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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30

330
지금 상황은 내게도 나빴다.

내가 합류한 물류 차량 행렬이 모종의 세력에게 습격을 받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아크바란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다.

“시발, 뭐, 뭐야. 갑자기 왜 제국의 드론이 추락한 거냐고! 여긴 제국령이잖아!”

사수가 소리를 지르며 차량 상부의 손잡이를 잡았다.

쿠우웅!

제국의 전투 드론이 추락할 때마다 충격으로 차량이 흔들렸다.

방금의 굉음을 마지막으로 네 대의 전투 드론이 모두 추락했다.

이로써, 우릴 지켜줄 호위도 사라졌다.

-치직, 칙.

팀장의 통신도 들리지 않았다. 방해전파가 이 부근에 깔린 모양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해! 시이-발!”

사수가 공황에 빠졌다. 그의 신체 말단부터 급격히 떨리고 있었다.

“총부터 꺼내! 염병할. 신입, 너 싸울 줄 알아? 아니, 됐어.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나간다. 이것만 알면 돼.”

앞에 앉은 노동자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물류 운반을 하다 보면 이렇게 습격을 당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덜컹!

차량의 천장에 있는 수납공간이 열렸다. 거기엔 낡은 소총이 탄창과 함께 있었다.

‘최소한의 무장이로군. 하기야 여기에 싸움에 능한 사람은 없겠지.’

물류 노동자들은 본격적인 전투원이 아니다. 위험지대를 지날 때 붙는 호위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일단 나와! 팀장님과 합류한다.”

운전하던 선임자가 총을 들고 내리며 말했다. 통신이 안 되니 일단 팀장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올바른 판단이었다.

삐걱.

나는 문을 열다가 사수를 응시했다.

“나, 나는 여기에 있을래. 밖에 나갔다가 폭발에 휘말리면 어떡해?”

사수가 차량 구석까지 도망갔다. 전형적인 회피 반응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태로군.’

난 한숨을 쉬며 사수의 다리를 잡아서 차량 바깥까지 잡아끌었다.

“끄아아아아아! 이 새끼야아아! 나 살려어어!”

사수가 비명을 질렀지만 다른 노동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수는 차량으로 들어가려고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난 안에 있을 거라…….”

난 희미하게 웃었다. 드디어 이 망할 애새끼를 때릴 핑계가 생겼군.

나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선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렀다. 세게 때리면 놈의 머리가 터져버릴 테니까 말이다.

콰직!

흠, 짜릿하다.

나는 눈에 띄게 웃었다. 미소를 숨기기 힘들군. 어차피 지금 내 표정을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의수에 뺨을 맞은 사수는 철퍼덕 넘어졌다. 정신을 차리는 수준이 아니라 더럽게 아플 것이다.

“으음, 이런. 의수라서 힘 조절이 잘 안됐습니다.”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없다. 얻어맞은 사수조차 눈앞이 번쩍거리고 귀가 먹먹할 터다.

주저앉은 사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침이 섞인 피를 줄줄 흘렸다.

사수의 뺨은 어디에 긁힌 듯이 상처로 벌겠다.

“커억, 끄읍, 컥, 컥.”

사수는 입과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 안쓰럽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내가 폭력에 찌든 쓰레기가 맞긴 하군.’

근 며칠 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달콤한 사탕을 먹은 듯이 머릿속에서 폭죽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실감마저 들 정도였다.

“너, 이 새끼…….”

“아, 정신 차렸으면 우리도 합류하러 움직이죠. 드잡이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어깨에 걸친 두 정의 소총 중 하나를 사수에게 던지며 말했다.

사수는 얼떨결에 총을 잡았다. 난 그가 알아서 따라오리라 믿으며 다른 노동자와 함께 팀장에게 뛰어갔다.

사수도 아예 어린애는 아닌지 내 뒤를 따라왔다.

“팀장님, 모든 주파수에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비상용 통신기도 먹통이고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빌어먹을.”

“제국에서 내란이 일어났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 게 아닐까요?”

“그러면 우리한테 말해줬어야지! 아니면 호위를 보강하던가!”

팀장도 발을 동동 구르는 처지였다. 그도 일개 회사의 물류 팀장에 불과하다. 어떤 상황이든 척척 헤쳐나가는 해결사가 아니다.

팀장은 불안을 내뱉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선 자중했다.

‘대장이 불안을 드러내면 집단은 금방 무너진다.’

팀장은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더니 턱을 매만졌다. 하지만 지금 뭘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을 터다.

“……공격이 온 방향은 남쪽입니다. 일단 북쪽을 등지고 차량 뒤에 숨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내가 뒤에서 말했다. 팀장을 비롯해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젠장.’

나서긴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차량을 타고 움직이면 아마 추가 공격이 올 겁니다. 드론을 격추할 정도로 정밀한 공격이니 화물차량으론 피할 도리가 없죠. 그리고 우릴 죽일 생각이었다면 운전석도 공격했을 겁니다.”

내 말을 전부 들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신입, 아니, 루크. 내 옆에 와줘. 다들 저 뒤로 숨고.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진 발포하지 마. 제국놈들은 민간인이고 자시고 봐주지 않아. 살벌한 새끼들이지.”

팀장은 내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나는 팀장에게 다가갔다.

“아까 조카분을 좀 때렸습니다. 어금니도 나갔을 겁니다.”

“괜찮아. 지금 상황에서 그깟 이빨 두어 개가 대수인가. 여길 벗어날 수만 있다면 조카놈의 이빨을 전부 뽑아버려도 되네.”

농을 던지는 걸 보니 팀장에겐 최소한의 정신적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팀장이 제법 우수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운반 중인 물건을 버리고 우리가 도망가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남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팀장도 나와 같은 방향을 보며 대답했다.

“회사가 우리에게 배상하라고 소송하겠지. 내 손자까지 빚을 갚아야 할 거야.”

“완전 악덕 회사네요.”

“보더시티 평균이야.”

“그야 그렇긴 하죠.”

우리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지평선에서 차량들이 보였다.

‘최악이군.’

규격이 제각기인 차량 스무 대 정도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상부에 포탑이 올라간 차량도 다수였고, 군용등급의 중무장 장갑차도 네 대나 있었다.

‘병력은 최소 백여 명에서 이백 정도.’

적은 병력이 아니었다.

“저들의 목적이 뭔지 몰라도 순순히 투항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하시죠.”

다가오는 병력을 규모를 확인한 팀장의 표정이 굳었다.

“저들이 누구인 것 같나?”

“제국 내부가 혼란스러운 게 사실인 것 같으니 반군이나 테러리스트겠죠. 둘 다 그닥 다를 게 없겠지만요.”

나는 태연한 척했으나 등골부터 뒷덜미까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일 줄이야.’

……세상사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건 익숙하다. 그러나 어떻게든 풀어나가는 게 삶이다.

-우린 제국의 진정한 황제, 프란세크 크라치아 폐하 휘하의 제국 정규군이다. 불필요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으니 협조를 바란다.

저쪽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퍼졌다.

“진정한 황제? 프란세크? 무슨 소리지?”

“정규군인데 왜 자기네들 드론을 공격해? 미친 거 아니야?”

노동자들은 말을 듣고서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보더시티 노동자들이 제국의 정치 지도를 알 리가 없었다. 하다못해 현 황제의 이름만 알아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류일 것이다.

‘내전이 시작된 건가?’

프란세크가 유폐에서 풀려났다.

프란세크를 중심으로 현 황제 이반에게 반대하는 무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약해진 기반, 불안정한 정통성, 그리고 제국의 역량으로 억눌렀던 불온한 세력의 활성화.’

그 결과는 분열. 제국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다.

‘제국이 혼란한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이 전쟁병기를 제조하고 양산까지 원활하게 끝내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면…….’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벨라토 연방은 전쟁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 코라 신성국이야 내부 사정을 내가 알 도리는 없고.

‘지젤과 바바라는 십 년 뒤에 날 깨우려던 것도, 그때쯤 삼국의 전쟁 준비가 끝날 거라 생각한 거지.’

십 년 뒤에, 제국이 이런 내분에 빠졌다면 곧바로 공격받았을 터다.

덜컹, 덜컹.

차량의 엔진음이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정규군이라고 자칭하지만 역시 반군에 가깝군. 제식 무장이 없어.’

난 병사들의 차림새를 보았다. 복장과 무장이 제각각이었다.

덜컹.

선두 차량에서 한 사내가 내렸다. 그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동작과 걸음걸이를 보니 잘 훈련된 전신의체 군인이었다.

“제국군 제5연대장 카릴만다 로무스다. 협조한다면 위해를 끼치진 않겠다.”

저들은 자신이 제국의 정규군이라 주장했다. 이런저런 세력을 끌어모아 프란세크 휘하에서 새로이 재편한 모양이었다.

“포 익스프레스 제82팀…… 가우스입니다. 협조하겠습니다.”

팀장이 힘겹게 말했다. 눈앞에 군대가 있으니 주눅들 만도 했다.

카릴만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덜컹, 덜컹.

병사들이 차량으로 접근하더니 트레일러를 활짝 열어댔다. 그들은 상자를 밖으로 집어 던졌고, 야채와 고기가 일부 쏟아졌다.

“자, 자, 어서 찍어.”

병사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총이 아니라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촬영 중이었다.

“……자, 보십쇼. 우리 제국이 벨라토 연방에서 수입하는 막대한 양의 식재료입니다. 이 모두가 귀족들의 사치와 식탐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이 식재료 상자 하나가 보육원의 일 년치 보급식과…….”

언론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선전용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극적인 말을 내뱉으면서 식재료 상자를 개봉했다.

‘프란세크의 방식은 지금도 동일하군.’

프란세크는 민중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는 민중을 절대적 선이라 말했고, 귀족을 모두 적으로 삼을 순 없으니 착한 귀족과 나쁜 귀족으로 나누었다.

“이반이 황제를 참칭한 이후, 제국의 국고는 빠르게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엄숙한 절제를 미덕으로 삼아야 할 귀족들조차 어느새 방탕한 사치와 추악한 향락을 권세로 여기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이반을 악으로 규정하며 실컷 떠들어대고 있었다.

“제국의 타락과 뒤틀림을 바로 잡을 사람은 프란세크 크라치아 폐하뿐입니다. 황제는 제국 신민의 수호자이지 수탈자가 아니며…….”

저 선전이 군수물품도 아닌 일개 식재료 차량을 습격한 이유였다.

선전 영상은 편집이 끝나자마자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와 노동자들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구석에 모여 대기했다. 병사들이 화물을 험하게 헤집어도 어쩔 방법은 없었다.

“젠장, 삼촌, 우린 이제 어떡합니까? 아오, 아파라. 야, 신입, 어금니가 나갔잖아! 야! 무시하지 마!”

사수가 따지다가 불쑥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난 어깨만 으쓱하며 정황을 살폈다. 생각보단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이쪽을 향한 약탈은 아니었다.

‘정규군을 자칭하는 만큼 우릴 신사적으로 대우해주고 있어.’

난 저들의 대장인 카릴만다를 보면서 모자를 눌러썼다.

“저 정도 손실은 괜찮아. 저들의 볼일이 끝나고 나면, 우린 아크바란으로 향한다.”

팀장의 말에 내 사수가 환장하겠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연방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계속 일한다고요?”

“이대로 돌아가면 재고는? 네 자식까지 빚 갚을 일 있어? 예정대로 아크바란에서 화물을 넘기고 귀환한다.”

“미치겠네! 정말!”

나도 한시름 놓았다. 목적지는 예정대로였다. 크게 바뀔 건 없었다.

……카릴만다가 우리 앞에 다시 오기 전까진 말이다.

“이 화물은 우리가 인수할 테니 따라오게. 그쪽 회사에 연락해 정당한 값을 치르도록 하지. 손해를 보진 않을 거네.”

“네? 제게 그럴 결정권은 없습…….”

카릴만다가 팀장의 말을 재빨리 잘랐다.

“우리가 여기서 ‘보급’하길 원하나?”

팀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카릴만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릴만다도 만족했는지 뒤돌아서며 자기네들 무리로 걸어갔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결재권자는 누구인지 물어보십쇼. 그 정도는 알려줄 겁니다.”

내가 팀장 곁에 다가가며 속삭였다.

우뚝.

등을 내보였던 카릴만다가 멈춰섰다. 그는 몸을 반쯤 돌리더니 슬쩍 날 보며 말했다.

“어이, 거기 청년. 얼굴이나 들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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