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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이란 옛말이 있다.
사냥이 끝난 개는 잡아먹힌다는 뜻이었다.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통용된다. 그러니 아직도 그 말이 살아있는 거겠지.
‘누가 뭐래도 나는 결국 사냥개다.’
추적하고 물어뜯는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냥이 끝나면…….’
나는 위를 응시했다. 보더시티의 광해 때문에 하늘은 밤인데도 밝았다. 빛기둥이 구름을 비추며 지나다녔다.
‘……개는 잡아먹힌다.’
그걸 다르게 해석하자면, ‘사냥’하는 동안은 ‘개’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키누안을 쫓고 있어야 안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키누안을 제대로 쫓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키누안을 찾고자 하는 이는 많다. 그들은 키누안이란 사냥감 때문에 내 대접을 융숭하게 해야 한다.
웃기는 일이었다. 키누안이 저지른 악덕과 부조리의 크기만큼 나의 가치도 커진다.
키누안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하하.”
난 온기가 없는 헛웃음을 흘리며 보더시티를 걸었다.
우우웅.
나는 보더시티에서 많지 않은 공중차량 비행장에 도착했다. 제국의 아크바란에선 흔해 빠진 비행장이지만 말이다.
비행장에는 날 호출한 이스마엘의 개인 공중차량이 있었다.
위이잉.
6인승 공중차량의 문이 위로 비스듬하게 열렸다. 말끔한 내부에는 이스마엘이 앉아있었다.
꾸벅.
나는 고개를 까닥이며 안으로 들어갔고, 이스마엘도 화답했다.
운전석을 보니 무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손석재의 자택으로.”
-알겠습니다. 목적지는 손석재 님의 자택입니다.
이스마엘의 지시에 기계음이 답했다.
우린 손석재의 자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스마엘이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제 동행 요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카 씨.”
“차관님께서도 제 특강 요청을 받아주셨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전 공정한 관계를 좋아합니다.”
이스마엘은 손석재와의 식사 자리에 날 불렀다. 그 의도는 아직 불명확했고, 이스마엘도 내게 말하지 않았다.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먼저 묻지 않을 것.’
나는 윗사람을 상대하는 격언을 되새겼다. 다른 상대였다면 적당히 캐묻겠지만, 이스마엘은 설명을 빼먹을 사람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공중차량은 중력을 거스르듯 고요히 상승했다. 고위 관료의 차량답게 차체제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우우웅.
공중차량은 공중에 뜨며 일정한 고도를 유지했다. 여긴 일종의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루카 씨 덕분에 지앤지와는 무사히 협상을 마쳤습니다. 당신의 공로가 있다고 보고를 해뒀으니 당분간은 성과를 닦달하지 않겠죠.”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요.”
난 의례적으로 말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잠깐 두었다. 보더시티의 야경이 보였다.
이동하는 동안, 이스마엘이 내부 사정을 내게 전달했다. 어느 정도는 진실이고, 어느 만큼은 거짓일 것이다.
“우린 당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제국의 황실과 가까웠던 인물 중에서 망명한 경우는 없으니까요. 제국의 황가는 비밀로 가득하죠. 직계부터 방계까지요.”
“비밀은 신성한 권위의 비결이죠. 제국에서 황족은 신의 후예나 마찬가지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죠. 유폐를 당한 프란세크 황태자가 그런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당신과도 가까웠던 그 황태자요.”
나는 뺨이 씰룩이는 걸 억눌렀다. 대외적으로 나와 프란세크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프란세크와 가깝다는 말도 아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난 이반과 더 접점이 많아.’
프란세크는 제국의 어둠에 관여하기엔 역량이 미달이었던 인물이다. 비인간적인 면모가 다른 괴물들에 비해 부족했다.
하지만 프란세크는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대중 친화적인 행보를 할 수 있었다. 신성을 버리고 인간으로 내려왔기에 가질 수 있는 강점도 분명 있었다.
“현재 프란세크는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습니다. 기대할 만한 인물은 아니죠.”
내 박한 평가를 들은 이스마엘이 눈썹을 치켜떴다.
“의외군요. 망명한 제국민 중 상당수가 프란세크를 지지했었고, 지금도 기회를 엿보고 있죠. 으음, 그 사람들을, 흠, ‘제국의 칼’이라고 부르던가요?”
이스마엘의 떠보기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제국의 가혹한 어둠은 날 훌륭한 첩자로 키워냈다. 이런 넘겨짚기와 수싸움은 질릴 만큼 익숙했다.
‘정보를 취합해 보면, 제국의 칼이 머지않아 나와 접촉할 거란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지.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모를 뿐.’
이스마엘은 은은하게 날 관찰하고 있었다. 무용한 짓이지만 말이다.
“프란세크는 황제의 자비와 동정으로 숨만 붙어있는 겁니다. 프란세크를 추대하고자 하는 불온한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숙청하겠죠. 아니면, 오히려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을 일거에 몰살시키기 위해 프란세크라는 존재를 남겨뒀을 수도 있습니다. 프란세크가 살아있으면 불온분자들이 뭉칠 테니까요. 소탕이 쉬워지죠.”
나는 진실을 섞어서 말했다.
‘이반이 프란세크를 살려둔 이유.’
내가 본 제국와 황실은 숨어있는 불온분자를 찾기 위해 미끼를 곧잘 던졌다. 프란세크도 그런 미끼일 터다.
“흐음, 역시 그런 걸까요? 제국의 통치는 교묘하죠. 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하지만 프란세크 황태자는 여전히 가치가 높습니다. 연방도 프란세크가 제국의 황제가 되길 바라고 있죠.”
“적국이 바라는 지도자는 자국 입장에선 좋은 지도자가 아니겠죠.”
내가 퉁명스레 말했다.
여전히 내 본질은 제국에 있었다. 이걸 드러낸다고 이스마엘이 날 멀리하진 않을 터다. 망명했다고 배경과 정체성을 다 버리고 충성하는 쪽이 더 수상한 사람이다.
“통상적으론 그렇겠지만, 이번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노바스 행성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라도 프란세크라는 황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노바스 행성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높은 확률로 제국이 일으키겠죠. 이건 그 누구도 반론하지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도 제국은 적극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연방 정부도 전쟁을 준비 중인 건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난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이스마엘도 피식 웃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선 전쟁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만약, 프란세크가 황제로 즉위한다면 지금보단 대화가 잘 통할 겁니다. 프란세크의 존재는 노바스 행성 전체에 무익한 군비경쟁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기회입니다. 전쟁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피할 수 있으면 누구나 피하고 싶죠.”
난 연방 정부가 내게 무얼 원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쪽에선 제 생각보다 많은 걸…… 제게 바라는군요.”
“그저 이쪽 입장을 말한 겁니다. 연방은 프란세크를 황제로 만들 수 있다면 상당히 많은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현재로선 예정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니까요. 전신의체의 수명은 길고, 그만치 황제의 재위 기간이 깁니다. 연방의 지원으로 프란세크가 즉위하면 적어도 백 년의 평화는 보장되는 거죠.”
연방 정부 같은 외세로 인해 황제가 옹립된다면, 아무리 프란세크라도 제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러니 제국의 칼과 같은 제국 내부에서 비롯된 조직의 지지가 있어야 하지.’
연방은 제국 출신의 불온 세력을 지원해 프란세크를 간접적으로 밀어줄 생각이었다.
“제 입장에서도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가망이 낮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죠. 국가를 운영하려면 여러 계획을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우린 무수히 많은 차선과 차악을 준비하고 있죠. 그러나 프란세크의 황제 즉위는 최선에 상당히 가까운 차선입니다. 이걸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루카 씨.”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이스마엘은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공중차량을 가속했다.
이스마엘은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리더니 화제를 바꿨다.
“손석재 사장의 평소 행실을 봐선 믿기 힘드시겠지만, 손 사장은 상당히 좋은 집안 출신입니다. 부친도 특허를 여럿 가진 공학 박사이며, 형제들도 기업과 정부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의외이긴 하군요.”
이건 진심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영리한 인물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보더시티만이 아니라 연방에서도 외계종족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진 자가 많습니다. 상류층이나 고위직에서도요. 손 사장은 그런 자들의 후원을 얻고자 어느 날부터 과감한 행보를 시작했죠.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며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손석재의 외계종족 차별은 감정적 이유만이 아니라 계산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다 알면서도 연방에선 보더시티에 대한 방관주의를 핑계로 손석재의 존재를 용납했죠.”
“제법 유용하긴 했으니까요. 외계종족 집단 중에서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단죄하지 못할 사람들이죠. 그럴 때, 우린 손수공업 같은 자들의 힘을 빌립니다.”
“하하, 청소부는 어디에나 필요하군요.”
난 비릿하게 웃었다.
국가 규모의 조직과 집단은 위선적이며 비열할 수밖에 없다. 이건 필연이다.
“문제는 손 사장이 양지로 올라오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엔 피를 손에 많이 묻힌 사람이죠. 심지어 윗선에선 손 사장을 환영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간의 로비 덕분이겠죠. 손 사장은 장차 연방의 흠이 될 사람입니다.”
“정리하자면, 손석재는 주제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군요.”
“……야망이 지나치게 큰 사람이죠. 가져오는 성과도 확실하고, 비호하는 자도 많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요.”
이스마엘이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다.
“지시할 사항이 있으면 말씀하시면 됩니다. 전 차관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언젠가 손석재 사장은 선을 넘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루카 씨가 적절하게 움직여 주시죠.”
이스마엘은 가만히 날 바라봤다. 내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이럴 땐 참으로 관료다운 태도였다.
손석재가 고위층의 비호를 넘어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그 현장을 내가 발견하면…… 놈을 죽이거나 처분할 수 있는 명목이 생긴다.
‘손석재가 윗선에 로비를 잔뜩 해댔으니 이스마엘도 직접 손대기 꺼림칙한 거다. 연방 정부의 내부에도 복잡한 파벌이 있을 테니까.’
이스마엘도 어려운 부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지 다른 조건도 내밀었다.
“적절한 시기에 벨라토시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거긴 보더시티에 비할 바가 아니죠. 외계종족도 훨씬 적고 안전합니다. 설사 제국 황제라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장소죠. 연방군의 적당한 군사 고문 자리도 드리겠습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벨라토시티는 연방의 수도다. 이반의 영향력에서 멀어질 기회였다.
‘아니면, 아키에스 도미니로서 연방의 중추에 가까워질 기회이기도 하고.’
내가 지젤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자. 지젤을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벨라토시티는 그 목적지가 될 수 있는 장소였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난 공중차량이 착륙하는 걸 느끼며 답했다. 이스마엘도 당장 대답을 바라진 않았다.
손석재의 자택은 상류층 주거지에 있었다. 마당이 있는 2층 저택이었는데, 사방이 높은 담벼락으로 가려져 있었다.
마당 겸 비행장에 착륙한 공중차량의 문이 열렸다. 나와 이스마엘이 내리자마자 손석재가 문을 열고 마중을 나왔다.
“딱 맞게 오셨군요! 차관님! 그리고 루카 씨! 갈비찜이 아주 야들야들하게 잘 됐습니다!”
손석재가 시가를 하인에게 던지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타르파?’
난 흠칫하며 손석재의 시가를 받은 하인을 응시했다. 시가 용품과 재떨이를 든 하인은…… 피부가 파랗고 뿔이 있는 타르파 종족이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자택 여기저기에 경호원이 있었는데, 그들도 인간이 아니었다.
스륵.
자택을 지키는 경호원은 심지어 에퀘시안이었다. 그들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보셨죠? 손석재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입니다. 공사 구분이 확실하죠.”
이스마엘이 앞장서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