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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46

346
나는 바바라를 어깨에 멘 채로 달렸다. 달리는지 걷는지도 잘 모르겠다. 전진하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일레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바바라의 지원이 어찌 온 건지 난 모른다. 바바라가 날 아슬아슬하게 구해준 이유? 그건 알겠다. 지젤의 부탁 때문이겠지.

‘바바라의 통찰이 옳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난 극한의 자극 중독자이고, 전장과 폭력을 찾아다니는 쓰레기가 맞다.

그리고 바바라는 내 예상과 달리 정말로 지젤을 사랑했다. 그녀는 지젤의 연인인 날 구하려고 자신의 뇌를 불태웠다. 빌어먹을 정도로 헌신적인 사랑이다.

살다 살다 바바라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줄이야. 우리의 세상은 정말 앞날을 알기 어렵다.

칙, 치직.

바바라의 머리에서 잡음과 전류가 계속 튀었다. 엄청난 부하가 걸린 모양이었다.

바바라는 다수의 그림자를 일시적으로 멈췄다. 그림자의 주 연산 장치는 인간의 뇌다. 그것도 고속 사고가 가능한 근위대원의 초고성능 뇌였다.

초일류 해커인 바바라조차 너덜너덜해질 만했다. 그야말로 그녀는 목숨을 건 것이다.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이 내 입에서 나왔다. 기관지가 망가져서 호흡이 원활하지 않았다.

“후우.”

최대한 숨을 가다듬었다. 망가지면 망가진 대로 버틸 뿐이다.

아직 난 안전하지 않다. 저 뒤에서 일레이가 그림자와 대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림자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서넛만 있어도 어지간한 레기온을 우습게 잡아먹는 놈들이다.

“어이, 바바라.”

불러봐도 대답은 없다.

어쩌면 바바라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콰앙!

황궁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고 있었다.

‘내전이 시작된 건가?’

혼란이 깊어졌다.

‘키누안…….’

키누안이 떠오른다. 혼돈과 혼란을 몰고 다니는 사내.

턱! 철컥.

복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난 걸음을 멈췄다. 총구가 내 관자놀이에 닿았다.

“멈추십쇼. 신원을 확인하겠습니다. 부상자 두 명을 발견했다.”

두 명의 군인이 날 발견하고선 보고했다.

평소라면 진작 눈치채고 대응했을 터다. 내 인지와 감각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 수 있군.

난 빡빡한 머리를 굴렸다.

저 군인은 이반 소속일 것이다. 황궁의 이변을 알아채고선 상층 구역의 군인들도 집결해 진입한 것이다.

‘이반은 사람을 믿지 못해서 주로 그림자나 안드로이드에게 황궁의 경호를 맡겼다.’

이반은 사방에 적을 두고 있었다. 말을 들어보면 같은 황족이나 방계 친척에게도 적대적인 듯했다.

그림자와 안드로이드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사태에 이르러서야 군인들이 황궁으로 진입했다.

“루카우스 쿠…….”

군인 한 명이 날 알아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에게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탕!

총성이 일었고, 말하던 군인의 머리가 터졌다. 날 알아본 게 기회인지 아닌지는 영영 알 도리가 없겠군.

콰직!

그 옆에 있던 군인의 머리도 이어서 터졌다. 헬멧을 착용한 사람의 머리가 산산조각 날 정도로 화력이 대단한 무기였다.

쉬이이이이.

살벌한 화력 너머로 전신 전투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묵직한 권총을 들고 있었다.

전투복의 굴곡만 보고도 난 그녀가 누군지 알았다.

“……지젤.”

지젤이 얇은 외골격이 덧대어진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치익.

새카만 전투복의 헬멧이 뒤로 접혔다. 밤하늘처럼 어둡고도 푸른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머리색이다.

“이번엔 기다리기 싫어서 직접 왔어.”

지젤은 사람을 둘이나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나란 존재가 그녀를 저렇게 만든 거겠지.

우린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난 지젤이 쌓아온 어둠의 깊이를 모른다. 지젤도 내 안의 폭력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

뭐, ‘앞으로’ 알아가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이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며, 스스로를 사지에 밀어넣은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살고 싶다는 뜻이다. 음, 염치가 없군.

“좀 기댈게.”

내가 지젤의 어깨를 빌리며 말했다.

“얼마든지 기대도 돼.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네 휠체어를 얼마나 밀고 다녔다고 생각해?”

“하하.”

웃음과 함께 의식과 기억은 흐릿해졌다. 이런저런 충돌 끝에 황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일레이의 안배가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모든 게 흐릿해진다.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고의 조각은…….

‘……키누안.’

망할, 키누안.

뾰족한 바늘이 머리에 박힌 느낌이다.

키누안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 혼란 어디에 서 있는 거야?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간담이 서늘하다.

놈이 당장이라도 우리 앞에 나타나 모든 걸 망칠 것만 같다.

이 앞에 나타난 키누안이 지젤의 머리를 터트리고, 내 미간에 총을 겨눌 것만 같다. 일레이도 놈에게 속아넘어가 모든 계획을 망칠 것 같다.

키누안, 키누안, 키누안…….

이번 사태에서 놈의 모략과 계략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불안하다.

도대체 무얼 준비하고 있단 말인가?

결정적인 개입을 하고도 남을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힘의 균형을 이뤘을 때의 개입. 놈은 그걸로 상황을 뜻대로 이끌어가며 주도권을 잡겠지.

위이이잉.

공중차량이 보인다.

사실 제대로 보이는 건 아니다. 사물의 덩어리와 윤곽만 어렴풋했고, 소리로 공중차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키누안이…….’

갑자기 나타나 공중차량을 격추한다면? 나와 지젤을 죽인다면? 이젠 대응할 방도도 없다.

우우우웅.

공중차량이 이륙한다. 난 긴장해서 지젤의 팔목을 붙잡았다.

우리가 탄 공중차량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그러나 이륙하고도 아무 일이 없었다. 난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꺼져가는 의식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키누안은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다.’

놈은 마지막까지 내 예측에서 벗어났다. 청출어람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 * *

어두운 시간이 흘렀다. 난 아득한 심연에 잠겨있었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불편했다. 의식은 있는데 모든 게 어둡고 차가웠다.

어쨌든, 심연에서 깨어난 나는 대외적 이야기를 들었다.

이반 크라치아는 사망했다. 암살범은 일레이 카르티카로 밝혀졌다.

일레이 카르티카는 붙잡혀 머리가 잘렸고, 그는 ‘생체 뇌’와 함께 소각됐다. 가주의 죄 때문에 카르티카 가문은 몰락했다. 명문가였던 덕분에 멸족은 피했으나 가문원은 모든 공무직에서 물러나고 민간 사업체에서도 손을 뗐고, 카르티카는 한미한 가문으로 전락했다.

일레이 카르티카로 황제 시해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리고 프란세크…….’

프란세크 크라치아는 산업지구 일부를 봉쇄하고 민간인 학살을 갑작스레 지시했다. 시행이 어려운 학살 명령이었다.

명목상으론 봉쇄한 구역에 이반의 첩보부대와 암살부대가 숨어있다는 이유였지만, 사람들은 오랜 유폐 생활 때문에 프란세크에게 편집증이 생겼으리라 추측할 뿐이었다.

프란세크의 측근 중 상당수가 주군의 비이성적 지시에 반대했으나…… 오히려 프란세크는 군법을 운운하며 반대한 자들을 처형했다. 프란세크의 강압으로 인해 민중 학살은 시작됐고, 무고한 사상자만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민심과 인망으로 모였던 프란세크 세력은 단숨에 무너졌다.

프란세크는 비운과 오명의 황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었다.

제위가 공백인 탓에, 프란세크는 황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었다. 반역자에 민중 학살자라도, 황족은 황족인지라 처형 과정은 비공개였다.

이반은 자식도 없었고, 후계도 지정하지 않았다. 차기 황제는 모든 황족과 방계가 참석한 회의에서 선출된다고 한다.

의외로 황제위가 공백인데도 제국은 큰 혼란 없이 굴러갔다.

“……황제 또한 제국을 이루는 시스템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일레이’가 내 앞에 설명을 마쳤다. 그는 과거의 본체와 외형이 같은 의체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의 생체 뇌는 프란세크의 것이다. 유전자 검사와 생체 인증을 한다면 프란세크의 신원으로 나온다.

“음…….”

나는 간지러운 머리를 매만졌다.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머리카락도 없었다. 당연히 빡빡 밀었을 테니까 없지.

뭐라 말해야 할지 당장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 머리가 예전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새것이라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뭐든 적당히 쓰고 기름칠해야 잘 움직이지 않던가?

지금 내겐 석 달의 공백이 있었고, 깨어난 지 여섯 시간도 되지 않았다.

주변의 새하얀 벽과 시설을 보니 제국의 병원이나 연구소인 듯했다.

“일레이, 이게 최선이었어?”

내가 말했다. 난 내가 어떤 치료를 받고 깨어났는지 알고 있다.

남은 저장소는 내가 사용했다. 일레이가 본체로 돌아가길 포기한 덕분이었다.

“루카, 넌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었어. 저번보다도 상황이 나빴고, 이번만큼은 라자루스의 치료를 받을 여유도 없었지.”

일레이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래서 네 생체 뇌를 포기했다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잃을 걸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고.”

“잃을 각오를 했다고 잃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그건 네 마지막 생체야. 지킬 수 있으면 지켰어야 해.”

타고난 피와 살이 적을수록 사람은 빠르게 무너진다. 피와 살은 거센 풍파에서 인간성과 자아를 잡아주는 닻이었다. 평소에는 그저 배를 무겁게 하는 짐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참나, 이럴 거면 차라리 프란세크의 몸으로 황제라도 되지 그랬어?”

“이반의 방심을 끌어내려면 합의한 사안은 실행해야 했어. 그리고 무고한 시민이 좀 죽더라도, 내전이 일어나 아크바란이 쑥대밭이 되고…… 수십, 수백만 명이 죽는 것보단 낫지.”

난 눈을 찌푸렸다. ‘무고한 시민이 좀 죽더라도’라는 말에선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일레이는 목숨을 숫자로 보는 훌륭한 위정자가 되었다. 비꼬는 것과 동시에 사실이다.

국가 운영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죽거나 피해를 보게 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통치와 정치이고, 일레이는 그런 세계의 사람이다.

“다른 황족들도 바보가 아니야. 제국이 보존하는 여러 유물과 정신전이기에 대한 정보를 아는 자도 있지. 내가 프란세크 흉내를 계속 내봐야 머지않아 들통났을걸. 그래서 그쪽과도 협상했어. 골치 아픈 두 명의 황족을 끌어내릴 테니, 새로운 황제를 뽑으라고 말이야.”

“그쪽에서 통치를 민중에 위양한다고 했어? 공화국은?”

일레이는 눈을 옅게 뜨며 웃었다. 누군가는 저 미소를 비열하다고 생각할 터다. 아니, 나도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공화국은 소년기의 꿈이야. 현실은 달라. 난 너보다 실질적으로 십 년 넘게 더 살았어. 더 빠르게 어른이 됐지. 그러니 형님이라고 불러도 돼, 루카 동생.”

일레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녀석과 이야기하다 보니 팔팔한 뇌에도 두통이 생길 것만 같다.

“넌 앞으로도 황제를 보좌하는 건가? 섭정이라도 된 듯이 흑막 짓을 하면서? 거참, 대단해. 자기 자신과 가문마저 팔아넘겨 출세하다니 멋지군.”

나는 습관적으로 빈정거렸다.

“이게 공화정보다 나아. 민중은 변덕스러우며 다루기 어려운 존재야. 정서가 불안정하며 오만한 황제도 문제지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주제에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민중도 만만찮은 문제지. 차라리 허수아비 황제가 편해. 다음 황제는 황족과 귀족들이 다루기 쉬운 사람이 될 거야. 이번 시대의 제국은 과두정 체제로 정책이 결정되겠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처하기 위해선 합리적이고도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해.”

나는 일레이 말에서 이물감을 느꼈다.

“……일레이, 너도 무언가를 본 거로군. 벌어질 일이라는 게 전쟁만 뜻하는 게 아니지?”

“하하,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재활이 끝난 거야? 키누안이 바로 전성기 기량으로 회복한 것도 그럴 만했네.”

난 키누안과 같은 방식으로 뇌를 치료했다. 이걸 치료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황궁을 빠져나간 나는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한 채로 죽어가고 있었고, 아크바란 내에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내 수술을 담당한 건 진가우였다. 그는 나와의 했던 대화와 일레이가 내민 정신전이기에서 실험적인 치료법을 떠올렸다.

‘두개골을 열어 뇌만 빼서 초재생 치료를 시행한다.’

문제는 초재생을 받고 나면, 미치지 않더라도 동일인물이라 말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신전이기로 내 의식과 자아를 저장소로 옮기고 뇌를 재생했지.’

듣기론 무척이나 섬세한 작업이었다고 했다. 기존의 뇌를 스캔해 손상 부위 확인하고, 그 손상이 복원된 상태를 예측해 과잉 재생을 통제하고 일부는 제거…….

어쨌든 결론을 말하자면, 내 생체 뇌를 꺼내서 재생한 뒤에 정신전이기로 기존의 의식을 집어넣은 것이다. 치료가 끝난 뇌는 원래 신체로 들어갔다. 이게 지금의 나다.

‘뇌 초재생이 성공하더라도 생기는 부작용인 해리 장애와 이인화를 정신전이기로 극복했다.’

아마 키누안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뇌 기능 이상을 고쳤을 터다. 물론, 나보단 더 투박하고 기이한 방법이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일레이가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더니 대답했다.

“……네가 말한 게 뭔지 알아. 때가 되니 이반이 말해주더군. 그건 공화국을 바로 포기할 만큼의 매서운 진실이었지. 그 때문에 난 정말로 이반과 협력하려고 했어. 지금부터 힘을 합쳐 대비해도 부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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