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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38

238
앙귀스 레지나의 손에 파올로가 죽었다.

파올로의 자택은 공동주택인지라 총성이 이웃집까지 퍼졌다.

‘증거인멸을 해야 한다.’

쟈파는 상황을 인식하자마자 행동했다. 슬퍼하거나 절망할 틈도 없었다.

그러나 공동주택 한복판에 일어난 총성과 살인 사건을 무마하기는 어렵다.

“나, 나, 아빠를…….”

앙귀스 레지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두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엘리제, 괜찮아요. 이건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키누안의 탓이죠, 키누안…….”

쟈파도 키누안의 짓이라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키누안의 유일한 걸림돌은 쟈파였다. 쟈파는 심리 장악이 쉽지 않은 자였다.

‘서재 일부가 비어있다. 뒤적거린 흔적이 있어.’

쟈파도 서재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아케인 문명과 파올로의 연구에 관심이 없었기에 무엇이 빠졌는지는 몰랐다.

‘키누안, 도대체 뭘 노리는 거지?’

또 내 머리가 타오를 것 같았다.

‘필요한 자료나 물건이 있다면 이미 서재에서 가져갈 기회가 과거에도 있었잖아. 뭐가 더 필요하다는 거야?’

키누안은 파올로의 유산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지젤의 정보를 제안했다.

‘거짓말쟁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키누안은 파올로의 유산 따위가 필요 없다.

난 키누안의 사고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어렵다. 놈의 그림자조차 밟기 힘들었다.

“엘리제, 총을 이리로…….”

쟈파에겐 키누안의 행방보다 앙귀스 레지나의 안녕이 더 중요했다. 그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먼저 움직였다.

“쟈, 파, 아빠가, 엄마를 죽였다고 했어, 그러니까, 쟈파도, 죽일 거라고.”

앙귀스 레지나는 쟈파를 피하듯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팔이 움찔움찔했다.

“키누안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건 거짓말입니…….”

쟈파는 말하다가 실언이라는 걸 깨달았다. 앙귀스 레지나의 눈이 커졌다.

“거짓, 거짓말이라고? 난, 나는 죄 없는 아빠를 죽인 거야? 그, 그러면, 나, 나는…….”

앙귀스 레지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여과 없이 보였다.

“아니, 그건 아닙……!”

쟈파가 앙귀스 레지나를 황급히 제지하려 했다.

앙귀스 레지나가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타- 앙!

쟈파가 간신히 앙귀스 레지나의 팔을 건드렸다. 그러나 총알은 앙귀스 레지나의 머릿속에 처박혔다.

“엘, 리제?”

쟈파의 목소리에 절망이 묻어나왔다. 여기서 앙귀스 레지나가 죽었다면, 쟈파조차 무너졌을 것이다.

‘앙귀스 레지나를 잃은 쟈파는 그 누구보다 냉혹하고 잔인한 타지룬이 되었을 거다.’

지금의 쟈파에게서 흐르는 온기의 근원은 앙귀스 레지나였다.

파르르.

앙귀스 레지나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쟈파에게도 더는 여유가 없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앙귀스 레지나를 안은 채로 뛰쳐나갔다.

이게 키누안이 남긴 파국이었다.

* * *

파국 이후, 쟈파의 삶은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홀로 남겨진 쟈파는 자신의 잠재 능력을 전부 발휘해야 했다. 그도 자신이 이 정도로 우수한 사람인지 처음 깨달았을 것이다.

일단, 앙귀스 레지나는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총알 때문에 뇌에 문제가 생겼는지, 아니면 심리적 상처 때문인지 그녀의 자아와 기억은 엉망진창이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여기서 의외라면 의외, 당연하다면 당연한 인물이 나왔다.

‘가야 선생.’

쟈파는 가야와 접촉했다. 가야는 가브리엘을 치료한 주치의이고, 코라 신성국 출신의 포스 사용자다.

쟈파는 앙귀스 레지나의 휠체어를 밀어서 가야의 병원을 찾아갔다.

“당신의 실력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보호자라도 제 치료 행위에 간섭하실 수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아이의 영혼을 현실로 끌어올 수만 있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쟈파는 가야에게 앙귀스 레지나가 겪은 일을 설명했다.

치료는 시작됐고, 쟈파는 주기적으로 가야의 병원을 방문해 앙귀스 레지나를 물었다.

“……엘리제는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해 왜곡하고 있습니다. 뇌 손상과 트라우마가 뒤섞인 탓에, 저도 무엇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그 아이가 현실로 돌아올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군요.”

쟈파와 가야는 오랜 상담 끝에 결단을 내렸다. 앙귀스 레지나의 탄생이었다.

쟈파의 눈앞에는 온갖 난제가 서 있었다. 불온한 소문을 잠재우는 것부터 우선이었다. 그리고 혼란을 틈타 쟈파 버거의 비밀을 캐내려는 이들도 다수였다.

쟈파는 자신이 쌓아둔 돈과 폭력을 이용했다. 그는 여느 타지룬처럼 냉혹하게 적과 싸워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쟈파는 거탑을 쌓아 올린 채로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보더시티의 유력가로 이름이 나 있었다.

‘자신의 손을 얼마든지 더럽힐 비위도 갖췄지.’

도덕적 죄책감으로 구토하던 타지룬은 온데간데없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족조차 납치해 산 채로 ‘풍미유’를 뽑아냈다.

보더시티의 어느 지하에는 ‘소스 공장’이 있을 것이다.

‘쟈파가 가진 파올로의 유산은 소스의 비법이다.’

쟈파가 챙긴 파올로의 유산은 타지룬을 이용한 풍미유 제조법이었다.

‘파올로도 풍미유 제조법만큼은 쟈파에게 끝끝내 비밀로 했어.’

쟈파는 파올로의 서재를 깡그리 뒤져서 제조법을 적은 노트를 찾아냈다. 그리곤 머리로 외우고선 모조리 불태워 없앴다.

스륵.

쟈파가 허전한 목덜미를 매만졌다. 웃기게도 폭탄 목걸이는 유대의 증거이기도 했다.

“어째서…….”

쟈파의 목소리가 공허했다.

파올로는 자신이 죽으면 쟈파의 폭탄 목걸이가 해제되도록 설정해 뒀었다. 그 말은 즉, 쟈파가 신호가 닿지 않는 곳까지 멀리 떨어져도 폭탄 목걸이가 해제된다는 소리였다.

‘그 사이코가 왜 그랬을까?’

죽은 파올로의 심경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전 부인인 졸라를 죽인 것도 파올로가 아닐 수도 있지. 저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오만하게 추측한 것에 불과하니까.’

파올로도 복잡한 사람이었다. 요리사로서의 재능도 있고 성취도 한 사람이 고고학에 매진하던 이유도 알 순 없다.

‘죽은 자의 내면과 생각을 알아낼 방법은 없다.’

쟈파는 차근차근 준비하며 나아갔다.

‘에퀘시안 용병들.’

에퀘시안 용병대를 전담으로 고용했다. 보아하니 에퀘시안 용병대는 쟈파 상사 매출의 일부를 비율로 떼서 보수로 받고 있었다. 괜히 그들이 전력을 다해 쟈파 상사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게 아니었다.

‘서서히 내가 아는 쟈파와 가까워지고 있군.’

쟈파는 쟈파 상사라는 공고한 성을 쌓았고, 앙귀스 레지나는 뒤틀린 기억과 불안을 가진 채로 현실로 돌아왔다.

쟈파와 앙귀스 레지나는 수년 동안 거의 마주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짧은 인사와 대화만이 오갔다. 그런 작은 일상만으로도 쟈파에겐 충분한 위안이었을 터다.

‘이후, 쟈파는 키누안이 의도적으로 남긴 단서를 쫓아갔다.’

키누안은 아키에스 빅티마라는 실마리를 쟈파에게 남긴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쟈파는 키누안을 찾기 위해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들을 고용했다.

‘원한을 풀고, 죽은 파올로의 내면을 알기 위해서.’

문제는 고용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들이 무능하거나 돼먹지 못한 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앙귀스 레지나에게 집적거리기도 했지. 이건 앙귀스 레지나의 잘못도 있지만…… 쟈파에겐 알 바 아니었겠지.’

밥버러지들 ‘처분’에 지친 쟈파는 제대로 된 탐정을 고용하려 했다.

‘그게 바로 나다.’

쟈파는 지금까지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자본과 노력을 들여서 날 찾아냈다. 그 과정은 내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위험했었다. 쟈파 상사의 회계장부를 조작해야 할 정도였다.

‘이게 전부라고?’

쟈파의 기억은 끝나가고 있었다.

‘쟈파가 가진 파올로 콴의 유산은 풍미유 제조법이 전부야.’

이가 바득바득 갈릴 지경이다.

키누안이 쟈파를 통해 날 깨운 건 익히 아는 사실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또 날 가지고 논 거냐.’

내가 파올로 콴의 유산에 집중하는 동안…… 키누안은 무얼 할 셈이었지?

‘내가 놓친 게 있나?’

생각해라, 루카.

내가 모르는 조각이 있다. 그 조각을 당장 얻어낼 방법은 없다.

가진 것만으로 추론해서 가상의 조각을 형성하고, 그걸 현재라는 그림에 끼워 맞춰야 한다.

‘키누안의 행적을 설명할 수 있는…… 딱 알맞게 들어가는 가설이 존재할 거야. 놈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합리적 사고를 하고 있어, 분명히.’

뇌가 실타래라면 한 올 한 올 전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흐트러진 실을 하나씩 다시 엮어서 사고를 구성했다.

‘그 무엇도 놓치지 마.’

쟈파의 기억이 큰 의미는 없다지만, 단서가 몇 가지 더 생겼다.

그래, 아예 의미가 없진 않다. 키누안을 이해하고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될 터다.

난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쟈파의 기억이 멀어지고 있다.

우우웅.

시뮬레이션 기기의 진동음이 내 머리를 울려댔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호욧, 도움이 됐나요?”

헬멧을 벗기도 전에 쟈파가 말했다.

“적어도, 네 약점은 확실히 알게 됐군.”

“저는 불필요한 과거까지 전부 보여드렸습니다. 그 의미를…… 루카 씨는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쟈파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타인과 쌓아온 유대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과 다르다.’

그래, 맞는 말이다. 쟈파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나도 진작 알았어야 하는 일이다. 뭐, 결국은 내 탓이다. 내 삐뚤어진 생각으로 시야가 뒤틀리고 좁아진 탓이겠지.

앙귀스 레지나, 엔, 라피스…….

어떤 관계로든 모두가 쟈파를 믿고 따르고 있었다. 금전적 계약과 별개로 그들에겐 유대가 존재했다.

‘거짓으로 점철된 위선자라면 쌓을 수 없는 관계다.’

쟈파의 과거만 보아도 그러했다. 쟈파는 자신의 주변인을 소중하게 여겼다. 심지어 사이코였던 파올로조차도 말이다.

‘쟈파는 결코 선인은 아니다. 착하진 않아.’

하지만 세상에 선악으로 판별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중요한 건, 나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다.

‘이 타지룬은 날 쉽게 배신하지 않아. 손해를 어느 정도 보더라도 말이야. 도리와 의리를 지키려고 노력하겠지.’

이게 쟈파가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말로 백번 천번을 설명해도 내겐 와닿지 않는다. 그러니 방법은 보여주는 것뿐이지.

난 헬멧을 벗으며 시뮬레이션 기기에서 빠져나왔다. 시뮬레이션 기기의 열과 헬멧 때문에 머리가 뜨거웠다. 두피에선 땀도 끈적하게 났다.

스륵.

나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듯 쓸어올렸다.

“전 그저 키누안을 찾아 파국의 책임을 묻고 싶은 것뿐입니다. 정말로, 그게 전부죠. 호욧, 덤이라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제가 몰랐던 파올로의 면모도 알고 싶고요.”

쟈파는 에퀘시안 용병들을 뒤로 물리며 내게 다가왔다.

“쉽진 않을 거다, 쟈파. 솔직히 대답해 주지. 우리의 움직임을 키누안은 꽤 상세하게 알고 있다. 어떤 방식인지는 몰라도 말이야.”

“제게서 정보가 샌다는 말인가요?”

“그럴 것 같진 않아. 넌 철두철미하게 조직을 관리해. 키누안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정보를 얻고 있을 거야.”

생각에 잠긴 쟈파는 뒷짐을 지더니 좌우로 번갈아 걸었다.

‘나는 이미 키누안을 만난 적이 있다.’

난 이 말을 쟈파에게 하고 싶었다. 해야 할 것 같았다. 훗날, 괜한 오해를 받긴 싫었다.

“쟈파, 말할 게 있…….”

난 입을 닫곤 위를 응시했다.

스륵.

나와 똑같이 반응한 에퀘시안도 있었다. 엔도 그중 하나였다.

쩌어어어억!

천장이 갈라지고 있었다. 균열 사이로 시뻘건 불꽃과 푸른 화마가 번갈아서 흐르듯 번지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하다. 전장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다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뻔히 예상할 수 있다.

‘폭발.’

모든 게 느리게 보인다. 달아오른 내 몸이 움직였다.

휙!

나는 팔을 뻗어서 단숨에 쟈파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쟈파의 덩치는 나보다 커서 감쌀 순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옆으로 빼내려고 한 것이다.

콰- 아아앙!

폭발이 일었고, 집무실의 천장이 내려앉았다. 집무실의 모든 가구와 물건이 허공에 뜨더니 폭음에 휘말려 날아다녔다.

폭음의 공기압으로도 느껴졌다. 내 의식조차 잠시 흐려졌다.

쿠우우웅.

폭발의 여운으로 대기가 흉흉하게 울렸다. 나도 이리저리 밀려나며 여기저기 부딪혔다.

욱신, 욱신.

몸이 아프다. 어디가 아픈 건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지금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현재 사태를 보기가 싫다. 눈을 뜨기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우린 늘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보기 싫거나 인정하기 싫다고 해서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이 불행하다면, 우린 불행해져야 한다. 어쩔 도리가 없는 진실이지.

……자, 눈을 뜨고 일어서라,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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