 인재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감시할 역량도 부족했다.

‘제국은 첩보와 감시를 하나의 기관에 일방적으로 맡기지 않아.’

황제는 자신의 심복과 여러 인재에게 첩보 임무를 맡겼고, 제국 소속끼리도 임무가 상충했고, 여러 집단이 서로를 감시하며 경쟁하기도 했다. 누가 첩자이고 황제의 진짜 심복인지도 모호한 체계였다.

공식적인 기록이나 문서상에 존재하지 않는 첩보원이 다수였으니, 황제가 급작스레 바뀌고 중추적인 인물들이 일제히 죽으면서 제국의 첩보 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단적으로, 헤일라스가 담당하던 첩보원들도 제국 상부와 연락할 방법이 사라졌을 터다.’

연락체계가 증발한 첩보원 입장에선 어설프게 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중간에 정보가 새어 나가 모든 게 허사가 되거나 역으로 이용당해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잘 아는 마녀 바바라도 그런 존재다.

“제국 곳곳에 뿌리를 내린 첩보원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네. 그 때문에 비공식적인 루트로 첩보가 들어와도 제국 관료가 보기엔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구분이 힘들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대며 제국의 비밀 첩보원이라 말하는 자도 많아. 차라리 전부 깡그리 죽이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나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지.”

황제와 소수 초인의 역량에 기댄 감시체계는 황제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너졌다.

‘이반도 어쩌면 상당히 궁지에 몰렸을지도…….’

난 이반 크라치아를 떠올렸다. 괴물들의 겉과 속은 항상 다른 법이다.

“코라 신성국과 벨라토 연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네. 예전보다 더 타국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지. 우리도 신성국과 연방에 사람을 심어두고 동향을 살피고 있네.”

제국의 칼은 노바스 행성 전역에 퍼져있는 모양이었다. 단독 활동에 능한 근위대원 출신이 많으니 넓게 퍼져 활동하기도 좋았다.

‘이러니 제국민이나 근위대원이 현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망명했어도, 타국에선 순순히 믿지 못하는 것이지.’

우리가 현 정권과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한들 제국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여차하면 고국을 위해 테러리스트와 게릴라로 돌변할 자들이 수두룩했다.

……나 역시, 제국의 이익에 반하는 활동은 되도록 하기 싫었다.

“나다.”

랑테는 지하 통로에 있는 철문 입구에 서서 말했다.

드르륵, 탁.

센서 하나 없는 문의 감시창이 수동으로 열렸다가 닫혔다.

“여기가 ‘제국의 칼’ 보더시티 지부네. 자넬 향한 신뢰라고 생각해 주게나.”

랑테가 걸어가며 말했다.

나는 헤일라스의 양자이며, 프란세크의 충복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제국의 칼은 내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여길 이반이나 이스마엘에게 보고하기만 해도, 내 가치와 평가가 엄청나게 올라가겠지.’

지하기지 안쪽으로 들어서자 무기와 장비, 그리고 의체의 일부와 부품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역시, 의도적으로 정비를 하지 않은 거야.’

랑테의 행색이 초라한 까닭은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여차하면 랑테는 정비를 마치고 제대로 된 상태로 싸울 수 있었다. 제국의 칼은 쭉정이 조직이 아니었다.

“정말로……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로군. 건재했을 줄이야.”

기지에 있던 전 근위대원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나를 반기고 있었고, 다들 랑테와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여길 거점으로 보더시티에서 활동을 하는 모양이었다.

‘랑테를 포함한 일곱 명의 전 근위대원들.’

세 명 정도는 얼굴을 몇 번 본 적도 있고 이름도 알았다. 짧게나마 대화를 나눠본 사람도 있었다.

“자넨 재기불능이 아니었나?”

“흠, 죽은 줄 알았는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 대한 소문은 둘 중 하나였다. 사망과 재기불능. 어쨌건 멀쩡히 살아있을 거란 예상을 한 사람은 없었다.

“……드디어 바람이 부는 건가.”

자신의 팔을 열고 정비하던 사내가 날 보며 읊조렸다.

날 향한 기대가 절실히 느껴졌다. 저들은 나와 같은 전환점이 될 만한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날 믿는 게 아니다. 헤일라스를 믿는 거지.’

헤일라스의 안목은 대단히 뛰어났고, 그런 사내에게 선택받은 사람이 나였다.

“저는 아직 합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배님들과 무모한 동반 자살을 할 생각은 없거든요.”

난 목소리를 내었다.

두 명은 싸늘한 시선으로 날 보았고, 랑테와 다른 한 명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 외에는 기계적인 표정과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자네에게 여길 보여준 것만 해도, 우린 많은 위험을 무릅쓴 거지. 그리고…… 계획은 아직 자네에게 말해줄 수 없네.”

나는 다른 사내들의 기색을 살폈다.

‘랑테가 이곳의 지휘관이야.’

랑테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결정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야, 랑테는 헤일라스의 측근일 정도로 우수한 인물이었다.

랑테는 나를 더 안쪽까지 이끌었다. 난 다소 경계하면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를 따라갔다.

나와 랑테는 열 명 정도 앉을 만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랑테가 너덜거리는 외투를 벗어 벽에 걸더니 의자에 앉았다.

“루카우스, 자네에게도 여러 사정이 있을 거란 예상은 할 수 있어.”

“루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보기엔 어설퍼 보여도, 제국의 칼은 자네에게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랑테가 회의실 탁자를 두드리더니 홀로그램을 띄웠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는 겁니까?”

“자네가 무작정 우리에게 협력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 난 헤일라스의 측근이었네. 자네의 반골 기질에 대해서도 익히 들었지. 은근히 말을 잘 안 듣는 아들이라고 하더군.”

랑테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웃었다.

난 감정이 뭉글뭉글해지는 걸 느꼈다.

랑테는 헤일라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는 헤일라스를 무작정 우러러본 게 아니라 헤일라스의 인간적인 면모도 많이 봤을 터다.

그리고 나도 헤일라스를 그리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정보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보더시티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나는 무수히 많은 의문과 질문 사이에서…… 가장 간절한 질문을 골랐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이 나올 거란 기대하지 마라, 루카. 제국의 칼은 근위대원 기반의 조직이야. 근본적으로 이들은 군인이다. 첩보 조직이 아니지.’

솔직히 말하자면, 첩보 능력은 내가 더 뛰어났다. 나도 모르는 걸 이들이 알까 싶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보더시티에서 활동하면서도 내 존재를 눈치채는 게 늦었어.’

첩보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내 의붓동생인 지젤 쿠스토리아의 행방을 알고 싶습니다. 사망했든 누군가에게 붙잡혔든 말이죠. 수년 전에 보더시티에서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랑테는 내 말을 듣고선 미동도 없이 날 보았다.

“그게 전부인가?”

찾아줄 수 있다는 걸까, 아니면 해줄 수 없으니 다른 걸 말하라는 뜻일까.

“제가 바라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지젤 쿠스토리아의 행방을 알려주면, 전폭적으로 제국의 칼에 협력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난 심장이 뛰는 걸 억눌렀다. 랑테의 말은…… 마치, 지젤의 행방을 아는 듯했다.

그토록 찾고 있던 지젤이 어쩌면 터무니없이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언제나 기묘한 법이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답했고, 랑테는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었다.

“비밀을 속삭여주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아니, 루카.”

랑테는 눈짓하며 내 어깨 너머의 문까지 응시했다. 회의실 밖의 다른 대원에게도 비밀이라는 뜻이었다.

지금부터 랑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제국의 칼 내부에서도 극히 소수만 아는 정보일 것이다.

“……제국의 칼을 조직한 사람은 지젤 쿠스토리아네.”

난 지앤지 사이버네틱스가 흔들릴 정도의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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