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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314

314
무력한 상황을 처음 겪는 게 아니다. 무쉬르 알 카슈라에게 잡혔을 때도 이러했지.

내 팔다리는 지금 움직이지 않았다. 왼팔은 물리적으로 망가졌고, 신경 연결이 단절된 의수와 의족은 고철이나 다름없다.

전투로 인한 파손 흔적은 내 의체에 흉터처럼 짙게 남아있었다. 멀쩡한 외장이 없을 지경이었다.

‘라피스에게 미안하게 됐군.’

나는 눈을 깜빡이며 어두운 격리실을 응시했다. 외부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편이 나았다.

내 머릿속은 지독하리만큼 복잡한 사고가 실처럼 엮이고 있었다.

‘생각이 멈추지 않아’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언제나 우회해야 하고, 정면승부로 힘을 겨루는 게 아니라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허를 찔러야 했다.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예지한다.

나는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듯 무수히 많은 선택과 이로 인한 결과를 상상했다.

지성체의 가장 큰 능력은 상상력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 믿고,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전제하여 생각할 수 있다.

‘키누안은 나를 온전히 파악했다.’

루카는 키누안을 이기지 못한다.

나 혼자선 불가능하다. 나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직시하자.

‘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웠다.’

인생의 기로에서 날 구원한 건 언제나 타인이었다. 내 악다문 입술과 머뭇거리는 손에서 나온 유대와 도움으로 엮인 타인들.

사람 사이의 유대는 미시적인 현상이다. 그걸 읽어내는 건 그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집단과 세력 간의 이해관계, 경제적 손익은 산출이 가능하고 예상이 가능한 범주에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변한다. 집단 간의 이해관계 변화는 눈으로 관측 가능할 정도로 느릿하나, 사람의 마음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변하기도 한다.

내가 교구장에게 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키누안에게 배신당한 그가 이토록 쉽사리 마음을 바꾸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와 키누안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애증 어린 유대가 있었을 것이다.

드륵.

나는 눈을 떴다. 내 식사는 퀼리아가 가져오고 있었다.

퀼리아는 빵을 찢어서 내 입에 가져다 댔다.

“내 처우는 결정됐나?”

내가 빵을 씹어 삼키며 물었다. 퀼리아는 덤덤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다가 입을 굳게 닫았다. 말을 섞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이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퀼리아의 미미한 반응으로라도 바깥 상황을 추론해 보려는 의도였다.

“키누안은 이미 여길 떴겠지. 교구장도 기회가 된다면 키누안을 제압하려 들었을 테니까.”

퀼리아는 고개를 숙이며 내 눈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내게 빵을 먹이고 물잔을 내밀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퀼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송은 내일입니다.”

퀼리아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또각, 또각.

난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군가 내 격리실로 오고 있었다. 좀 더 집중해 보니 디컨 교구장이었다.

‘새벽이로군.’

실외가 보이지 않지만, 내 시간 감각은 정확하다.

지금은 새벽이었다. 아마 새파란 하늘이 보더시티를 뒤덮고 있을 것이다. 야행성과 주행성 종족이 역할을 교대하는 시간이다.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보더시티에서의 여정이 끝날 때가 됐습니다.”

교구장이 문을 열며 말했다.

“생각보다 이송이 빠르군요.”

“본국에선 당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제가 신성국에 가면, 교구장님의 치부도 드러날 겁니다. 키누안이란 존재와 손을 잡았다는 것도요.”

소용이 없는 협박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저 떠보는 것이다.

“제 죄는 교단에 이미 보고했습니다. 키누안의 존재도 알렸고요. 지금쯤 추적대를 꾸리고 있겠죠. 어쨌든 보더시티 교구의 가치는 증명했습니다. 제게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시대적인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사내 두 명이 들어왔다.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차림새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코라의 최정예 전투원이라는 걸 알아챘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동작에서는 세상 어떤 괴물과도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최첨단 무기와 전자기계 장비가 없어도 문제가 없다는 듯이…….’

저들에게선 굳건한 힘의 여유가 뚝뚝 묻어나왔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복도를 지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정황이 보였다.

‘날 비밀리 이송하려 하고 있어, 그것도 최대한 빨리.’

내가 개척신전의 비행장으로 가는 동안, 마주치는 인원이 없었다. 신전 내부의 인원도 통제했다는 뜻이었다.

비행장에는 코라의 공중차량이 미미한 엔진음을 내며 준비 중이었다. 백색의 유선형 공중차량은 지상차량을 겸하는데도 얼핏 보면 매끈한 비행선 같았다.

“서두르시는군요. 아마 저와 라르스의 행방을 찾아 여길 방문한 자가 있는 거겠죠.”

내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새벽의 싸한 입김이 내 입가에서 길게 빠져나왔다.

‘이반 크라치아가 제국의 힘을 사용해 날 구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여기선 아니야.’

이반은 내게 키누안 추적을 온전히 맡겼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키누안을 잡는 데 성공하면, 난 제국의 종속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는다.

‘이대로 붙잡혀 제국으로 돌아가면, 이반의 영원한 종이 되는 거지.’

이반 크라치아는 내가 코라 신성국에서 심문당하는 걸 원치 않을 터지만, 그가 수작을 부리는 건 보더시티 바깥에서다.

‘제국의 비공식 전투원을 사용해 날 중간에서 가로채려 하겠지.’

신성국도 제국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을 터다. 어쩌면 상당한 규모의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황제의 그림자.’

전투에 특화된 전투기계들. 아마도 이번에는 놈들이 움직일 것이다.

현재, 나는 무력하다.

계획이 있냐고? 사실 계획 따윈 없다.

설사 지금 상황에서 내 계산과 능력으로 짤 수 있는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키누안이 진작 차단해뒀을 터다.

지금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영역, 우리의 계산에서 벗어난 궤도에서 움직이는 인력이 필요하다.

날 중심으로 뻗어나간 실낱이 엮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금…….

위이이이잉!

거친 경고음이 하늘에서 퍼졌다. 코라의 전투원과 교구장의 걸음이 멈췄다.

새파란 하늘에서 붉은 경고등이 빙글빙글 퍼지고 있었다. 그 경고등은 한둘이 아니었다.

‘보더시티 경찰의 공중차량.’

벨라토 연방의 공권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12인승 공중차량 열두 대가 개척신전을 포위하듯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투두두두.

굉음을 내뱉는 무장헬기들도 뒤늦게 따라붙고 있었다.

“연방…….”

교구장이 신음했다.

-여긴 보더시티 광역수사단장 미카엘 이지스다. 현 시간부로 보더시티 합의안 4항 1조에 의거해 개척신전의 수색을 시행하겠다.

선두의 공중차량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퍼졌다.

경찰의 12인승 공중차량 후미가 열렸다. 거기선 경찰 안드로이드가 뛰어내리며 착지했다. 푸르게 도색된 안드로이드는 녹색 안광을 내뿜으며 사방팔방 흩어져 총구를 겨누었다.

-무장을 해제하겠습니다. 손바닥이 보이도록 팔을 위로 들어주세요.

경찰 안드로이드가 교구장과 코라 전투원에게도 경고하며 말했다.

교구장과 코라 전투원은 저들을 쓸어버릴 힘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의 소속이었고, 현 상황이 외교적 문제로 불거지는 걸 피해야 했다.

기이이잉.

경찰 안드로이드 중 하나가 날 응시했다. 외눈의 광학 렌즈에서 나온 격자형 레이저가 나를 조사하며 지나갔다.

-신원 확인, 시민번호 BD823902, ‘루카’.

경찰 안드로이드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나도 가끔 잊고 있지만, 난 정식으로 망명한 연방 시민이다.

-루카 님, 현재 불법적 구속을 당하고 있습니까? 예 아니오로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이 멍청한 안드로이드에게 보고도 모르냐고 외치고 싶지만, 난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예.”

-현 시간부로 연방 시민에 대한 긴급보호 조치를 시행하겠습니다.

경찰 안드로이드 네 기가 펄쩍펄쩍 뛰어오더니 나를 지키듯 둘러쌌다.

철컹, 철컹.

코라 전투원들도 물러나면서 교구장을 쳐다봤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전투원이다.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었다.

삼십 기의 경찰 안드로이드가 비행장을 장악했다.

안드로이드가 안전영역을 확보하자마자, 다종족으로 구성된 무장경찰이 뒤이어 강하했다. 그들은 전신 전투복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동작을 보니 훈련 상태가 좋았다. 보더시티 경찰 중에서도 상당한 정예인 듯했다.

그리고 무장경찰 뒤에선 덩치가 큰 사내가 전투복도 없이 경찰 제복과 코트를 입은 채로 서 있었다.

“하하.”

난 헛웃음을 터트렸다. 덩치의 사내는 누가 봐도 마리아의 혈통이었다.

‘미카엘 이지스.’

마리아 오가노프와 성은 달랐으나 그녀의 아들일 터다.

미카엘의 생김새를 보니 가브리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마리아의 아들 중에선 상당한 연장자인 듯했다.

“수사단장님께서 행차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교구장이 미카엘과 마주하며 말했다.

무장경찰이 사방을 포위하며 제압하고 있었다. 일부는 개척신전 내부로 돌입할 태세였다.

‘보더시티의 광역수사단장.’

내가 개척신전에 진입한 지 겨우 이틀 남짓 지났다. 아무리 일처리가 빠르다고 한들, 윗선의 허가를 맡고 이렇게 움직이는 게 아닐 터다.

‘이만한 경찰 병력을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

미카엘은 보더시티 내에선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인 듯했다.

‘마리아가 믿고 있던 배경이 미카엘이로군.’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마리아의 아들 중 하나가 보더시티의 고위 관료였다. 그것도 무력과 치안을 담당하는 인사였다.

“연방의 시민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보아하니 사실인 듯하군요.”

미카엘의 시선이 내게로 잠깐 향했다.

“그런 제보가 하루에도 수백 건은 들어오실 텐데요. 오랜 우정에 금이 가겠군요.”

미카엘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입 아프게 길게 떠들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서 타협하죠, 디컨 씨. 이대로 저 사내를 넘겨주시면 내부 수색까진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미카엘은 숨 한 번으로 담배를 끝까지 태우더니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나는 황급히 끼어들었다.

“……저와 함께 붙잡힌 사내가 있습니다. 그쪽도 같이 꺼내주시죠.”

내가 미카엘에게 말했다. 미카엘은 눈을 찌푸리며 날 응시했다.

“그쪽이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는 아닐 텐데?”

“제 몸 하나 건사하자고 부하를 버리고 가고 싶진 않으니까요.”

나는 복잡한 설명 대신에 짧게 말했다. 미카엘의 성격이 내 추측과 비슷하길 바랄 뿐이다.

“부하라……. 흠, 그것도 그렇지. 디컨 씨, 한 명 추가입니다.”

미카엘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교구장의 안색이 나빠졌다.

“단장님, 본국과 교단에선 이 일을 기억할 겁니다. 앞으로 보더시티 내에서의 협력도 얻기 어려울 테고요.”

“어차피 전 여기서 더 올라갈 생각도 없습니다. 영감탱이들 똥구멍을 핥는 건 이스마엘이나 하라고 하죠.”

미카엘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미카엘의 등장으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퀼리아와 나온 라르스는 들것에 실려 경찰의 공중차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드륵.

미카엘도 내가 탄 휠체어를 붙잡더니 밀었다.

“마리아의 부탁입니까? 상당히 무리하신 듯하군요.”

내 말에 미카엘이 사납게 웃어댔다.

“내가 엄마의 부탁이면 뭐든 다 해주는 마마보이로 보이나? 난 엄마를 싫어해. 이건 내 동생, 가브리엘을 찾아준 보답이다.”

미카엘이 굵직한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내 입에 댔다.

“비흡연자입니다.”

“생긴 건 무슨 폐암 말기 환자처럼 생긴 주제에, 웃기는군. 으음, 설마 가브리엘도 재미없는 금욕주의자로 자란 건 아니겠지? 친구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잖아.”

“놈은 술, 담배, 여자에 환장하죠.”

“좋은 남자로 컸군. 벌써 마음에 들어.”

……이쪽 집안의 윤리관은 나와 맞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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