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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훈련할 때면 라그나타를 동반했다.
‘아키에스 전투술을 주력으로 삼고 나선 다른 전투술 습득을 게을리했다.’
아키에스 빅티마는 메타 전투술이다. 메타 전투술 같은 전투체계는 하위 전투술을 강화하는 역할이지, 그 자체가 전투술이 되진 못한다.
나는 손가락 하나로 느릿하게 물구나무를 섰다. 내 몸은 땅에 박힌 듯이 수직에서 멈췄다. 이 상태에서 나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빠졌다.
‘아키에스 빅티마의 수준이 높아지고 나서는 개인 훈련이 미흡했어. 내 전투술 구성은 생도 시절에 배운 수준에서 머물고 있어.’
특히, 관심 바깥 분야는 동급 강자와 비교하자면 부족한 편이다.
‘생도 시절에는 선택과 집중이 옳다. 하나의 영역을 일류로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다른 능력도 일류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내 근접전 능력은 동급 장비라면 누구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다. 근접전만 따지면 아키에스 빅티마가 없어도 날 당해낼 자는 드물다.
‘약점 분야의 기술도 익혀둬야 하나?’
예컨대 사격술과 저격술 같은 것들. 그래야 전투 시에 내 선택지가 늘어난다.
‘근접전만 선호하다 보니, 불필요한 위험을 자주 감수했고 집중력 소모도 더 컸지.’
근접전 특유의 고기동 회피는 기력과 집중력의 소모가 크다. 일일이 그렇게 싸웠다간 금방 지치고 만다.
‘내 성향과 적성에 맞지 않아 도외시했던 능력도 일류 수준으로 끌어 올려놔야 해. 미뤄둔 숙제를 할 때가 된 거지.’
본격적으로 제국의 어둠에 발을 담근 뒤로는 개인적인 강화 훈련을 하기 힘들었다. 있는 시간마저도 아키에스 빅티마에 투자하기 바빴다.
나는 생각을 마치며 눈을 떴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라그나타가 보였다.
“루카, 제국에서 네가 나에게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
라그나타가 턱을 괴며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뱀 껍질 과자를 하나씩 먹으며 술도 마셨다.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의 손동작은 잘 배운 귀족처럼 고풍스러웠다.
“순수한 기량의 차이, 그리고 경험치.”
“그렇지.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답게 잘 알고 있구나. 당시에 나와 다시 붙는다면 그 차이를 메꿀 방법은?”
“뭐, 인위적으로 경험치를 올릴 순 없으니 기량을 갈고닦아야지.”
내가 대답하고선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부드럽게 발을 땅에 대며 몸을 세웠다. 불필요한 미동도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오늘도 균형 감각이 훌륭하군.
“네 아키에스 빅티마는 수준급이다. 여기서 아키에스 빅티마 수준이 더 높아지더라도 전투력 상승은 미미해. 기량을 올리려면…….”
난 본론으로 빨리 넘어가고 싶었다.
“이해했어. 그러니까 유효 선택지를 늘리라는 거잖아. 사격술이나 암살자의 기술 같은 것도 써먹을 수준까지 연습하라는 소리로군.”
“나는 그러했지. 난 닥치는 대로 모든 걸 배워서 흡수했다. 하지만 넌 나처럼 못해.”
난 눈을 찡그렸다. 여태 살면서 내게 싸움과 전투에 관해서 ‘못 한다.’라고 단정한 사람이 없었다. 난 스스로 전투 쪽으로는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거, 재능이 없다는 소리는 살면서 처음 들었어. 아주 신선하네.”
“재능이란 단순히 성취의 속도만을 말하는 게 아니지. 아, 그리고 넌 아키에스 빅티마를 완벽하게 익히기엔 유연함이 부족해. 오히려 내가 적합하지. 내가 너와 똑같은 수준의 신경계 화학 처리를 받고 성장기에 아키에스 빅티마를 접했다면, 너보다 성취가 높았을 거다.”
나는 울컥하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으려고 라그나타를 곁에 둔 거기도 하다.
“그 이유는?”
“아키에스 빅티마의 특성 중 하나가 물과 같은 순응이지. 물은 외부 환경에 맞춰 가장 적절한 형태를 취하지.”
라그나타가 뱀 한 마리가 들어간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아키에스 빅티마도 마찬가지지. 상대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 어떤 전투 상황에서도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조직이나 집단 어디에 집어넣어도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자리를 잡아. 하지만 넌 그런 사람이 못돼. 아키에스 빅티마를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조건은 훌륭히 갖췄지만 대성하기엔 ‘기질’이 맞지 않다.”
난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사고가 폭주했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좀 구차한 말이지만, 내 스승은 기질을 지적한 적이 없어.”
“그 역시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니까 그렇지. 너라는 존재에 맞춰 가장 이상적인 스승이 됐을 테니까. 그리고 기질은 타고난 것이니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지적해야 의미가 없지…….”
라그나타는 벽면의 홀로그램을 작동시키더니 손가락을 움직여 글자를 썼다.
나는 라그나타의 말을 기다렸다. 이럴 때마다 학생이 된 기분이다. 라그나타가 선생이 맞긴 한가보다.
“……내게 아키에스 빅티마 특유의 비정상적인 관찰력은 없다. 그래서 난 상대와 마주하면 큰 특징과 드러난 정보만 보고 빠르게 범주화하지. 내가 나눈 전사의 기질은 크게 다섯 가지다.”
라그나타는 다섯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그중 두 개를 옆으로 밀어서 왼쪽으로 떼어놓았다.
“난 근접형 기질은 둘로 나눠서 본다. 하나는 쾌락 살인형, 다른 하나는 명예 추구형이다. 넌 명예 추구형이지. 물론, 이 두 가지 기질은 누구나 어느 정도 섞여 있다. 어느 쪽이 중심이냐가 중요한 거고.”
라그나타가 동그라미 안에 글자를 적으며 말했다. 적으면서 설명하는 게 습관화된 모양이다.
“이해했어. 거리가 가까울수록 내 손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는 실감이 더 크게 느껴지지. 쾌락 살인마들이 맨손이나 칼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놈들은 항상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마무리하려고 들 거야.”
나도 듣자마자 그들의 성향이 바로 떠올랐다.
라그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봐봐, 너도 금방 알아먹잖아. 그래서 이런 범주화는 세밀한 관찰 없이 상대를 예측할 때 유용해. 명예 추구형은 누구보다 네가 잘 알겠지. 자신보다 약한 자에겐 흥미가 없고, 강자를 상대로 더 불타오르는 경향이 있어. 때론 유리한 상황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와 기량을 겨루려고 하지. 가장 비합리적인 부류야. 그렇기에 생존율도 낮으며 그 숫자가 적지. 그러나 상위 전투 수준의 강자를 보면 이런 부류가 다수가 되는 기현상이 일어나.”
“그야 살아남는다면 제일 빨리 강해질 테니까.”
라그나타의 범주화가 편리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내 정면승부 요청을 선뜻 받아들였던 강자들이 떠올랐다. 나도 그들이 정면승부를 받아들일 거라 직감적으로 확신했기에 총과 무기를 먼저 버리곤 했었다.
“그리고 원거리 선호형도 난 두 부류로 나누고 있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기준이니 너의 잣대를 추가하는 게 훌륭한 학생의 자세지. 청출어람이란 언제나 기쁜 법이거든.”
라그나타가 동그라미 둘을 오른쪽으로 묶어서 빼더니 글자를 마저 적었다.
‘현명한 겁쟁이, 냉철한 전략가.’
직관적인 명칭이다. 바로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대다수 사람은 현명한 겁쟁이야. 승리나 임무보다 자신의 안위와 목숨을 우선시하지.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겁쟁이 중엔 강자가 적어. 반면에 똑같은 원거리 선호라도 냉철한 전략가는 안위를 우선시하려고 원거리를 선호하는 게 아니야. 상황을 크게 보고 판단하려고 시야를 넓게 잡는 거지. 근접전은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거든. 이들은 원거리를 선호할 뿐인 거고, 근접 무기도 필요하다면 곧잘 다룬다. 그리고 뛰어난 지휘관이 될 가능성도 높아.”
라그나타는 ‘강자’라는 글자를 쓰더니 순위를 정했다.
‘명예 추구형, 냉철한 전략가, 쾌락 살인형, 현명한 겁쟁이.’
이 순서대로 강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명예 추구형의 장점은 저력이 깊다는 거지. 흔히 말하는 기백과 극기로 자신의 능력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하곤 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은 단점이기도 하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구미가 당기면 자신의 기량을 확인하려고 기꺼이 들어오지.”
“흠, 찔리긴 하네.”
난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도 없다. 내 성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운이 나빴으면 죽어도 진즉 죽었을 놈이 나다.
“냉철한 전략가는 균형감이 뛰어나. 적당히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물러날 때도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성적인 만큼 광기가 부족해. 예측 불허한 결단을 내리지 않기에 예측이 쉬워. 그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한 끗발 떨어지지. 그리고 이들은 아키에스 빅티마를 배우기 힘든 부류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의 흐름에 몸을 던지려면 광기가 필요하거든.”
일레이의 기질이다. 그러나 완전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건 네 분류가 틀렸어. 냉철한 판단력과 비이성적인 광기는 공존할 수 있다.”
난 일레이의 비이성적인 언행과 종종 보였던 흠칫한 광기를 떠올렸다.
“성질 급한 티 내지 말고. 계속 들어봐. 마지막 유형이 있잖아.”
라그나타가 남은 동그라미에 글자를 적어 넣었다.
‘만능형.’
내가 속으로 읊조렸고, 라그나타는 자신을 가리켰다.
“……대표적인 만능형으론 내가 있다. 상황에 따라 전투 형식과 무기를 바꿀 수 있어. 모든 능력이 고르게 평범하면 범인, 고르게 정점이면 만능이지. 아키에스 빅티마와 가장 궁합이 잘 맞아. 돌고 돌아 결국은 상선약수이니, 최고의 선은 물이로다.”
라그나타가 시를 읊듯 중얼거렸다.
나는 키누안을 떠올렸다. 내가 보아도 키누안은 명예 추구형, 쾌락 살인형, 현명한 겁쟁이, 냉철한 전략가…… 이 네 가지에 속하지 않았다. 그도 ‘만능형’이었다.
라그나타를 제외하고, 내가 아는 인물 중에선 키누안, 노엘 뮬리즈카, 일레이 카르티카. 세 명만이 만능형이었다.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러면 만능형이 가장 좋다는 말이잖아. 지금까지 본인 자랑을 한 건가? 참나.”
내가 툴툴거리자, 라그나타가 웃었다. 그녀는 술을 한 잔 더 마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기질의 우수성이 개체의 우수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네, 루카 학생.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측의 편의를 위한 자의적 분류이자 편견에 불과해. 경험으로 쌓인 편견은 뇌의 부담을 덜어주거든.”
“그 편견이 틀렸다면 역으로 당하는 게 아닌가?”
“그렇겠지. 하지만 난 틀린 적이 없어. 지금까지 살아있잖아.”
라그나타의 자신감에 웃음이 나왔다. 이건 비웃는 게 아니라 감탄이다.
“……그래서 내 훈련 방향성은?”
“다양한 기술을 만능으로 끌어올리기엔 네 기질에 맞지 않아. 사격술 따위를 공들여 배워봐야 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칼을 빼 들고 설치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네겐 반복 숙달이 중요해. 반복 숙달을 통해 지금까지 익힌 상위 전투 기술을 기본기 영역으로 만들어라. 예컨대, 탄도 예측처럼 집중력을 많이 잡아먹는 기술을 무의식 영역에서 전투 반사로 수행하라는 소리다.”
난 골몰히 생각하다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내 미간이 더 좁아졌다.
“이봐, 노망이라도 들었어?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라그나타는 입술을 끌어올리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의 눈웃음도 같이 가늘어졌다.
……개소리가 아니로군, 염병.
“참고로, 난 네 나이대에 해냈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 라그나타의 말이 맞다. 난 기질적으로 문제가 있다. 도발인 걸 알면서도 응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