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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18

218
사고가 터진 도로는 난장판이었다. 후진하거나 우회할 곳도 없어서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도망가고 있었다.

내가 탔던 택시를 비롯해 폭발한 차량이 제법 됐다. 자글자글한 불꽃과 연기가 봉화처럼 도로를 수놓고 있었다. 불길은 번져가며 다른 차량까지 터트렸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솟구쳐 시야 확보가 불편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난 사이렌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보더시티에서 보기 드문 공중차량들이 지상 도로로 접근하고 있었다. 여러 사설 경비업체에서 보낸 공중차량이었다.

공중차량들은 낮게 비행했고, 각 회사의 상징이 박힌 전투복을 입은 사설 경비대원들이 연거푸 뛰어내렸다.

“여기다. 신원 확인, 로버 란투스.”

“다른 VIP는?”

“사망했어.”

“우리가 몇 분 만에 출동했지? 위약금이 생겨?”

중무장한 사설 경비들이 맡은 계약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운이 좋은 이들은 계약자를 빠르게 구출하고선 공중차량에 재차 올라탔다.

“염병, 우리 고객은 저 안쪽에 있는 거야?”

“뭐가 나타난 거지?”

운이 나쁜 이들은 불길한 현장으로 진입해야 했다. 연기가 자욱해서 도로 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순 없었다.

“어쨌든 진입한다. 촬영도 계속 돌려.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사설 경비대원 다섯 명이 총구를 겨눈 채로 고객 수색에 나섰다.

‘내가 이 난장판에 끼어들 필요는 없지.’

나는 인파에 섞여 도주할 생각이었다.

화마와 연기로 뛰어 들어간 경비대원들이 방아쇠를 당겼는지 총성이 퍼졌다. 얼마 있지 않아서 화력을 쏟아붓는지 고화력 특유의 폭음도 연거푸 났다.

“무, 무, 쉬르 알 카슈라다! 카슈라가 나타났다!”

내 발걸음을 잡아끄는 외침이었다.

전신 전투복이 너덜너덜해진 경비대원이 연기를 빠져나오며 소리를 질러댔다.

카슈라라는 단어에 경비대원들이 술렁거리며 상부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후퇴합니까?”

“남은 VIP는 포기해. 불가항력이다. 재해가 나타났으니 어쩔 수 없지.”

사설 경비업체들조차 계약자를 포기한 채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푸- 슝!

연기를 뚫고 빔 한 줄기가 공중차량을 관통했다. 연료통을 정확히 꿰뚫었는지 허공에서 폭발이 일었다.

콰아앙!

공중차량의 탑승자들은 탈출 시도도 못 하고 전멸했고, 고철이 된 공중차량은 불꽃에 휩싸인 채로 바닥에 처박혔다.

‘무쉬르 알 카슈라라고? 여기서 놈이 나타나?’

나는 운전자가 없는 차량에 엄폐하며 등을 기댔다.

‘키누안은 자신의 행방을 알고 싶으면 무쉬르 알 카슈라를 찾으라고 했지.’

그러나 난 일레이에게 무쉬르 알 카슈라의 탐색을 맡겼다.

‘내가 찾으려고 시도하지 않으니 그쪽에서 날 만나러 온 건가?’

무쉬르 알 카슈라가 괜히 여기에 나타난 게 아닐 것이다. 그 목적이 나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와 연관된 무언가일 확률이 높다.

‘곤란하군.’

지금 내겐 휴식이 필요하다.

‘난 무쉬르 알 카슈라의 전투 방식도 모르지. 충돌은 피하는 게 좋아.’

내가 싸움을 좋아한다고 해서 시작부터 물불 가리지 못하는 등신은 아니다. 당연히 유리한 상황에서 싸우는 게 기본 철칙이다.

우득!

난 차량 내부로 손을 뻗어서 후방경을 뜯어냈다.

후방경의 각도를 조절해 연기에서 걸어 나오는 ‘전설의 용병’을 확인했다.

‘먹색의 전신 외골격 전투복.’

무쉬르 알 카슈라는 인간 종족이다. 그러나 제국의 귀족과는 다른 의미가 비인간적인 형태였다.

‘자료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 덩치가 불었어.’

알 수 없는 기계장치가 덕지덕지 달린 외골격 전투복은 불편해 보일 정도였다. 부피가 큰 전투복 때문에 덩치는 장성한 크롤러보다도 더 컸다.

기익, 기익.

카슈라가 차량을 밀고 내던지며 걸어오고 있었다.

놈의 생김새와 행동만 보면 재빨라 보이진 않았다. 전차처럼 느릿하고 묵직했다.

‘등에 짊어진 상자로 외골격 전투복을 제어하는 건가?’

난 카슈라의 전투복을 관찰했다. 놈은 자신의 몸뚱이만 한 금속 상자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등과 상체가 앞으로 굽어있었다.

치이잉, 치잉.

카슈라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두 쌍의 렌즈가 여러 빛깔로 발광했다. 헬멧 뒷덜미에선 케이블과 튜브 다발이 늘어져 있었고, 다들 금속 상자와 연결되어 있었다.

‘등의 상자가 핵심적인 통제 장치인 건 분명해.’

후두부의 케이블과 튜브는 언뜻 보면 머리카락 같기도 했다. 쉼 없이 뭔가가 오가는지 케이블 표면에선 회로가 반짝였고, 튜브에선 액체가 꿀렁거렸다.

‘처음 보는 부류의 적이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내 경험과 지식 밖에 있는 적이다.

카슈라는 거칠고 사나운 자였다. 자신을 막는 건 모조리 부수고 내던지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직 사설 경비대원과 사람들이 도로에 많아. 이들과 섞여서 자리를 벗어…….’

난 눈을 깜빡였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전투 드론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카슈라의 외골격 전투복과 색이 같은 검은색 드론이었다.

열 기의 드론은 편대를 이룬 채로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드론 하부에 달린 기총이 목표를 지정하듯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정신인가?’

난 카슈라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았다.

나도 타인의 목숨을 경시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으려는 의식 자체는 있었다.

투두두두두-!

기총 사격이 쏟아졌다. 도망치던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 종족 가릴 것도 없었다.

‘학살.’

무의미한 살육이 이어졌다.

드론에 달린 기총의 위력이 크진 않았다. 전신 전투복을 입은 경비대원들은 방탄 성능을 믿고 맞서며 응사했다.

위이잉!

열 기의 드론이 일제히 흩어지더니 복잡한 비행 궤적을 그려내며 경비대원의 사격을 피했다.

위이이잉!

넓게 펼쳐진 드론들은 전투복을 입은 경비대원들을 무시하며 만만한 민간인을 추적했다.

키잉.

내가 자동추적 권총을 꺼냈다. 망막 디스플레이와 연동된 권총의 조준점이 열 기의 드론을 향해 움직였다.

……난 딱히 정의로운 영웅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나 무의미한 학살을 구경할 정도로 내가 둔감한 인성을 가지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설사 마음이 동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조준점을 빠르게 바꾸며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탈출한 추적탄이 정밀하게 휘며 드론의 프로펠러축을 향해 날아갔다.

캉!

총알 한 발로는 드론을 파괴하진 못하지만, 축이 뒤틀린 드론들이 균형을 잃고선 추락하고 있었다.

금세 열 기의 드론이 침묵했다. 카슈라의 시선도 내게 쏠렸다.

이제 몸을 숨기는 건 글렀다.

나는 권총을 카슈라에게 겨누며 반대편 손은 칼자루에 올렸다.

기잉, 기잉.

카슈라의 두 쌍 렌즈는 내게 모여들었다. 그 틈을 타서 다른 경비대원이나 민간인들이 일어서서 도주했다.

위잉.

카슈라는 도주하는 사람들을 잠시 응시하다가 무시했다. 방금까지 학살을 일삼던 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고요한 태도였다.

카슈라가 살인을 즐기는 개차반 망나니라면 추가 공격을 감행했을 터다.

대신, 카슈라는 한 손을 가슴팍에 올리며 정중하게 내게 인사했다.

“당신이 루카군요.”

점잖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카슈라는 쾌락 살인마가 아니었다. 놈의 학살에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납득할 만한 까닭은 절대 아니었다.

“민간인 학살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시험한 건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궁금했으니까요. 성장 배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정의로운 성품을 가지셨군요.”

코웃음이 나온다.

“살다 살다 정의롭다는 말도 듣는군.”

“당신과 담소를 나누며 친해지고 싶습니다만, 이 자리에서 그대의 팔다리를 전부 제거해야 저와 이야기를 해주시겠죠?”

카슈라가 무거운 몸을 이끌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화광예도를 뽑았다. 라피스의 특제 부싯돌을 써볼 차례가 왔다.

화광예도의 예열 장비, 파이(F.A.I).

그 뜻은 불과 얼음. 왼손으로 파이를 쥔 채로 집중했다.

난 오른손으로 잡은 화광예도의 칼날을 예열공에 집어넣었다가 뺐다.

치이이이잇! 칫!

삽입과 배출 과정은 찰나였다. 단번에 예열이 끝났다.

외날에서 플라즈마 열광이 일었다.

우우우웅!

절호의 열을 머금은 화광예도가 공기를 데우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키누안은 어디에 있지?”

내가 칼날을 곧추세워 뻗으며 말했다.

“질문은 승자의 권리이고, 답변은 패자의 의무로 하죠. 어떻습니까?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음, 솔직히 마음에 드는 제안이다. 다만 놈과 정겹게 말을 나누기 싫기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그대의 침묵은 도도한 여인 같군요. 그럼 같이 춤이나 춰봅시다.”

카슈라가 허리춤에 수납된 무기를 꺼냈다. 난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발렉의 화광자검?’

발렉이 쓰던 화광자검 한 쌍이 카슈라의 손에 있었다. 그의 손에 있으니 칼이라기보다 단검 같았다.

카슈라는 화광자검을 양손에 하나씩 쥐더니 힘차게 좌우로 뻗었다.

칭!

화광자검의 칼자루가 길어지더니 단창 형태로 변했다.

“제 덩치에 비해 짧아서 창으로 개조했죠. 흠, 더 이상은 칼이 아니니 화광자창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요?”

카슈라는 발렉처럼 두 자루의 날을 부딪치며 예열했다.

우우우웅!

카슈라의 쌍창에서도 플라즈마 현상이 일었다.

‘발렉은 카슈라에게 죽은 건가?’

한 쌍의 화광자검은 원래 발렉의 무기다. 발렉의 행방에 대해서도 카슈라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더군다나 카슈라는 키누안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을 터다.

‘카슈라는 내가 찾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난 여차하면 도주하려던 생각을 바꿨다. 내 목숨을 판돈으로 싸울 이유가 생겼다.

‘여기서 카슈라를 제압하면…… 키누안과 급격하게 가까워질 수 있어.’

키누안을 향한 지름길이 내 눈앞까지 저절로 굴러왔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주는데 입 다물고 거부할 생각은 없다. 독이 들었어도 이번엔 삼켜야 한다.

스륵, 툭.

난 코트를 벗으며 권총과 같이 던져뒀다.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만들고 싶었고, 잡힐 옷깃조차 줄여야 한다. 코트는 싸울 때 좋은 옷이 아니다.

딸깍.

난 셔츠의 단추도 두 개 풀며 앞섬을 열었다.

예지에 가까운 직감이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나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다.’

내 상태가 좋다는 전제를 깔아봐도, 난 카슈라보다 한 끗 밑에 있을 것이다.

정체불명이지만 전설이라 불리는 용병, 레기온급 전투력이 아니면 설명이 어려운 전투 기록. 그리고 정황상 그는 키누안조차 섣불리 손대기 힘든 존재일 것이다.

……난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라자루스에서 깨어난 이후로 나보다 강한 자를 만난 적이 있던가?

머릿속에서 가상의 손가락을 만들어 세어보았다.

엔과는 제대로 싸운 적이 없으니 제외. 퇴물이 된 라그나타는 실망스러운 상대였지. 메노아 친위대장과 발렉 정도가 싸워볼 만한 상대였으나 그들도 나보단 한 수 아래였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그 존재 자체가 내겐 강렬한 자극이었다. 예전에 만났던 강자들이 차근차근 떠올랐다. 나를 내리보던 자들.

스스스스.

피로로 절어있던 신경계가 자극을 받았다. 머리털마저 감각 기관이 된 느낌이었고, 시야에 들어오는 색채가 선명했다. 하나로 찌그러져 잡음처럼 들리던 주변 소음은 하나하나 분리되더니 해상력 좋게 구분되어 들렸다.

‘나쁘지 않아.’

아키에스 빅티마로 확장된 인지 덕분에 도로에 널린 자동차의 개수가 저절로 머릿속에서 흘러 들어왔다.

내 뇌가 체감 시간을 붙잡으며 물고 늘어졌다. 흐느적거리는 연기구름이 아까보다 느리게 보였다.

나조차도 이런 집중력과 여력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심장이 세차게 뛰면서 내 뇌로 혈액을 잔뜩 보내고 있었다.

주륵.

코피가 흐른다.

“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에 카슈라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난 방금 도주까지 고려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막상 싸움을 결심하자, 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후우…….”

숨을 내뱉었다. 몸에서 전투 호르몬을 잔뜩 분비하고 있었다. 천연 각성제에 뇌가 절여지고 있었다.

난 승산이 낮은 전투에 몹시 흥분했다. 보더시티에서 깨어난 이후로, 지금보다 머리가 맑았던 적이 없었다.

내가 익힌 모든 전투 기술이 피부에 착 달라붙어 머무는 느낌이었다. 그 어떤 고난도 동작과 기예도 가벼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역시 몸은 솔직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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