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기체 오작동으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긴급 피난과 의료 지원을 요청함. 승객 명단을 보낼 테니 확인 바란다.
합성한 목소리의 통신이 궤도병원으로 향했다.
허니스페이스의 우주여객선은 부유층 승객이 탑승하고 있으니 거부하지 않을 터다.
삑.
궤도병원은 곧바로 우주여객선의 정박을 허가했다.
초록빛 유도선이 정박장에서 길게 뻗어 나오더니 우주여객선의 좌우를 지나쳤다.
유도선에 이끌린 우주여객선은 감속하며 정박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치익.
나는 조끼 형식의 전투복을 착용하고선 목덜미를 매만졌다. 접이식 전투 헬멧이 목뒷덜미에서부터 올라오며 안면까지 가렸다.
-궤도병원의 경비 중에선 중무장한 베테랑도 있어. 여기서 불살주의를 고집하진 않겠지?
“그만 비꼬아도 돼.”
-흐응,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야.
“필요하면 죽여.”
-우린 멋진 범죄자가 되는 거야. 자기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는 무고한 사람들을 신나게 죽이는 거지.
“내가 못된 악당이라는 걸 상기해주지 않아도 돼. 난 애새끼가 아니니까.”
-그럼 계획대로 진행하자고, 자기.
난 끔찍한 호칭을 들으며 숨을 골랐다.
기이이잉!
후면으로 정박한 우주여객선은 내가 있는 화물칸의 개구부부터 열렸다.
드드득, 득!
문이 완전히 내려갔다. 정박장에는 대기 중인 의료진과 만일의 사태를 위한 경비들이 보였다.
“너는…….”
날 향한 총구가 보였다.
통.
나는 가볍게 뛰었다. 움직임의 이질감은 없었다.
궤도병원은 순환 원통 구조의 구심력으로 인공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겐 다행인 일이다. 무중력 전투는 나도 자신이 없으니까 말이다.
탓!
내가 자세를 낮추며 바닥을 박찼다. 바닥의 철판이 내 발자국을 따라 찌그러졌다.
달려나간 나는 앞으로 튀어나와있는 의료진의 뒤로 엄폐했다.
“젠장! 고개를 숙이고 비키십쇼!”
경비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총구가 뒤늦게 날 따라왔지만, 매번 의료진에 막혀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끽.
난 충격권총 대신에 평범한 실탄권총을 꺼내서 의료진 겨드랑이 사이로 총구를 겨누었다.
우주의 구조물이나 우주선에선 고화력 병기는 금물이다. 보강을 단단했다고 한들, 구조적 약점은 있는 법이다.
고화력 무기를 잘못 사용했다간 다 같이 죽는다. 여기서 루이나를 함부로 쓸 수 없는 노릇이지.
고화력 투사가 불가한 건 경비들도 마찬가지다.
탕!
내 손아귀에서부터 총성이 일었다.
사격은 내 특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사격 솜씨가 이류거나 삼류인 건 더더욱 아니다. 어디까지나 특기가 아니라는 거지, 일반적인 기준으론 일류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빠직!
흔들림 없는 사격이 경비들의 머리와 안면에 꽂혔다. 그러나 저들의 전신 전투복의 방호력은 상당히 훌륭했다. 헬멧에 금이 가거나 앞면이 깨지는 게 고작이었다.
철컹.
난 탄창을 갈고선 저들의 손을 노렸다.
타앙!
내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경비들이 손을 감싸며 신음했다. 관통상이 아니더라도 탄의 충격 때문에 총을 놓치는 이도 있었다.
탁!
난 엄폐물로 삼던 의료진을 앞으로 밀면서 옆으로 튀어 나갔다. 내 의족의 출력이 단숨에 치솟았다.
나는 경비들의 총구 회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고속 기동했다.
“후욱.”
호흡은 한 번이다. 어느덧 나는 경비들에게 근접했다. 근접무기를 쓸 때가 됐다.
크릉!
묵직한 감촉이 내 손아귀에 감겼다.
촤아아악!
크루시스가 살의의 궤적을 그렸고, 권총탄으로 뚫을 수 없었던 전투복과 헬멧이 부서지며 찢겨나갔다.
후두두둑!
치솟은 피가 쏟아진다.
무고한 피와 살이 내 몸에 튀었다. 나라고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투 중엔 잊을 수 있다. 감정은 일시적으로 차단하면 그만이다, 빌어먹을…….
크루시스가 매섭게 뻗을 때마다 사람의 머리와 팔다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 개새끼가아아아!”
“죽어어!”
날 향한 증오가 총알과 함께 날아왔다. 저들은 날 증오해도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날 찾아와 죽이려 든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전사의 삶이란 아무리 포장해도 증오와 악의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고한 척해도 우린 살인자다. 완벽하고 깨끗한 정의의 편은 없다.
현실의 전투와 전쟁은 지저분하게 뒤엉킨 혼돈이다. 오늘은 선의 편에 섰다가, 다음날은 악의 편에 서기가 일쑤지. 뭐, 대부분 날은 그 모호한 경계에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확고하게 시커먼 악의 편이다.
……감정을 학고히 차단하자, 루카.
전투 중에 죄책감과 도덕적 갈등을 마음에 담아두면, 몸이 둔해지고 칼끝과 총부리도 무디어진다.
“……정박장은 제압했다. 비전투원만 남았어.”
내가 쓰러진 경비들의 생체 신호를 확인하며 통신했다.
-좋아, 나도 움직일 거야. 내부망에 침입하는 동안 이목을 끌어.
바바라가 우주여객선을 나왔다. 그녀도 경무장을 한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 * *
나는 순환 원통의 복도를 따라 질주했다. 내가 지나온 길은 피로 범벅이었다.
‘몇 명이나…….’
아니, 몇 명을 죽였는지 세지 말자.
지금은 과거의 루카가 필요하다. 얼어붙은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던 꼬맹이 말이다.
과거의 나에게 제국은 내게 절대적 정의였고 선이다. 제국의 군인이라는 명예를 몸에 휘어 감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내게 절대적 정의와 선은 없지.’
불분명한 얼룩으로 물든 회색지대가 드넓게 보인다. 얼룩마다 더 검거나 더 하얗거나, 그마저도 미묘한 차이 정도인 회색지대.
제국의 질서에 판단을 맡길 때는 편안했다. 내 머리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죄의식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난 살인 도구일 뿐이고, 그 의지는 제국의 것이니까.
‘지금의 무고한 살인은 모두 내 의지다.’
죄책감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피로 얼룩진 내가 지젤을 재회하면서…… 기뻐해도 되는 걸까.
내 자신이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중앙 구조물로 갈 수 있어. 거긴 무중력 공간이니 주의해.
바바라의 통신이 들렸다.
치이익!
내가 가는 곳마다 문이 칙칙 열렸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무색할 정도였다.
철컹, 키잉.
왼쪽 통로 끝에는 순환 원통과 단절된 구조물이 보였다.
“어떻게 지나가라는 거야? 통로가 없잖아.”
-거기 가만히 서 있어. 통로가 분리되어서 중앙 구조물까지 붙을 거야.
바바라의 말대로였다. 내가 서 있던 통로에 차벽이 내려오면서 순환 원통에서 멀어지더니 중앙 구조물에 붙었다.
치익.
중앙 구조물과 연결된 통로의 문이 열렸다. 여긴 원통 회전의 영향 밖이라 인공중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우우웅.
난 부유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중력이 없으니 내 움직임이 굼떴고, 속도 울렁거리며 어지러웠다.
‘무중력 무균 치료실.’
바바라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던 나는 벽의 손잡이를 잡으며 멈췄다.
-뭐해? 계속 움직여.
바바라의 재촉이 들렸다. 그녀의 말이 얼음바늘처럼 내 등골을 찌르는 것 같았다.
“이 안에 사람들이 있지? 내가 들어가면…….”
무균 치료실에서 나란 존재는 역병이나 마찬가지다.
-방금까지 실컷 사람을 죽이고 다녔잖아. 지금 찬물 더운물 가릴 때야? 우린 시간이 많이 없어.
“여태 내가 죽인 자들은 전부 전투원이었어. 비전투원이 없었지. 다른 길로 안내해.”
-1분 1초가 급…….
“그러니까 우회 경로를 찾으라고!”
나는 소리를 지르다가 움찔했다. 스산한 가닥이 뇌리에 잡혔다. 바바라의 웃음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바바라는 바보가 아니다. 내 성향에 대해 공감은 못 해도 머리로 이해하는 여자다.
바바라도 이쪽 경로로 날 안내하면 의견 충돌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안다. 모를 리가 없다.
“……일부러 이쪽을 택했구나, 바바라. 날 심리적으로 압박해 몰아갈 생각이군. 지젤의 곁을 스스로 떠나도록 말이야.”
바바라의 침묵은 짧았다.
-똑똑해, 루카. 히, 히, 히.
섬뜩한 마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그녀가 말을 침착하게 이어갔다.
-하지만 자기야, 시간이 정말 없는 건 사실이야. 여길 통과하지 않을 거면 이번 작전은 여기서 종료해. 이제 와서 다른 경로를 택해봐야 제시간에 닿지 못한다고.
파국의 길을 지나야 지젤에게 도달할 수 있다.
……아키에스 빅티마, 약자의 전투술.
부조리한 세상과 불합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희박한 가능성에 몸을 던지는 자를 위한 도구.
공황에 빠질 필요가 없다, 루카.
침착하게 인지를 확장해 정보를 빨아들이고, 최선의 수를 택해라. 단순한 합리성이 아니라 내 의지를 지킬 수 있는 방도를.
아키에스 빅티마의 대가는 언제나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지.
시간을 낭비할 것도 없이 최적의 결단이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
난 충격권총 루이나를 고요히 예열했다.
“바바라, 이쪽 외벽을 부수고 외부에서 진입한다. 반대편 경로의 문을 열 준비를 해둬.”
난 전투복 목덜미를 눌러서 헬멧 내부를 밀폐했다.
치익.
바바라의 동요가 통신 너머로도 느껴졌다.
-밖은 우주 공…….
개같은 년의 말을 무시하며, 겨누고, 쏜다.
투- 웅!
푸른 폭발이 일었다. 복도의 외벽이 부서지면서 차가운 우주 공간이 드러났다.
난 깨진 벽을 잡으며 몸을 밖으로 날렸다. 내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순환 통로의 문이 보였다.
-무슨 짓이야!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숨이 멎는 것만 같다. 혈액도 흐르지 않는 기분이다.
우주가 공허하고 차갑다는 걸 증명하듯, 내 몸이 정지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어떤 부작용이 날 엄습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우우웅.
귓가에서 둔탁한 이명이 들렸다. 코와 입에선 불쾌한 출혈이 느껴진다.
나는 우주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 지상이었다면 단숨에 날아갔을 거리가 참으로 길게 느껴진다.
문득, 난 옆을 보았다.
무중력 무균 치료실의 창이 보였다. 치료실 내부에는 온몸을 무균복으로 감싼 의료진과…… 창백한 피부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심상치 않은 굉음을 듣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의료진은 외부에 있는 날 보며 경악했고, 아이들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시시덕거리고 있다.
‘하하…….’
어설픈 웃음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난 바보처럼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내게 묻은 피가 검은 옷 때문에 흐리게 보이길 바랄 뿐이다.
퉁!
부유하던 나는 순환 통로로 들어가는 문에 부딪혔다.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 미칠, 아니, 뒈질 것 같다.
‘바바라, 날 여기서 죽게 놔둘 생각이야?’
한계다. 몇 초가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사고가 멎을 것만 같다.
치익!
문이 열렸다. 난 간신히 눈을 뜨고 문을 잡고선 들어갔다.
바바라의 해킹 조작으로 문이 재빨리 닫혔다.
쿠웅!
난 문이 닫히자마자 앞으로 넘어졌다. 중력이 작동하면서 내 무릎에 바닥에 닿았다.
“커억, 컥, 끄읍.”
난 숨을 헐떡이며 헬멧의 밀폐를 풀었다. 목덜미의 여유 공간이 생겼다.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겠다. 우주 환경은 내 전공분야와 거리가 멀다. 어쨌든, 일단 살아있으면 된 거지.
카드드득!
반대편 통로의 끄트머리에서 불쾌한 소음이 일었다. 바바라가 닫아둔 문을 경비들이 수동으로 열어젖힌 것이다.
-일어나! 멍청아! 지젤이 코앞에 있어!
바바라가 외쳤다.
두두두두!
발소리도 많다.
경비들은 주저앉은 날 보더니 총구만 들이밀며 포위하듯 다가왔다.
‘……숨 고르기 중이야.’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리려 했으나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 눈 밑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지 코 옆도 뜨뜻미지근했다.
“생포해! 목적을 알…….”
대장으로 보이는 경비가 외쳤다.
난 크루시스를 손가락에 걸듯이 잡았다. 의체의 출력이 고점까지 치닫는 건 한순간이다. 보통 신경계라면 감당하지 못할 초고속 상승이다.
주저앉아있던 나는 땅에서 사라지듯 뛰쳐가며 팔을 휘둘렀다.
경비들은 내 검속에 반응하지도 못했다.
콰드드득!
파멸의 칼날이 지나갔고, 사람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후.”
짧은 숨이 내 입에서 나왔다. 일단은 움직일 수 있다. 날 인간병기로 개조해준 제국에 감사할 따름이다.
저벅, 저벅.
난 희미하게 들리는 바바라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이제 다 왔으리라, 그래야 한다.
……솔직히, 힘이 많이 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