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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52

252
본능이라는 단어와 개념은 친숙하다. 그러나 깊게 생각해볼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성체에게 본능은 애증 어린 동반자이며 양날의 칼이다.

지성을 갖추지 못한, 흔히 말하는 ‘짐승’은 다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유전적 한계를 넘어선 환경압에 급작스레 짓눌리면 멸종하고 만다.

그러나 지성체는 다르다. 한 세대 만에 절멸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에서 지능이란 도구를 사용해 적응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털짐승도 버티지 못한 혹한의 빙하기를 불과 옷이란 도구로 이겨냈다. 그리고 그들의 까마득한 후손들은 척박한 아크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와 살을 버리고 기계로 몸을 대체했다.

나아가, 지성으로 쌓아 올린 공고한 인력(人力)은 행성의 인력(引力)조차 능가했다.

지성이란 돌연변이 인자를 획득해 우주를 누비는 원숭이들이 바로 우리다.

그리고 그 원숭이 곁엔 뱀, 얼룩말, 소, 사자 따위가 있었다. 지성이 없는 짐승들끼린 어림도 없는 공존이다.

인간, 타지룬, 에퀘시안, 타르파, 크롤러가 사회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건…… 그들 모두가 지성이란 돌연변이를 획득했기 때문이었다. 지성의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지성이란 종에 새겨진 본성과 본능의 차이를 극복할 만큼의 공통분모였다.

‘그러나 지성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

종의 차이와 개성을 만드는 건 본능이다.

유전자 단위에서 누적된 본능이 지성이란 돌연변이와 맞닿으면서 지성체는 폭발적인 힘을 거머쥘 수 있었다.

본능이란 물감이고, 지성이란 붓놀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물감의 색깔마저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본능, 우린 본능을 버릴 수 없다. 나도 그러했고, 보얀도 마찬가지지.

총성이 울린 장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야나카는 나보다 뒤쳐져 있다.

저벅, 저벅.

나는 뛰는 걸 멈추고선 서서히 걸었다. 피와 화약 냄새가 났다.

깜빡, 깜빡.

고장난 조명이 점멸하며 골목길을 밝혔다가 숨기길 반복했다.

“끄, 끄으으, 아악!”

비명이 가깝다. 맞은편에서 누군가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건 인간 남성이었다. 그의 오른팔은 ‘뜯겨 나가’ 있었다.

팔이 뜯겼다고 표현한 건 정말로 뜯겼기 때문이었다. 잘리거나 부러진 게 아니었다. 산 채로 뜯겼을 때나 나타나는 단면이 걸레짝처럼 끔찍했다.

‘마치 맹수에게 뜯긴 듯이.’

사내는 날 보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뜯긴 어깨에선 출혈이 심각했다.

“선, 선생님. 제, 제발, 도, 도와주십쇼. 사, 사례는 하겠습니다.”

“상황을 알아야 도와주든 말든 하지.”

나는 사내의 차림새를 살폈다.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피 냄새로도 가려지지 않는 약물의 알싸한 냄새가 옷과 머리카락에 배어 있었다. 약물 중독자거나 판매상일 터다.

아니, 판매상이다. 사내는 위급한 중상을 입고도 공황에 빠지지 않고 도움을 청했다. 상당히 침착한 대응이었다.

“크, 크롤러입니다. 크롤러 한 마리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요! 일단, 저, 저부터 병원에, 제발…….”

“크롤러라고 해도 이유 없이 날뛰진 않을 거 아니야. 그쪽이 시비라도 건 거 아니야?”

내가 차분히 말했다.

“그쪽에서 먼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았습니다, 그, 그보다, 쓰으읍, 지, 지혈이나 좀…….”

사내는 어깨를 감싸며 애걸복걸했다. 외팔이가 자신의 어깨를 지혈하긴 힘든 법이다.

타닥, 타닥.

야나카가 한발 늦게 날 따라왔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야? 왜 저 사람은 팔이…….”

“응급조치 정돈 배웠지? 과다출혈로 죽지 않게 지혈이나 해 줘.”

내가 사내의 옷깃을 잡아끌어서 야나카의 발밑에 던졌다.

야나카는 뒤로 물러나면서 눈을 찡그렸다.

“내가? 왜?”

“보얀을 살인자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해.”

야나카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찡그리다 못해 표독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보얀이 이랬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내 감은 꽤 정확하거든.”

야나카는 자신의 소매를 찢어서 끈을 만들었다. 그 끈으로 사내의 겨드랑이부터 어깨까지 감더니 세게 조여 지혈했다.

나는 안으로 계속 걸어갔다.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야나카도 들을 수 있는 총성도 두 번 더 울렸다.

“크륵, 크르륵…….”

인간의 성대로 낼 수 없는 초저음의 울음이 낮게 퍼지고 있었다.

“캬아아아아!”

크롤러 울음은 하나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울음이 교차했다.

창문이 깨지고, 문이 부서진 건물이 보였다. 가게까지 차려놓고 불법 약물을 파는 걸 보니 갱단에 속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갱단의 관리라도 받는 가게가 정체도 모를 길거리의 마약상보다 낫긴 하지.’

난 열린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신음하는 자만 넷이었고, 서로를 죽일 듯이 쳐다보며 싸우는 사람은 셋이었다.

……그리고 싸우는 사람 세 명 중 하나가 보얀이다.

후드 자켓을 입은 보얀이 탁자에 올라간 채로 적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옷의 구멍 상태를 보니 총알도 몇 발 맞은 듯했다.

“크릇!”

샛노란 야성의 누린내가 보얀의 몸에서 흐르는 것 같았다. 타고난 폭력이 깨어났다.

보얀의 손아귀와 손톱에선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혼자서 무장한 갱단원을 해치운 건가?’

갱단원들이 방심한 것도 있겠지만, 보얀의 전투력은 대단했다.

남은 갱단원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크롤러였고, 다른 하나는 총기로 무장한 타르파였다. 푸른 피부의 꼬맹이가 담배를 문 채로 총을 겨누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타르파 종족이 갱단원이라니…….’

특이한 조합이었다. 뭐, 불가능한 건 아니다. 타르파 종족이 전반적으로 학구적이며 순하다지만, 결국은 개체의 차이가 큰 지성체다. 폭력적이고 잔혹한 타르파도 있을 것이다.

끼릭.

타르파가 보얀을 겨누고 있었다. 보얀이 민첩하게 벽과 천장, 그리고 탁자 사이로 뛰어다니니 조준이 어려운 듯했다.

나는 문 옆에 있는 의자를 잡아서 내던졌다.

휘리릭! 콰직!

의자가 타르파 갱단원의 몸뚱이에 명중하면서 깨졌다. 이목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다.

“루…….”

보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찰나에 크롤러 갱단원이 보얀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보얀과 크롤러를 무시하며 비틀거리는 타르파 갱단원에게 다가갔다.

‘젠장, 왜 타르파는 다들 애새끼처럼 생긴 거지?’

아무리 놈이 험상궂게 찡그려도 타르파 특유의 유아적인 생김새가 두드러졌다. 폭력을 휘두르기가 영 꺼림칙했다.

내가 주춤거리는 사이에 타르파 갱단원이 정신을 차리고선 날 겨누었다.

“이, 시, 시발! 아프잖아! 이 개새끼야! 뒈져, 뒈져!”

다행히 주둥이가 험하군. 양심의 가책이 한결 사라졌다.

끼이이이-.

타르파 갱단원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그 동작은 내 감각으론 한없이 느렸다.

놈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내가 먼저 움직였다.

콰- 직!

나는 놈의 안면을 거머쥔 채로 땅에 처박았다. 두개골이 앞뒤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타르파 갱단원을 제압한 나는 뒤를 돌아봤다.

“캬르르릇!”

보얀과 크롤러 갱단원이 주먹과 발차기로 서로 치고받고 있었다. 서로의 육신이 마주칠 때마다 거친 소리가 났다.

콰직! 퍽!

얼굴을 얻어맞은 보얀의 머리가 뒤로 휘청거렸다. 그러나 보얀의 투쟁 본능은 다리를 끌어올려 크롤러 갱단원의 낭심을 노렸다.

기술적으로 미숙한 보얀이 밀리고 있었다.

난 끼어들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보얀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 어렴풋한 추측으론 말리지 않는 게 정답이다.

‘보얀의 덩치가 이렇게 컸었나?’

착각일 리가 없다. 눈썰미 하나는 자신이 있으니까, 내가 못 본 사이에 보얀은 성장했다. 인간의 기준으로 저들의 생태와 성장을 생각하면 안 될 터다.

‘단순히 몸만 커진 게 아니다. 늘어난 부피만큼 근육이 꽉꽉 찼겠지.’

크롤러는 일상적인 활동만으로도 강인한 근육이 살을 채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근육 억제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원시부터 지금까지, 크롤러는 언제나 생태계 정점의 포식자였고 원할 때마다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흔적이다.

‘종의 차이는 불합리하지.’

인간은 약물까지 투여하면서 치열하게 단련해도 크롤러 근육의 절반도 얻지 못한다. 저들은 숨만 쉬어도 폭력을 저토록 손쉽게 거머쥐었다.

투쟁이란 단어를 현현한 듯한 크롤러 두 마리가 치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찡그림 하나 없었다.

오히려 전투의 쾌감을 느낀다는 듯이 사나운 미소가 얼굴에 걸려 있었다. 그건 보얀도 마찬가지였다.

“캬아아아아아-!!”

밀려난 보얀이 날카로운 포효를 내지르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그의 근육이 부푸는 것 같았다.

‘나아가라, 보얀. 본능을 토해내.’

본능은 무한정 억누를 수 없다. 넘치는 본능을 지성의 그릇에 가두다간, 그 그릇조차 깨지는 법이다. 본능에 한계가 있듯, 지성도 한계가 있다.

푸슛!

혈압이 높아진 탓에 보얀의 상처에서 피가 물총처럼 새어 나왔다.

팅!

보얀의 몸에 박혔던 탄두가 근육과 살에 밀려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보얀의 아버지, 레고르는 우수한 전사였다. 그 유전자가 보얀의 몸에 머물고 있었다.

부우웅!

보얀이 기교 없는 정직한 주먹으로 크롤러 갱단원을 공격했다.

크롤러 갱단원이 팔을 올려서 방어했지만, 힘에서 밀렸다.

퉁!

크롤러 갱단원의 팔이 주먹에 튕겨 나갔다. 보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보얀이 반대편 주먹을 쥐더니 크롤러 갱단원의 가슴을 강타했다.

퍼- 억! 콰지직!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롤러 갱단원은 탁자와 부딪히며 철퍼덕 쓰러졌다. 그는 피를 토하며 숨을 헐떡였다.

‘종족의 차이를 넘어서…… 그보다도 더 불합리한 개체의 차이가 있지.’

동족끼리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유전자의 지도는 절대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존재하지 않는 유전자를 활성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보얀은 크롤러 중에서도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났다. 원석이지. 성장기에 이르니 더욱 두드러지고 있어.’

크롤러 갱단원이 나보다 더 절실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보얀은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개체다.’

패배한 크롤러 갱단원은 분함과 증오보다 보얀에게 굴복하고 싶은 감정을 가질 것이다.

크롤러 사회는 강자가 우두머리가 된다. 강자를 따라는 건 저들의 숙명이자 본능이었다.

“아, 크, 크륵, 으, 으, 오, 오오오오오-!!”

보얀은 내가 있는데도 승리의 포효를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전투가 끝나고 야나카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녀는 처참한 꼴을 보며 전투의 열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저게…… 보얀?”

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고, 보얀은 열광에 취해있었다.

그리고 야나카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떨었다.

정상적인 감각으로 상황을 보는 건 야나카밖에 없었다.

“사람이…….”

야나카의 입술이 떨렸다.

그래, 보얀은 오늘 살인을 저질렀다. 바닥에 쓰러진 자 중에서 두 명은 숨을 쉬지 않았다.

인간은 넘기 힘든 도덕의 벽을, 보얀은 본능에 취한 채로 가볍게 넘어섰다. 그는 살인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타고난 폭력을 만끽하고 있었다.

세상은 모순과 부조화투성이지. 오늘도 새삼스레 깨닫는구나,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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