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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13

213
진가우는 내가 만나본 이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제4연구소장 진가우, 그는 황실 직속 연구기관의 장이다. 제국의 고위직이며, 전신의체의 수명도 한계에 이를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

제국에서 저런 위치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차갑고 무기질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가우에겐 소년 같은 면모가 있었고 어디로 튈지 모를 생명력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가우가 자신의 능력만 믿고 철없이 구는 사내는 아니었다. 그는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면서도 제국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진가우의 변덕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진가우는 내 적은 아니지만, 친구는 더더욱 아니었다.

‘진가우가 나를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진 않을 터.’

찰나였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가우가 내뱉은 첫마디는 딱 하나였다.

‘……구면이로군.’

그 한 마디에 내 뇌는 뜨겁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펑펑 터지는 것 같았다.

진가우는 의미 모를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난 지금 가면을 쓰고 있었다. 더군다나 난 예전보다 체격이 커졌다.

‘날 알아보지 못할 거다.’

난 침묵하며 진가우와 마주했다.

“아, 구면이라는 소리는 그 칼을 말하는 거네. 화광 시리즈는 나도 경매에서 본 적이 있거든. 하나 가지고 싶었지만, 장난감 구입에는 예산이 나오진 않아서 말이지. 좀 봐도 되겠나?”

진가우의 시선이 화광예도의 칼자루에서 멈췄다.

“남에게 선뜻 칼을 넘겨주긴 싫군요.”

“전사라면 대개 그렇겠지. 하지만 내게 너무 모질게 굴진 말게. 내가 아니었으면 자네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거야. 화광 시리즈를 살펴보고 싶어서 시그마 군에게 자네의 출입을 요청했지.”

역시 내 출입은 진가우의 짓이었다.

딸깍.

난 화광예도를 몸에 떼서 진가우에게 넘겼다. 되도록 나 자신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말을 삼갔다.

키잉.

진가우는 화광예도를 뽑아 들었다. 그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칼날을 앞으로 쭉 뻗으며 응시했다.

“예술적인 실패작이로군. 하지만 이게 진정한 진보의 정신이지. 할 수 있기에 해보는 게 아니라, 불가능하기에 도전하며 추구하는 것.”

진가우는 생기 넘치는 얼굴로 화광예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훈련받지 않은 칼놀림은 몹시도 위험했다.

‘이 인간은 여전하군.’

진가우의 손아귀에서 화광예도가 언제 탈출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제 연구실을 박살 내시겠습니다.”

시그마도 무표정한 얼굴로 불안을 표출했다.

“하하, 보게나! 시그마 군! 공기 마찰만으로도 칼날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어. 이그니움 덕분이지. 우주는 넓고 신기한 것들이 많아. 우린 아직 티끌밖에 보지 못했지. 아아, 왜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걸까!”

진가우는 빙글빙글 돌았다. 언뜻 보면 술에 취한 사람처럼 팔다리가 느슨했다.

끽!

진가우가 손을 삐끗하며 화광예도를 놓쳤다. 화광예도가 복잡한 기계장치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덥썩!

준비하고 있던 내가 팔을 뻗어서 화광예도를 낚아챘다.

“이젠 충분하십니까?”

나는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진가우는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칼집까지 내게 던졌다.

스륵, 철컥.

난 역수로 쥔 칼을 휘둘러서 칼집이 날아오는 궤도에 맞췄다. 칼집이 칼날을 말끔하게 삼켰다.

“재주가 좋군, 이름 모를 청년. 난 지나가던 과학자네. 자네는?”

“지나가던 청년입니다.”

“군인이 아니고? 군 생활을 해본 것 같은데?”

진가우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나는 속으로만 욕을 내뱉었다.

‘날 알아본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네. 이 망할 능구렁이…….’

내 직관으로도 진가우의 진의를 알기 힘들었다. 설사 날 알아보지 못했을지라도 저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사담을 나누려고 온 건 아닙니다.”

나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 정비를 받으러 왔다고 했지? 내 비록 마키나 소속은 아니지만, 의체에 일가견이 있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밉상이다. 날 방해하려고 작정한 듯한 태도였다.

난 시그마와 단둘이 있고 싶었다. 협박하든 거래하든 전신의체 시술 기록을 받아내야 한다.

짜증이 나서 속이 울렁거렸다.

냉정해지자. 이성적 사고로 판단해라. 난 소년 시절의 루카가 아니다.

난 진가우 같은 부류를 무수히 많이 상대했다. 저들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한다. 상대에게 불안을 일으켜 진실을 토해내게 만들려는 수작일 뿐이다.

‘진가우가 날 알아봤을 리가 없다.’

진가우 성격상 화광예도에 관심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고, 그는 농을 잘 던진다. 그래서 구면이라 떠벌린 거다.

군인이 아니냐 떠본 것도 합리적인 물음이다. 나는 간만에 제국의 향수에 취해서 군인 특유의 언행을 취했다.

좋아, 생각의 정리는 끝났다. 마음이 고요했다.

“사실, 의체 정비는 핑계입니다. 다른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난 담담히 말했다.

진가우는 싱글벙글 웃고 있고, 시그마도 무표정하게 날 보고 있었다.

“이거 참, 마키나도 많이 우스워진 모양이군. 출신도 모를 나부랭이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며 거래를 청할 줄이야.”

시그마의 동공 테두리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게서 거리를 두었다.

진가우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물러나고 있었다.

“흠흠, 내가 더 나설 일은 아닌 것 같군.”

여전히 진가우의 처세술은 훌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난 진가우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 황실 직속 연구소장이 왜 여기에 있는지가 궁금하군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제국 황실과 척을 진 조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진가우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이젠 내가 떠볼 차례다.

우뚝.

진가우가 동작을 멈추고선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화면이 정지한 듯 미동이 없었다.

시그마도 묵직하게 날 바라만 봤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사고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제국의 고위직인 진가우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접촉하는 건…… 개인적 밀회일 수도 있다. 설사 황실이 묵인했더라도 떳떳한 일은 아니겠지.’

진가우가 기계적으로 멈춰있던 입술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럼 제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입니다.”

난 흐름을 잡았다. 여긴 내 특기 영역이다.

진가우와 나는 같은 인간이지만 생물학적 종이 다르다고 말할 정도로 초점의 차이가 있다.

진가우는 위정자와 관리자에 속한 인간이다. 그는 변화하는 눈앞의 현실을 빠르게 쫓아가는 사냥개가 아니었다.

진가우 같은 부류는 먼 곳을 관조하며 큰 흐름을 읽을 줄 알되, 스치듯 흘러가는 현실의 냄새를 맡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나는 현장직이고 진가우는 관리직이다.

예기치 못한 변수와 상황에 대응하는 건 언제나 현장직의 몫이지.

진가우의 동요가 느껴진다. 보더시티에서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날 거라 상상도 못 했으리라.

진가우에게 나는 정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다. 두려움이 그를 뒤흔들고 있을 것이다.

‘이게 키누안이 타인에게 하던 짓이지.’

자신의 정보는 드러내지 않고 남을 파헤치는 것.

정보의 비대칭은 협상의 우위를 가져온다.

난 진가우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확신했다. 그의 화술에 긴가민가하며 헷갈린 것도 잠깐이었다.

“그래서 의체 정비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라고? 무슨 까닭으로 위험천만한 기계의 성에 들어선 거지?”

진가우가 내 의중을 직접적으로 물었다.

“마키나에서 작업한 전신의체 시술 기록입니다. 근 반년 이내면 충분합니다.”

진가우는 턱을 매만지며 시그마의 의견을 구하듯 응시했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기록을 내놓으라니…… 더는 들을 것도 없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침입자는 제거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시그마 군. 난 제국에서 한 세기 넘게 고위직에 있었지.”

진가우는 연구소장이라는 걸 더는 숨기지 않았다.

“보더시티에 이런 무뢰배는 흔합니다. 상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그마가 드물게 표정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안락한 기계성에 틀어박혀 연구만 한 자네는 모를 거야. 난 정치와 알력다툼에서 내 지위를 지켜야 했어. 그때마다 내 목숨을 지켜준 건 합리적 사고가 아니었네. 나조차도 납득이 어려운 직감이었지.”

진가우는 가운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는 권총을 꺼냈다. 총신의 얇은 투과창에서 너울거리는 에너지 입자를 보니 실탄이 아니라 에너지 병기였다.

“지금 무…….”

시그마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위잉, 텅!

진가우가 방아쇠를 당겼다. 에너지 입자가 총구에 모여들더니 구 형태로 날아갔다.

시그마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투사체 속도는 일반적인 총보다 느려도 위력은 굉장한 무기였다.

나는 진가우의 살인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의 에너지 권총은 단발형이라 한 번의 사격으로도 에너지 카트리지가 밑으로 빠졌다.

철컥.

진가우는 에너지 카트리지를 다시 넣고선 내게 총을 넘겼다.

“잠시 뒤에 이걸로 내 팔을 날려주게. 그러면 협박당했다고 변명하기 쉽겠지.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자고. 자넨 폐하의 칙령으로 활동하고 있을 테니 협조하도록 하겠네.”

진가우의 판단력은 훌륭했다. 그리고 고위직 관리자치고는 과감한 행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내도 실실 웃으면서 제국에서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

진가우는 내 소속이 어딘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가 말하는 부대가 어딘지 알았다.

“전 카르티카 대장 밑에 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일레이 카르티카. 요즘 두각을 드러내는 야심가지. 나조차도 그 친구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하여간 절친한 친구의 뒤통수를 칠 때부터 크게 될 거라곤 생각했어.”

진가우가 히쭉 웃었다. 그의 가느다란 눈에선 광채가 흘렀다.

나는 진가우의 말을 머리에만 담아두었다. 지금은 감정을 움직일 때가 아니다.

“마키나의 보안과 경비 장치를 무력화하실 수 있겠습니까? 충돌 없이 빠져나가고 싶군요.”

“그 정도는 내게 맡기게. 이미 시그마의 연구실 쪽엔 더미를 깔아뒀네. 통제실에선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임무 수행을 위해 마키나의 전신의체 시술 기록이 필요합니다.”

“어렵진 않을 거야. 딱히 대단한 기밀 정보도 아니니까.”

진가우는 시그마의 시신에서 단말기를 꺼내더니 이리저리 조작했다.

“마키나와 자주 접촉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난 넌지시 말하며 데이터 전송을 위한 칩을 던졌다.

“나도 알곤 있네만, 이 친구들은 재밌단 말이지. 사상누각이 뭔지 몸소 보여주거든. 거창한 신념과 가치를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현실과 괴리된 아집에 불과해. 이들은 자신부터가 인간으로 결함이 있기에 기계를 동경하는 거지. 이들의 기계주의 토대는 우월감이 아니라 열등감으로 시작된 거야.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어. 우린 인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초월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하네.”

“버리는 것과 초월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겐 말장난처럼 들리는군요.”

난 대꾸하다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견을 집어넣으면 내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진가우는 말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칩에 데이터를 집어넣고선 내게 넘겼다.

“끝났습니까?”

“일단은…… 잠!”

난 진가우의 말이 끝나기 전에 총구를 잽싸게 겨누곤 방아쇠를 당겼다.

구 형태의 에너지탄이 진가우의 오른팔을 멋지게 날렸다. 그의 오른쪽 뺨과 목도 에너지에 그을려서 시커멨다.

“커억, 컥. 으읍. 아직 통각을 끊지도 않았는데!”

진가우가 비틀거리며 화를 냈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쩐지 오래 묵혀둔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난 이 인간에게 꽤 악감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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