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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카의 시험기 MAU는 따지고 보면 육중한 이족보행 전차다.
철컥, 철컹.
시험기의 팔뚝에선 재장전이 끝난 기관포가 튀어나왔고, 등에 달린 단발 포탑은 정밀하게 움직이며 접근하는 레기온을 조준했다.
“무장이 그게 전부야? 기관포와 포탑?”
-이거면 충분해.
“그 무기는 이미 놈들에게 퍼부었잖아. 같은 방식의 공격에 두 번 당할 놈들이 아니야, 멍청아!”
-고화력탄으로 교체했어. 화력을 면으로 퍼부어서 끝장낼 거야. 여기선 민간인 피해를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까.
젠장, 이 바보는 모른다. 이해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야나카의 견식은 짧다.’
초월적인 전투 기계들, 초인들이 어떻게 싸우는지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
‘같은 공격이나 수법에 두 번 당하지 않아. 어떻게든 대응책을 짜내서 적의 허점을 노리지.’
한숨이 나온다. 야나카가 레기온에게 박살 나는 꼴이 훤히 보였다.
우릴 추격한 레기온이 공터로 진입했다. 그들은 총기를 집어넣고선 근접 무기를 들었다. 자신들의 개인화기로는 시험기의 장갑을 뚫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잠시 내 뒤에 있어. 간다.
야나카가 호기롭게 말했다.
기잉.
시험기도 한 발자국 나서며 기관포가 달린 팔을 앞으로 뻗었다.
키리리리릭!
아까와는 다른 작동음이 들렸다. 기관포 내부에서 요동치는 소리가 퍼졌다.
-너희들이 괴물이라면, 난 괴물 사냥꾼이 되어주마-!!
야나카가 고함쳤다.
그리고, 말 그대로 ‘포화’가 몰아쳤다.
콰아아앙! 쾅!
기관포에서 뻗어 나간 불줄기는 하나하나가 벼락과도 같은 폭발을 일으켰다.
콰- 아아앙!
레기온도 움찔했다. 화력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예상한 고화력 수준이 아니다.’
초고화력 특수탄이었다. 화력을 응축한 듯이 폭발이 일 때마다 불기둥이 번쩍거렸다.
‘돈이 녹아내리는군.’
경제적 효용성을 무시한 화력이었다. 다른 곳에선 저런 파괴력의 압축탄을 만들지 못해서 만들지 않는 게 아니다. 단지, 돈이 너무나 많이 들어서 생산하지 않는 것이다.
콰아앙! 쾅! 쾅!
나조차도 놀랄 정도의 화력이었다. 공터는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연달아 퍼진 굉음으로 내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천지가 울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겠지.
-하, 하하핫, 하하하하!
야나카는 탄이 떨어질 때까지 화력 투사를 멈추지 않았다. 시험기의 단발 포탑은 먼지와 불꽃 사이에서 레기온을 추적하더니 저격했다.
티- 잉!
단발 포탑의 사격이 일 때마다 먼지 더미에서 레기온이 휘청이는 소리가 들렸다.
‘놈들도 예상을 뛰어넘는 화력에 놀란 거다.’
야나카와 이스마엘 차관이 자신 있게 나선 이유도 이해가 된다. 이 정도 화력을 단시간에 퍼부으면 어지간해선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연방이 요구한 MAU의 조건 중 하나는 레기온을 압도하는 전투력이다.
연방도 근위대의 레기온을 꾸준히 연구했을 것이다. 전투력과 사양에 대해 익히 알고 있겠지.
‘……하지만 놈들은 일반적인 레기온이 아니야.’
인간성이 말살된 채로 명령에만 따르는 전투 기계다. 인간의 뇌를 부품으로 쓰는 ‘망령 병사’였다.
드르르르…….
기관포의 회전이 잦아들고 있다. 화력 투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움, 직여?
야나카의 당황한 목소리가 퍼졌다.
키이잉.
레기온 두 기의 안광이 연기를 뚫고 빛났다. 그들은 비틀거리면서도 움직이고 있었다.
스스스.
레기온들이 몸에 휘감긴 연기를 떨치며 나왔다. 그들의 외장은 엉망진창이었으나 치명적인 손상은 없었다.
‘피할 건 피하고, 맞을 건 맞은 거다.’
레기온의 손상은 고르게 퍼져있었다.
-어떻게?
일반적인 강화 외골격이라면 아무리 튼튼해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전신이 기계 갑주이며 뇌만 보호하면 된다. 최악의 전장에서도 버틸 수 있는 전투 기계다.
“당황할 것 없어. 야심 차게 준비한 공격이 실패하는 건 실전에서 일상다반사야. 중요한 건 다음 계획을 수립하고 나아가는 거다.”
-화력전에서 끝장내지 못했으면, 다른 방도가…….
야나카의 계획은 흐트러졌다.
“멍청하게 굴지 마.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봐. 난 외눈박이를 상대할 테니까, 넌 다른 놈을 맡아라.”
말과 달리 나는 야나카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야나카의 시험기는 레기온에게 처참하게 당할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전사의 뇌가 들어있는 레기온.’
레기온은 야나카의 조종석을 뜯어내선 가볍게 그녀의 목을 비틀겠지. 거리만 좁혀지면 순식간에 벌어질 일이다.
‘젠장…….’
싸우면 야나카는 여기서 죽는다. 이래서 고집이 강한 애새끼는 질색이다.
“꼬맹아, 너는 도망가라. 어차피 저놈들이 노리는 건 나야. 널 추격하진 않을 거다.”
-뭐?
“귓구멍이 막힌 거냐? 난 널 지키다가 죽고 싶지 않아.”
야나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레기온이 움직였다. 그들도 포화의 충격에서 회복했다.
-루, 카우스, 쿠스토리아.
그러나 레기온은 공격이 아니라 검지를 내게 뻗으며 말을 걸었다.
-……폐하께서 널 기다리신다. 제국 신민의 의무를 다하여라.
그 말을 남긴 레기온이 물러나고 있었다.
나는 위를 응시했다. 연방 소속의 공중차량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치직.
이스마엘 차관의 통신이 들린다. 난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일 처리가 끝난 걸 알았다.
-현 시간부로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씨는 벨라토 연방의 보호 아래에 있습니다.
……극적인 타결이었다.
난 이스마엘이 마음에 들었다. 내 예상보다 일 처리를 빠르게 한 사람이 지금까지 몇이나 있었던가? 최악의 예상이 빗나간 건 간만이었다.
* * *
나는 시험기의 손에 올라탄 채로 야나카와 함께 손수공업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게 한 약속대로 ‘야나카의 앞니’를 털어버렸다.
콰- 직!
내 주먹이 야나카의 얼굴에 꽂혔다. 힘 조절은 충분히 했다. 턱까지 박살 내면 야나카는 몇 달은 이유식을 먹을 것이다.
“으윽, 크읏, 윽.”
파일럿 복장의 야나카가 주춤거렸다. 그녀의 뒤에는 실전을 마친 시험기가 손수공업 직원의 정비를 받고 있었다.
“서류 처리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면, 너도 죽었고, 나도 위험에 빠졌을 거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넌 내 상관이 아니야. 내 판단대로 행동한 거다. 퉷, 아, 젠장.”
야나카는 바닥에 부러진 이를 연거푸 뱉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내 징벌을 피하진 않았다. 본인도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긴 할 터다.
“네 상관은 아니지만, 난 너보다 경험이 풍부해. 급박한 상황에선 내 판단에 따라야 했지. 이번에 넌 그저 운이 좋았던 거다. 기억해, 이따위로 굴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오래 살 생각은 없지만 기억해두지.”
말대꾸하는 꼬락서니가 내 심기를 아주 툭툭 건드린다.
나는 야나카의 뺨을 후려쳤다.
짜- 악!
야나카의 뺨이 터지면서 그녀의 어금니가 자리에서 이탈했다.
“방금은 싸가지가 없어서 처맞은 거다.”
생각해보니 싸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할 만한 자격이 내게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무렴 어떤가. 야나카가 내 과거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좀 뻔뻔해지자.
“맞는 건 불만이 없어.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마지막에 나 혼자 도망가라고 한 거지?”
“어설픈 꼬맹이는 방해가 되니까.”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며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있는 게 전력상 도움이 됐을 거야. 날 살리려고 한 거야? 몇 번 보지도 않은 나를?”
내가 코웃음을 흘렸다.
“착각도 유분수지. 네 방해를 받을 바에 혼자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릴…….”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다신 너와 같이 전장에 설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끔찍한 경험이었어.”
제국이 갑자기 그립다. 거긴 내가 합리적 판단을 내리면 싫든 좋든 따라왔다. 상관이고 부하이고 할 것 없이 말이다. 애새끼처럼 구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거기선 오히려 내가 가장 애새끼처럼 굴었지.’
난 쓴웃음을 지었다.
머지않아 이스마엘 차관과 연방의 군인들이 내 앞으로 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확보했습니다. 그쪽은 외교부에서, 아, 일단은 꼬투리는 잡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용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았으니까요.”
이스마엘 차관은 내 앞에 오면서도 쉴 새 없이 통신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살짝 쉬어있을 정도였다. 그도 고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단, 한순간도 쉬지 못했겠지.
“……아, 루카 씨.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도 상당히 조마조마했거든요.”
이스마엘이 내 앞에 서며 통신을 끊었다.
“아슬아슬했습니다. 저 꼬맹이 때문에요.”
“야나카는 아직 훈련생입니다. 너무 몰아세우진 마시죠. 제 잘못도 있고요. 저는 시험기의 화력으로 레기온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뭔가 좀 이상하더군요. 그 레기온들은요.”
이스마엘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전략무기연구부의 차관이다. 레기온의 통상적인 전투력을 감안해 판단한 것이리라.
“일반적인 레기온과 다른 부류니까요.”
나는 여기까지만 말하며 뒷말을 삼켰다. 앞으로 내가 가진 정보는 협상을 위한 자산이 된다. 호의로라도 낭비해선 안 된다.
‘아직 난 망명 상태가 아니야. 망명 심사를 위한 임시 보호다.’
이스마엘은 무난히 망명 심사를 통과할 거라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도 안심해서 기밀을 토해냈다간 그대로 버림받을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사태로 외교적 마찰이 다소 있겠군요. 제국이 공개적으로 보더시티에서 군사 작전을 펼친 건 오랜만이니까요.”
“보더시티에는 삼국의 협약이 있다고 아까 말씀하셨죠.”
“그건 비밀이지만…… 당신에겐 숨길 것까진 없겠군요. 보더시티의 운영에는 삼국의 합의와 자본이 투여됐습니다. 연방령만이 아니라 제국 어딜 가도 이렇게 많은 외계종족이 뒤섞인 곳은 없습니다. 자국 영토의 도시에 외계종족을 이렇게 유입시키고 싶은 국가는 없습니다. 다종족 국가를 표방하는 연방도 마찬가지죠.”
“보더시티는 거대한 실험장이자 쓰레기통이군요. 연방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게도요.”
예상하긴 했었다. 보더시티는 벨라토 소속이라기에도 그 정체성이 기묘했다.
삼국의 합의로 외계종족을 한 곳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외계종족과 접촉하고, 기술과 정보도 빼내고 싶지만…… 뒤섞이는 위험은 감수하기 싫은 거지.’
이스마엘은 말을 이어갔다.
“보더시티의 존속은 삼국 모두의 이득이기도 하죠. 곁에 두기 힘든 잠재적 혼란도 여기로 보내면 되니까요. 그 때문에 보더시티에선 타국의 상식적 수준의 염탐과 군사 활동은 암암리 모르는 척하며 넘어가곤 합니다. 보더시티는 어느 한 국가가 작정하고 뒤에서 조종한다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폭탄이니까요.”
보더시티가 용케도 유지되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존속을 바라기 때문이었다.
쓰레기통이 터지면 그 악취가 노바스 행성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정해진 구역에서만 쓰레기를 버린다면 다른 곳은 비교적 깨끗해진다.
“제 후원자인 쟈파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건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임시 보호라지만, 일단 저희가 루카 씨의 신원을 확보한 거니까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요. 망명 심사를 통과하실 때까진 당신에게 자유는 없습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도 예상한 바다. 보호 요청이란, 다른 말로 자진해서 목줄을 차겠다는 소리다.
“……통과하더라도 자유가 있을 것 같진 않군요.”
이제부턴 어떻게든 목줄을 느슨하게 찰 준비를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끊고 도망갈 수 있게 말이다.
내 말에 이스마엘은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쟈파 씨의 의식이 회복되면 통신 정도는 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약속드리는 겁니다. 아무래도 루카 씨는 쟈파 씨와 ‘각별한 사이’인 것 같군요.”
난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욕을 억눌렀다. 하도 참다 보니 목구멍에서 피가 울컥 솟는 느낌이었다.
참아야 한다, 루카. 이 염병할, 오해를 놔두는 게, 내게 유리하다. 적어도 쟈파와 통신할 기회가 생기니까.
인내의 피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