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염병할, 이젠 손해야. 이 자식과 키누안을 찢어발겨도 손해라고!”
마리아가 툴툴거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내가 제압한 암살단원을 내려다봤다.
“마무리는 너한테 넘기지. 자식의 원수니까.”
내가 자리를 비키며 말했다.
마리아는 저격총으로 암살단원의 머리를 찍듯이 총구를 대었다.
암살단원은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고 담담하게 최후를 기다렸다.
암살단원을 대신해 마리아의 표정이 더 험악하게 변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족속이로군. 자신의 목숨 따윈 전혀 중요치 않다는 듯이 구는 놈들이지. 죽여도 전혀 개운하지 않아. 하지만…….”
마리아가 방아쇠를 당겼다.
터- 엉!
총구에 눌린 암살단원의 머리가 처참하게 터졌다.
“……죽이지 않는 것보단 마음이 홀가분하지.”
마리아는 암살단원의 터진 머리를 짓누르며 말했다. 그녀의 신발굽엔 너덜너덜한 살점이 붙어서 덜렁거렸다.
“퀼리아, 여기서 마리아를 도와서 시신을 수습해. 라파엘과 우리엘을 그냥 두고 갈 순 없으니까. 마리아, 시신을 옮길 인력은 있나?”
“우리 쪽에도 비전투 인력이 있어. 걔들을 불러서 맡기면 돼.”
마리아는 단말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연락하고 있었다.
“난 위를 둘러보고 내려오지. 그리고 사리엘의 코도 빌리겠다.”
내 말을 들은 마리아가 사리엘에게 날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난 사리엘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절그럭.
올라가는 계단의 벽과 바닥 일부가 부서져 있었다. 그 잔해가 고스란히 바닥에 있는 걸 보니 얼마 전에 여기서 소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피 냄새와 마망의 냄새. 난다.”
사리엘이 커다란 몸을 낮게 숙이며 코를 바닥에 들이댔다.
“그리고?”
“쇠붙이, 기름, 불에 탄 실리콘…….”
나는 감각을 넓게 뻗으며 문을 밀어서 열었다. 문고리는 부서진 상태였다.
끼이이이.
난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내부를 응시했다. 문을 여니 익숙한 죽음의 냄새가 났다.
죽음의 냄새는 전부 같지 않다. 누가, 어떻게, 어디서, 언제 죽었느냐에 따라 죽음의 냄새가 달라진다.
‘익숙한 죽음의 냄새.’
나는 내부를 응시했다.
가장 처음 보이는 건 익숙한 전신의체와 전투복이었다. 내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치직, 칙.
전류가 튀는 소리가 났다.
‘파괴된 전신의체.’
전신의체는 처참하게 찢기고 부서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전류가 간헐적으로 튀었고, 그때마다 가짜 신호 때문에 의체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포스 폭발이 의체 내부에서 일어났다. 버텨낼 재간이 없었겠지.’
널브러진 가재도구와 그을린 흔적, 전신의체의 피격 상태만 봐도 어떻게 당했는지 훤히 보였다.
그리고…… 대파한 전신의체는 ‘특임대원’이었다.
일레이의 부하다. 나는 놈의 얼굴과 무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까는 일레이의 시신인가 싶어서 동요가 일었던 것뿐이다.
보더시티에 도착한 이후로 나는 일레이와 따로 움직였다. 일레이의 특임대도 독자적으로 키누안을 추적하다가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키누안의 유인책에 말려든 거지.’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지금까지 모두를 속여가며 몸을 숨기던 키누안이다. 이제 와서 여기저기 꼬리를 허술하게 잡히고 있었다. 이건 명백히 놈의 의도다.
‘키누안이 숨기고자 했다면, 마리아나 암살단원, 일레이의 특임대원은 키누안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은 전부 키누안의 흔적을 발견하고 같은 장소에 모이고 있었다.
이건 명백히 키누안의 의도다. 자신의 적들이 서로 충돌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서 코라의 암살대원과 아크레시아의 특임대원이 만났다.’
당연히 대화의 여지는 없었을 터다. 본능적으로 숙적을 만났다는 걸 깨닫고 싸움을 시작했겠지.
불운하게도, 당한 쪽은 특임대원이었다. 그의 뇌는 포스 공격에 휘말려 곤죽이 된 상태였다. 금이 간 인공 두개골 사이로 걸쭉한 분홍빛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둘러 라르스가 일레이와 합류해야 한다.’
나는 감청 위험을 무릅쓰고 일레이와 직접 통신을 시도했다. 부하가 여기서 당한 걸 녀석이 알고 있을지도 의문이다.
삑.
통신의 끝은 공허했다. 일레이와의 연결이 당장은 닿지 않았다. 현재 일레이는 연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일 터다.
나는 단말기를 조작해 일레이와 라르스에게 암호화된 메시지를 대신 남겼다.
덜컹.
사리엘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찬장을 부쉈다.
“마, 망의, 냄새, 킁.”
사리엘은 마리아의 것이 확실한 커다란 속옷을 쥐었다.
‘마리아 일당이 키누안에게 필요한 유물을 찾아낸 건 우연일 것이다. 하지만 키누안은 그 우연을 이용했어.’
키누안도 가브리엘을 알고 있다. 마리아 일당을 보고선 가브리엘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눈치챘을 터다.
‘마리아에게 자신의 정보를 노출시키고 끌어들인 건 날 이용하기 위해서야.’
내 성격상, 가브리엘과 혈연관계인 마리아 일당을 죽이거나 죽게 놔두긴 어렵다. 무척이나 인정하기 싫지만, 내 성정이 이런 쪽으로 무른 건 사실이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스쳐 가는 우연조차 전부 끌어당겨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흘러가도록 만든다. 나와 키누안에겐 숨 쉬듯 당연한 것이다.
터벅, 터벅.
마리아가 우릴 따라 올라왔다. 아래층에선 기척이 늘어났고 소란스러웠다. 시신을 수습하는 중일 터다.
“마리아, 여기서부턴 그쪽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더 나섰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거다.”
내가 서늘하게 말했다.
마리아는 사리엘이 건넨 자신의 속옷을 받아들고선 인상을 찌푸렸다.
“내 실수로 아들이 둘이나 죽었어. 이젠 복수의 문제야.”
“복수? 이들은 국가의 비공식 특수전 부대다. 도굴꾼 따위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사건에 개입된 자들은 그쪽과 수준이 달라.”
마리아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게 바로 무시한다는 거다. 우리 쪽도 비장의 병기 하나 정돈 있어. 아케인 유물을 도굴하다 보면 국가급 폭력과도 마주치지. 우리라고 그때마다 도망가기만 한 게 아니야.”
“그럼 말로만 떠들지 말고. 실체를 가져와. 사리엘이 비장의 병기는 아닐 거고 말이야. 그리고 냄새로 추적하는 건 더는 불가능해. 냄새로 유인할 정도면, 약품으로 유물에 묻은 네 체취 정돈 진작 지웠겠지.”
마리아가 비릿하게 웃었다.
“아니, 냄새의 길이 남아있어. 사리엘의 후각을 우습게 보지 마. 냄새를 지웠더라도 그 전까지의 흔적은 이어지니까.”
마리아가 허리춤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녀는 약물이 담긴 주사기를 꺼냈다.
“마, 망?”
마리아의 곁에 있던 사리엘이 겁을 먹더니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는 벽까지 밀리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주사 맞을 시간이다, 사리엘.”
“그, 거, 아파. 머리가, 많이 아파. 사리엘은, 주, 사가 싫다.”
“우리엘과 라파엘이 죽었어. 복수해야지. 형제들이 죽었는데 그냥 넘어갈 생각이야? 엄마는 널 그렇게 의리 없는 놈으로 키우지 않았다.”
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사리엘은 한 사람 몫을 해야 하는 성인이기도 하고, 마리아의 보호가 없으면 더 처참한…….
젠장, 합리화를 집어치우자. 사리엘은 원치 않는 약물을 주사받고 있고, 난 그저 부덕한 방관자다.
꾸욱.
마리아가 사리엘의 이마를 짚으며 당기더니 목덜미에 주사를 놓았다.
출렁이는 약물이 사리엘의 목을 통해 스며들었다.
파르르르.
사리엘의 신체 말단이 떨렸고, 특히나 머리는 뒤집힐 듯이 흔들렸다.
“크륵.”
사리엘의 입가에서 새하얀 입김이 침과 함께 흘러나왔다. 곤두선 털은 찔릴 듯이 빳빳했다.
사리엘의 콧구멍은 혈액이 몰린 듯이 넓어졌고, 코 주변의 근육과 혈관은 징그러울 정도로 꿈틀거렸다.
“사리엘, 냄새의 길을 찾아라.”
마리아는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약물을 사리엘에게 투여한 듯했다.
사리엘은 극도로 민감해진 후각 때문인지 고통스러워했다. 막대한 양의 후각 정보를 뇌가 처리하고 있을 터다.
‘위험한 방식이다.’
노마드의 크롤러인 사리엘이 신경계 화학 처리를 받았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사리엘의 감각과 인지 정보처리량을 약물 투여로 늘렸다.
‘사리엘이 수용 가능한 정보량을 넘어섰어.’
생물학적 신경계 강화도 없었고, 아키에스 빅티마 같은 뇌 강화 훈련도 받지 않았으니 감당하기 힘들 터다.
“크륵, 킁.”
사리엘이 네발짐승처럼 바짝 엎드렸다. 그는 코를 바닥에 댔다가 벽, 계단, 기둥 따위로 이동했다.
“길, 보인다, 흔적, 냄새의 발자국.”
사리엘이 벽에 들러붙더니 혀까지 길게 내밀며 냄새를 느꼈다. 상당히 기괴한 행동이었다.
“좋아, 사리엘. 이번 일이 끝나면 실컷 놀아주마.”
마리아가 히쭉 웃으며 사리엘을 따라갔다. 그녀는 내가 턱짓하며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퀼리아, 움직일 수 있나?”
“물론입니다.”
퀼리아는 군말 없이 따라붙었다.
나는 단말기를 잠시 매만졌다. 일레이와 라르스에겐 여전히 답신이 없었다. 일레이는 몰라도, 라르스는 급박한 상황에도 내 연락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불안하군.’
위험천만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다가올수록, 내 머리는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참 웃기는 일이지.
* * *
사리엘은 ‘후각’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능도 떨어졌고, 오감 중 가장 민감한 시각조차 잃었다.
‘뇌의 기능 자체가 후각에 오롯이 집중된 거다.’
사리엘은 냄새의 길을 찾아내 추적을 시작했다. 냄새가 온 길을 찾아가면 키누안의 흔적이 있을 터다.
‘냄새의 역추적도 키누안의 계획 범주에 있는 걸까?’
알 순 없다.
키누안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모든 걸 계획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지식 범주 내에서 대비할 뿐이었다.
키누안이 마리아 일당의 전력을 전부 파악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마리아 일당은 키누안에게 변수다. 놈은 그 변수를 최대한 이용해본 거지.’
가브리엘과 혈연인 마리아 일당이 홀리에너지 캡슐을 도굴하고 그걸 경매장에 납품했다. 이건 예상 가능한 범주의 사건이 아니다.
‘우연의 일치이며 변수에 불과해.’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는 변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겨 이용한다.
변수로 끼어든 마리아 일당의 정보를 캐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리아의 밑바닥 저력을 키누안은 모른다.’
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불안정한 추측이지만, 이 생각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키누안이 마리아 일당의 개입까지 애저녁에 예상하고 모든 걸 계획한 거라면? 그 정도 괴물이면 어쩔 수 없다. 당해줘야겠지.
‘오히려 키누안의 예측 범위에 있는 건 나나 일레이의 특임대다. 키누안은 일레이와 내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계산에 넣고 움직이고 있을 거야.’
마리아 일당은 미약한 세력이지만 ‘변수’가 된다. 그 변수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앞으로 하기 나름이다.
“생각이 많군, 젊은 총각. 뇌가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사리엘을 따라가던 마리아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리엘은 갈림길에 맞닥뜨리고선 좌우로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난 속내를 숨기듯 화제를 돌렸다.
“사리엘의 행동거지가 모자란 건 단순히 지능 문제가 아니지? 아마 사회성이 정상화될수록 초감각 능력도 떨어졌을 거야. 일부러 저런 모지리 상태로 놔두는 거겠지. 약물이든 뭐든 사용해서.”
흔한 기전이다. 뇌의 특정 기능이 극도로 발달하면 다른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흠, 이 아줌마는 가방끈이 짧아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걸.”
마리아는 천연덕스레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당겨서 땅바닥에 꽂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자식을 다루는 방식을 보니 도망친 애도 제법 많겠군.”
내가 은연중에 가브리엘에 대해 떠보았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버림받은 줄 알고 있다.
‘마리아는 자식을 버리진 않을 거다. 그런 성격은 아닐 거야.’
마리아는 눈썹을 치켜떴다. 이 와중에 사리엘은 방향을 잡고선 다시 이동했다.
“이봐, 총각. 난 이십여 년 동안, 해마다 자식을 낳았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내 손으로 키운 자식들밖에 없거든. 남편도 결국 남일 뿐이니까. 네 눈에는 내가 함량 미달의 부모처럼 보이겠지만, 내 슬하에서 도망치려 한 자식은 한 명도 없어.”
“버린 적도?”
음, 좀 노골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리아는 내가 가브리엘과 연관됐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군. 너도 부모 얼굴을 모르는 고아인 건가? 안타깝지만, 내 배에서 나온 사내라면 다들 진짜 남자답게 얼굴선이 굵어. 너 같은 비실이는 태어나지 않아.”
마리아는 내가 엄마라도 찾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누군가가 날 비실이라고 부르는 건 색다른 경험이로군.
저벅, 저벅.
마리아는 사리엘을 따라가며 내게 등을 보였다. 그녀는 어깨만 주춤거리다가 말을 내뱉었다.
“……예전에 내게 차인 남자친구 중 하나가 내 아이를 훔쳐서 도망간 적은 있었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야. 내가 유일하게 잃어버린 자식이었지.”
“그 남자와 아이는 어떻게 됐지?”
“수소문 끝에 찾아냈어. 그런데 이미 약에 찌든 폐인이 된지라 아이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뭐,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사리엘의 코가 바삐 움직이고 있군.”
사리엘의 걸음이 멈춘 곳은 허름한 상점가에 위치한 낡은 찻집이었다. 차는 빈민과 부랑배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치재다.
그렇기에 이 거리에 있는 찻집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