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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35

335
일레이는 더는 프란세크를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찬장에서 술을 꺼내더니 담배까지 입에 물었다.

저러고 있으니 방탕하게 타락한 귀족 같았다.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겠지만.

츠즈즈즈즈.

막 불이 붙은 담배가 일순간에 끝까지 타들어 갔다. 전신의체의 폐활량 덕분이다.

“하, 염병할. 쓸데없이 의체 성능이 좋아서 니코틴이 눈곱만큼도 뇌에 들어오지 않아. 내부 필터가 오염 물질을 깡그리 제거하고 있어서 끌 수도 없더라고. 담배를 피워도 정신적 욕구만 조금 충족되는 정도야. 술을 마셔도 물을 마신 것 같고.”

일레이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황족의 전신의체는 제국의 공학기술 정점 그 자체이고, 상업화까진 수 세대는 걸릴 첨단기술이 덕지덕지 발려있다.

나는 일레이처럼 웃는 프란세크를 보았다. 음, 헷갈리는군. 내 눈앞에 쾌남이 일레이가 맞긴 하지.

정신전이기의 원리는 몰라도…… 초월적인 기술인 건 맞는 모양이다.

내가 과학자는 아니지만, 근위대 출신이기에 뇌와 정신에 대해 조금 알긴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타인의 뇌에 정신을 즉각 이식할 수 있는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괴인, 무쉬르 알 카슈라조차 신중하게 공을 들여가며 타인의 뇌를 천천히 잠식한다.’

일레이가 냉혹하고 비열한 놈이긴 해도, 무쉬르 알 카슈라 같은 비인간적인 괴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일레이는 무쉬르 알 카슈라처럼 타인의 뇌를 자신의 정신으로 다루고 있었다. 정신전이기 덕분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아케인 문명…….’

모든 국가가 아케인의 유산을 탐내는 이유가 있었다.

프란세크의 뇌를 차지한 일레이를 어떻게 여겨야 하는가?

솔직히 혼란스럽다. 일레이는 내 예상에서 벗어난 짓거리를 저질렀다. 이건 내 계산 바깥에 있는 상황이다.

“……미치겠군. 넌 제국 제일의 개새끼야, 일레이.”

험담에도 일레이는 웃기만 했다.

내 공격적인 발언을 미소로 넘기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일레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내가 최악의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루카, 널 제국 밖으로 내보내려는 내 의지 자체는 의심하지 마. 넌 충분히 고생했잖아. 여기서부턴 나의 투쟁이자 전쟁이야. 죽음도 나의 것이고, 성공도 나의 것이지.”

일레이가 걸을 때마다 진홍빛 외투가 나부꼈다. 그는 담배와 술을 내던지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뇌가 바뀌었으니 니코틴 금단 현상도 사라진 게 아니야? 중독은 뇌에 물리적으로 각인된 거잖아.”

“기억과 성격도 물리적 각인인 건 마찬가지야. 정신전이기는 뇌에 흉터를 남기듯 모든 걸 새겨넣어. 나도 상당히 놀랐어. 아주 사소한 습관조차 고스란히 옮겨와. 태어날 때부터 이 뇌를 내가 사용한 것처럼 말이야. 형이상학적인 개념은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만큼은 영혼이 옮겨갔다는 표현보다 적합한 말은 없더군.”

내 안의 의문과 궁금증이 들끓고 있었다.

“……프란세크는 죽은 건가?”

“물리적 의미라면 내가 곧 프란세크이고 죽지 않았어. 하지만 영적인 의미로 대답하자면 죽었지. 네가 하나 알아둘 게 있어. 프란세크의 정신은 진작 파괴된 상태였다. 오랜 유폐 생활과 고문으로 망가졌지. 이반이 프란세크를 멀쩡하게 놔뒀을 것 같아? 목숨만 붙여둔 거야. 내 안에 프란세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지. 내게 완전히 밀려났어.”

그래, 애초에 이상하긴 했다. 프란세크가 멀쩡한 상태일 리가 없다.

프란세크는 반역의 중심이 될 만큼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 이반이 프란세크가 복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 리가 없지.

나는 찬찬히 조각을 끌어모았다. 일레이의 입장에서 최선을 생각해봤다. 녀석은 내가 하지 못할 짓을 태연하게 한다. 선을 넘어도 진즉 넘은 놈이니까.

“프란세크를 이반에게 넘긴 게 너지? 프란세크를 이반에게 넘기면서 지금은 대적할 의도가 없다는 걸 비췄겠지. 이반도 당장은 널 제거하기보다 써먹고 싶었을 거고.”

차근차근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일레이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거짓말을 하면 앞뒤가 맞지 않으니 금방 들킬 거다.

“프란세크와 한배를 타고 있다간 이도 저도 안 될 상황이었어. 프란세크는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훌륭한 군주였겠지만, 난세를 헤쳐나가기엔 정신이 사악하지 못했지.”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저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란세크를 포기한 일레이의 결정을 동조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난 네가 프란세크를 보좌하길 바란 거야. 프란세크에게 없는 ‘악독함’이 너에겐 있으니까.”

일레이가 서글프게 웃었다. 섬세하게 설계된 프란세크의 얼굴에선 우수에 찬 표정이 절로 나왔다.

“처음엔 나도 보좌할 생각이었어. 나라고 네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던 건 아니야.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이반은 종종 내 예상을 뛰어넘는 통찰력과 총기를 내보였어. 신내림을 받은 듯이 예사롭지 않았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야.”

일레이는 침착했다. 자리에 앉은 그가 깍지를 낀 손의 엄지를 규칙적으로 부딪쳤다.

“……너도 이반의 이상을 눈치챘었군.”

“키누안을 추적하다 보니 놈이 훔쳐 간 유물의 정체를 알게 됐어. 키누안은 도피 생활하면서 정신전이기의 사용법을 줄곧 조사하며 연구했지. 거기까지 도달하니까 이반 안에 깃든 선대 황제의 그림자가 보이더라고.”

생도 시절부터 늘 느끼던 것이지만, 일레이는 우수했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라는 게 세상에 있다고 믿기 싫었지만 일레이가 그러했다.

일레이는 훈련에 열의가 없으면서도 나와 수석과 차석을 다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염병할 일이다. 당시의 난 정말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었다.

‘태어날 때부터 명문가의 도련님, 무얼 해도 대성할 것 같은 후광과도 같은 재능.’

그런 놈이 십여 년을 죽자 살자 달렸으니 그 성과는 어마어마할 터다.

녀석에겐 아키에스 빅티마 따윈 없어도 된다. 태어날 때부터 강자였던 그는 무수한 혼란과 처절한 혼돈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다.

“유물의 정체와 효과를 알게 된 이후로는 내 계획에도 수정이 있었지. 키누안과의 거래도 그때부터 시작이었고.”

짚이는 바가 있다. 보더시티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일레이, 넌 키누안과 닮았어. 그러니 직접적 소통이나 교류가 없어도 서로의 방식에 대해 이해했겠지.”

“맞아. 난 키누안을 압박하면서도 항상 도망갈 틈을 만들어줬어. 물론 내가 더 세게 나간다고 키누안이 잡힌다는 보장은 없지만, 키누안이라면 내가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추적한다는 걸 알았을 거야. 난 놈에게 여차하면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를 계속 남겼어.”

계략과 모략에 능한 천재들이 묵시적 신호를 주고받았다. 일레이와 키누안은 사냥개와 사냥감으로 남기엔 너무나 뛰어난 자들이었다.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쓸모없어진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고, 사냥감은 사냥개가 자신을 일부러 놓아준다는 걸 알아챘군. 영리한 사냥개와 영악한 사냥감에게 남은 결론은 ‘사냥꾼’을 제거하는 것이겠지.”

일레이가 정답이라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온전한 협력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잠정적 협력이다.

사냥감이 방심하거나 틈을 보이면 사냥개는 본분을 다할 거고, 사냥감도 사냥개를 완전히 떨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카르티카의 여우, 일레이.’

일레이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음모와 계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내가 분노할 만한 비열한 짓을 수없이 저질렀겠지.

조금 감성적인 말이지만, 난 그 사실이 조금 서글펐다.

‘예상은 했다. 일레이는 내가 경멸하고 혐오하는 위정자들과 같은 존재가 될 거라는 걸…….’

일레이는 내가 싫어하는 부류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내 친구였다. 날 위해 목숨을 던지고,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날 제국 바깥으로 내보내려 했다.

……난 일레이 카르티카를 미워할 수 없다. 내가 지젤의 죄악조차 사랑의 증거로 여기듯이 말이다.

* * *

“루카, 어차피 이제 종막이야. 내 이야기를 숨길 것도 없지.”

일레이는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쌓아둔 오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도 지젤을 찾은 사실에 대해 말했다. 숨길 것도 없으니 말이다.

난 일레이의 삶을 들었다. 그는 제국에서 지독하리만큼 어둡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일레이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어. 자신부터가 남을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누구와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지.’

일레이 같은 부류는 제국에서 정상적인 신뢰 관계 형성이 불가능했다. 제국의 고위 귀족으로 태어나 시커먼 음모에 휘말린 이상에야, 피해망상에 시달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기억하자, 헤일라스 같은 걸출한 인물도 수십 년을 함께한 극소수의 ‘근위대원’만 믿을 수 있었다. 헤일라스조차 가족을 믿지 않았다. 그에게 가족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일레이의 인생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우연으로 만난 ‘루카’라는 근위대 친구뿐이었다.

‘이 드넓은 제국에서, 오직 나만이 일레이의 편을 들겠지.’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일레이는 동정할 가치도 없는 비열한 인간이다. 타인을 속이고 속이고, 또 속이며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악인이니까.

그러나 난 일레이가 변모하는 순간을 눈앞에서 보았다.

‘릴리안 라모네스의 죽음.’

그녀를 쐈을 때, 일레이의 마음은 얇은 유리처럼 깨지고 말았다.

물론, 과거의 절망이 현재의 악행을 합리화하긴 어렵다.

일레이는 타인의 신뢰를 배신으로 답하곤 했다. 이제 와서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투덜거려선 안 된다. 내 친구지만, 놈은 타인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없다.

“꿈이 야무지네, 일레이. 프란세크의 몸으로 제국의 황제가 되겠다는 거야?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내가 빈정거렸다.

“짧은 통치겠지. 이반을 몰아내면 난 권력을 귀족과 민중에게 이양해 공화정을 수립할 거야. 나름 정치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어. 제국의 신분 구조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테니, 권력을 이분화해 귀족 의회와 민중 의회로 나누는 식으로 해볼 생각이야. 그 후 프란세크는 영면을 취할 거고, 난 일레이로 돌아가는 거지.”

일레이의 본체는 어딘가에 보관된 상태였다.

일레이라는 걸출한 천재가 자신의 삶을 전부 갈아넣고 사선조차 수없이 넘으며 한 가지 계획만을 위해 살아왔다.

일레이가 유일하게 ‘계획’과 상관없이 움직인 적은 ‘나를 구할 때’뿐이었다.

“그 공화국이라는 게 너한테 그렇게 큰 가치인 거야?”

일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내겐 더는 가치가 없지. 나는 내가 저질러온 업과 걸어온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겐 의미가 있어. 국가가 개인의 운명을 멋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될 거야.”

나는 듣고서도 그게 그토록 중요한 건진 모르겠다. 제국의 선별검사가 없단들,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렇지는 않으리라.

제국의 선별과 압박이 없더라도,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외력에 짓눌리고 뒤틀린다. 정신을 차려 보면, 내가 바라던 삶의 모양이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선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네가 추구하는 목적의 가치가 대단치 않아 보여. 하지만 네겐 중요하겠지. 그럼 내게도 중요해.”

그래, 일레이에게 중요하면 된 거다. 다른 건 중요치 않지.

“루카, 너는 지젤에게 돌아가. 기껏 찾은 행복을 놓아버리고 와? 병신이야? 나라면 절대…….”

“너도 무쉬르 알 카슈라에게 잡힌 날 꾸역꾸역 구했지. 네 계획과 전혀 무관한 일이었잖아.”

일레이가 눈을 차갑게 빛냈다. 프란세크의 의체로 저러니 묘한 중압감마저 있었다. 군주의 의체가 다르긴 했다.

“그건 릴리안 때의 빚을 갚은 거야.”

궁여지책으로 꺼낸 말이 고작 이거로군. 난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장난해? 그놈의 릴리안 타령은 작작 해. 넌 그 빚을 갚고도 남았어.”

“그리고 난 널 많이 속였어. 앞으로도 속일 거고.”

일레이는 어떻게든 날 제국에서 떼어내려 했다.

“네가 그런 새끼라는 건 어차피 알고 있어. 내 뒤통수를 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 이젠 배신감도 들지 않아. 오히려 또 이 새끼가 무슨 지랄이 난 건가 싶지.”

“기어코 이 난장판에 끼어들겠다는 거야? 네겐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 넌 이게 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스릴과 자극에 중독된 거야.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밀어넣지 않으면 지루해서 견디기 힘든 거지.”

일레이가 더욱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스릴, 자극, 중독, 극한의 상황.

그 낱말이 내 머리를 두드렸다. 지금까진 부정했으나 정말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인간인가? 그 정도로 망가졌다고?’

더욱더 부정하고 싶다. 물론, 사실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장 지젤에게 돌아가 평온을 반복해서 지내보면 된다. 할 수 있다, 루카. 넌 할 수 있어.

그러나 나는 나란 인간의 ‘선한 면’ 때문에 여기에 온 거라 생각한다. 내가 마냥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내가 저지른 악행, 죄와 업, 살인.

적어도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죄책감을 상쇄할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겠지.

사고가 폭주한다. 콧잔등이 울컥울컥 뜨거워졌다.

“……그렇지 않아, 일레이. 난 자극을 쫓아 여기에 온 게 아니야. 이 내전은 누가 이기든 수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끝날 거다. 그러나 불필요한 희생 없이 끝낼 방법이 딱 하나 있지. 이반에게도 있고, 네게도 있어.”

더 말하지 않아도 일레이는 알 것이다.

……내가 황제 시해자가 되면 된다.

일레이도 고심하더니 대답했다.

“이반은 바보가 아니야. 아무리 널 총애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너와 대면할 리가 없어.”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반은 날 독대할 것이다. ‘적절한 선물’을 들고 가면 말이다.

내 머릿속에서 계책이 떠올랐고, 아키에스 빅티마에게 감사했다.

“일레이, 네 본체의 목을 베자.”

“야, 이 미친 새…….”

일레이는 욕을 내뱉으려다가 턱을 매만지더니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음, 그럴싸한데?”

앞뒤가 맞는다는 걸 일레이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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