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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20

220
삶에 감사하기란 어렵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우주는 잔인한 까닭이다.

더군다나 우린 가진 것에 불만족하며,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면서까지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진정으로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사람들을 그런 자를 성인이라 불렀겠지.

……나 역시 감사할 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에 감사해라, 루카.

예로부터 재능은 하늘이 내린 것, 즉 우주나 신,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점지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재능으로 범인을 압도하는 자를 천재라 불렀다.

나 스스로 천재라 칭하면 아니꼽고 부끄러우니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보자.

‘헤일라스는 나를 천재라 칭했다.’

이레귤러의 다른 명칭이었다. 천재가 기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 나보다 ‘타고난 재능’이 더 우월한 이들도 많을 터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창시자 노엘 뮬리즈카. 생물학적 강화를 받았다지만 피와 살만으로 정점에 섰던 라그나타 아니마, 지나치게 우수해서 문제였던 헤일라스 쿠스토리아.’

일레이도 어떤 분야에선 나보다 뛰어나겠지.

이들과 나를 같이 언급하며 비견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내가 ‘범재’는 당연히 아니며, ‘수재’를 넘어서 ‘천재’라는 반증이니까.

난 내가 두각을 드러낸 첫 번째 사건을 떠올렸다.

‘사형수를 상대로 배우지도 않은 탄도통제술을 사용했다.’

신경계 화학 처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이었다.

탄도통제술은 내 첫 번째 재능이었다.

타닥, 타닥.

내 머릿속에서 끊어지는지 이어지는지 모를 소리가 들린다. 혈관이 빠득빠득 굵어지는 느낌이었다. 꾸물거리는 신경세포가 실시간으로 자라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찰나지만 흐트러졌던 내 의식은 다시금 모여 현실을 오롯이 보고 있었다.

‘지금 내 상대는 무쉬르 알 카슈라.’

놈은 네 자루의 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 기이한 사격술 앞에서 도주는 불가능하다.

‘남은 건 정면돌파.’

나는 눈을 부릅뜨며 세상의 빛을 빨아들였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정보량이 쏟아졌다.

‘빔 형식의 에너지 사출 병기, 화포처럼 생긴 대구경 실탄 총기, 에너지와 실탄 혼합체인 충격탄을 사용하는 소총, 그리고 견제용인 소구경 실탄 권총.’

카슈라는 네 가지 종류의 총기를 사용했다. 각자 특징이 있어서 까다롭기 그지없다.

‘에너지 빔과 충격탄을 칼로 쳐내선 안 된다. 열량이 너무 커서 금방 화광예도가 달아오를 거야’

내 시선은 피해야 할 것과 튕겨내야 할 것을 구분했다.

우웅…….

옅은 기동음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 들렸다.

카슈라도 내 의도를 알아채고선 역회전이 걸린 전동바퀴를 세차게 가속하고 있었다.

‘놈은 여러 종류의 포를 쏴대는 전차나 마찬가지다.’

나는 내 뒷덜미와 등골을 따라서 이어지는 골반과 다리를 의식했다. 신체를 이어지는 선으로 의식하면 출력이 높이기가 쉽다.

‘내 의체는 라줄리 21호.’

내 의수와 의족은 라피스 라줄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그 성능은 내가 사용해 본 의체 중에서 발군이다.

‘무의식적 출력의 제어마저 푼다.’

전투의체 사용의 핵심은 신호의 강약과 통제다. 자연체 인간이라면 근육이 파열할 정도의 자기 파괴적인 신호를 뇌에서 보내야 한다. 자기 보호 본능을 극복하는 것이다.

내 몸이 찢기더라도 나아가겠다는 의지. 나 자신이 쓰고 버리는 총알이 된 듯한 느낌.

우리 같은 전사와 군인은 본디 소모품이다. 자신을 소모한다는 감각에 익숙하다.

쩌어어어억!

출력이 높아진 의족이 도로를 짓눌렀다. 내 발끝을 중심으로 바닥이 갈라지며 움푹 파였다.

쩍!

내 의족의 압력에 짓눌린 바닥이 깨지면서 파편이 튀었다.

터- 엉!

내가 도약하듯 앞으로 뛰어나갔다.

쩍!

내 발에 닿을 때마다 바닥이 깨졌다. 의족의 감쇄 장치로도 감당하지 못할 충격이 내 생체까지 타고 올라왔다.

으득.

단련한 근육도 기계의 고출력을 감당하기 힘들다. 복근부터 근육이 파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스!

주변 풍경이 인식이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했다. 부유하는 먼지가 내 동공을 강타했고, 공기의 압박이 얼굴을 짓눌렀다.

멀리 있던 카슈라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놈의 가속보다 내가 더 빠르다.

쩍! 쩌억! 쩍!

내가 지나온 길이 갈라지면서 부서지고 있다.

팅!

카슈라의 권총탄이 내 가슴을 노렸다. 난 왼쪽 팔꿈치로 심장을 가려서 탄을 튕겨냈다.

휘릭!

이어서 나는 땅을 박차며 낮게 도약했다. 비튼 몸을 일자로 뻗으며 피탄 면적을 줄였다.

위잉!

에너지 빔이 날 스치며 지나갔다. 난 몸을 펴며 발을 땅에 바로 뻗었다.

‘체공시간이 길면 안 된다.’

난 허공에서 움직일 방도가 없다. 카슈라 정도라면 떠오른 나를 바로 맞춰서 떨어뜨릴 수 있다. 언제든 방향 전환이 가능하게 발을 땅에 대고 있어야 한다.

텅!

나는 칼자루를 양손으로 붙잡고 대구경탄을 비껴내듯 쳐냈다. 싸구려 의수였다면 손목이 꺾였을 것이다.

대구경탄을 받아낸 칼날에 시뻘건 반점이 달아올랐다. 열의 반점은 곧 흐트러지더니 칼날 전체로 번져나갔다.

‘조금만 더.’

내 집중력이 극한에 이르렀다. 체감 시간도 길어서 짧은 거리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벌써 수 킬로미터를 달린 것 같았다.

‘소리를 무시한다.’

현상은 소리보다 더 빠르다. 소리를 듣고 반응해선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신경을 팽팽하게 당기는 상상을 했다. 더 빠르고 민감하게 현실과 교류해야 한다.

생사의 경계에서 몰입해라. 광기로 나를 몰아가야 한다.

카슈라도 네 자루 총의 조준점 정렬을 마쳤다. 놈은 직진으로 달려오는 나를 향해 화력을 퍼부을 것이다.

끼릭.

놈의 보조 팔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그 소리가 멀리서도 들린다. 어쩌면 시각으로 인한 상상의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점으로 내 이성과 사고는 일시적으로 마비됐다.

방아쇠를 당기고 날아가는 총알처럼, 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정해진 프로그래밍대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나는 부유하던 일말의 의식과 집중력조차 끌어모아서 현재에 처박았다.

내 의식은 과거와 미래도 없이 현재에만 머무른다. 의식과 현실 사이에 지연이 없다. 세상을 온전히 인식하며 0의 거리에 있다

이런 상태를 옛사람들은 무아지경이라 불렀으리라.

튕겨내고, 피하길 반복했다. 텅 빈 동공의 초점은 기계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충돌로 인해 칼날이 빛나고, 에너지 병기의 비릿한 냄새가 매캐한 연기와 뒤섞인다. 위험한 화학물을 바짝 태운 듯한 냄새가 났다.

충격탄의 폭발로 내 발아래가 무너진다. 난 튀어 오르는 파편을 밟으며 몸의 궤도를 비틀었다.

내가 미끄러지면서 도로에 널린 차량에 발을 뻗었다. 부딪히기 전에 무릎을 접으며 도약을 준비했다.

터- 엉!

차량을 박차며 가속한다. 내 발에 닿았던 차량은 저 멀리 날아가며 어딘가에 부딪혔다.

단숨에 카슈라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키이이이잉!

카슈라가 후진하더니 길게 뛰어올랐다. 놈은 충격소총을 내게 겨누었다.

난 화광예도를 사선 아래로 잡았다. 그리곤 충격탄의 궤적에 칼날을 가져다 대었다.

기- 잉!

동작은 짧고 말끔하다. 칼날은 충격탄을 중앙으로 정확히 가르며 지나갔다.

쿠릉!

모든 게 느리다. 충격탄이 내 앞에서 폭발하며 열을 방출하려 했다.

폭발하기 전에 칼날이 충격탄의 에너지에 닿았다.

이그니움이 자석처럼 열을 빨아 당기며 달아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폭발을 베어냈다. 폭발하다 만 푸른 에너지가 칼날 좌우로 흐트러졌다.

갈라진 폭발 너머로 카슈라가 보인다.

위이잉!

그리고 화광예도에서 진동과 굉음이 퍼졌다. 난 휘두른 화광예도를 그대로 놓으며 앞으로 길게 내던졌다.

화광예도가 카슈라의 머리 위로 날아가더니 붕괴했다.

깨진 칼날이 비산하면서 사방팔방으로 쏟아졌다. 폭발한 칼날 조각은 내게도 날아오고 있었다.

난 칼날 조각이 뻗치는 위험지대로 몸을 비집으며 지나갔다. 칼날 조각이 내 곁을 스치며 지나갔다.

어지간한 충격에도 끄떡없던 내 의체와 의수에 생채기가 났다. 인체의 근육을 모방한 외피가 고열로 녹아서 내부 회로와 부품이 드러났다.

나는 카슈라를 보았다. 놈은 뒤로 뛰어오른 채로 쭉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비산하는 조각이 더 빨랐다.

덩치가 큰 카슈라는 칼날의 조각들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조각의 일부는 안면에도 꽂혔고 전류가 튀면서 렌즈가 녹아내렸다.

기기기긱!

외골격의 손상을 입은 카슈라가 뻣뻣하게 움직이며 착지했다.

기잉!

한참이나 미끄러진 카슈라가 고개를 들었다. 렌즈는 하나만 작동하고 있었다.

고개를 세운 카슈라의 헬멧은 녹아내리고 부서져서 내부가 드러났다. 전투복의 손상도 마찬가지였다.

전투복 내부에는 생체가 없었다.

카슈라는 전신의체였다. 외부는 외골격 전투복처럼 보였으나 레기온처럼 묵직한 전갑의체였던 것이다.

“이거, 상당히…… 놀랍군요.”

카슈라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놈을 빠르게 추적하고 있었다.

카슈라는 중상이다. 맨손으로도 놈을 제압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카슈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달려나간 나는 놈의 안면을 짚은 채로 땅에 처박았다.

거구의 카슈라가 머리부터 휘청거리며 땅에 처박혔다. 놈의 목덜미에서 부품들이 와장창 끊어지면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지이잉!

하나 남은 렌즈조차 금이 갔다.

키릭!

놈의 그나마 작동하는 보조 팔을 황급히 꺾으며 총구로 나를 겨누려 했다.

우득!

내가 손날을 휘둘러서 보조 팔을 잘라냈다. 손날에 닿은 팔꿈치 부위가 부서지면서 힘을 잃은 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기잉!

난 떨어지는 충격소총을 잡아서 놈의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나는 무쉬르 알 카슈라를 제압했다.

철컥!

기계에 가까웠던 내 의식이 현실을 인지했다. 회색이었던 감정의 색깔이 알록달록 돌아오고 있었다.

‘이그니움의 성질을 이용해 폭발을 벨 수 있었던 건가?’

‘무쉬르 알 카슈라가 전신의체라고? 어떻게 아키에스 빅티마를 유지하면서 레기온급 전갑의체를 다루는 거지?’

‘난 방금까지 무얼…….’

뒤늦게 생각이 밀려왔다.

치익, 칙.

내가 방아쇠만 당기면 카슈라의 머리가 날아간다.

“거래합시다, 루카. 지금 전투로 확신했습니다. 전 아직 당신을 확보하기에 기량이 부족하군요.”

난 내 활동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걸 느꼈다. 머릿속에 피가 고여 있을 것이다. 언제 맑았냐는 듯이 내 머리가 둔해지고 있었다.

“키누안은 어디에 있지?”

“키누안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저와…… 컥!”

뭐, 됐다. 놈의 머리에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 정도 기억은 어떻게든 건져낼 수 있겠지. 지금 내 상태로 협상하다간 놈의 화술에 휘말릴 것이다.

우득!

내가 카슈라의 목덜미에 손아귀를 집어넣고선 부품과 케이블을 비틀고 뜯어냈다.

“커억, 컥, 끄으윽, 하, 하, 하하하!”

카슈라가 웃었다. 그가 박살 난 팔들을 억지로 움직이며 날 껴안으려 했다.

콰직!

나는 카슈라의 팔들을 내치며 놈의 머리를 잡아서 비틀었다. 후두부와 연결된 케이블과 튜브도 툭툭 뜯어지고 있었다.

덜컹!

탈착음이 났다. 카슈라의 등에서 미약한 폭발이 일었다.

퉁!

카슈라의 등에 있던 금속 상자가 폭발에 밀려나며 멀리 날아가서 미끄러졌다.

그 폭발 충격으로 나도 몸이 흔들렸다.

‘화광예도의 폭발에서도…… 카슈라의 금속 상자는 생채기 하나 없다.’

놈은 머리에 칼날 조각이 박히는 한이 있어도 금속 상자를 지켜냈다.

기이잉!

금속 상자를 잃은 카슈라의 전갑의체가 늘어지고 있었다.

카득, 카득.

카슈라의 금속 상자에서는 거미와 같은 다리가 솟아나더니 고속으로 움직였다. 내가 낚아챌 여지도 없이 금속 상자는 차량과 잔해 사이로 사라졌다.

“……설마.”

나는 쥐고 있던 카슈라의 머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으득!

내가 머리의 외피를 잡아서 뜯어냈다.

위잉, 위잉.

카슈라의 머리는 생체 부위 하나 없는 기계였다.

‘뇌를 상자에 담고 다니는 건가…….’

카슈라의 의미심장한 말과 행동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상자에 담긴 뇌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내가 본 어떤 괴물보다 끔찍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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