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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25

225
나는 손수공업 부지를 떠나 쟈파 상사의 사옥으로 돌아갔다.

쟈파 상사 사옥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에퀘시안 용병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들은 적을 보듯 날 관찰하고 있었다.

‘잠재적인 적.’

저들도 날 그렇게 인식했다. 에퀘시안 용병의 태도를 탓할 건 없다.

‘나도 줄곧 저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언젠가 싸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엔과 에퀘시안 용병을 대했다.

위이이잉.

승강기가 빠르게 치솟았다. 난 쟈파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실물은 간만이로군, 쟈파.”

쟈파는 등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는 창밖의 보더시티를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호요오오오, 사고뭉치 탐정님께서 돌아오셨군요. 편히 앉으시죠.”

쟈파가 양손의 끝을 마주치며 말했다. 긴 손톱이 부딪치면서 까득까득 소리가 났다.

“편히 앉으라면 앉아야지.”

난 의자에 앉으면서 발을 집무실 책상에 올렸다.

쟈파는 내 무례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는 창을 등진 채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이번엔 선을 넘으셨습니다.”

“언제는 선을 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군.”

“손수공업과 엮이긴 싫었습니다. 루카 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됐죠.”

쟈파가 화를 내는 건 손수공업 때문이었다. 그는 손수공업을 굉장히 곤란하게 여기고 있었다.

“너희들이 손수공업을 꺼리는 이유가 뭐지? 라피스도 너도 담력 하나는 보통내기가 아닐 텐데 말이야.”

“손수공업은 전력이 많습니다. 외계종족을 실험체로 납치해 무기 시험에 사용하고…… 실전 시험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종족의 군락을 공격했었죠. 무장테러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나는 머리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턱을 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떡하니 멀쩡하게 버티는 게 이상하잖아. 아무리 보더시티라지만 연방 정부가 그냥 놔둔다고?”

“증거가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손수공업은 생각보다 미치광이 집단입니다. 악과 독이 바짝 올라서 여차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놈들이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두가 두려워하고 꺼리는 집단이 될 수 없다.

단순한 미치광이 무장집단이라면 갱단과 다를 바가 없다. 여차하면 짓눌러서 부수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내가 손석재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쟈파의 입에서 손수공업에 대한 객관적 확신을 끌어내려 했다.

“……그리고?”

“호요옷, 손 사장의 역량과 인맥은 굉장히 뛰어나죠. 공학자로서도 우수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연방 정부의 고위직과 깊게 연루되었다는 겁니다.”

“대충 예상은 했어. 손석재가 벨라토 연방의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겠지.”

“벨라토 연방은 다양성 원칙으로 다종족의 공존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여러 종족과 얽히면 갈등과 증오는 필연적으로 생기죠. 손수공업은 그 증오를 받아먹는 집단입니다. 양지에서 외계인 혐오를 내뱉지 못하는 자들이 뒤에서는 손수공업을 지원하고 있죠. 어둠의 비호를 받는 이들입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게 쟈파가 손수공업을 꺼리는 이유였다.

“쟈파 상사와 손수공업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벨라토 정부는 어지간해선 손수공업의 손을 들어주겠군. 네 인맥과 뇌물로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거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그래서 저들과 엮이기가 싫은 겁니다. 일방적인 시비에도 참아야 하니까요.”

나는 미소를 유지했다. 손수공업의 부정적인 면모는 잘 알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외계종족을 대상으로 한 증오다.’

내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른 말로는 인간종족인 내게 손수공업은 무척이나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 손석재가 날 무척이나 좋아하더군. 보더시티의 민간에서 나 정도 되는 ‘인간 전투요원’을 찾긴 힘들 테니까.”

손석재는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의 언행과 태도에서 절실히 느꼈다.

“호요오옷, 루카 씨. 방금의 발언은 진심이십니까?”

쟈파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난 헛웃음을 흘렸다.

“쟈파, 넌 아직도 내게 숨기는 게 있어. 물질적 지원은 고맙지만, 그것만으로 널 무작정 신뢰할 순 없지.”

나는 오감을 곤두세웠다. 얽힌 오감은 육감의 촉수가 되어 쟈파를 훑고 있었다.

‘이젠 타지룬도 어느 정도는 간파할 수 있다.’

난 타지룬 종족에 익숙해졌다. 저들의 근간은 포유류가 아니라 파충류 쪽이다. 그래서 여러 감정 신호의 표출이 인간이나 포유류 기반 종족과 다르다.

‘하지만 그 차이도 적응하고 익숙해지면 그만이지.’

결국은 타지룬도 인간과 어울리며 사는 지성체 종족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나 가치관, 도덕관념. 그런 면에서는 아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엇나간 종족은 아니다.

……그러니 익숙해지면 읽을 수 있다.

“앞으론 루카 씨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 보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무쉬르 알 카슈라를 해치우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의 역량은 그 끝을 알 수가 없군요.”

쟈파가 화제를 넘기려 했다. 그도 내가 속내를 읽으려 한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키누안처럼 말이지?”

내 말에 쟈파가 한숨을 쉬었다.

“……네, 키누안처럼요. 키누안도 알면 알수록 그 깊이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죠. 어쨌든 저도 라피스에게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의체 대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전신의체라는 것부터가 놀랍더군요.”

“제국에선 그 정도의 중무장 전투의체를 전갑의체라 불러. 인간을 본떠 만든 게 아니라 인간형에서 엇나가 있지. 카슈라도 마찬가지다. 감각 기관도 통상의 의체와 다르고, 이목구비도 인간을 흉내 내지 않았어.”

나는 여기까지만 설명했다. 다음 말은 속으로 삼켰다.

‘카슈라의 전갑의체는 당연히 상시 의체로 쓸 수 없는 사양이다. 놈의 의체는 철저하게 전투용이고 인간적인 기능이 거세된 터라…… 인간성 마모가 지독할 거야.’

제국의 그림자 근위대가 생각났다. 인간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전투 기능만 극대화된 뇌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카슈라에겐 인간성이 남아 있었어. 놈의 언행에선 감정이 풍부했지.’

카슈라에겐 비밀이 많았다. 금속 상자의 뇌가 몇 개인지도 궁금했다. 만약 하나라면 그거 나름대로도 놀라울 일일 것이다.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뇌는 놓쳤더군요.”

“탓하는 건가? 난 최악의 상황에서 놈과 맞닥뜨렸어. 살아남다 못해 패퇴시킨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단지, 저는 객관적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키누안을 찾을 수 있는 흔적을 놓친 거니까요. 제가 루카 씨에게 막대한 지원을 쏟는 이유는 오직 하나라는 걸 명심하세요.”

“내게 숨기는 정보가 없었다면 일이 더 편해졌을 거야.”

“제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은 키누안 추적과 무관한 정보입니다.”

“뭐가 무관하고 유관한지는 내가 듣고 판단할 일이지. 자의적으로 재단하지 마라, 쟈파. 파올로 콴은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었지. 그 집에는 노트가 몇 권 비어있어. 네가 가져간 건가?”

나는 찰나를 늘어뜨렸다. 쟈파의 동요가 느껴졌다.

‘쟈파가 파올로의 노트를 가져갔다.’

쟈파가 부정하기 전에 추궁해야 한다. 난 바로 말을 뱉었다.

“다 알고 있으니까. 허튼 변명은 집어치워. 미리 말하는데, 내 지인을 인질로 잡고 싶으면 얼마든지 잡아봐라. 라그나타야 죽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지. 보얀? 주워 온 고양이가 뒈지면 마음이 좀 쓰리겠지만 그뿐이야. 가브리엘? 오랜 지인이지. 죽으면 꽤 화가 나긴 할 거야. 그 분노는 쟈파 상사 사옥을 터트릴 정돈 되겠지.”

“루카 씨…….”

쟈파가 서글프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저 감정 신호에 속지 마라, 타지룬은 영악하다.

“해볼 테면 해보자고. 이젠 나는 보더시티에서 막 깨어난 알몸의 원숭이가 아니야. 너와 공멸할 수 있게 되면서 진정으로 대등해졌지.”

쟈파의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이윽고 그는 떨림을 붙잡은 채로 나를 응시했다.

“절 궁지로 몰아세우는군요. 하지만 환영입니다. 이 정돈 돼야 키누안을 잡을 수 있겠죠. 제 수중에서 통제되는 사내가 그 괴물을 쫓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쟈파가 언제 서글퍼했냐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내게 비밀을 만들지 마라, 쟈파. 숨긴 독을 전부 토해내.”

“독을 내뱉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나흘 뒤에 다시 찾아오시죠. 그때 파올로의 유산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나는 쟈파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흉흉하다고 느꼈다. 창을 등진 그의 얼굴에는 역광이 드리웠다. 붉은 기가 도는 누런 동공이 세로 꼴로 빛나는 듯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대하지.”

* * *

쟈파와 이야기를 끝냈다. 나는 간만에 안락한 사옥에서 수면을 취하고 일어났다.

‘오래 지내니 나도 여길 집으로 느끼긴 하네.’

별일이 없다면 라그나타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에게 부탁할 게 따로 있기도 했다.

그전에 일정을 위해 단말기에 쌓인 메시지를 재생해서 확인했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

-짐승 같은 크롤러와 프레도, 고요한 에퀘시안, 녹빛 피부의 배가분더스, 앙증맞은 타르파, 딱딱한 피부만큼이나 그곳이 단단한 사우라…….

-지옥이 현세에 있다면, 천국도 여기에 있겠죠.

-쾌락천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녹아내릴 듯한 목소리가 내 귓가의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흔한 무작위 광고였다.

다른 광고도 확인했다. 이번엔 약물이었고, 이다음은 대부업이겠지.

난 광고의 업종 순서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확인했다.

‘일레이가 보낸 접선 연락이다.’

일레이와 미리 정해둔 신호였다.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에 접선 장소를 들르면 될 것이다.

‘일레이도 무쉬르 알 카슈라가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걸 알고 있겠지.’

나는 외출하기 전에 라그나타의 방을 방문했다.

끼익.

문이 열렸다.

휠체어에 앉은 라그나타는 안경을 쓴 채로 책을 보고 있었다.

“안경?”

“노안이라서.”

“어처구니가 없군.”

내 말에 라그나타는 웃었다. 그녀가 벗은 안경을 셔츠에 꽂았다.

“여기저기 불편해 보이는 것 같은데, 상당한 격전을 치른 모양이지?”

라그나타는 내 미묘한 상태를 알아챘다. 의체야 수리했다 쳐도 생체적 손상과 신경계 피로는 남아 있었다. 복근의 부상도 있어서 균형감이 평소 같지 않았다.

“뭐, 그럭저럭. 댁과 한 훈련이 제법 도움이 되긴 했어. 총기를 주로 다루는 놈과 싸웠거든.”

“그랬다니 다행이로군. 그나저나 요 며칠 동안 에퀘시안 용병이 내 방문 앞을 자주 오가며 지키곤 했네. 쟈파와의 갈등이 생겼나?”

라그나타가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용건을 꺼냈다.

“네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외골격형 의족을 준비해 두지. 그 뒤에 널 풀어주겠다.”

“그 이유는?”

“가브리엘이라는 사내가 있다. 원래 노마드 출신이야. 네가 놈을 데리고 보더시티를 빠져나가. 가브리엘의 상태가 좀 나빠서 재활이 필요한데, 자립할 때까지만 네가 보호하거나 믿을 수 있는 곳에 맡겨줬으면 한다.”

라그나타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유지하더니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부탁인 건가?”

“……거래다. 잊었나? 넌 내게 목숨을 빚졌어.”

내가 짧게 대답했다.

라그나타가 날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녀에겐 묘한 위엄마저 있었다.

“루카, 잘 판단해라. 이게 거래라면 난 적당히 빚을 갚았다고 판단하자마자, 가브리엘이라는 사내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거야. 목숨을 빚져? 내가 죽어가면서까지 그 사내를 지키려 노력했다면, 그걸로 빚은 끝이다. 하지만 ‘부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톡, 톡.

라그나타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와 가슴을 번갈아 두드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너도 잘 알겠지만,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이란 그다지 대단한 가치를 가지지 않아. 하지만 이게 부탁이라면 너와의 유대를 이어가기 위해 난 최선을 다하겠지. 내 목숨 이상의 가치마저 소모하면서 말이야.”

라그나타가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주름 아래에서도 아름답게 빛났다.

난 정답을 알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까.

“가브리엘을 부탁한다, 라그나타 아니마.”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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