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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32

332
안드로이드 병사와 군인이 뒤엉킨 전장이다.

난 흘깃 눈을 굴린 것만으로도 피아를 식별하고, 지형지물을 뇌리에 새겼다. 아키에스 빅티마가 날 전투태세로 밀어넣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상체를 틀며 조준했다. 그리고 단단하게 견착한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난 생체 총탑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안드로이드 병사들이 휘청거렸다.

‘되도록 광학 렌즈를 맞힌다.’

그게 아니더라도, 손이나 머리를 노렸다.

지금의 화력으로는 안드로이드를 파괴하긴 어렵다. 그러나 물류 노동자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시이발! 시발! 으아아아아! 살려줘!”

“입 좀 닥쳐.”

내 사수와 노동자 한 명이 팀장을 부축한 채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연신 욕설을 내뱉으며 전장의 포화를 가로질렀다.

탕!

난 노동자들을 노리는 안드로이드만 노려서 사격했다.

이윽고, 놈들도 날 위험인물로 여겼는지 다수의 총구와 안광이 내 쪽으로 향했다.

퉁!

난 내가 뜯어버린 차량의 문을 발등으로 올려 차고선 왼손으로 잡아들었다.

투두두두두!

내 쪽으로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나는 차량의 문짝을 방패로 삼아서 방어했다.

어차피 나는 머리와 몸만 가리면 된다. 저런 총탄으론 내 의체를 뚫지 못한다.

피유웅!

유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청각을 곤두세우며 보지도 않고 방향과 거리를 가늠했다.

휙!

내가 차량 문짝을 잡은 채로 옆으로 뒹굴었다. 내 머리 위로 유탄이 지나갔다.

콰- 앙!

날 지나친 유탄이 화물 트레일러에 명중했다.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야채와 고기가 허공까지 치솟았다.

‘흠, 화물은 정말 끝장이로군.’

이젠 돌이킬 수가 없다. 화물 운반은 여기서 끝이다.

‘다들 안전지대로 들어갔어.’

나는 눈동자를 굴려서 노동자들이 바위 뒤까지 숨은 걸 확인했다. 저들은 무장하지 않은 비전투원이라서 안드로이드들이 우선적으로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위험 순위가 높아진 나부터 제거하려고 들겠지. 내가 미끼가 된 셈인가? 나원참, 루카.

“후우.”

난 탄창이 빈 총을 내던지며 숨을 골랐다.

내 시선은 2호 차량 아래로 꽂혔다. 저기에 내 장비가 달려 있다.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안드로이드 병사는 현 황제 이반의 군대다. 그리고 카릴만다 로무스를 비롯한 군인들은 프란세크 휘하에 있다.

‘어쩔 수 없지.’

이반과 마주하는 것보다 프란세크와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터다.

‘그리고 유폐된 프란세크를 구출한 건 일레이일 거야. 프란세크와 접촉하면 일레이의 행적도 알 수 있어.’

일레이는 자신만의 대의와 목적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실패하면 일레이라도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녀석의 결사를 말리지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이야기도 못 해보고 놈을 보내고 싶진 않아.’

난 일레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녀석이 이대로 죽으면 영영 묻히고 만다.

‘여기서는 카릴만다를 도와 싸운다.’

나는 결정했다. 그리고 내 의족의 출력이 높아졌다.

퉁!

내 발끝이 땅을 파헤쳤고, 나는 매섭게 뛰쳐나갔다. 문짝을 방패 삼아서 들 필요도 없었다.

예기치 못한 내 고속기동 때문에 안드로이드의 조준이 날 따라오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들이 내 기동력에 적응하기도 전에 나는 차량 밑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내 뒤로는 뿌연 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크루시스, 루이나.’

반가운 녀석들이 차량 하부에 매달려 있다. 장비가 달린 외투와 허리띠가 차량 부품 사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끼릭, 철컹.

차량 밑에 매달린 장비를 거칠게 뜯어낸 나는 반대편으로 계속 미끄러지며 빠져나왔다.

그러나 등골이 오싹하다. 안드로이드들이 총구를 내린 채로 방아쇠를 당길 것만 같았다.

난 예지에 가까운 사고를 하며 바닥을 박찼다.

투두두두두!

내 추측과 현실이 동일했다. 내가 있던 자리도 총알이 빗발쳤다.

떠오른 나는 몸을 휘릭 돌리면서 허리띠와 외투를 둘렀다. 묵직한 장비들이 내 몸에 걸리듯 자리를 잡았다.

치이이이이!

가속을 유지한 내가 길게 미끄러지면서 달려온 방향을 응시했다. 그러면서도 오른손으론 외투 안쪽의 충격권총 루이나를 잡고 있었다. 진동과 함께 예열이 시작됐다.

철커덩! 쿵!

날 추격하던 안드로이드 병사들도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더니 트레일러 위로 올라왔다. 놈들의 총구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내 차례다. 팔을 뻗고 방아쇠를 당겼다.

기이잉! 투- 웅!

충격권총 루이나가 푸른 포효를 내질렀다. 나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눌러썼다.

콰아아앙!

충격탄의 폭발로 트레일러가 찢어지면서 들썩였다. 위에 올라탔던 안드로이드들도 균형을 잃으며 허우적거렸다.

웅성, 웅성.

강력한 화력에 이목이 끌렸다. 카릴만다 휘하의 군인들도 날 쳐다보았다.

휙, 휘릭.

나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접었다가 폈다. 수신호로 안드로이드를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군인들에게 전달했다.

저들은 지금 같은 혼란에서 내게 총질을 바로 하진 않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나와 군인들은 협력했다.

난 가까운 안드로이드 병사부터 제거하며 응전했다.

어느덧 파괴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전장의 굉음과 열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계획은 언제나 최선대로 흘러가지 않아.’

남은 선택지 중에서 차선과 차악을 잘 골라야 한다.

기잉, 기이잉.

안드로이드 병사들이 남은 전력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후퇴하고 있었다.

카릴만다의 군인들도 일정 거리 이상을 추격하지 않았다. 여기도 폭격과 습격으로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고, 부상자도 상당히 많았다.

기이잉, 깅.

군인들은 대공 장비만 급히 정비해 교대로 운용하며 혹시 모를 후속 폭격과 강습에 대비했다.

나는 주변 군인의 태도가 변하는 걸 느꼈다.

철컥!

전투가 끝나자마자 군인들은 언제 같이 싸웠냐는 듯이 내게 총구를 조심스레 겨누었다.

‘어쩔 수 없지.’

저들에게 나는 정체불명의 전투원이다. 그것도 고화력 개인 화기를 지닌 자였다.

“카릴만다 로무스 대장님과 면담하고 싶습니다.”

난 손을 들며 말했다. 장교 하나가 통신기에 대고 뭐라 중얼거렸다.

머지않아 카릴만다가 부관들에게 바삐 명령을 내리면서 이쪽으로 왔다.

카릴만다가 내 앞에 섰다. 그가 히쭉 웃었다.

“……역시 분위기가 어째 이쪽 사람이다 싶었어. 뭐 때문에 노동자로 잠입한 거지?”

“잠시 둘이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카릴만다는 부관과 군인들을 물리며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카릴만다도 자신의 전투력에 나름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없을 거네.”

카릴만다도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쿠스토리아 가문을 아십니까?”

카릴만다가 눈썹을 치켜떴다.

“제국의 군인이 쿠스토리아를 모를 리가 있겠나?”

“저는 헤일라스의 아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입니다. 프란세크 폐하를 알현하고 싶습니다.”

카릴만다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입술과 턱을 매만졌다.

“하하,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있더니……. 과연, 과연. 그때의 주역 중 한 명이셨군. 만나서 영광입니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카릴만다가 손을 뻗으며 악수를 청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나도 예로 답했다.

* * *

전투 수습도 끝나가고 있었다.

카릴만다는 내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다른 군인들은 내가 제국군에 합류하는 사람인 줄만 알고 있었다.

저벅, 저벅.

나는 물류 노동자들이 모인 곳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화물차량 3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차량이었다.

“그래도 트레일러 하나는 건졌군요.”

나는 넋이 나간 팀장을 보며 말했다. 팀장은 십 년은 늙은 듯 안색이 나빴다.

“난 끝장이네, 끝장이야. 화물을 지키지 못했어.”

팀장은 회사의 세뇌 교육 때문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삼촌, 그래도 목숨은 건졌잖아요. 어휴,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돌아가면 제국쪽으론 오줌도 안 눌 거다, 퉷!”

사수도 안전해지니 편안한 어투로 말했다.

“어차피 화물을 잃었으니 아크바란에 가더라도 대금을 전부 받진 못할 겁니다. 호위 실패가 제국의 책임이더라도요. 현재로선 최선은 프란세크 측에서 화물의 손실분까지 돈을 지불하길 바라는 거죠. 결정은 여러분이 하시면 됩니다.”

“뭐, 뭐라고? 이제 연방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어? 아, 으, 신입, 아니, 루크, 너한테 따지는 건 아니고.”

사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했다. 본능적으로 내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팀장은 현재 대장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떠들면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결과야 뻔하긴 하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짐 싸들고 야반도주라도 할 게 아니면 말이야.”

“난 애가 둘이야. 한 놈은 아직 젖도 못 뗐다고, 망할.”

“그나저나 루크, 자네는…… 아니, 됐어. 묻지 않겠네.”

노동자 중 하나가 내 신상을 캐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존 감각이 우수한 양반이었다.

“팀장님이 이 꼴이니…….”

노동자들은 군대를 따라가 프란세크를 만나기로 했다. 어차피 저들에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지간하면 저들을 안전하게 집까지 돌려보내고 싶었다.

‘팀장이 날 배려해줬으니, 나도 똑같이 도와주는 것뿐이다.’

난 등을 돌리며 출발 준비를 마친 군대를 응시했다. 다행히 후속 공격은 오지 않았다.

우우웅, 드르륵, 드륵.

중장비와 차량의 기동음이 퍼졌다.

군인들은 통신으로 명령을 들으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도 유일하게 남은 화물차량에 탑승하고선 군대를 따라갔다.

나는 카릴만다가 있는 지휘차량으로 들어갔다.

카릴만다는 부관에게 턱짓했고, 이 자리에는 나와 카릴만다만 있었다.

“아직 부관들에게도 당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카릴만다는 나보다 한참 연장자인데도 내게 존중을 표했다.

‘음.’

카릴만다의 존중이 묘하게 불편했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제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라는 걸 쉽게 믿으시는군요.”

“군부에서도 소문이 계속 있었습니다. ‘귀족 사냥꾼’ 루카, 루카우스 쿠스토리아가 회복했다는 소문요. 그리고 당신은 저를 몰라도, 저는 소년기의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귀족 사냥꾼, 간만에 듣는 호칭이다. 그다지 달가운 별명도 아니었다.

난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떤 대우를 받기 위해 내 신상을 밝힌 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카릴만다는 날 환대하면서도 손을 허리 가까이 두었다. 여차하면 무기를 뽑을 수 있는 위치였다.

카릴만다가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갔다. 전진하는 차량의 엔진음이 간헐적으로 웅웅거렸다.

“……당신이 한때 프란세크 폐하의 측근이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죠. 프란세크 폐하를 돕기 위해 오신 겁니까? 뭐, 작정하고 속인다면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당신에 대한 소문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 질문을 거짓으로 답하지 않겠죠. 명예를 아는 자일 테니까요.”

명예, 중요한 가치다. 한때는 나도 명예를 가장 높게 치곤 했었다.

나는 드물게 입술을 달싹였다. 적당한 거짓말로 상황을 지어낼 수도 있었다.

‘예컨대, 제국의 칼과 협력해 제국 내부에서 폭동을 일으키러 가는 중이었다던가…….’

그럴싸한 거짓말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키누안이라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창하게 거짓을 떠벌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키누안이 아니다. 내 방식은 그와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아직은, 누굴 돕기 위해 온 건 아닙니다. 그저 진상을 알고 싶은 거죠.”

카릴만다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나는 반응하지 않으려고 전투 반사를 억눌렀다.

“진상? 이 사태에 진상이랄 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참칭자와 제국의 정당한 주인, 이렇게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유폐당한 프란세크 폐하를 누가 구출해 꺼낸 겁니까? 연대장님은 그 주동자가 누구인지, 이 내전의 시발점을 알고 계십니까?”

카릴만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불손하게도 그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알면서 숨기는 건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가?’

난 내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카릴만다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다.

“……제겐 시발점은 중요치 않습니다.”

카릴만다는 모른다. 그도 제국의 수많은 군인처럼 장기말이었다.

“제게는 중요합니다.”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폐하 앞까지는 데려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전 당신에게 총부리를 겨눌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요.”

“저도 그렇습니다.”

내 대답에 카릴만다가 손을 허리에서 뗐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를 증오하거나 싫어하지 않아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그 상대에게 호감이 있더라도요. 그게 군인의 일이죠.”

예나 지금이나 제국의 군인들은 충실한 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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