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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파와 파올로의 이야기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종이에 베인 살갗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아릿한 이야기였다.
내 입장에선 뻔한 사랑 이야기보다 이편이 훨씬 재밌었다. 뭐, 재밌자고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현실의 오감에 집중했다.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이 바깥으로 열렸다.
우우웅.
시뮬레이션 기기가 가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으으으.
내 촉각은 대기의 흐름을 읽었고, 넓게 퍼진 청각은 사소한 쇳소리와 에퀘시안과 쟈파의 발자국을 감지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시뮬레이션이 흐려지고 있었다. 바깥에 인지의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뮬레이션 내부로 인지를 집중했다. 여러 겹으로 흩어지던 시뮬레이션의 풍경이 다시 또렷하게 뭉쳤다.
우우웅.
가짜 청각 신호가 내 뇌를 감싸며 진동음을 만들어냈다.
어느덧, 내 시선이 쟈파의 기억과 겹쳤다.
파올로의 식당이 보였다. 쟈파는 수갑과 족갑 때문에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캉, 캉.
파올로가 칼을 갈고 있었다. 손놀림은 노련하다 못해 경쾌하게 보일 정도였다.
쟈파는 바로 말을 내뱉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듯 침묵했다.
“어이, 인간의 수명은 너희보다 짧아. 우리의 시간은 동등하지 않지. 시간을 낭비할 거면…….”
파올로가 재촉했다. 그제야 쟈파는 입을 열었다.
“저는 메노아 가문의 추방자입니다.”
쟈파는 자신의 가문을 털어놓았다. 이건 치명적인 약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널 토막 내서 부위별로 팔아치우는 것보다 가문에 알리는 돈이 더 된다는 말인가?”
“아뇨. 메노아 가문에게 연락하면 전 몇 시간 뒤에 시체가 되겠죠. 그저 제 약점을 먼저 드러낸 겁니다.”
“흠, 네가 메노아 가문 소속이라는 걸 어떻게 믿지?”
“메노아 가문에 대해 잠깐만 조사해 보시면 알 겁니다. 제 말이 거짓이더라도 메노아 사람들은 절 죽이겠죠. 거짓으로 가문원이라 말하는 자를 살려둘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파올로의 칼갈이가 멎었다. 그는 쟈파의 제안을 들어보려는 모양새였다.
“후, 난 네게 악감정은 없어. 그러니 네 이야기를 들어볼 용의는 있다.”
파올로의 말투가 부드러웠다. 쟈파도 겨우 숨을 돌리고선 말을 이어갔다.
“이런 식의 돈벌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혼자서는 위험하죠. 제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보더시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수익을 나눠주면요.”
“타지룬과 동업을? 내가 바보로 보여? 당장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무런 말이나 내뱉는군.”
“……저는 다른 타지룬과 다릅니다. 그 때문에 추방당했죠.”
파올로가 머리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다르다고? 어떻게?”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당신과 같은 인간 남성을요. 가문의 끔찍한 치부죠.”
파올로도 살짝 놀라서 눈을 옅게 뜨더니 턱을 매만졌다.
“믿기 어려운 말이로군.”
쟈파가 혀를 날름거렸다.
“몸으로 증명…….”
나는 의식적으로 시뮬레이션을 가속했다.
……그러니까, 이다음 내용은 시각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쟈파는 말로 형용하기 싫은 방법으로 자신의 이종족 성애를 파올로에게 증명했다. 성적 흥분은 거짓으로 속일 수 없는 법이니까.
쟈파의 기행을 지켜보던 파올로는 연마봉과 칼을 철제 선반 위에 놓았다.
“좋아, 이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 반응을 내보일 순 없겠지.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쟈파는 다소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건이라면?”
“이걸 목에 달아라. 그래야 널 온전히 믿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폭탄이 설치된 목걸이야. 나도 험한 꼴을 보기 싫으니 자력으로 해제하려 들지 마라.”
파올로가 품에서 차가운 폭탄 목걸이를 꺼냈다.
“……당신이 채워주신다면 기꺼이.”
쟈파가 몸을 돌리더니 등을 파올로에게 내밀었다.
철컥, 삑.
폭탄 목걸이의 걸쇠가 걸리더니 작동음이 났다.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을 거라 믿겠다. 충분히 돈을 벌면 널 풀어주지. 나도 쾌락 살인마는 아니야. 살인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목걸이가 눈에 띄니 당분간은 스카프로 목을 가리고 다녀.”
파올로가 쟈파의 수갑과 족갑을 하나씩 풀었다.
팔다리의 자유를 찾은 쟈파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했다.
* * *
파올로의 주 수입원은 출장 요리였다. 그것도 상당히…… 고약한 취향을 가진 부자를 위한 출장 요리였다.
‘파올로는 고기 도축과 출하까지 모두 촬영하고, 파올로의 고객은 그 영상을 보면서 요리 과정과 식사를 즐긴다.’
표현은 도축과 출하라곤 하지만, 살인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제국의 타락한 귀족만큼이나 역겨운 짓거리였다.
타락한 부자를 만족시켜 주는 대가로 파올로의 수입은 상당했다. 한 번만 출장 요리를 나가도 몇 달은 돈 걱정이 없었다. 생활비뿐만 아니라 연구비로도 충분할 정도의 거금이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 정도의 돈이…….”
“넌 알 것 없어. 어차피 나와 계속 동업한다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고.”
파올로는 아케인 문명을 연구했다. 아케인 관련 물품은 쉽게 구할 수 없다.
작동하는 유물의 가치는 당연히 값을 매기기 힘들 정도이고, 별다른 가치가 없는 골동품조차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식당 운영으로 충당할 만한 지출이 아니었겠지.’
쟈파도 파올로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쟈파는 타지룬 종족의 기준으로 ‘매력적인 옷’을 입고선 거리를 누볐다.
보더시티에는 여러 이유로 홀로 다니는 타지룬이 제법 있었다.
쟈파는 그런 떠돌이 타지룬을 유혹해서 파올로에게 넘겼다. 가끔은 타지룬 말고 다른 종족도 있었다. 이종족 성애는 내 생각보단…… 꽤 있는 일인 듯했다. 하기야 지성체가 아닌 짐승에게 성욕을 품는 머저리들도 있으니, 이상할 건 없지. 아니, 이상하다!
젠장, 내 상식이 뒤틀리고 있군.
“쟈파, 역시…… 널 처음 볼 때부터 네가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어.”
오늘의 고기를 도축한 파올로가 창고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인간이면서도 타지룬의 생김새를 잘 구분하시네요.”
쟈파는 맨다리를 꼰 채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름 요염한 척하는 것 같았다.
젠장, 정말…… 빨리 이 시뮬레이션 기억에서 탈출하고 싶다.
“뭐, 요리사니까. 암컷인지 수컷인지, 어린지 늙었는지, 건강한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해야 해. 그러다 보니 타종족을 보는 관찰력이 늘 수밖에 없지.”
“호욧, 그렇군요.”
“그 이상한 웃음 좀 어떻게 해봐.”
파올로는 앞치마를 벗어서 걸며 말했다.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이미 습관이 됐습니다. 아, 그리고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이 고객 명단을 보세요.”
쟈파가 단말기를 작동하더니 고객 명단을 쭈욱 늘어뜨렸다.
이때부터 타지룬 특유의 사업수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모양이다.
“지금 빈도로도 벌이는 충분해. 네 덕분에 일 처리도 쉬워졌고. 난 연구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파올로가 완곡하게 사업 확장을 거절했다.
“이야기라도 들어봐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타지룬 창녀를 쫓아갔다가 행방불명된 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머지않아 돌겠죠.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있어야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전 아케인 문명에 관심이 없지만, 당신을 돕고 싶긴 해요.”
안정적인 수익 구조라는 말에 파올로가 솔깃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저번에 경매에서 사고 싶은 물건이 나왔지만 놓치고 말았지. 아케인 문명과 관련된 거라면 모조리 긁어모으는 졸부 새끼 때문에 말이야.”
“그리고 돈을 쓰기 위해서라도 사업체를 차려야 해요. 보더시티는 무법천지이지만…… 탈세만큼은 기가 막히게 잡으려고 드니까요.”
“맞아,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돈이 어디서 났냐고 연락이…….”
쟈파는 파올로의 세무 상담까지 했다. 어느새 그는 파올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파올로의 씀씀이는 커졌고, 쟈파 없인 유지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겉보기엔 꽤 이상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관계에는 큰 맹점이 있었다.
쟈파는 다른 타지룬과 달랐다. 그는 동정심과 죄책감을 다른 타지룬보다 더 크게 느꼈다.
“우, 으읍, 웨에엑!”
쟈파는 종종 심리적으로 몰려 구토했다. 저녁에 먹었던 쥐고기가 반쯤 녹은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서둘러야 해.”
쟈파의 정신은 서서히 한계에 이르렀다. 그는 다른 종족을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고 있다. 파올로 같은 사이코가 아니었다.
덜컹.
더 게워내던 찰나에 문이 열렸다. 소란을 들은 파올로였다.
“쟈파, 몸이 어디 안 좋은 건가? 네 건강이 나빠지면 나도 곤란해. 돈 걱정은 말고 병원을 가봐.”
파올로는 자상하게 말했다. 주먹을 뻗어서 안면을 뭉개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의 미소는 훌륭했다.
“먹은 게 체했나 봅니다.”
쟈파는 입을 닦으며 말했다. 파올로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음, 이게 무슨…….”
파올로가 바짝 엎드리더니 쟈파의 토사물을 쳐다봤다.
꾹, 쩝.
이윽고, 파올로는 쟈파의 토사물을 찍어서 혀에 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 속이 다 울렁거릴 정도였다.
파올로도 보통 사내가 아니었다. 세상에 보기 드문 미치광이다.
“무, 무슨 짓을!”
쟈파도 당황했다.
“아, 이 냄새와 맛! 기억이 났어! 종종 타지룬 고기에서 독특한 향취를 느낀다는 고객들이 있었지. 그걸 느낀 고객은 다음부턴 타지룬 고기만 찾아. 다른 고기는 손도 대지 않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 풍미지. 하지만 모든 타지룬 고기에서 이런 풍미가 나는 건 아니었어. 어떤 조건이 있는가 보더군.”
파올로가 감탄을 터트리더니 생각에 잠겼다.
……골 때리겠군.
한 가지는 확실했다. 파올로는 우수한 요리사가 맞긴 했다.
“쟈파, 당장 타지룬 하나를 꾀어내서 데려와 봐.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어.”
“지금요?”
쟈파의 반문에 파올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실험한다고 배를 가를 건데, 너로 실험할 순 없잖아. 그렇지? 난 널 좋아한다고, 쟈파.”
파올로는 산뜻하면서도 섬뜩한 사람이었다. 그는 ‘끈적거리는 악’과 거리가 멀었다.
‘다른 의미론 지극히 순수하다.’
선악 구분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끔찍한 소리지만 기이하고도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기억을 가속했다. 여러 실험과 개발과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쟈파 버거의 소스는 파올로가 개발한 게 맞았다. 그는 타지룬을 해부하고 신체 구조를 파악했다. 위액의 효소와 구강 구조, 여러 신체 기관…… 등등을 뒤적거리며 풍미를 조합했다.
파올로는 타지룬의 몸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조건이 갖춰지면 그 ‘특이한 풍미’가 난다는 걸 알아냈다.
그 성분만을 따로 추출한 게 쟈파 버거 소스의 핵심재료인 풍미유였다.
……그리고 쟈파 버거 소스를 생산하려면 살아있는 타지룬이 필요했다. 타지룬 고기가 아니라는 게 쟈파에겐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쟈파, 이건…… 내 인생, 아니, 우리의 인생을 바꿀 소스야.”
파올로가 퀭한 눈으로 말했다.
내 뇌리에는 솔직히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왜 이 새끼는 이런 재능을 놔두고 고고학 연구나 하고 자빠진 거지?’
파올로는 소스를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하다가 버거를 떠올렸다.
“가게 간판을 ‘졸라 버거’로 바꾸자고. 이건 대박이 날 거야!”
“졸라 버거?”
“아, 졸라는 내 죽은 부인의 이름이야. 엘리제의 친모지.”
쟈파는 흠칫했다. 나도 그 동요를 느낄 수 있었다.
‘쟈파-!!’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정하자, 쟈파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 타지룬도 이종족 성애는 문제가 아닐 정도로 맛이 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올로를 좋아하고 있다고?’
쟈파의 취향은…… 인간 남성으로 한정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다채로웠다. 인간인데 남자면 다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 그렇다고 아직 그리워하는 건 아니야. 고마워서 그런 거지. 졸라의 유산과 보험금 덕분에 고비를 많이 넘겼거든. 지금 내가 좋아하는…… 아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하하.”
파올로가 천연덕스레 말하며 쟈파에게 추파를 던졌다. 쟈파를 계속 이용하려면 성적 호감을 사야 한다는 걸 알기에 한 언행이다. 노바스 행성 전역을 통틀어도 이 정도로 비위가 강한 남자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파올로의 말을 듣고 쟈파는 한 가지 비밀을 알아챘을 것이다.
파올로는 가까이할수록 어설픈 사람이었다. 타인의 감정에 둔감하기에 말실수가 잦았다.
‘졸라를 죽인 건 파올로다.’
그 이유는 돈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