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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29

329
국가와 민간이 항상 같은 방향을 보는 건 아니다.

국가의 통제와 감시가 가장 견고한 아크레시아 제국조차 불법적인 민간 교류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인류 기반의 삼국은 어떤 식으로든 교류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위장 취업한 기업도 삼국의 틈바구니에서 이익을 취하는 회사다.

“신입! 정신 차리고 옮겨. 그 상자 하나가 네 하루 일당, 아니 한 달 봉급보다 더 비싸! 멍청아!”

나는 사수의 호통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청년이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지 사사건건 ‘지랄’하고 있었다.

내가 10년만 어렸어도, 임무고 뭐고 간에 저 새끼의 사지가 벌써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퍽!

다행히 이번 타격음은 내 뒤통수에서 나지 않았다.

나는 모자를 눌러쓰며 눈을 힐끗 뒤로 돌렸다.

“너나 똑바로 해, 자식아. 신입, 자넨 적당히 쉬엄쉬엄해. 요즘 청년답지 않게 일 처리가 깔끔하네. 회사 로고가 앞으로 나오게 일부러 상자를 쌓은 거지? 군대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각 잡고 쌓을 필요는 없어.”

중년의 팀장이 내 사수의 뒤통수를 때리더니 말했다.

“아씨, 삼촌!”

“새끼야, 직장에선 팀장님이라고 불러야지. 삼촌이 뭐냐, 삼촌이. 낙하산인 거 동네방네 소문 다 내려고?”

“아니, 누가 낙하산으로 이런 회사에 들어와요? 삼촌이 일손 부족하다고 오라고 한 거잖아요.”

팀장과 사수가 티격태격했다.

팀장은 사수의 뒤통수를 한 번 더 때리더니 호루라기를 크게 불었다.

“좋아, 대충 끝났군. 이제 식사 시간이다. 이거 먹고 나면 출발하자고.”

창고에 흩어진 열네 명의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보더시티 출신답게 가지각색의 몰골이었다. 나처럼 부분 의체인 사람도 드문드문 있었고, 덩치가 큰 크롤러도 한 명이 있었다.

“팀장님, 오늘은 특식입니까? 출발 특식요.”

“신입도 왔는데, 환영회 삼아서 한번 해먹어야지. 준비해.”

“그럼 냄비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특식 이야기로 다들 들떠 있었다.

저벅, 저벅.

사수가 내 옆에 오더니 잘난 척하며 팔짱을 끼었다.

“신입, 운 좋은 줄 알아. 이건 가끔 있는 특식이니까.”

“특식요?”

나는 기계적으로 반문했다. 사수는 더욱 우쭐하더니 차량에 실린 상자를 가리켰다.

“우리가 실은 게 신선 제품이라는 건 알지? 채소나 고기 같은 거야. 죄다 최상급품이지.”

아크레시아 제국의 상류층과 귀족들이 먹는 음식의 재료가 차량에 실려있는 것이다.

‘하하, 웃기는군.’

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영양제와 포도당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전신의체 귀족은 신선한 재료로 만든 고급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정작 피와 살을 가진 하층민들은 맛만 흉내 낸 합성음식이나 쥐 고기와 곤충을 섞은 정체불명의 고깃덩이를 먹곤 한다. 과일이나 채소는 사치재 영역이다.

아크레시아 제국에선 농축산업이란 개념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소비가 없는 건 아니었기에, 제국은 신선한 식재료를 벨라토 연방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좋아, 냄비 잘 놔. 조금만 더 오른쪽에.”

팀장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채소와 고기를 바구니에 담아 가져왔다.

‘그러나 멀쩡한 고기와 채소도 있군.’

소소한 횡령이었다.

물류업체에선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안하고, 물류 이송 계획을 잡는다. 노동자들은 그 손실을 자기들 몫으로 따로 챙긴 것이다.

부글부글.

이들이 말한 특식은 전골이었다.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잔뜩 넣은 전골은 따스하게 끓고 있었다.

“신입부터.”

팀장이 국자를 들더니 그릇에 전골을 담아 배분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릇을 받은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난 이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괜한 친밀감을 쌓기 싫다.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릇을 보았다.

“크으, 채소가 달다, 달아. 돈 많은 부자놈들은 매일 이런 걸 먹는단 말이지? 고기도 입에서 살살 녹네.”

“맛있다. 훌륭해.”

크롤러도 엄지를 치켜들며 한마디 던졌다.

별다른 기교가 없이 채소와 고기만 넣고 끓였는데도 훌륭한 전골이었다.

채소와 고기의 자연스러운 감칠맛과 단맛이 국물까지 쭉쭉 빠져나왔다.

“지구에 살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매일 이런 음식을 먹었겠지? 진짜 부럽네, 부러워.”

“왜 그 좋은 고향을 버리고 여기까지 온 걸까?”

“난들 알겠어?”

“전쟁으로 인한 핵 방사능 때문에 살 수 없게 됐다고 하던데?”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말하길, 살포한 생화학 병기 때문이래…… 공기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녹는다고 하더라.”

노동자들이 추측으로 떠들어대며 식사를 했다.

인류의 노바스 행성 이주는 오래전의 일이다. 그 이전의 역사는 장막에 가려진 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흐릿해졌다.

어느덧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팀장이 내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신입, 담배 피워?”

“비흡연자입니다.”

의혹에 찬 팀장의 시선이 느껴진다. 흠, 자주 겪는 일이다.

“……그 얼굴로 비흡연자라고? 뭐, 됐어. 바람도 쐴 겸 나가서 이야기나 하자고.”

타인들에게 내가 비흡연자라는 사실이 여러모로 놀랄 일인가 보다.

나도 팀장을 따라나섰다. 팀장은 창고 뒷문으로 나가더니 담뱃불을 붙였다.

치익, 칙.

팀장이 연기를 머금고 뱉더니 웃어댔다.

“이름이 루크였나? 젊은 나이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네.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팔다리가 잘렸다며? 사지를 의체로 바꿨으니 빚도 장난 아닐 거고.”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인 거죠. 아무리 그래도 이승이 저승보단 낫다고 하잖습니까.”

팀장은 날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연신 내 등을 툭툭 두드렸다.

“힘든 일을 겪고도 일어서려는 의지가 대견해, 아주 대견하군. 내 조카 놈이 좀 배웠으면 좋겠어. 내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갱단이라도 들어갔다가 총알받이로 뒈졌을 거야.”

“번쩍번쩍하게 차려입은 갱이 옆에서 떠받들어주면 인정받았다고 우쭐대다가, 두어 달 뒤에 뒷골목에서 죽겠죠.”

내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팀장은 마음에 들었는지 더 크게 웃었다.

“조카 놈도 세상에 그리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후우, 매형이 돌아가시기 전까진 꽤 부유하게 살아서 아직 철이 없어.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여태 뭐 하나 노력하며 쌓아둔 것 하나 없으면서 말이야. 무한한 가능성은 노력하는 사람의 전유물이거늘, 쯧.”

팀장이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푸념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화가 이렇게 됐군. 뭐, 다름이 아니라 자네 봉급의 일부를 개인 크레딧칩으로 처리해주겠네. 전산상의 빚이 많으니 회사 크레딧칩으로 지불하면 금방 압류당하겠지?”

불필요한 호의다. 나는 껄끄러웠다.

하지만 거절하면 더욱 이상할 뿐이다.

“……감사합니다.”

“총과 칼이 세상을 지배한다지만, 이 세상을 지탱하는 건 우리 같은 일꾼들이 아니겠나? 우리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아.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게나.”

팀장이 내 어깨를 다시 두드리며 창고로 먼저 들어갔다.

“하아.”

나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곤 스산하게 내뱉었다. 입김이 너울너울 피어올랐다.

“참, 귀찮은 일이야, 정말.”

난 혼잣말하며 창고로 들어갔다.

* * *

트레일러가 길게 달린 화물차량은 세 대였고, 트레일러에는 온습도 유지 장치가 전부 달려 있었다.

보더시티에서 출발한 화물은 벨라토 연방의 경계를 넘어서서 아크레시아 제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곧 제국령에 도착한다.

팀장의 무전이 퍼졌다.

차량 한 대에는 네 명의 노동자가 타고 있었다.

“제국령은 처음이지? 긴장할 건 없어. 드론 몇 대가 공중에 돌면서 감시하는 게 전부야.”

화물차량은 벨라토 연방에서 아크레시아 제국, 그것도 아크바란까지 곧장 직행했다.

‘귀족들의 사치재인 탓이겠지.’

신선 제품이니 괜한 절차로 식재료의 질을 낮추지 않을 터다. 검문 절차는 아크바란에 도착해서 해도 늦지 않는다.

‘그때쯤 난 사라지고 없겠지만…….’

팀장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난 아크바란에 도착하자마자 모습을 감출 생각이다.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을 터다. 그것까지 내가 신경 써 줄 순 없다.

“저기 제국의 전투 드론이다. 여전히 매섭게 생겼군. 신입, 신기하다고 괜히 얼굴을 내밀지마. 가끔 오류로 머리에 총구멍이 나기도 해.”

전투 드론 네 대가 상공에서 날아오더니 차량 위를 맴돌았다.

“요즘 제국 내부가 심상치 않다던데 괜찮을까?”

“에이, 기껏해야 식재료를 나르는 화물을 건드리겠어? 무슨 군사 보급품도 아니고.”

운전석에서 노동자 두 명이 떠들었다.

맞는 말이다. 어지간해선 별일이 없을 터다. 바바라와 내가 이쪽 경로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검문이 적고, 운송이 빠르며, 기껏해야 비싼 식재료에 불과하다. 훔쳐서 돈을 벌 수 있는 화물이 아니었다.

제국의 전투 드론도 사실상 호위로 붙은 셈이었다.

난 창에 머리를 기대며 전투 드론의 궤적을 살폈다.

‘자동 조종 상태로군. 근처 드론 조종사나 제국군은 없다는 거겠지.’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난 완전한 무인이었다. 해킹 방지를 위해 네트워크 연결이 없을 거고, 내부 알고리즘을 따라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우우웅.

노면이 간혹 거칠었다.

차량의 진동이 엉덩이를 타고 등골까지 울렸다. 다른 노동자들은 교대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이동하는 동안 계획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아크바란에 도착하면 정보부터 수집한다.’

사태의 흐름을 머릿속에 욱여넣고 움직여야 한다. 큰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면 이리저리 이용당할 뿐이다.

‘이반이나 일레이는 내가 아크바란에 도착한 걸 모른다. 그걸 최대한 이용해야 해.’

그리고 섬찟한 사내가 내 뇌리를 뾰족하게 헤집고 들어왔다.

‘지금 키누안은 아크바란에 있을까?’

키누안은 어디로 갔을까? 만약 그가 아크바란에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키누안은 아크바란의 혼란을 또다시 이용하려고 왔을 것인가?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황제라도 되고 싶은 건가?’

나는 고개를 고요히 흔들었다.

‘키누안의 행동 동기는 권력욕이 아니다.’

키누안의 목적을 알아내는 건 소거법으로 가야 한다.

‘권력의 속성은 자유와 혼돈이 아니라 질서와 통제다. 권력자가 된다면 키누안은 오히려 약해져.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행동해야 하니까. 목적이 뚜렷하고, 행동에도 일관성이 생겨서 읽기 쉬워지지.’

키누안의 힘은 혼돈에서 나온다. 그는 그 누구보다 혼돈을 잘 읽어내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혼란을 엮어간다.

혼돈과 혼란이 없는 상황이라면, 키누안은 그저 머리가 좋은 전 근위대원에 불과하다.

‘아크바란의 혼란이 깊어진다면 키누안이 나타날 거다.’

이건 내 직감이다.

혼돈 그 자체인 것처럼 대륙을 누비던 그가 이런 대혼란을 놓칠 리가 없다.

‘어떤 목적을 가졌든 간에, 키누안은 아크바란의 혼돈을 부추길 거다.’

나는 화물차량이 아크바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어, 어어?”

내 옆자리에 앉은 사수가 바깥을 구경하다가 입을 쩍 벌렸다.

콰- 앙!

화물차량 위를 돌던 전투 드론이 갑자기 폭발했다.

노동자들의 안색이 단번에 나빠지고 있었다. 나도 눈을 가늘게 뜨며 상황을 인지했다.

‘전투 드론이 공격을 받았다.’

내 머릿속이 단번에 복잡해졌다.

‘제국령 내에서 제국의 전투 드론이 공격을 받는다고?’

제국도 도시 바깥의 치안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감히 제국군의 드론을 공격할 정도로 간이 큰 놈은 많지 않다.

콰아아앙!

굉음은 다시 일었다. 전투 드론 하나가 더 피격을 당하더니 차량 옆으로 추락하며 폭발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마도 반군이나 테러리스트…….’

제국 내부의 사정이 내 생각보다 더 악화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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