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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24

224
나는 손수공업 숙소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내가 잠자리를 따지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지만, 숙소의 위생 상태는 몹시 나빴다.

일어나면 누런 자국이 번져있는 베개와 침대보가 보였다. 오염이 짙게 착색되어 빨아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긁적, 긁적.

난 목을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몸이 이유 없이 근질근질하고 머리카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손석재가 딱히 날 홀대하는 건 아니다.’

손수공업에선 이런 생활이 당연했다. 거칠고 지저분한 사내들의 회사였다.

‘몸 상태는 나아지고 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가볍게 명상했다. 라피스 덕분에 의체도 안정됐다. 진통과 회복 패치를 번갈아 꾸준히 붙인 덕분에 생체의 부상도 나아지고 있었다.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더 낫겠지만.’

난 눈을 뜨며 이마의 거즈를 갈고 고정했다.

숙소를 나선 나는 공장으로 향했다. 손수공업은 사흘이나 철야하며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의체를 분석하고 있었다.

직원 중 일부는 늘어진 간이침대나 찢어진 안락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저벅, 저벅.

난 공장 구석에 늘어진 탁자로 다가갔다. 탁자엔 먹다 남은 쟈파 피자와 맥주가 늘어져 있었다.

쟈파 피자의 토핑으로는 뱀 한 마리가 얇게 잘려서 늘어져 있었다. 통째로 올린 것보단 자른 게 낫군.

덥썩.

나는 식은 피자를 한 조각을 들어서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쟈파 버거와 소스를 나름 공유하는지 비슷한 맛이 났다.

“……맛은 있군.”

정신을 차려보니 난 한 조각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난 피자 한 조각을 더 집어 들며 작업을 구경했다.

“아, 키가 작아서 있는 줄도 몰랐네. 미안하게 됐어.”

손수공업의 직원이 라피스를 밀치며 말했다. 일부러 밀친 것이다.

“아, 상관없어. 눈깔이 제대로 달려 있어도, 쓰지 못하는 병신 같으니 정상인 내가 참아야지. 하지만 궁금하긴 해. 네 어머니가 널 배에 담고 있을 때, 뭘 잘못 먹었길래 이런 등신이 태어난 걸까? 방사능 커피?”

난 들고 있던 피자를 놓칠 뻔했다.

일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나는 저 장황한 욕설을 내뱉은 화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라피스?’

그녀의 온화한 어휘는 온데간데없었다. 하기야 저런 놈들 상대로 친절한 것도 이상하지.

“야, 이, 방금 뭐라고 했어?”

직원이 공구를 바닥에 내던졌다. 라피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귓구멍도 썩어서 기능을 못 하는 건가? 아랫도리는 제구실하긴 해? 달려 있다고 다 작동하는 건 아니잖아. 하기야 쓸 사람이 있어야 작동하는지 아닌지 알 수라도 있지. 생기다만 얼굴을 보니 쓸 사람도 없어 보이네.”

“이…….”

직원의 손발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라피스가 공구로 철판을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도 널 낳고 나서 똥인지 자식새끼인지 헷갈렸겠다. 어머니가 혹시 살아는 계셔? 넌 효도를 안 해도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걸. 음음, 사람을 저렇게 씹다 만 고깃덩이처럼 낳아놓고 효도를 바라면 안 되지.”

라피스는 공구를 교체해 카슈라의 다리를 분해하면서 담담히 말했다.

직원의 얼굴이 새빨갰다. 그는 차마 폭력을 휘두르진 못했다. 저 멀리서 에퀘시안 용병 두 명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

난 피자를 먹는 것도 잊고 라피스 ‘누님’의 참신한 욕설에 감탄했다.

나도 언변으로 도발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라피스에 비하면 하수였다.

“시발, 좆만 한 외계인 년이…… 재수 없는 퍼런 피부처럼 네 아랫…….”

직원은 설명하기도 싫은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의 당부만 아니었어도, 이 자리에서 찢어 죽였을 텐데.”

손수공업은 직원들도 외계종족 혐오가 기본 소양인 듯했다.

라피스와 에퀘시안을 보는 직원들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적의가 담겨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라피스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난 손수공업이 어떤 회사인지 모르고 있다.

여기선 내가 행동을 해야겠지.

철퍽!

난 먹던 피자를 라피스와 다투던 직원의 얼굴에 던졌다.

“어떤 새, 당, 당신은…….”

직원이 날 알아보더니 겁을 먹었다. 내 전투 능력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타르파 여자는 내 전담 정비사야. 뒈지고 싶지 않으면 말 좀 가려서 해. 실수를 가장해서 시비도 걸지 말고.”

“당신도 인간이면서 왜 외계인 편을 드는 겁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편 가르기 논리였다. 하지만 저들이 저렇게 된 까닭도 있겠지.

“네놈들보다 저 여자의 실력이 더 좋으니까. 난 저 여자가 만든 의체의 힘으로 무쉬르 알 카슈라를 해치웠어. 그리고 그 전리품을 너희가 주워 먹고 있지. 누가 더 우월한 기술자인지는 풀어서 설명해야 할까? 종족을 따지기 전에, 네게 기술자로서 자부심이 있다면 더 나은 실력의 동업자에게 존중을 표하고 뭐라도 배우려 해라.”

내가 사납게 말했다.

물러난 직원이 모자를 짓눌러 쓰며 입을 다무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곧 웅얼거리듯 말을 덧붙였다.

“취향 한번 더럽게 이상한 새끼네. 자기 가슴까지 겨우 오는 외계인 여자랑 자나 본데…….”

청력이 너무 좋은 것도 가끔은 독이다.

스륵.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톱니바퀴 하나를 주우며 일어섰다. 톱니바퀴의 크기는 손톱만 했다.

“혼잣말하지 말고, 다들 듣도록 제대로 말해.”

내 말에 직원도 악에 받친 듯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쪽팔린 줄 아쇼. 쥐똥만 한 외계인 계집이 그렇게 맛있…….”

좋아, 알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개새끼로군.

팅!

난 엄지를 튕겨 올려둔 톱니바퀴를 날렸다.

“카, 카악!”

톱니바퀴는 직원의 뺨에 박혔다. 그는 몸을 구부리며 피가 흐르는 뺨을 감쌌다.

“어이, 거기 가만히 있어. 그 혓바닥을 뽑아버릴 테니까. 농담 아니야.”

내가 천천히 걸어서 직원에게 다가갔다.

물리적 폭력이 생기자마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자칫하면 누군가 총이라도 뽑을 것 같았다.

츠즈즈즈.

난 감각을 곤두세워 직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인지했다.

‘라피스조차 날 말리지 않고 있다.’

라피스는 팔짱을 낀 채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성정이라면 이 상황에서 중재를 시도할 거라 생각했다.

‘손수공업은 예전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도 협박을 이미 내뱉었다. 말을 했으니 행동하지 않으면 우습게 보일 것이다.

“참나, 겨우 눈을 붙이는가 싶더니 꽤 소란스럽군.”

간이침대에서 이불이 들썩였다. 손석재의 목소리였다.

“사, 사장님!”

직원이 그제야 안도하듯 외쳤다.

막 일어난 손석재가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는 정장 대신에 하늘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안전제일이라고 적힌 완장이 인상적이었다.

치익.

손석재는 텁텁하지도 않은지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작업할 땐 시가 대신에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었다.

“오 대리, 이리 오게.”

손석재가 직원에게 손짓했다. 직원은 톱니바퀴가 박힌 뺨을 감싼 채로 손석재에게 뛰어갔다.

“사장님, 저는…….”

“쉿, 쉿. 괜찮아. 어이쿠, 잘생긴 얼굴에 흉이 지겠군. 파상풍 주사는 잘 맞아뒀지?”

“아, 예, 넵.”

손석재가 직원의 턱을 잡은 채로 이리저리 살폈다. 꼬락서니만 보면 직원을 보듬는 친절한 사장이었다.

“루카 씨, 아무리 그래도 혓바닥을 뽑겠다는 협박은 좀 심했습니다.”

날 보던 손석재는 직원의 입에 손을 집어넣더니 혀를 붙잡았다.

“끄, 읏, 쏴자, 자아앙님.”

직원은 혀를 붙잡힌 채로 어리벙벙한 말을 내뱉었다.

치이익!

손석재가 담배를 직원의 혀에 대고 느긋하게 지졌다. 직원의 동공은 커졌고 팔다리도 바들바들 떨렸다.

“오 대리의 무례는 이걸로 봐주시죠. 제 얼굴을 봐서라도요.”

손석재가 부드럽게 웃으며 날 바라봤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실 중재가 있었으면 했고, 손석재는 절묘하게 상황을 잡아챘다.

스륵.

손석재가 직원의 혀를 놓았다. 빠져나간 직원이 혀를 내두르더니 허겁지겁 김이 빠진 맥주를 마셨다.

짝, 짝.

손석재는 손뼉을 두 번 치더니 이목을 모았다.

“자자, 일하자고, 일! 땅 판다고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안전구호 제창! 안전!”

손석재가 운을 떼자 직원들이 외쳤다.

“제일!”

“다시 한번! 안전!”

“제일!”

“꺼진 전기도!”

“다시 보자!”

언제 살벌했냐는 듯이 분위기는 다시 왁자지껄했다.

‘사람을 다룰 줄 아는군. 그리고 직원들은 손석재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어.’

손석재는 공포를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았다. 아마 아랫사람에게 평소에 잘 대해주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오 대리’는 혓바닥이 지져지고 나서도 손석재를 향한 증오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업복을 입은 손석재는 적극적으로 현장 일을 도맡고 있었다. 하기야 회사가 크지 않으니 본인이 사실상 공장장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을 너무 괴롭히진 마십쇼.”

지시를 끝낸 손석재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부하 간수나 잘해. 라피스 라줄리를 손님으로 제대로 대해라.”

“저도 말은 해놨지만 쉽진 않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크든 작든 외계종족에게 거하게 당한 놈들이니까요. 저기 용접기를 든 친구는 여자친구를 키만큼이나 아랫도리가 큰 배가분더스에게 빼앗겼고, 저기 저 민머리 소년은 부모님이 크롤러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오 대리의 부모님은 작은 공업소를 운영했는데 건너편에 타르파의 동종 공업소가 생겨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죠.”

“흠, 경쟁에서 밀려서 망한 건 원망할 게 아니지.”

“타르파가 육체노동으로 우리 인간을 이길 수 있습니까? 저들은 작고 연약하죠. 다만,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하는 집중력만큼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타고난 성향 때문이죠. 다른 종족끼리의 무제한 경쟁은 불공정합니다.”

“동종끼리도 무제한 경쟁은 불공정해. 인간들도 타고난 특기가 다른 법이잖아. 투덜거릴 건 없어.”

“하하,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 다르면 그 편차가 지나치게 크죠. 특히 이 사회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 차이는 배려하면서, 두뇌와 정신의 차이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타르파가 책을 뽑지 못하면 기꺼이 누군가 도와주죠. 하지만 머리가 나쁜 종족이 무지로 인해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사회가 비난합니다.”

손석재가 마냥 외계인에 대한 증오만 품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여기선 여러 종족이 부둥켜서 살아가야 하지. 불공평하다고 바뀌는 건 없어.”

“아무도 바꾸지 않는다면, 제가 바꾸면 되죠. 그게 능동적인 삶입니다.”

손석재가 손가락을 튕기며 활발하게 말했다.

“꿈이 야무지군. 그렇게 외계종족이 싫다면 제국으로 가지 그래? 거기야말로 그쪽이 원하는 이상향이 아닌가?”

“피와 살을 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을, 과연 동종의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순수한 인간이 드문 시대라지만…… 전신의체는 뭔가 다르죠. 그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네 이상향은 상당히 까다롭네.”

내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 제국의 전신의체는…… 외계인보다도 더 인간에게 먼 존재입니다. 종족을 따지기 이전에 생물로서 가져야 할 욕구와 본능이 거세되니까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게 인간성 상실의 징조다.

전신의체의 귀족은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인간적 행위를 반복한다. 그리고 서서히 미쳐가지.

극소수의 강인한 인간성을 가진 자만이 전신의체라는 관에서 생물다운 생명력을 뽐낸다.

예컨대, ‘진가우’같은 존재가 그러하다. 전신의체로도 수명이 다해가는데도, 진가우는 지식에 대한 갈망과 과학자로서의 욕구 때문에 인간적 면모가 많이 남아 있었다.

‘진가우가 자연체 인간이었다면 오히려 비인간적인 과학자라고 취급을 당했겠지. 자연체 인간이 담기엔 지나치게 욕망이 비대하니까.’

비대하기에 소실되고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간다움의…… 본질은 결국 욕망이다. 그 욕망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인간성은 도덕적 선을 뜻하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라피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거래고 계약이고 뭐고 다 끝장날 줄 알아.”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혹시 해서 물…….”

손석재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덧붙이려고 했다. 미치겠군, 정말. 이럴 때마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난 인간 여자를 좋아해. 그것도 또래의 여자를!”

내가 강조했다. 도대체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흠, 흠, 알겠습니다.”

손석재가 헛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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