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311

311
왜곡된 인지는 불협화음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고,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이치의 어긋남에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특히 외부 정보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감각이 예민할수록 불안감은 더 커진다.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은 인지왜곡의 부정적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소리다.

‘괜히 퀼리아의 성정이 딱딱해진 게 아니로군.’

감정적 자극에 덤덤할수록 인지왜곡을 버티기가 쉬울 터다.

‘그리고 아키에스 빅티마를 전투술로만 익힌 놈들은 몰라도…… 무절제하게 정보량을 빨아들이는 키누안은 인지왜곡 장비를 사용하기 힘겹겠지.’

나와 키누안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오늘 하나 더 늘어났군.

“상당한 수준의 환각을 경험하신 모양이군요.”

난 숨기려 했으나 퀼리아는 내 상태가 나쁘다는 걸 알아챘다. 애초에 상태를 속이기가 힘들었다.

나는 벽에 등을 잠시 기대며 휴식을 취했다. 최악의 결말을 가상으로나마 경험했다.

“쉬시는 동안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격리실입니다.”

쭉 이어지는 복도는 불빛조차 희미했다. 푸른 미등이 간간이 천장에 달려있었다.

‘내가 환각에 빠진 사이에 일을 잘 처리했군.’

퀼리아는 바깥의 경비를 기절시켰을 터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교대까진 오십여 분입니다.”

“충분하군.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 퀼리아.”

“루카 님이 먼저 절 믿으셨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인지왜곡 상태에서 퀼리아가 내게 수작을 부렸다면 위험했다.

‘내 상상 이상으로 불쾌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무방비했어.’

다신 경험하기 싫었다. 몇 번이나 강조할 만큼 끔찍하다.

내 뇌는 부정적 경험과 감각에서 벗어나더니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었다. 어느덧 오감이 정상적으로 환경을 인지했다. 신경계 강화와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사고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난 내 경험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했다.

“움직일 수 있으시다면 격리실을 확인해주시죠.”

퀼리아가 그리 말하며 먼저 움직였다. 그래, 시간이 많진 않다.

저벅, 저벅.

나와 퀼리아는 복도 좌우로 나뉘어서 격리실의 여닫이 창문을 확인하며 지나갔다.

‘교단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갇혀 있군.’

장기 수감으로 미쳐버린 사람도 보였다. 고문의 흔적이 나신에 덕지덕지 남아있었다.

‘어디든 조직이 커지면 이런 어둠이 있다.’

퀼리아의 말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개척신전에는 이런 감금고문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여길 들어오면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난 라르스를 찾아 격리실을 계속 확인하며 나아갔다.

“루카 님.”

퀼리아가 날 불렀다. 라르스를 찾은 모양이다.

‘라르스로군.’

난 여닫이 창문으로 축 늘어진 라르스를 확인했다. 의체의 관절은 전부 파손된 상태였다. 아무리 최첨단 의체라도 저 꼴이면 무겁고 비싼 마네킹에 불과하다.

득.

난 격리실의 문을 잡아당기다가 그만뒀다.

격리실의 문은 상당히 무겁고 억셌다. 이걸 부쉈다간 바깥까지 요란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떨어져 있어.”

나는 품을 뒤적여 ‘불나방’ 두 자루를 비수집에서 꺼냈다. 화광 시리즈의 이그니움이 불나방의 칼날 재질이다.

치익, 칙.

내가 가볍게 불나방 두 자루를 마찰했다. 금세 후끈한 열기가 대기를 자글자글 데웠다.

기이이잉!

난 문 테두리를 따라 불나방을 밀어넣고선 그었다. 칼날에 걸린 잠금장치가 녹아내리면서 망가졌다.

“이그니움이로군요. 그걸 무기로 쓰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퀼리아가 불나방의 소재를 알아봤다. 역시 그녀도 여러모로 경험과 지식 많았다.

치이이익, 킹!

나는 라피스의 작품인 ‘파이’의 냉각공에 불나방의 칼날을 담그듯 넣어서 식혔다. 일정 온도가 이른 냉매 카트리지가 열을 잔뜩 머금은 채로 바깥으로 배출됐다.

철컥.

나는 식은 불나방을 순서대로 집어넣었다.

‘특정 상황에서 무척 유용하지만…… 번거롭고 비싸지.’

이그니움 소재의 무기가 고성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널리 퍼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제대로 된 사용을 위한 전제 조건이 너무나 덕지덕지 많았고, 결정적으로 구하기 힘든 레어메탈이었다.

드륵, 쿵.

난 쓰러지는 문을 잡아서 벽에 기댔다.

황량한 방에는 라르스가 죽은 듯이 주저앉아 있었다. 마치 고장 난 안드로이드 같았다.

‘뇌를 꺼낸 흔적은 없어.’

의체의 머리 부분은 멀쩡하다.

“라르스, 나다.”

내가 라르스를 흔들며 말했다. 뇌사가 아니라면 반응할 터다.

기잉, 들썩.

라르스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그의 어깨와 다리가 전투 반사로 움직였다. 그러나 관절이 박살 난지라 미약한 경련이 전부였다.

“아…….”

라르스의 의안은 기계인데도 동요가 드러났다. 감정의 색채가 의체를 뒤덮으니 마네킹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스륵.

내가 검지를 들어서 움직였다. 라르스의 의안이 내 손가락을 빠르게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펼쳐 숫자를 표시했다. 그리고 단순한 셈을 물었다.

“둘, 하나, 여덟…….”

라르스도 반사적으로 내 움직임과 질문에 반응했다.

‘간이검사로는 뇌 손상이 없어.’

흐릿하던 라르스도 이내 각성했는지 눈빛이 선명해졌다.

“저는…….”

“내가 먼저 질문하지. 가야를 공격하고, 보더시티 교구장을 암살한 게 너인가?”

내 등 뒤의 퀼리아도 잔뜩 집중하며 라르스를 보고 있을 터다.

나도 감각을 곤두세우는 건 마찬가지다. 라르스는 거짓말을 잘하는 놈이 아니다.

‘이반이 특임대를 사용해 교구장을 암살할 생각이었으면…… 일레이에게 맡겼을 거야. 라르스는 미숙하다.’

지금 나는 확신했다. 라르스는 교구장 암살범이 아니다.

“네? 제가, 암살 말입니까?”

왜냐하면, 라르스는 정말로 아무런 정황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퀼리아, 의문에 대한 답이 되었나?”

난 돌아보지 않고도 퀼리아가 고개를 끄덕인 걸 알았다.

“제 마지막 기억은, 병원에서 나오면서…….”

라르스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 이후에 기억은 없군. 넌 기습을 당한 거다.”

라르스는 우수한 군인이다. 어쭙잖은 놈들에게 무력하게 당할 녀석이 아니다.

‘용의주도한 놈들. 그리고 나와 라르스의 움직임을 훤히 알고 있는 상황.’

내 사고가 빠르게 굴러간다. 의심이 꼬리를 문다. 심지어 일레이도 용의 선상에 있었다.

내 사고의 실타래가 넓게 퍼졌다가 구 형태로 뭉치길 반복했다.

“하하.”

난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개척신전은 코라 기술 기반의 장치로 외부와 통신이 철저하게 차단된 격리공간이다. 이런 공간은 보더시티에 많지 않다.

‘함정이라는 건 각오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함정이다.

“퀼리아, 넌 교구장의 명이라면 기꺼이 나와 척을 지겠지. 원망하진 않겠다.”

퀼리아는 내 말의 의미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내 사고는 홀로 폭주해 정답을 향해 뻗어갔다.

‘아직도 미숙하군, 루카.’

정보의 교란과 부재, 그리고 가야의 중상 소식 때문에 사고의 가지가 뻗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그곳에 지금 상황에 대한 답이 있었다.

“계략을 짜는 솜씨는 여전히 나보다 한 수 위로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크루시스의 칼자루를 스치듯 잡았다. 그리고 루이나의 예열도 시작했다.

“루카 님?”

퀼리아가 미간을 살포시 찡그리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터벅, 터벅.

따각, 따각.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둘이었다. 예민한 청각을 가졌다면 발소리만으로도 상대를 가늠할 수 있다.

더군다나 나는 청각 시야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굳이 청각 시야를 쓰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긴 하다.

“교구장 님?”

복도에 선 퀼리아의 입에서 감정을 드러낸 말이 나왔다. 그녀에겐 소리를 지른 거나 마찬가지일 터다.

암살당했다던 교구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의 오랜 숙적이 호위처럼 걷고 있다. 내게 잘려나간 의체는 새것처럼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키누안.’

키누안과 교구장이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당황한 사람은 퀼리아였다.

“면목이 없군,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키누안과 다시 협력하게 됐네.”

교구장이 고개를 까딱 숙이며 말했다. 나도 고요하게 머리를 숙였다가 들며 답했다.

‘교구장이 키누안에게 배신당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그 당시의 교구장은 내게 진심으로 키누안을 추적해 달라고 요청했어.’

당시의 교구장이 키누안과 협력하고 있었다면 나도 눈치챘을 터다.

‘키누안이 교구장과 협력한 건 그 이후다. 내가 개척신전을 떠난 다음이지.’

키누안은 교구장에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내밀었겠지.

교구장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내가 대응할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친구라 여기던 키누안의 배신에 치를 떨던 교구장의 변심은 내가 예측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가야 선생이 중상을 입었어.’

교구장은 형제 가야에 대한 애증이 있었다. 되도록 가야에게 부상을 입히고 싶진 않았을 터다.

‘키누안의 특기로군.’

장막을 여러 겹 둘러서 진의를 숨긴다. 놈은 자신의 계략을 감춰뒀다가 꺼냈다.

“전 호의를 배신으로 갚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만, 교구장님이 절 배신하셨군요.”

내가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엔 진심이었네.”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말들이 거짓이었다면 전 당신을 의심했을 거고, 이런 처지에 이르지 않았겠죠.”

침묵하는 키누안은 평소처럼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노점상에서 줄을 서듯이 나와 교구장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퀼리아, 이쪽으로.”

교구장이 퀼리아를 불렀다. 퀼리아는 날 보며 목례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해한다고 했잖아. 가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나도 생도이자 군인이었다. 퀼리아의 내적 갈등은 잘 알고 있다. 나도 여러 번 경험한 일이다.

퀼리아는 교구장 곁에 섰다. 그녀는 키누안을 힐끗 노려보았고, 키누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루카는 내 오랜 친구야. 이야기할 게 많으니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겠나? 디컨.”

디컨은 교구장의 이름이었다. 교구장은 고개를 까딱였다.

“키누안, 이번만큼은 자네가 약속을 지키리라 믿네.”

나는 멀어지는 교구장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키누안을 또 믿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소용없을 터다. 키누안은 자신의 배신조차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의 매력적인 협상안을 들고 왔을 테니까. 보더시티 교구 존속에 관한 일이겠지.

“차 한잔하겠나?”

키누안이 바닥에 정좌하며 앉더니 보온병을 꺼냈다.

‘한 걸음 내디디며 공격하면 칼날이 닿는 거리다.’

찰나 동안, 내 안의 갈등이 수없이 일었다.

“자넨 날 공격할 수 없어. 궁금한 게 너무나 많기 때문이지.”

“그리고 제 스승님답게 대비도 하셨겠죠.”

“스승이라, 새삼스럽군. 지금의 자넬 보니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네. 자네는 내 예상을 몇 번이나 뛰어넘었지.”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손바닥에 있죠.”

“어쩌면 자네가 자랑하는 폭력으로 여길 벗어날 수도 있겠지.”

“수틀리면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나도 키누안 앞에 마주 앉았다.

키누안은 잔을 품에서 꺼내더니 차를 따른 채로 내밀었다.

난 찻잔에 입을 댔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맛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씁쓸한 맛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마실 만한가? 자네와 이렇게 마주할 날을 위해 아껴둔 찻잎으로 우린 거네.”

“뭐, 그럭저럭 마실만 합니다.”

키누안이 짧게 소리 내어 웃었다.

“다행이로군.”

“그래서…… 목적은 이루셨습니까?”

내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