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227

227
우리 인류의 고향은 지구다. 그러나 지구를 향한 그리움은 유전자 단위로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아니, 내겐 그 정도의 향수마저도 남아 있지 않겠지. 내 고조의 고조부터가 지구 출신이 아니다.

나와 제국민은 ‘아크’라는 황량한 유배 행성의 혈통이다. 생명과 거리가 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국의 선조는 의체라는 강화책을 택했다.

……잡설이 길구나, 루카.

지구, 아크, 그래,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현생 인류의 보금자리는 노바스 행성이다. 여긴 인류를 비롯해 온갖 외계종족이 뒤섞인 우주의 용광로이고, 그 중심이 바로 보더시티였다.

‘키누안, 키누안, 키누안…….’

그 사내가 보더시티의 핵이라는 듯이 군중 사이에 서 있었다.

노바스 행성의 중심이 보더시티이고, 그 핵이 키누안이라면…… 노바스 행성의 주인공은 키누안이라는 소리인가.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망상을 나아가 보자, 노바스 행성이 이 우주의 중심 무대라면?

우주, 노바스 행성, 보더시티, 키누안.

중심으로 나아가고, 중심이고, 중심이 되고, 중심인 것처럼.

내 우주의 중심에는 키누안이라는 점이 찍혀 있었다. 그의 인력을 따라 내 우주가 회전한다.

우주가 키누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래, 질릴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망상이다. 그 정도로 나는 키누안의 존재감이 짓눌렸다.

키누안을 보자마자 내 사고가 미쳐 날뛰고 있다. 내 뇌에선 오류라도 난 듯이 전투 반응조차 일지 않았다. 어떤 반응을 내야 할지 이성도 본능도 알지 못했다.

‘내 특기인 공격성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호르몬샘이 막히다 못해 메마른 것 같아.’

기계적인 전투 반응을 억지로라도 일깨웠다. 내 의체의 출력이 높아지고 있다.

‘나는 키누안을 만나자마자 내가 폭주할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다. 너무나 복합적인 감정이 나와 키누안 사이에 있었다. 마주친 상황과 시간조차 기이했다.

으득.

나는 키누안을 향해 걸어갔다. 타인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을 거세게 밀치며 나아갔다.

“이, 봐, 컥. 아아악! 악!”

날 붙잡는 이의 손목이 부러진다. 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내치며 나아갔다.

루카라는 무딘 칼날이 키누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 나, 나는…….’

나는 부들거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키누안에게 감정과 심리를 지배당하지 마라. 놈의 의도대로 사고하지 마-!!

‘하지만 이 분노와 공격성마저 키누안의 의도라면?’

아, 제발, 그딴! 등신! 같은! 생각! 좀! 죽여버려라! 루카! 언제까지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른 키누안에게 짓눌린 채로 살아갈 거냐고! 이 병신! 멍청한 새끼!

그러니까, 제발, 좀, 지지 마라.

뿌득!

나는 새끼손가락을 들어서 이마의 상처를 후볐다. 드릴로 천공한 지점이었다. 거즈가 들썩이다가 떨어졌다.

뿌득, 뿌득.

이마에서 새어 나온 핏물이 내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아, 하아. 잘 들어라, 멍텅구리 뇌.”

나도 내가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한 번만 더 싸우기 전에 혼자서 미리 지면…… 후비는 게 아니라 안쪽까지 쑤셔서 분홍빛 속살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넌 내가 아니야. 난 루카라는 인간이지, 너는 내 부품이고. 부품답게 똑바로 현실을 인지해라. 망상과 착각으로 날 속이지 마.”

난 내 뇌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협박을 지껄이고 있다.

드디어 제대로 미쳤구나, 루카. 정신병원 VIP실을 백 년 정도는 예약하고도 남을 기행이다.

츠즈즈.

하지만 퍼져있던 현실 감각이 돌아왔고, 내 육신의 호르몬 분비 기관이 드디어 작동하고 있었다.

‘내 뇌가 키누안을 적으로 인지했다.’

저 너머의 키누안은 흥미롭다는 듯이 날 보고 있었다.

난 치미는 공격성을 의식으로 벼려냈다.

키이잉.

내면의 칼날은 키누안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예리하다.

우뚝.

나는 키누안 앞에 섰다. 그와 나의 키는 거의 같다시피 했다. 이젠 내가 조금 더 클지도 모르겠군.

“오랜만입니다, 교관님.”

내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네.”

“지금 제가 건강해 보인다면, 그 눈깔을 교체하셔야겠군요.”

키누안이 웃었다. 몸 전체가 들썩이는 인간적 반응이었다.

“자네의 싱싱한 반응이 바로 폭발하는 생명의 증거지. 그간 이런 대화가 참으로 그리웠네.”

난 그를 보았다. 키누안 본인이 맞았다. 전신의체라지만 결코 로봇이 아니다.

12년 전에도 쓰던 그 낡은 의체 그대로였다. 사소한 흠집과 생채기조차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째서 본체로 나타난 거냐.’

차라리 내 앞의 키누안이 정교하게 복제된 로봇이면 좋겠다. 그가 얕은 수작을 부린다면 난 ‘키누안에 대한 경외’를 멈출 수 있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자네에게 잘 어울려. 언제나 날 놀라게 하거든. 저기 노점상에서 간단히 식사나 하지 않겠나.”

키누안은 사람으로 꽉 찬 노점상을 가리켰다. 뭘 파는지 몰라도 알싸한 향이 났다.

“우리가 식사하며 회포를 풀 사이는 아닌 듯합니다만…….”

“섭섭하게 굴지 말게. 지젤이 저 노점의 면 요리를 참 좋아했지.”

아, 드디어, 그 이름이 키누안의 혓바닥에 올라왔다. 내 머리카락이 하나하나 곤두설 것 같다.

난 눈을 감았다.

……손을 뻗어 키누안의 목을 비튼다. 통조림을 따듯 두개골을 가벼이 열어 뇌를 꺼냈다. 분홍빛 반죽을 저며 지젤의 행방을 알아낸다.

좋아, 여기까지 상상했다. 입맛이 돌 정도로 달콤한 상상이었다.

나는 눈을 뜨며 상상을 깨트렸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여기서 키누안의 뇌를 통째로 가져가도 정보와 기억을 추출하진 못할 거다. 별다른 기술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느낌이 그러했다.

나도 기억을 뽑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키누안은 말할 것도 없지.

“……생각해 보니 회포를 풀지 못할 것도 없죠. 교관님이 쏘시는 겁니다.”

내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비록 내가 무직이지만, 제자를 뜯어먹을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네.”

우린 노점상으로 접근했다.

웅성, 웅성, 후루룩, 짭짭.

노점상은 사람으로 가득 차서 앉을 곳이 없었다.

“호오, 마침 자리가 ‘둘’이나 남았군. 거참,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이 우주가 마련한 자리 같지 않나?”

키누안이 턱짓하며 말했다.

“우연히도 자리가 딱 ‘둘’이나 남았군요.”

나는 앉아있던 사내 두 명의 어깨를 잡았다. 적당히 불량하게 생긴 걸 보니 눈치가 빠를 것 같은 놈들이었다.

으득!

내 의수의 손아귀에 힘이 걸렸다. 손끝이 사내들의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식사가 마침 끝났지? 이런 가게는 회전율이 중요하잖아. 빨리빨리 비켜달라고.”

내가 사내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그들의 어깨에서 핏자국이 번졌다.

“커억, 끄읍, 꺽, 끝, 식, 식사 끝!”

“쓰읍, 아, 아프잖아! 일어난다니까! 일어나겠다고! 젠장!”

사내 두 명이 그릇과 젓가락을 통째로 들며 일어섰다. 그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나와 키누안이 풍기는 ‘위험한 기색’을 알아챘다. 역시 적당히 불량하게 생긴 놈들답게 눈치가 빠르다.

탁! 탁!

노점상 주인은 삶은 면을 툭툭 털며 무심하게 우리를 보았다. 흔한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불쥐볶음면 둘.”

키누안이 먼저 앉으며 말했다.

“불쥐?”

내가 반문하며 키누안 옆에 앉았다. 일상적인 말과 달리 내 뇌에선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보더시티는 쥐고기가 별미지. 먹어보지 못한 모양이군.”

음식은 금방 나왔다.

매운 양념에 면을 버무리고, 그 위로는 토막 낸 쥐고기를 올린 음식이었다.

첫인상은 음식이라기보단 고문식이었다. 젓가락으로 끝만 찍어서 먹어보니 혓바닥에서 강렬한 열감이 올라왔다.

“이건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잖습니까.”

“그거 아나? 뇌에서 고통과 쾌락을 담당하는 부위는 밀접하게 붙어있지. 사실상 동일한 기관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야. 고통이 쾌락을 만들고, 쾌락이 고통을 만드는 까닭이지. 저들의 들뜬 표정을 보게나. 통각만으로 열락을 얻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도 키누안은 스승인 것처럼 굴었다. 난 눈을 가늘게 뜨며 조금씩 음식을 깨작깨작 먹었다.

“수업은 됐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하시죠. 여긴 쟈파의 사옥이 멀지 않은 위치입니다.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옛 제자의 자비와 정에 기대 안전을 도모하진 않겠죠. 설마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셨다면 여기가 키누안이란 존재의 여정이 끝나는 날이군요.”

나는 의체의 출력을 높였다. 키누안을 박살 내는 데는 1초도 쓰지 않을 것이다.

드드드드드.

내 몸에서 흘러나온 고출력 진동 때문에 음식 가판대가 떨렸다.

“자네가 궁금해하는 건 지젤의 행…….”

“질문은 제가 한다고 했습니다, 키누안. 예의를 담은 경고는 이게 마지막입니다.”

“내가 말할 건 하나네. 지젤의 행방이…….”

키누안은 나를 구태여 자극했다.

나는 키누안의 뒷덜미를 잡아서 가판대에 찧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내 등덜미를 저미는 한기가 있었다.

싸아아아.

난 직관의 방향을 따라 동공을 움직였다.

툭, 덜그럭.

식사하던 이들의 손동작이 멈췄다. 젓가락이 그릇과 가판대, 혹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삐걱.

쥐고기를 썰던 주인의 손길도 멎었다. 그의 식칼은 곰팡이가 핀 도마에 꽂힌 채로 침묵했다.

우웅, 우우웅, 웅.

미미한 고주파음만 들렸다.

주르륵.

노점상 주인을 비롯해 손님들의 목덜미에는 핏빛 선이 번지고 있었다.

‘모두 죽었다.’

노점상 주변을 오가는 인파에는 나조차도 인지하기 어려운 암살자들이 섞여 있었다. 상당히 노련해 기척이 없다시피 했다.

‘아니, 아무리 노련해도 이상할 정도로 기척이 투명해.’

그 이유를 당장 알 순 없었다.

늘 말하지만, 아키에스 빅티마는 무에서 유를 만들지 못한다. 내가 아는 지식 내에서 작동하는 사고술이다.

“자네의 말이 맞네. 내가 늙었어도 자네의 정에 기댈 정도로 나약해지진 않았지.”

키누안은 쥐고기를 한 점 집어먹으며 말했다. 질겅질겅 씹는 소리가 고요히 퍼졌다.

“약해지고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습니까? 뭐,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건 압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죠. 거짓 그 자체가 된 사람에게 무의미한 짓이니까요.”

“훌륭하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제자다워. 내가 키운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 중에서 자네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네. 이건 명백한 진실이지.”

“여전히 칭찬이 후하시네요.”

내가 시큰둥하게 입꼬리를 비틀다가 코를 움찔했다.

피 냄새가 짙어지고 있었다.

노점상의 주인과 손님들의 목에서 핏자국이 길어지고 넓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상처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들의 머리는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몸통에서 이탈해 바닥을 구를 터다. 그때까지만 대화 시간이었다.

“이들은 데드로닌이네. 자네라도 쉽사리 감지하지 못할 거야. 여러모로 독창적이거든.”

데드로닌이라는 단어는 나도 알고 있다.

예전에 내가 하층 구역에서 키누안을 뒷조사할 때에 언급된 경호회사 명칭이었다. 물론, 그 회사의 사람들은 아닐 터다. 아마 키누안이 즐겨 쓰는 단어겠지.

“발렉도?”

“흠, 아, 발렉, 발렉. 그래, 잊고 있었군. 발렉은 데드로닌 중에 최약체였지.”

지나가는 군중에서 흐릿한 웃음이 몇 번인가 흘러나왔다. 여러 가지로 기분 나쁜 놈들이군.

주르륵.

노점상 주인의 머리는 당장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았다. 목덜미의 핏자국이 목걸이처럼 짙어졌고, 앞섶은 피에 흠뻑 젖어갔다.

키누안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탐색전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고 말았다.

“교관님이 키우신 놈들도 제법 까다로워 보이지만, 어디 한번 해볼까요……. 에퀘시안 용병들도 제법 유능한 듯하니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코트로 들어간 손가락은 자동추적 권총의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어렵겠지만 해볼 만한 도박이다.’

내 기세를 눈치챈 키누안이 젓가락을 내려놓고선 날 올려다봤다.

“……지젤에 대한 정보와 파올로 콴의 유산을 교환하지.”

키누안이 마지막까지 누르고 있던 용무를 꺼냈다.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