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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57

257
나와 이반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이반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만이 유일한 음악이었다.

“잘 추는걸. 크라치아 아카데미에서 사교댄스를 배운 보람이 있네.”

이반이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동공은 신비로운 이채를 띠고 있다. 마치 인간이 아닌 듯한 위엄마저 들었다.

그 어떠한 천박한 언행과 욕망으로도 타고난 기품이 가려지지 않는, 그런 신성한 존재. 그게 제국의 현 황제 이반 크라치아였다.

스륵.

이반이 나와 맞잡은 손가락 깍지를 더 세게 꼈다.

내 촉각 센서에 닿는 이반의 피부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반의 손은 피와 살의 육신처럼 따스하다.’

흠결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질적일 만큼 완벽한 육신이다. 아름다움이란 추상적인 관념을 현세로 끌어와 재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비인간적이지.’

완벽한 미를 갖춘 자는 인간이 아니다. 완벽은 인위적인 개념이니까.

‘현실의 인간은 결함투성이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아.’

그렇기에 완벽은 때때로 신성의 동의어가 된다.

‘정말로 지금 내 눈앞에 이반의 뇌가 있는 걸까?’

이반은 날 향한 집착과 광기 때문에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절호의 기회다.

‘황제를 생포할 기회.’

이반만 붙잡으면 내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라, 이반은 괴물 중 하나다.

‘일부러 내게 허점을 드러냈다.’

그 허점을 내가 찌르는 게 맞는 걸까?

내 정신과 육체는 별도로 작동하고 있었다. 몸은 춤을 추고 있을지언정, 머릿속은 음모와 계략의 소용돌이에서 길을 찾고 있다.

“루카, 넌 뭔가를 오해하고 있어. 난 네 자유의지를 구속하지 않을 거야. 단순히 네 육체와 얼굴만 원했다면 내겐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었지.”

이반이 손을 놓더니 검지로 내 미간을 찌르듯 밀었다.

우리의 춤이 끝났다.

“내가 원하는 건 너의 순수한 정신, 그 영혼이야. 이건 그 어떤 기술로도 재현하지 못할 지고의 보물이지.”

이반의 목소리는 이가 녹아내릴 듯이 달콤하다. 미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게 아니었다.

‘제안에 넘어가고 싶다.’

날 진정으로 원한다는 저 말을 믿고 싶었다. 내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나와 협력하고 싶다는 저 말이, 내 귀에는 얼마나 달게 느껴지는지…….

제국 수장의 약속이다. 이반은 날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폭풍기의 기억이 차갑게 내 뇌리에서 새어 나오더니 피를 타고 육신 전역으로 퍼졌다. 등골이 서늘하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쩌릿했다.

나는 이반의 진짜 모습을 안다.

이반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도 무너지고 좌절하는 한낱 인간이다. 저 여유 넘치는 모습 뒤로는 불안에 떠는 한 소년이 있을 터다.

‘의존하지 마라, 의지하지 마라.’

내 문제를 누군가 마법을 부려 기적처럼 해결해 주리라 바라지 마라.

인생에서 지름길은 함정이고 독의 늪이다. 그 유혹에 빠져 나가떨어진 놈들이 내 발밑에 산더미처럼 누워있다.

‘헤일라스 쿠스토리아를 기억해라.’

헤일라스는 무엇 하나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뒤에 결정했다. 내 아버지는 서투른 안목으로 지름길만 찾아다니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이반, 당신은 제가 본 그 누구보다 욕심쟁이입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말할지 몰라도, 결국은 절 소유하고 싶으시겠죠. 지배자의 성질이란 그러한 법이고요.”

이반이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게 뒤태를 내보인 채로 옷걸이에 걸린 망토를 잡았다.

휘릭.

이반은 망토를 걸치더니 의자에 앉으며 턱을 괴었다.

“네 말이 맞아. 난 욕심쟁이지. 분명히 널 삼키려 들 거야. 먹으면 사라지는 사탕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겠지. 단내만 맡는 것만으론 참지 못할 테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이반은 날 원하는 거지?’

단순한 소유욕? 아니면 날 향한 감정? 이반 정도의 인물이 감정적 이유만으로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게 집착하는 걸까?

‘어떤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나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난 차분히 생각하고선 입을 열었다.

“제게 원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하시지요.”

이반은 턱을 괸 채로 웃었다. 새하얀 이가 탐스러웠다.

“키누안.”

이반이 느릿하게 그 이름을 꺼냈다. 긴장을 풀면 내 심장이 덜컹거릴 것만 같았다.

“황제 시해자 말입니까?”

난 품고 있던 의문을 확인하듯 내뱉었다. 뻔한 수작인지라 이반은 웃었다.

“떠볼 건 없어. 네겐 키누안에 대해 설명해 줄 거야. 일레이를 비롯해 아랫사람들은 모르는 일이 있지. 황족과 그 방계만 아는 사실 말이야.”

이반이 자신의 무릎을 탁탁 두드리더니 말을 계속 내뱉었다.

“키누안은 황가의 유산 중 하나를 훔쳐 갔다. 무척이나 절묘했어. 놈이 그걸 탐내고 있었을 줄은 아버지조차 몰랐을 거야. 아니, 기회가 없었다면 키누안은 평생 그 욕망을 표출하거나 행동으로도 옮기지 않았겠지. 얌전히 아키에스 도미니로 생을 마쳤을 거야.”

“유산 말입니까? 그때 말씀하신 아케인의 전투 유산?”

“그건 아니야. 전투와는 무관한 물건이지만, 네게 더 설명해 줄 순 없어. 넌 내 소유가 아니니까. 하물며 키누안의 절도에는 루카, 네 책임이 있어.”

“폭풍기의 제 행동으로…… 키누안이 기회를 얻었군요. 그게 제 책임은 아닌 듯하지만요.”

“키누안 하나라면, 놈이 만든 혼돈만으론 제국이 혼란스럽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너란 이물질까지 더해지니 황제조차 의외의 상황에 맞닥뜨려야 했지. 그 찰나를 키누안은 놓치지 않았어. 수십 년의 충성은 올지 안 올지도 모를 그날의 배신을 위해 존재했던 거야. 참으로 키누안답지.”

난 키누안이 원하는 인재였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적성이 높으나…… 강대한 힘에도 굴하지 않고,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반골 기질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폭주하는 기관차나 마찬가지였다.

키누안과 나의 결정적 차이다. 놈은 나처럼 폭주하지 않는다. 냉엄하게 방관하다가 확실한 이익만 취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질을 가진 나와 키누안의 화학 작용은 제국의 오랜 고름이 터지는 시기와 맞물려 커다란 혼돈을 만들어냈다.

“키누안이 훔쳐 간 유산은 제가 회수하겠습니다.”

“이번 임무에 성공한다면, 넌 제국에 아무런 빚도 없는 거야. 마음껏 자유로이 살아도 돼. 널 모든 책무로부터 놓아주지.”

난 이반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원하는 걸 얻고 나면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꿀 사람이다.

나는 주제를 바꿔 흐름도 바꾸려 했다.

“‘제국의 칼’이란 조직이 제게 접근했습니다.”

난 아키에스 도미니처럼 말했다. 제국의 적이 될 만한 세력과 사람들을 보고했다.

“놈들의 움직임은 나도 익히 알고 있어. 네가 언제 보고할지 궁금하긴 했지. 네게 접근할 게 뻔했으니까. 너라면 명령이 없어도 무얼 해야 할지 알 거다. 그게 아키에스 도미니니까.”

키누안과 네메시스가 떠올랐다.

난 제국의 칼과 접촉해 그들의 조직을 파헤치고 동향을 이반에게 보고해야 할 것이다.

제국의 칼은 상상도 못 하겠지. 자신들이 원하던 그 상징, 루카우스 쿠스토리아가 함정일 거라곤 말이다.

“그리고 연방의 전투병기 MAU…….”

“그건 됐어. 그쪽은 네 보고가 없어도 괜찮아. 다 알고 있으니까. 우리도 그에 대응하는 병기를 개발하고 있어. 화력전에서 제국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다니, 웃기는 노릇이야.”

이반은 MAU 따윈 위협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게 진담인지 거짓인진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루카, 우린 전쟁을 앞두고 있어. 머지않은 일이지. 이런 시기에 제국 바깥에 아키에스 도미니가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몰라. 전화위복이란 이런 거겠지.”

이반이 밝게 웃었다. 그의 의체가 기동하더니 소년의 몸으로 돌아갔다.

짝!

이반은 손뼉을 쳤다. 경쾌한 소리가 선홍빛 조명 아래에서 퍼졌다.

“자, 꿈같은 밀회는 여기까지야.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지.”

이반이 손가락을 뻗어 문을 가리켰다. 나는 문고리를 잡다가 뒤를 돌아봤다.

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건 도박이다.’

실패하면 이반의 마음속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한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겠지.

“이반.”

“왜? 작별 인사로 손등의 입맞춤이라도 하려고?”

이반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손을 내밀었다. 난 그의 손을 보지 않고 얼굴을 응시했다.

“당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뇌를 지닌 채로 저와 마주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반의 의체는 원격 조종이 아니다. 난 흐릿한 의심의 안개를 모두 걷어냈다. 내 직관을 믿어야 한다.

스륵.

이반이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보랏빛 머리카락도 머리의 방향을 따라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머리카락이 아니라 흐르는 물 같기도 했다.

“내게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걸 알면서 넌 왜 나를 붙잡지 않는 거지?”

“당신에게 제가 필요하듯이, 제게도 당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말을 마친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이반의 웃음이 내 등 뒤에서 쩌렁쩌렁하게 퍼졌다.

저벅, 저벅.

난 복도를 걸었다. 좌우로 늘어진 방에선 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방 내부에선 생명의 기척이 없었다.

‘죽음과 피.’

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신발 밑바닥에서 핏물이 찰팍거렸다.

복도 끝에 있는 입구에선 안내를 맡았던 피어싱의 사내가 있었다.

단지, ‘머리’만 남아 있다는 게 특이점이었다.

새카만 두건과 망토를 두른 ‘황제의 그림자’가 피어싱 사내의 머리를 창에 꿴 채로 서 있었다.

스스스스.

전투 헬멧과도 같은 안면을 지닌 그림자가 날 응시했다.

-폐, 폐하의 선, 선물이다.

그림자가 그리 말하며 기다란 금속 상자를 가리켰다.

끼이익.

난 탁자 위에 놓인 금속 상자를 열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물건이 보였다.

‘크루시스…….’

내가 썼던 크루시스와 거의 동일한 규격의 외날검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부웅!

잡아서 휘둘러보니 고압축 중량병기였다. 크루시스를 만든 장인이 이걸 제작했을 것이다. 만져보니 확실했다.

‘크루시스 피데스.’

칼날에 새겨진 이름 뒤에는 글자가 더 붙어있었다.

‘그리고 루이나.’

이것 역시 동일한 장인이 새로 만든 충격권총이었다. 공방의 수제작이라 미묘하게 다르지만, 성능과 규격은 쌍둥이처럼 동일했다.

‘루이나 프로바티오.’

루이나도 크루시스처럼 이름이 길어졌다.

루이나 옆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충격탄도 통에 담겨 있었다.

키잉, 철컥.

난 크루시스를 챙겨서 마련된 칼집에 넣었다. 처음 만지는 칼인데도 내 손에 착 달라붙었다.

툭.

루이나도 챙긴 나는 그림자를 어깨로 치며 문까지 걸어갔다. 그림자는 날 제지하지 않았고, 놈의 시선만 날 따라 움직였다.

“폐하께는 선물을 잘 받았다고 전해라. 이건 한 점의 아부도 없는 진심이야.”

내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섰다.

후우웅.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이 보더시티의 혼란한 공기가 내 코에 스며들었다.

저벅, 저벅.

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오랜만에 소지한 고압축 중량병기 때문에, 내 걸음걸이가 살짝 기울었다. 그러나 난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균형을 되찾았다.

콰- 앙!

폭발음이 들렸다. 난 놀라지도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와 이반이 있었던 건물이 통째로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밀회의 흔적은 화마에 뒤덮여 송두리째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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