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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퀼리아, 그리고 마리아, 사리엘도 찻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리엘의 후각은 찻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찻집에서 길고 긴 체취가 이어진 것이다.
‘대개 찻집이란 부유층 구역에 있는 법이지.’
하층민에게 ‘차’는 합성음료로 어쩌다 마시는 게 고작이고, 찻집이 아니라 술집이나 바에서 덤으로 판다. 밑바닥 인생이 제대로 된 차를 마시기란 어렵다.
‘그러니 찻집으로 위장한…… 약물 가게.’
흔한 위장이었다. 다들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실제로도 약물 중독자들이 이 부근을 배회하고 있었다.
‘주업은 약물 판매겠지만, 찻집으로 위장하기 위해 차를 소량 매입하긴 했겠지.’
매입한 찻잎의 양은 누군가가 마시기 위한 ‘1인분’으론 차고 넘쳤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키에스 빅티마는 각성 계통 약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키누안의 부하들, 데드로닌 중 상당수가 약물 중독자일 터다. 대다수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들은 약물의 힘을 빌려야 한다. 나처럼 고등급의 신경계 화학 처리를 받은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고등 강화 시술을 받은 자라면 아키에스 빅티마를 익힐 이유가 줄어드니까 말이다.
난 찻집을 응시했다.
‘문제는 여기가 함정이냐 아니냐인 거지.’
접근하려니 불안감이 치솟았다.
“여, 여기, 냄새가, 짙, 게 고여있다.”
사리엘이 고개를 들어서 찻집을 가리켰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살피…….”
퀼리아가 나서려 했다. 난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갔다.
“성치 않은 몸이니 관둬. 포스 사용도 무제한인 건 아닐 테니 아껴두고.”
무엇보다 키누안의 흔적이 저 안에 있다면 내가 먼저 확보하고 싶었다.
마리아와 퀼리아는 내가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무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선 내 엄호에 들어갔다.
나는 벽을 따라 걸으며 부랑배와 중독자 사이를 거닐었다.
‘키누안의 입장에서 생각해라, 루카. 놈을 나와 대등한 존재로 끌어내려.’
내 머릿속에서 수많은 사고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우선적으로 ‘비대하게 커진 키누안’은 제거했다. 만약, 키누안이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애초에 이기지 못한다. 무력한 패배의 가능성은 제거하자.
이길 수 있는 전제 조건만 생각하면 된다.
‘마리아가 조심성 있는 성격은 아니야. 키누안이 마리아를 이용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여러 수단을 통해 마리아의 전력과 정보를 캐낼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키누안은 어디까지나 마리아 일당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만 습득했을 것이다. 깊게 파고들 시간과 여력까진 없었겠지.
당장 여기엔 나를 비롯해 일레이와 특임대, 그리고 코라의 암살단원까지 개입한 상황이었다. 마리아 일당은 키누안의 관측 순위에서 우선도가 낮은 집단이다.
‘약물로 각성한 사리엘의 후각은 미세한 입자까지 분류해서 며칠 전의 움직임까지 역추적하고 있다. 이건 일반적인 예상의 범주를 훨씬 넘어선 능력이다.’
나도 사리엘의 후각 능력에 놀랐다.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초감각이었다. 이것조차 키누안이 예상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키누안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오랫동안 옆에 있었던 나도 키누안의 본질은 모른다.
‘키누안은 부하들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결코 알려주지 않았을 거야. 데드로닌은 키누안을 숭배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듯한 신비감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거지. 자신의 인간적인 부분이나 사생활을 부하들에게 보여줄 리가 없어.’
나는 그간의 키누안 행적을 추측했다. 약물상으로 위장한 채로 여기서 몇 년을 살았겠지. 아마 약물상인 척할 때는 다른 의체를 사용했을 터다.
‘키누안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예전의 구형 의체를 그대로 사용했어. 의체를 바꾸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게 만들었지. 이제 와서 다른 의체에 새로 적응하기엔 뇌가 한계에 달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설득력도 있고 말이야.’
교활한 키누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놈은 몇 겹의 계략과 위장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숨긴다.
난 키누안이 된 것처럼 놈의 사고를 좇았다.
‘키누안은 얇은 얼음장 위에 서 있다. 그렇게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니야. 보더시티에 머물면서 조마조마한 상황을 수없이 넘겼을 거다.’
전체적인 능력으로 보면 키누안은 나와 동등하다.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이길 수 있다.
키누안을 대단하게 여기지 말자. 내게 힘든 일은 놈에게도 힘들다. 놈이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다.
‘키누안은 계획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혼신의 여력을 짜내 해결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과거의 나를 통해 키누안을 알아내려 했다. 마치 거울에 비춘 듯한 사고였다.
콰직.
건물 뒤편으로 돌아간 나는 비상문을 잡아당겼다. 잠금장치가 부서지는 소리에 부랑배와 중독자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저들이 강도로 돌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때마침, 마리아의 경고가 뾰족한 총성으로 퍼졌다.
퓻!
마리아의 저소음 저격이 부랑배 한 명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카악, 컥!”
비틀거린 부랑배가 총상을 입은 다리를 질질 끌며 쓰레기 더미로 숨었다.
후다다닥!
찻집으로 들어오려던 자들이 일제히 골목길로 흩어졌다. 그들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저격에 두려워했다.
‘훌륭하군, 마리아.’
마리아가 불필요한 침입자는 막아줄 터고, 퀼리아는 근처 건물 옥상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리엘의 후각이 정교한 감시망처럼 이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겠지. 사리엘의 후각을 속이는 건 몹시 힘든 일일 터다.
덜컹.
난 너덜거리는 문을 벽에 기대듯 놓고선 안으로 들어갔다.
‘찻잎과 약물의 냄새.’
사리엘만큼은 아니라도 내 후각도 꽤 예민하다.
우리의 오감은 외부 세상을 인지하는 도구다. 정보량 과처리를 위해 감각을 극도로 예리하게 갈고 닦는 게 아키에스 빅티마의 기본이기도 하다.
나는 가판대를 바라봤다.
‘찻집은 역시 위장이지.’
차가 놓인 가판대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대신, 약물을 보관하는 찬장이나 서랍 손잡이는 맨들맨들했다.
‘여기서 키누안의 흔적을 찾아.’
키누안이라면 자신의 흔적을 철두철미하게…….
난 눈을 찡그렸다.
내 생각보다 놈의 흔적을 찾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가게 안쪽으로 숙식하는 방에 들어가보니 벽면에는 사진과 메모가 보였다.
스륵.
난 방 중심에 우뚝 서서 사진과 메모를 보았다. 사진은 여러 장소와 인물이었고, 그 밑에는 주석처럼 설명이 적혀 있었다.
사진끼리 잇는 선은 관계도를 나타냈다.
관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나도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미 마무리하고 정리한 듯한 공백도 많았다.
……보고 있으니, 큰 의문이 든다.
‘디지털로 정보를 남기지 않는 건 당연해. 키누안은 뛰어난 해커도 아니고 대단한 조직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야. 기록해야 할 게 있으면 디지털 방식은 피하고 싶겠지.’
하지만, 내가 아는 키누안은 이렇게 허술하게 정보를 노출하는 자가 아니다.
‘정보와 관계도가 방대하지만, 머릿속으로 처리 가능한 정보량이다. 구태여 물리적으로 시각화할 필요까진 없어.’
나는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왜? 어째서? 이런 정보를 남긴 이유는? 함정?’
여기가 함정이라면 지금 마리아와 퀼리아는 죽었을 것이다. 키누안에겐 마리아와 퀼리아를 살려둘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놈이 날 살려둘 이유도 더는 없을 터.’
지금까지 키누안은 날 이용하려 들었다. 내가 살아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용당한 나는 키누안을 대신해서 이반 크라치아와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이목을 끌었다.
‘그 미끼 역할도 이제 끝났다. 난 방해만 되는 추적자일 터.’
여기조차 함정이라면, 벌써 위급한 상황이 벌어져야 한다.
난 뻑뻑한 눈을 깜빡이다가 찡그렸다.
‘인지 부조화.’
내가 아는 현실과 키누안은 이토록 만만치 않다.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다. 쉽게 찾아낸 흔적 때문에 나는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정말로 사리엘의 후각이 키누안의 허를 찌른 거야. 그렇게 믿어라, 좀!’
난 여전히 키누안을 대단하게 여기고 있다. 눈앞에 달콤한 사탕이 있는데도 독이 들었을까 봐 먹지 못한다.
지금까지 키누안이 흘린 사탕은 전부 독사탕이었다. 이제 와서 놈이 진짜 사탕을 흘렸다고 한들, 선뜻 주워서 삼킬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리엘의 초감각을 키누안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전제하에 난 움직이고 있다. 좋은 결과를 쉽게 얻은 탓에 나는 자꾸만 전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키누안이 사리엘의 후각을 예상치 못한 거야! 그 사실을 인정해! 인정하라고! 이 멍청한 대가리야!’
나는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다. 가상의 키누안에게 짓눌려 눈앞의 정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키누안이 정보를 쉽게 노출한 의도를 파악하는데 사고의 역량을 쏟고 있었다.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그 ‘의도’ 때문에 뇌를 낭비하는 중이다.
‘이 허점조차 키누안의 의도일 거란 불안감은 무시해.’
나는 아키에스 빅티마의 직관을 무시하려 했다. 난 상위 인지로 부정확한 직관을 간신히 억눌렀다.
“좋아, 또 멋대로 굴었다간 이마에 구멍이 늘었을 거다.”
나는 미치광이처럼 내 뇌에 협박하며 벽을 응시했다. 사진과 메모, 그리고 선으로 얽힌 정보 덩어리가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쟈파, 앙귀스 레지나, 라피스, 엔, 손석재…….’
내가 만난 인물들을 비롯해 마리아 일당의 사진도 있었다.
몇몇 인물의 사진에서는 X자 표시가 있었다. 이용할 가치가 없다는 뜻일 터다. 쟈파나 손석재, 엔…….
난 그 밑의 메모도 빠르게 읽어나갔다. 내가 아는 정보와 다르지 않았다.
뚝.
나는 한 사진에서 멈췄다.
‘지젤 쿠스토리아.’
시야를 확대하듯이 눈을 크게 떴다. 난 지젤에 대한 메모를 읽었다.
‘루카의 약점,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공동 창업자, 현시점에서 행방불명, 확보의 우선순위가 높음, 과연 어디에?’
벽에는 많은 정보가 있었으나 중요한 계획들이 드문드문 빠져 있었다. 벽에 붙은 건 어디까지나 ‘정리용’이었다.
난 빈 공간의 일부를 응시했다. 이쪽은 떼어낸 지 얼마 안 돼서 접착제가 끈적거렸고, 글씨도 문질러서 지운 듯 자국이 흐릿했다.
‘라르스와 교구장의 사진이 없다. 분명히 주요 인물일 텐데…….’
난 다른 사진과 메모의 배치를 확인했다.
‘……나라면 교구장과 라르스의 사진을 여기에 배치했겠지.’
키누안의 사고를 되짚으며 끈적거리는 접착제에 손을 댔다.
그리고 추론만으로 교구장과 라르스 사이의 관계선을 손으로 더듬어갔다. 관계선의 글자도 흐릿하게 지워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난 그나마 식별 가능한 글자만 모아서 내용을 조합했다.
‘……암살과 관련된 내용.’
누가 누구를?
……라르스는 여전히 답신이 없었다.
간담이 서늘하다. 지금은 억누른 직관을 발휘할 때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나는 슬금슬금 손을 아래로 내렸다. 내 손가락이 크루시스에 걸렸다.
“퀼리아, 지금 여기에 있지? 섣부르게 행동하지 마라.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아무리 나라도, 보이지 않는 상대를 ‘제압’만 할 자신까진 없으니까.”
현재 퀼리아는 바깥에서 망을 보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추측이 틀렸다면 그냥 혼자 쪽팔린 채로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하면 된다..
우우웅.
인지왜곡 능력이 해제되면서 공간이 일렁였다.
턱.
퀼리아가 공간을 비집고 나오듯 모습을 드러냈다.
뚝.
퀼리아의 왼쪽 눈에서는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또렷하게 떨어졌다.
“우리가 여기 도착하기 십여 분 전, 교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자연사는 아니겠지.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팔팔했으니까 말이다.
“범인은?”
“당신과 함께 행동했던 제국의 군인입니다. 가야 님도 중상을 입으셨죠. 전 당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깊은 탄식이 목구멍을 긁으며 뛰쳐나오려 했다.
‘라르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