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305

305
마리아 오가노프는 냉철한 여자였다. 친자식이 눈앞에서 둘이나 죽었는데도, 잔혹한 현실을 바로 인식하며 움직였다.

‘저 정돈 돼야 방랑 집단의 수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수장이 감정적으로 굴면 집단 전체가 무너진다. 여기서 그녀가 자식의 죽음에 동요하면서 감정적으로 굴었다간 크롤러 사리엘도 죽었을 것이다.

남들에겐 비정한 어머니처럼 보일지라도, 마리아는 적절한 대처를 하고 있었다.

우우웅.

가면을 쓴 퀼리아는 인기척도 드러내지 않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다른 차원에 걸쳐있는 것처럼 그녀의 존재는 사라졌다.

퀼리아가 우리엘과 라파엘을 공격한 원흉을 정찰하러 나갔다.

그사이에 나는 마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마리아, 사리엘이 민감하게 여기는 냄새가 뭐지?”

“내 ‘체취’다. 그걸 캡슐에 묻혀놨어.”

난 눈을 찌푸리며 사고를 가속했다.

“근래 소지품 중에 잃어버린 게 있나? 손수건이나 속옷…… 같은 것 말이지.”

마리아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를 바득 갈았다.

“빌어먹을! 술집에 만난 창놈이 내 속옷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선물로 준 적이 있어.”

“머저리 같은 짓이었네.”

내가 쏘아붙였다. 마리아도 혈관이 돋은 이마를 짚었다.

“그런 창놈이 한둘도 아니고, 그땐 경매장 습격이 있기도 전……. 하아, 됐어. 변명은 추하지. 나도 멍청이처럼 함정에 빠졌군.”

마리아는 총구를 건물 방향으로 겨누었다. 그녀는 퀼리아가 투명인간처럼 사라진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코라의 고위 사제나 전투원들이 기묘한 기술을 쓴다는 걸 마리아도 잘 알고 있겠지.’

퀼리아는 지금 건물에 접근했을 터다. 난 그녀의 통신을 가만히 기다렸다.

-루카 님, 후퇴하셔야 합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퀼리아는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니다. 극단적으로 절제된 감정을 가진 것뿐이었다.

‘두려움.’

미미한 감정이 통신 너머에서도 들렸다.

‘그리고 퀼리아는 저 건물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모른다면 다짜고짜 도망치자는 말을 하지 않을 터다.

‘퀼리아가 도망치자고 말할 만한 대상.’

코라나 아케인과 연관된 존재일 터다.

“천천히 후퇴해. 그리고 뭘 봤는지 설명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코라와 관련된 것인가 보군.”

내가 예리하게 파고들었고, 퀼리아는 침묵했다. 난 추궁하듯 말을 이어갔다.

“후퇴하다가 공격당한다면, 적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 정체불명의 적에게 기습당하는 것만큼 불리한 상황이 없어. 훈련을 받은 전사라면 내 말을 이해하겠지.”

퀼리아의 충성은 본국의 교단이 아니라 교구장에게 향하는 것일 터다. 교구장은 본국의 명령에 저항하는 위치에 있다.

퀼리아가 본국의 교단에 마냥 충성하는 자라면 교구장이 측근으로 두지 않을 터다.

‘퀼리아에겐 교구장의 이익이 우선이다.’

나는 타인의 사고와 마음을 찔러서 원하는 걸 얻어냈다. 이건 키누안의 방식이다.

내 추론이 맞았는지 통신기에서 퀼리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코라의 ‘암살단원’입니다.

“암살단? 그런 조직이…… 음, 비정규 조직이겠군. 전투력은? 성기사나 근위대 기준으로 말해.”

난 상급 군인 출신이다. 다른 국가의 대외적 특수부대는 꿰고 있었다. 내가 모른다는 건 비정규 조직이라는 뜻이다.

어느 국가든 간에 비정규 군사조직이 있는 법이다. 국가 운영이 합법적이고 깨끗한 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소규모 대인전만큼은 암살단원이 우위입니다. 특히 이런 비정규전에 적합한 전투원이죠.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울 겁니다.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상위 전투원은 아니라는 소리로군. 퀼리아, 이쪽으로 오지 말고 정찰을 계속해. 놈의 무장과 능력을 비롯해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내게 말해라. 난 네 말을 통해 놈을 보겠다. 공격하는 쪽은 우리야.”

퀼리아는 내 결정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

-……알겠습니다. 현재 놈은 주변을 살피고 있습니다. 다른 위협이 있는지 보고 있군요. 자리를 뜨지 않는 걸 봐서 여길 더 살필 생각인 듯합니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고요.

난 퀼리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들었다. 내가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냈다.

-촉매는 반지입니다. 모든 손가락에 반지를 차고 있습니다. 일종의 포스 능력 충전 역할도 하는 듯하고, 반지 중 두 개는 빛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라파엘과 우리엘에게 능력을 사용한 탓일 터다.

퀼리아의 보고는 예리했다. 내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고 있었다.

퀼리아가 뭐라 더 보고하려는 순간, 건물 내부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터- 엉!

이윽고, 폭발이 일었다.

‘퀼리아가 공격을 받았다.’

퀼리아의 통신에서 잡음이 일었다. 그녀가 멀쩡한지 아닌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인지왜곡 능력이 완벽한 은폐는 아니다. 여러 가지 수단으로 파훼할 수 있을 터다. 포스의 활용법은 상당히 다양한 듯했다.

“마리아, 왼쪽으로 돌아서 부서진 벽 너머로 사격해. 이목을 잠깐만 끌어. 자식의 복수는 하고 가야겠지?”

난 마리아에게 위험한 역할을 맡겼다. 적의 포스 능력이 무엇인지도 아직 확실히 모른다. 그 사정거리도 미정이다.

“시키는 대로 하긴 할 텐데, 혹시라도 내 머리통이 터지면 사리엘을 집까지 책임지고 보내줘. 모자란 아들내미라 남들에게 이용을 잘 당하거든.”

“약속하지. 내가 죽지 않으면 말이야.”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격총을 들고 우회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의체의 출력을 고요히 높였다.

“퀼리아, 듣고 있나? 움직일 수 있으면 뭐든 공격해서 놈의 관심을 끌어.”

내가 통신으로 말했다.

카- 앙!

건물 내부에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퍼졌다. 퀼리아가 용케 움직인 것이다.

탕!

마리아도 거의 동시에 사격했다. 탄종을 화력형으로 바꿨는지 총성이 거창하게 컸다.

‘훌륭해.’

급조한 분대치고는 호흡이 잘 맞았다.

퀼리아와 마리아는 내가 지시한 대로 잘 움직였다. 이젠 내 차례이고, 실패한다면 내 탓이다.

간만에, 어깨가 무겁군.

나는 땅을 짓누르며 활시위를 떠나듯 도약했다. 한순간에 멀었던 건물이 가까워졌다.

부서진 벽에는 포스 오라의 빛무리가 안개처럼 걸쳐 있었다. 라파엘과 우리엘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죽음의 비린내가 내 코를 쿡쿡 찔렀다.

난 의도적으로 창문이 없는 벽으로 돌진했다. 나도 적을 보지 못하지만, 적도 날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퀼리아의 보고를 통해 건물 내부 구조, 놈의 모습과 위치를 알고 있다.

콰- 지지직!

난 발을 뻗어 벽을 후려찼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부서지면서 철골이 드러났다.

콰득!

난 철골을 어깨로 밀면서 우그러뜨리며 길을 열었다.

쿠르르릉!

난 포탄이 된 것처럼 벽을 부쉈다. 그리고 ‘코라의 암살단원’이 보였다.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사내였다. 인상도 흐릿해서 길 가다가 보더라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무장도 없는 맨손이라 방심하기 딱 좋았다.

‘포스 능력은 이래서 무섭군. 일반인처럼 보인다.’

포스 사용자는 장신구를 비롯해 무기 같지 않은 소지품마저 촉매로 삼을 수 있다.

비무장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포스 능력을 사용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암살자가 된다.

찌릿.

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코라의 암살단원도 날 보면서 반지를 낀 손가락을 뻗고 있다.

‘촉매인 반지가 빛나고 있다.’

포스 능력에는 일련의 순서와 법칙이 있다. 동작을 보고 예측하면 포스의 공격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건 내 특기, 아키에스 빅티마의 전투 성향에 들어맞는다.

키릭!

난 한 발로 착지하면서 몸을 거칠게 비틀었다. 허리가 삐끗할 정도로 과감한 동작이었다.

피- 슝!

암살단원의 손가락에서 포스 투사체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내 머리가 있던 자리로 투사체가 지나갔다.

‘경험의 승리로군.’

난 포스 사용자를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저들의 능력에 당황할 것 없다. 온갖 전투 장비와 칼과 총이 포스 능력으로 바뀐 것뿐이다.

나는 무너지는 자세에서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았다.

그리곤 예열해둔 충격권총 루이나의 방아쇠를 당겼다.

터- 엉!

암살단원은 포스 장막을 펼쳐서 충격탄을 상쇄했다.

우우웅!

충격탄의 폭발 여운으로 포스의 장막이 반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차피 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연거푸 일어난 폭발과 건물 잔해의 먼지로 시야가 어지럽다. 그 사이로 난 놈의 반지가 빛나는 걸 유심히 지켜봤다.

‘하나, 둘, 셋.’

난 속으로 숫자를 세며 바닥을 박차고 천장까지 치솟았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나는 중력이 없는 것처럼 천장에 거꾸로 붙었다.

터- 엉!

내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포스 폭발이 일었다.

‘직관적인 공격에 중점을 둔 포스 능력.’

나는 그라켄 부트를 뽑으며 밑으로 날이 향하도록 쥐었다. 오늘은 크루시스가 아니라 그라켄 부트가 활약하는 날이로군.

난 천장이 부서져라 박차며 암살단원에게 붙었다. 드디어 코앞까지 근접했다.

암살단원은 맨손이었다.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겠지.

위잉!

놈의 반지가 포스 사용을 위해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제아무리 거포라도 발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법.

휘릭! 킥!

난 놈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그라켄 부트를 빠르게 휘둘렀다.

백색 궤적이 놈의 손을 긁어내듯 수 차례 빛났다.

후두둑!

열 개의 손가락은 동시에 잘려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으득!

난 왼손을 뻗어서 암살단원의 입안에 집어넣고 밑으로 당겼다. 놈의 턱뼈가 으스러지면서 하관이 덜렁거렸다.

이러면 자해를 못 할 거고, 통신이나 보고도 불가능하겠지.

이어서 난 손과 발로 놈의 무릎과 팔꿈치를 재빨리 가격했다.

놈의 관절이 처참하게 깨지면서 실이 끊어진 것처럼 흔들렸다. 관절의 고정 기능이 사라진 팔다리는 뒤틀린 듯이 꺾이고 있었다.

휙!

난 뒤로 돌아서 발로 놈의 등을 짓눌렀고, 후두부에 그라켄 부트를 들이밀었다. 허튼짓을 하면 바로 칼날을 쑤셔넣을 생각이다.

무력화와 제압이 끝났다.

나는 숨을 돌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우우웅.

인지왜곡으로 가려졌던 퀼리아의 모습이 흐릿하게 점멸하더니 이내 드러났다. 그녀는 포스 폭발이 휘말려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나 목숨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움직일 수 있나?”

내가 퀼리아에게 물었다.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이 있으나, 곧 회복될 겁니다.”

퀼리아는 벽을 잡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끄륵, 크드, 읍.”

암살단원은 빠진 턱으로 뭐라 웅얼거렸다.

“이놈에게 정보를 캐낼 수 있을까?”

“힘들 겁니다. 턱이 멀쩡했다면, 어금니에 심어둔 독약으로 벌써 자결했겠죠.”

“잘 알고 있군.”

“저도 암살단원이 될 뻔했으니까요. 전투 훈련의 절반 정도는 그쪽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입을 열 사람이 아니니 바로 죽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압한 데는 이유가 있어. 죽이는 건 내가 아니라 마리아가 하는 게 좋겠지. 자식의 원수니까 직접 죽이고 싶을 거야. 이렇게 하면 겸사겸사 마리아에게 빚을 지울 수도 있고.”

나는 부서진 벽 너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마리아와 사리엘을 보았다.

퀼리아는 힘겹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전 당신과 처음 일해보지만, 찰나에 그 모든 계산을 다하신 게 놀랍군요. 마치…….”

난 뒷말이 무엇일지 잘 알고 있다. 퀼리아도 놈의 일처리를 옆에서 봤을 테니까.

“……키누안 같다고?”

내 말에 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