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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석재 옆에서 MAU 시험기의 기동을 보았다.
군사용 MAU 개발은 손수공업 말고도 많은 업체가 참여하고 있었다. 손석재의 말로는 수주에 성공해 양산까지 도맡는다면 단숨에 연방의 핵심 군수기업이 될 수 있다.
‘벨라토 연방정부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 막대한 자금이라는 게 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인 듯했다.
“이번 사업에서 선정된 물건은 연방을 상징하는 병기가 될 겁니다. 양산에 필요한 경제적 타당성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죠.”
손석재가 내 옆에서 중얼거렸다.
레기온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성능으로 따지면 레기온은 비효율적인 병기다. 근위대원 양산 비용도 어마어마했고, 레기온보단 미르미돈 같은 전갑의체를 양산하는 게 객관적인 전력 증강 효과가 더 컸다.
하지만 전쟁과 전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력이 작용한다. 그 인력을 만들고 이끄는 건 레기온 같은 상징들이다.
“파일럿이 바뀌자마자 기체의 움직임이 아예 달라졌군. 다른 기체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나는 시험기를 가만히 보았다.
우우웅! 키이익!
가속하던 시험기가 바닥을 짚으며 미끄러지듯 제동을 걸더니 방향을 바꿨다.
‘시험기의 파일럿은 야나카, 보얀의 친구.’
난 손석재가 모니터링 중인 화면을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야나카 본드레드였다.
“연방 정부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에 맞춘 기체니까요. 공식 파일럿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저렇게 움직이지 못하죠.”
야나카의 시험기는 사람처럼 건물 뒤로 엄폐하며 움직였다. 레기온에 비하면 동작이 둔탁하지만, MAU의 덩치를 감안하면 굉장히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었다.
키릭, 철컥.
시험기는 총기를 꺼내더니 사격했다. 표적에서 폭발이 일었다. 말이 ‘총’이지, ‘대포’나 마찬가지였다.
콰- 앙!
폭발이 일었다. 산산이 조각난 표적에선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제대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연방을 대표하는 병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리릭, 키릭!
시험기에서 부적절한 소리가 났다. 파일럿의 조작을 기체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회전하면서 자세를 낮추는 동작이었다.
“여기선 개선이 필요하겠군요, 하하.”
손석재가 연구부 차관에게 가더니 넉살 좋게 웃었다. 차관의 표정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업체 중에선 가장 앞서있네요. 3단계 기동까지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 보고서가 사실이었군요.”
차관이 시험기 기동을 보며 말했다. 그와 손석재 사이의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 보였다.
나는 멀찍이서 저들의 입술 움직임과 희미한 말소리로 대화를 엿들었다.
“저자가 그…….”
“네, 무쉬르 알 카슈라를 패퇴시킨 장본인입니다. 제국 출신이죠.”
차관과 손석재가 날 보며 속삭였다.
“이름이…… 루, 루……?”
“루카라고 합니다. 그 이상의 신상정보는 저도 모릅니다. 쟈파 상사 밑에서 현재 일하고 있더군요.”
“아, 그 쟈파 버거의……. 벨라토 시티에서도 분점이 있죠. 맛이 좋더군요.”
손석재가 차관에게 날 소개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시험기는 다른 동작을 수행하고 있었다. 전략무기연구부에서 나온 연구원들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도 손수공업의 평가는 상위권이었지만…… 당장은 독보적으로 앞서겠군.”
연구원들의 평가도 호의적이었다.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의체에 축적된 데이터는 상당히 유용했다. 수년을 걸쳐야 할 시행착오를 단번에 줄인 셈이었다.
‘손수공업이 경쟁사보다 수년을 앞서간다는 말이지.’
물론, 기술 유출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기술력이 우수해도, 경영자가 어리숙하면 핵심기술만 뜯기고 너덜너덜해지기 십상이지.’
연방 산하의 전략무기연구부라도 약탈자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손수공업이 조금만 틈을 보여도 기술만 빼먹고 버려버릴 터다.
‘기업가에겐 사악할 정도로 교활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내가 본 성공한 기업가는 그러했다. 쟈파나 손석재에게도 교활한 면모가 번뜩였다.
‘길다와 지젤도 마찬가지였겠지. 성공한 기업가가 되려면 순수한 공학 기술자로 남을 순 없어.’
조만간 나는 기업가로 12년을 버틴 길다와 마주할 것이다. 길다의 변모가 솔직히 두려웠다, 승산이 희박한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도 더.
저벅, 저벅.
차관이 손석재와 함께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시험기 기동이 종료되지 않았지만 더는 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현재로선 손수공업이 기술 선점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신생 부서인 전략무기연구부의 이스마엘 라입니다. 부족하지만 차관직을 맡고 있죠.”
정중한 관료였다. 안경을 쓴 그는 오랜 관습인 명함을 내게 내밀었다.
이름은 이스마엘 라가 끝이 아니었다. 외우기 힘든 본명이 길게 흘러가듯 쓰여 있었다.
나는 이스마엘에게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니콜라오스 쿠스토리아.’
오래전에 사망한 의붓형제의 느낌이 이스마엘에게서 흘러나왔다.
이스마엘도 메마른 체형에 이지적인 외모였다. 중년에 닿을 듯한 입술의 주름에선 경험과 젊음이 동시에 묻어나왔다.
“루카입니다.”
나는 평이한 태도로 명함과 악수를 받았다. 빈정거리나 거들먹거리진 않았다.
나라고 해서 모든 상대에게 맛이 간 망나니처럼 굴진 않는다. 보더시티에서 멀쩡한 상황에서 나와 만난 사람이 드물 뿐이었다.
“알 카슈라의 난동을 막아주신 것에 대해 연방 정부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이쪽에서도 골치 아픈 존재였죠. 당분간은 활개 치지 못하겠군요.”
의례적인 말이었다. 난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가 단독면담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단독이라면 손석재 대표님도 자리에서 제외한다는 말씀이시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손석재도 분위기를 보다가 미련 없이 물러났다.
나와 이스마엘은 조금 더 걸어가며 시험기 기동이 한창인 공터와 거리를 두었다.
“루카 씨께서 원하시는 연방의 고위 관료가 어느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손석재 대표님의 선에선 제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이게 내가 손석재에게 내민 조건이었다. 연방의 고위 관료와의 다리를 놓아줄 것.
‘쟈파는 절대 해주지 않을 짓이지.’
쟈파는 내가 자립하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원 아래에서 활동하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쟈파의 후원과 지원만으론 안위를 장담하기 힘들다.
난 두뇌가 핑핑 도는 걸 느꼈다.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다.
대답을 잘해야 한다, 루카.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간 얻은 정보와 지식의 조각을 전부 꺼내서 최적의 그림을 만들어내야 한다.
“……연방에는 제국 근위대 출신의 망명자가 몇 있을 겁니다.”
난 일레이의 말을 떠올리며 좋은 그림을 만들려 했다.
폭풍기 이후로, 제국에선 근위대원의 탈영과 이탈이 있었다. 누군가는 조용히 은거했지만, 어떤 이는 타국에 적을 두고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연장 정부에는 근위대원 출신의…… 그래,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매국노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분명히 몇 명 있을 것이다.
“제가 확답해드릴 수 없는 부분이군요.”
근위대원 출신의 망명자 명단은 기밀일 터다.
“그쪽에 제 ‘선배님’들이 계신다면, 제 이름을 알 겁니다…….”
난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심장이 불편하게 뛴다. 큰 죄로 가슴이 시커멓게 썩어가는 것 같다.
목구멍은 꺼끌꺼끌했다. 말이 나오기도 전에 소름부터 돋아서 기분이 꺼림칙했다.
아무리 그래도 난 제국민이다. 지금부터 내뱉는 말은 내 배경을 외면하는 일이었다.
해야 한다. 필요한 일이다.
나를 다독인다. 제국민의 자존심과 정체성이 내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이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아집이며, 제국의 세뇌가 내게 박아넣은 쐐기일 뿐이다. 지금은 머릿속의 쐐기를 뽑고 자유로이 사고해야 한다.
이스마엘은 내 말을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난 목에 걸린 가시를 삼키듯 침을 넘기고선 말을 이어갔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가 정식으로 벨라토 연방 정부에게 망명을 청합니다.”
처음에는 이스마엘은 내가 누군지 몰랐다. 그는 단말기를 작동해 쓰고 있는 안경과 연동했다. 상세한 정보를 열람하려는 듯했다.
머지않아 이스마엘의 동공이 커졌다.
* * *
시험기 기동이 끝났다. 그리고 나와 이스마엘의 대화도 마무리되었다.
“……알겠습니다, 루카 씨. 검토가 끝나면 즉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이스마엘은 바로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봐야 할 것이다.
‘벨라토 연방 내부에 망명한 근위대원이 있다면…… 내게 호의적인 발언을 내뱉을 가능성이 높아.’
나와 이스마엘은 악수를 끝으로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난 중대한 정보를 지닌 인물이다. 벨라토 연방은 나를 제국으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덤으로 이반 크라치아의 손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하겠지.’
하지만 다른 말로는 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진해서 벨라토라는 또 다른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정식으로 망명 요청이 받아들여지기 전에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손석재가 멀찍이서 시가를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끝내셨습니까?”
“덕분에.”
난 짧은 대답으로 정보 노출을 줄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으시겠죠?”
“잘 알고 있군. 어차피 짚이는 바가 있잖아. 궁금하면 떠보지 말고 말해봐.”
나는 손석재를 가만히 응시했다.
“망명 신청을 하셨겠죠. 아마 당신은 제국의…….”
“좋아, 거기까지.”
내가 손석재의 말을 끊었다. 나도 어렴풋이 예상했다.
손석재는 지나치게 내게 친절했다. 그는 내가 가진 개인의 무력 때문에 그만치 짓눌린 게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손석재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
12년 전, 난 제국에서 이름을 잠깐 떨친 적이 있었다. 조사해보면 내가 제국의 여러 귀족만이 아니라 황실과도 연관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사업가나 위정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개인의 무력 따위가 아니다. 개인이 뛰어나 봐야 어차피 군대를 이기진 못해. 중요한 건 영향력이야.’
아직도 내가 제국 신민에게 영향력이 있는 인물인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그러나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의 진짜 이용 가치는 ‘폭력’이 아니다.
내 가치는 쟈파에겐 ‘키누안을 추적할 수 있는 직관과 추론 능력’이고, 손석재나 이스마엘 같은 자들에겐 ‘제국에서 명성을 얻었고 영향력을 가진 자’라는 점이었다.
모두가 나를 이용하게 놔두자. 난 고요히 균형의 저울을 보고만 있는 거다. 올라타는 건 마지막 순간이다.
난 세력이나 집단이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력 간의 첨예한 균형이 평행할 때, 내가 유리한 방향으로 나란 무게추 하나를 더 얹으며 균형을 깨는 것뿐이다.’
아직은 균형이 팽팽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때마다 난 키누안을 떠올렸다.
키누안에게 많은 걸 배웠다, 정말로.
끼익.
나는 긴장도 풀 겸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실은 코피가 나올 것 같았다.
쏴아아아.
난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코를 쭉 누르듯 짜냈다. 핏물이 인중을 따라 흘렀다.
‘눈도 조금 충혈됐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을 거야.’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이게 보더시티에서 마주한 사건들 때문인지, 라자루스의 치료가 완벽하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다.
끼이익.
화장실의 문이 열렸다. 난 거울을 보면서 입을 움직였다.
“여긴 남자 화장실이다.”
“아직 들어가진 않았어.”
야나카가 화장실 입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시험기 조종 때문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머리카락은 땀으로 폭삭 젖어있었다.
“용건은?”
“보얀이 이상해. 얼마 전부터 우리 쪽 모임에 나오지 않고 있어. 명색에 보호자니까 뭔가 알고 있겠지?”
야나카는 보얀 때문에 온 것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정상적으로 병원에서 약을 타 먹고 있어.”
“병원에서 약을 좀 타 먹는다고 해결될 것 같아? 크롤러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된다면 종족 간의 갈등은 진작 사라졌겠지.”
피곤하다. 오늘은 이만 쉬고 싶었다. 하지만 야나카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걱정되면 네가 찾아가 봐. 학교는 나오잖아.”
“보다시피 나도 파일럿 임무로 바빠. 요즘은 학교에 나갈 시간도 없어. 보얀에게 신경을 좀 써봐, 키다리 아저씨.”
야나카가 문을 연 채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할 말이 끝났으면 꺼, 아니, 가봐라, 꼬마야.”
난 인내심을 발휘해 마지막 말을 곱게 내뱉었다.
야나카는 보얀을 걱정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적으로 삼을 이유는 없지.
‘보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서 보얀까지 신경 쓰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라그나타의 말이 떠오른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버려야 한다면…….
나는 눈을 감았다. 많은 생각이 든다.
빠각.
내가 잡고 있던 세면대가 의수의 악력 때문에 부서졌다. 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